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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요양원 가는 길 / 허정진
도심지를 벗어나 늦가을 들녘을 가로지른다. 분주함 속에 풍요가 거쳐 간 논밭에는 허허로움과 적막으로 가득하다. 그루갈이를 하려는지 곱게 가다룬 논이랑이 소멸과 생성의 끝없는 순환 고리를 엮어내고 있다. 갈잎 같은 작은 새떼가 서쪽으로 기울어진 바람을 타고 물결치듯 지나간다. 길섶에 열병처럼 늘어선 풀꽃들이 새삼 알짝지근하다. 세상 밖이어서인지 친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산중 작은 요양원이다. 2층의 단아한 주택에 넓은 정원을 가졌다. 각종 꽃나무들이 앞뜰을 이루고 뒤뜰에는 여러 유실수들이 실하게 열매를 맺었다. 시득부득 말라가는 꽃잎마다 지난밤 청아하게 빛나던 달빛냄새가 스며들었다. 바닥에 수북한 낙엽들이 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오체투지 중이다. 별장처럼 단독주택으로 사용하던 것을 개조한 모양이다. 원장인 중년부부와 여덟 할머니가 한 지붕아래 동무되어 살아간다. 식구 많은 어느 가정집 같다.
예배 중이었나 보다. 향기 잃은 꽃밭에 날개 접은 나비마냥 오순도순 정물로 모여 앉았다. 소파나 휠체어에 작은 몸 웅크리고 가는귀먹은 얼굴을 갸웃거린다. 마음과는 달리 찬송가는 늘어지고 우물우물하다. 그래도 잘박잘박 발장단과 휘적거리는 손동작으로 기꺼이 흥겨워하는 눈치다. 형형한 기색도, 펄펄한 기운도 사라졌지만 죽음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절실하다.
우련한 눈빛들이다. 더 이상 변곡점 없는 삶의 여정을 마치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에 따라 움직이듯 담담한 표정이지만 조금은 아쉬운 듯도 한 무엇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복잡하고 혼탁한 생각에서 벗어나 다음 생의 맑은 영혼을 찾아 나선 순례자들 같다. 청안하게 푸르던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긴 채 침묵 속에 들어간 겨울 숲처럼 야위고 굽은 등은 왠지 서늘하고 쓸쓸하다. 보고만 있어도 자꾸 슬퍼진다.
꽃님이니 달님이니 예쁜 방 이름을 붙여놓았다. 머리맡 탁자에 가족사진첩이 체납된 고지서 같은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방안은 정돈되고 청결하지만 온기가 보이지 않는다. 살 냄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꽃병의 들꽃향기도 머무는 자의 향취일 뿐이지 먼 길 떠나는 사람에게는 결코 미혹과 위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갖고 갈 짐도 없다. 옷장과 침대 그리고 발밑에 보따리하나뿐이다.
후덕한 인상의 원장부부가 한마디 귓속말을 전한다. 할머니들 방에서는 밤마다 옷장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만장처럼 흐느적대는 시간으로 보자기 싸매는 손들이 밤새 사르륵거린다. 입고 갈 고운 옷 하나 머리맡에 두고 크고 작은 보퉁이 발밑에 쟁여놓는다. 꽃님방 구순 먹은 할머니는 엄마가 내일 데리러 온다하고, 달님방 막내 할머니는 고향 뙈기밭에 감자 캐러 간다며 속절없는 밤을 붙잡는다. 산새소리에 늦은 잠이 깬 할머니들은 서둘러 거울속의 온전한 제 모습을 보고서야 주섬주섬 보자기를 풀어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한다. 익숙한 일상처럼 호접몽 같은 어젯밤이 파적거리가 되어 저녁이면 지는 꽃잎들 활옷처럼 다시 피는 하루가 이어진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시간뿐임을 안다. 되돌릴 수도, 늦출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이 내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조락한 내 몸이 안다. 구태여 시간을 욕심내지 않는 저승길에서 생존에 집착해야 할 이유와 의미는 공허하다. 그래서 무덤덤하다. 더 이상 세상에 왈가왈부하지도, 싫은 것을 결코 싫지 않게 넘어가지 못했던 그 완강함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한때의 절망과 결핍들도, 상처투성이 과거들도, 평생 햇빛 한번 제대로 없이 보낸 삶의 남루와 회한도 잘라버린 신경세포처럼 통증을 잃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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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님방 할머니를 방문한 늙숙한 자식 내외가 있다. 청유형의 완곡어법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이 날빛 방안을 머쓱하게 떠다닌다. 수다도 눈물도 아닌 그저 허허로운 웃음이나 풀풀 날리며 무료한 오후를 핥아내고 있다. 바쁜 일이 있는지 금방 일어서는 자식의 기름기 없는 목덜미를 보면서 출근처럼 저녁의 기약이 아니라 매번 마지막일 것 같은 아릿한 배웅을 한다. 서로가 맞잡은 미지근한 손의 함의는 무엇을 전하고 있었을까.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어머니와 마지못해 나선 길이었다. 연로하지만 아직은 정정해서 뜻밖의 주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인연의 끝은 늘 이렇게 허망한 줄은 알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고 밀쳐두었던 현실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아니라고,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시지 말라고 단호하게 못 박지 못했던 그 순간을 내내 자책하고 불편스럽기만 했다.
음식솜씨만큼 입맛도 까다로우셨는데 이젠 그런 투정마저 번거로워 할 만큼 기력을 잃었다. 단아하던 몸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처럼 홀로 앙상하다. 그나마 의지하고 타시락거리며 살던 남편마저 떠나보내고 여린 늑골사이 녹슨 거푸집에서는 매일 서늘한 바람이 분다. 노구에서 여자가 사라졌지만 늘 꽃으로 남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제 단풍든 낙엽을 보아도 곱다고 할 줄도 모른다. 당신 자신이 낙엽이니까.
생의 마감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일까. 자신의 행동과 의지로 생활하다가 천명이 다해 자기 집에서 잠자는 듯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누구나 원하는 행복이 아닐까. 하지만 더 이상 자기 몸 하나 지탱할 기력이 없거나, 내가 나를 몰라보는 만일의 경우가 생긴다면 어찌해야할까. 가족의 사랑과 품안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기를 대다수가 원하지만 실상 현실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이 대다수라고 한다.
전문적인 치료나 호스피스의 심리적 도움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사자에게 더 평안한 일인지도 모른다. 먹고사느라 아등바등 대는 현실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부모자식간의 젖빛 교감만을 내세운 봉양이 언제까지나 효심의 임계점을 견디어낼지도 염려가 된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있는 터에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불효라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접 수발하고 모시는 자식들도 많은 것을 보면 편리나 효율만이 능사는 아닌 것도 같아 마음이 더욱 찹찹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의 표정 잃은 눈빛이 덜컹거린다. 아무리 시설이 좋고 따뜻한 보살핌이 있다고 해도 가족이 배제된 공간은 시골 간이역처럼 낯선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행여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요양원을 마음에 두었을지 모르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듯 그 마음은 먹먹하기 이를 데 없을 듯하다. 부모 다음은 또 우리세대인데 그때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불현듯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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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찬기를 품은 실바람이 차창너머 허공의 발부리에 넘어져 휘청거린다. 노을에 비친 새털구름이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떠나는 여인들의 뒷모습 같다. 요양원 가는 길은 무겁기만 하다.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소감] "정체성 찾기로 시작, 비로소 나침반 얻은듯"
▲ 수상소감 1958년 경남 함양 출생. 단국대 사학과 졸.
〈뉴욕문학〉신인상
앞마당에 작은 텃밭 하나 있다. 겨울 부침거리 욕심에 배추 몇 포기 심어보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도 일조량과 토질의 차이가 있는지 성장도 볼품없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거름도, 농약도 마다한 것처럼 미립도, 육감도 부족한 길이었을까. 아침마다 뽀얀 서릿발을 뒤집어쓰고 있는 터앝을 볼 때마다 외진 응달처럼 못다 채운 자양분에 스스로를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오늘은 자꾸 눈길이 간다. 내 이랑에도 숨겨진 씨알 하나 움트나 보다.
낯선 이민생활에서 정체성 찾기로 시작한 글쓰기였다. 지연도, 혈연도, 학연도 없는 곳에서 세상에 오직 혼자였다. 내가 누구인지 미처 내가 몰랐다. 살아내기 위해서는 소멸되어가는 나부터 건지는 일이었다.
당선이 기쁘기 그지없다. 아람 벌어져 굵다란 밤송이 하나 손에 쥔 것 같다. 무엇을 써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비로소 지도와 나침반을 얻은 느낌이다. 전북일보 신춘문예가 참신하고 도전적인 작가 등용문인 것을 알기에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할까 봐 벌써 두려움이 앞선다.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산중 요양원 묘사, 사실정물화처럼 생생"
▲ 심사평 전일환 수필가. 전주대 명예교수
올해 신춘문예에는 예년보다도 많은 분들이 응모한 열기로 세밑의 겨울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180여 분, 4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응모한 편수만큼이나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심사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을 천평칭(天平秤)저울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경중을 재어보면서 선후우열을 가려보았다.
결국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어머니와 마지못해 나선’ 허정진의 ‘요양원 가는 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연로하지만 아직은 정정해서 뜻밖의 주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인연의 끝은 늘 이렇게 허망한 줄은 알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고 밀쳐두었던 현실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다가온’ 작자의 가슴 에이는 깊은 마음의 심연이 심사자의 가슴을
수필은 작자가 직접 체험한 삶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독자로 하여금 공감과 감동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기고백의 장르다.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심경을 그저 붓 가는 대로’의 의미를 담아내는 게 수필(隨筆)이다. ‘따른다(隨)’에 함의된 속뜻은 어떤 수준에 ‘이른다(到)’나 ‘베스트(至)’와 동질적이므로 좋은 수필을 쓰려면 반드시 어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작자는 ‘단아하던 몸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처럼 홀로 앙상’하고, ‘늘 꽃으로 남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제 단풍든 낙엽을 보아도 곱다고 할 줄 모르는’ 신세가 되어버린 어머니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산중 작은 요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노구들의 고독한 삶의 앙상한 형상들을 ‘향기 잃은 꽃밭에 날개 접은 나비마냥 오순도순 정물로 모여 앉았다’ 거나, ‘형형한 기색도, 펄펄한 기운도 사라졌지만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절실하다’라는 빛바랜 산중요양원의 묘사는 허랑하고도 생생한 사실정물화로 다가들었다.
이러한 허허로운 노년의 삶과 죽음에 이르게 되는 김은옥 씨의 ‘은사시나무’나 송귀연 씨의 ‘잿불’에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감자나 고구마를 찌기 전 껍질을 벗길 때 사용했던 김학철 씨의 ‘달챙이 숟가락’의 아린 어려운 삶에도 드리어져 있고, 고단한 노년의 노점상 제2인칭관찰자 시점의 수필 제례시장 박시윤 씨의 ‘마수걸이’에서도 리얼하게 그려졌다. 이들 모두 다 당선작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당선작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는 제한성이 심사자로서 매우 아쉽고 야속하기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송귀연 ‘비설거지’
고빗사위다. 아침부터 매지구름이 덮인다 싶더니 흘레바람이 흙내를 들추며 문지방을 덮친다. 부리나케 장독으로 달려가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거둔다. 호박말랭이, 시래기타래도 정신없이 안고 뛴다. 열어젖혀둔 창문 틈이 생각나 후다닥 몸을 다시 일으킨다. 다행히 비는 틈새로 미처 발을 디밀진 않았다. 처마 밑에서 가만히 비를 긋고 바라보는데 아뿔싸! 마당 귀퉁이에 널어둔 버섯소쿠리가 눈에 띈다. 흥건히 젖어버린 버섯은 이미 축 늘어져 물먹은 종이처럼 흐물흐물해지고 말았다.
비가 오거나 오려고 할 때, 비를 맞혀서는 안 될 물건을 거둬들이거나 덮는 일이 비설거지다. 내가 사는 산골엔 자주 예기치 않은 비가 내려 당황하는 일이 많다. 비설거지처럼 농촌에서는 절기나 철마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부지기수다. 그 중에도 겨울나기는 꼼꼼히 챙겨야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음 해 농사가 거기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누릿해진 콩대는 낫으로 베어 방망이로 두들기거나 도리깨질을 해야 한다. 벼는 탈곡 후 나오는 짚을 따로 모아 둥글게 말아 흰 비닐을 씌워둔다. 소여물 마련하기며 들깨나 참깨를 한 아름씩 묶어 볕에서 말리는 일 등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엄마는 늘 비가 오기 전 미리 비설거지를 해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었다. 육칠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 아버지를 채근하여 집안구석구석을 점검하는 한편, 틈이 생긴 담장과 비가 새는 지붕, 얼룩진 벽지도 새로 발랐다. 가을이면 방구들과 굴뚝청소를 해서 고래에 불이 잘 들도록 했으며, 헌 이불은 솜을 새로 타서 이불갈이를 했다. 무엇보다 비가 올 땐 장독부터 먼저 덮었다. 고추장이며 된장, 간장 등 한 해의 먹거리가 고스란히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전원생활을 한지 삼년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농사일이 서툴다. 봄이면 콩이며 고추 모종내기, 과수나무 가지치기, 여름엔 농약뿌리기, 가을걷이며, 겨울철 농한기활용까지. 나름 월력에 꼼꼼히 기록을 하며 동네어른들에게 미리 물어보기도 하지만 정작 닥치면 이런저런 일로 놓치기가 일쑤다. 늘 어떤 일을 사전에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일이 닥쳐 허둥대기만 한다. 집안정리며 청소조차 날마다 하지 않고 미루는 편이다. 그러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오면 난감해진다. 자잘한 일의 순서를 대수롭지 않게 미루다 낭패를 당한 일이 부지기수다. 냉장고의 찬거리를 정리하지 않아 썩히는 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람과 마찬가지로 동물이나 식물들도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동물은 몸속에 영양을 비축하여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땅속이나 동굴 속에 웅크려 봄을 기다린다. 새들은 깃을 가볍게 하고 청설모는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은다. 나무는 수분을 차단함으로써 생장을 멈춰 몸이 얼지 않도록 하여 겨울을 난다. 그것뿐이랴. 세차게 흐르던 강물도 몸집을 줄이고 산들도 두터운 낙엽이불을 꺼내 덮는다.
농가월령가는 다산의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전래적 노래책이다. 여기엔 농가의 행사와 세시풍속 뿐 아니라 농촌풍속과 권농(勸農)을 월별로 세밀하게 기록해두었다. 24절기는 농사를 준비하는데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입춘 때는 굿을 하고 농사의 기초인 보리뿌리를 뽑아 풍흉을 점쳤다. 경칩에는 일 년 동안의 빈대를 잡기 위해 흙담을 쌓거나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두기도 했으며, 망종 때는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의 씨를 뿌렸다. 처서엔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 벌초를 했고 마지막 절기인 대한에는 콩을 땅이나 마루에 뿌려서 악귀를 쫓아내고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토록 유비무환으로 무장한 엄마였지만 가세가 기울어지려니 일련의 일들이 거푸 일어났다. 전문요리엔 문외한이었는데도 갈비 집을 차려 일 년을 못 버티고 폐업해야 했다. 부동산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덩치 큰 건물을 매입했다가 불어나는 빚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해 팔고 돌아서자 야속하게도 값이 껑충 뛰었다. 아무리 예지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살면서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그러지 못하는 게 더 많다.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은 더 신비로운 것이 아닐까.
여우비는 일을 배가시켰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겨우 비설거지를 끝내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 해가 났다. 그러면 다 치웠던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에 펴 널고 부산을 떨어야 했다. 아파트는 모든 물건들이 집안에 있어 비가와도 걱정이 없지만 농촌상황은 비만 떨어지면 비설거지로 콩을 볶게 된다. 갑작스런 비는 스님의 죽비처럼 나태한 일상을 깨운다. 그것은 한시도 삶에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어떤 경고 같은 것이다. 비설거지를 함으로써 미뤄뒀던 일들을 처리하게 되고 그로인해 바쁜 농촌의 일들을 질서 있게 만드는 것이다.
비에 젖은 것들을 다시 내어 말리면서 삶의 밑바닥까지 내동댕이쳐졌던 그 옛날의 상황을 떠올린다. 엄마는 서로를 원망하며 해체직전까지 치달았던 가족들을 껴안으며 다독였다. 늘그막엔 공장일도 마다하지 않고 당신부터 솔선수범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뒤늦은 대처였지만 절망만 하고 재기할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일어서지 못하였을 것이다.
구름사이로 햇빛이 내려온다. 허둥지둥 거두어들었던 호박말랭이며 무시래기를 담은 소쿠리를 마당에 내어놓는다. 산골 오후는 한 차례의 야단법석이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는다. 뜻하지 않은 혼란과 그에 대한 대처와 회복, 그런 것들이 반복되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컹컹, 여우비가 꼬리를 흔들며 맞은 편 산을 넘어간다. 기지개를 켜는 산허리에 오늘따라 단풍이 붉다.
▶ 당선소감 송귀연씨(61·경북 포항)
도시를 떠나 작은 면소재지로 이사 온지가 어느 덧 삼년이 되었습니다. 서툰 농사솜씨로 과수원이며 텃밭을 가꾸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은 농사는 다그치고 서두른다고 결실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설거지처럼 미리 준비하며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늦깎이로 문학을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수없이 많은 밤을 새기도 했고 고독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은 쉽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고 그만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할까 생각했습니다. 6년여, 그 절망의 끝에서 당선통지를 받았습니다.
설익은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전북도민일보 관계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수필을 시작했을 때의 처음 설렘을 간직하며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끊임없이 격려를 아끼지 않는 <시거리문학회> 문우들과 김영식선생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또한 곁에서 노심초사 지원해준 남편과 무한신뢰를 보내준 딸,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심사평 조미애 시인 “작가의 삶은 타인의 것이 아니었다”
신춘문예를 목표로 오랜 시간 퇴고한 작품들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많은 글 중에서 단 한편만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141명이 보내온 총 311편의 수필을 읽고 심사하였다. 대체로 많이 사색하고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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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물론 연령층도 다양하여 몇 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감상하는 듯 했다. 실제로 소제목을 주어가면서 쓰인 글도 있었다. 글을 통해 새롭게 인식되는 작가의 삶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으로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인데, 글쓴이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웃들은 행복함보다는 하나같이 슬픔이 얼룩진 아련함이었다. 그래서인지 성노동자들의 사연을 소재로 한 글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응모한 모든 분들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송귀연의 〈비설거지〉를 뽑았다. 비가 오려고 할 때 비를 맞혀서는 안 될 물건을 거둬들이거나 덮는 비설거지를, 살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인 모습이 신선했다. 문장의 흐름이나 구성 또한 자유롭고 뛰어났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좋은 수필로써 한국문단에 별이 되길 기대한다.
아깝게 탈락했지만 정문숙의 〈나무 한 그루〉도 좋은 글이었다. 자작나무 숲을 걷는 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다가왔다. 다만 하나의 흐름을 조금 더 오래 이어가는 연습이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옥한의 <잠망>, 권상연의 <호랑이 고모>, 김현숙의 <달을 비우다>, 이종희의 <새품>등도 여러 번 다시 읽은 작품이었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
[2017 매일 신춘문예/수필]
나침반-김순애
여행 가방에서 나온 꾸러미가 제법 묵직해 보였다. 얼마나 정성 들여 포장을 했을까. 겹겹이 싸인 비닐을 풀고 포장지를 벗기는 남편의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상기된 낯빛이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와 같다.
나침반이었다. 하나같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것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무와 구리로 만들어진, 갈색 빛이 도는 크고 작은 나침반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둥근 모양, 거북이 모양, 북극성이 박힌 것, 해시계가 달린 것, 심지어 그 하나에 백 년의 달력이 새겨진 것도 있었다. 저것들을 구하려고 얼마나 거리를 누비고 다녔을까. 이국땅 낯선 골목을 떠도는 남편의 형상이 나침반 바늘과 겹쳐졌다.
남편은 4년째 인도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처음 인도 발령이 났을 때 그는 많이 망설였다. 결혼 생활의 절반을 주말부부로 지냈는데 그것도 모자라 더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니 갈등이 컸다. 그뿐이 아니었다. 첫 해외 근무여서 언어도 장벽이었고 법인을 새로 세워 이끌어 가는 것도 부담이었다. 사표를 내나 마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비행기에 올랐다.
낯설고 물 선 곳에서 남편의 홀로서기는 쉽지 않았다. 가끔씩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음성은 많이 흔들렸다. 마음 터놓고 얘기할 데도 없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그곳 생활이 참으로 외롭다며 하소연했다. 몇 달 동안 힘썼던 일이 성사 되지 않아 앞이 캄캄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돌아오고 싶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지만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남편을 붙들어 준 것은 나침반이었다. 어느 날 지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낯선 거리를 서성거렸는데 정처 없이 걷다 보니 골동품 가게 앞이더란다. 온갖 잡동사니 속에서 유독 나침반들이 눈길을 끌었고 홀린 듯 다가가 한참을 들여다보았단다.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바늘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같은 방향인 N극과 S극, 먼지를 덮어쓴 채 양팔 벌려 자기 역할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나를 집어 흔들어 보니 바늘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헤매지 않고 제갈 길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남편은 망설이지 않고 값을 치렀다고.
거실 바닥에 늘어선 나침반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어느 길 잃은 나그네의 길잡이가 되었다가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나. 들숨과 날숨에서 지난했던 그들의 과거가 새어나온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항해사의 힘찬 고함 소리, 밀림을 탐험하는 대원들의 지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뜻 전쟁터에서 낙오된 어린 병사의 초점 잃은 눈빛도 느껴진다. 옛사람들의 절박한 생을 지켜보며 동반자가 되어 준 내력들이 고요한 숨소리에 실려 내게 전해진다. 하나를 손에 올려 본다. 손바닥 위에서 바늘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미미한 자극에도 바르르 떨린다. 마음이 싸하다.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남편이 떠오른다.
나침반과 첫 만남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은 골동품 거리를 기웃거렸다. 사는 게 힘들어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날이면 그곳으로 갔단다.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웃는 어느 드라비다인의 미소에 이끌려 산 것이 이것이고, 좌판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의 아련한 눈빛에 쏠려 산 것이 저것이고…. 흠집 많은 나침반 하나하나에 담겨 있을 사연처럼 남편 손에 오게 된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도 그 드라비다인의 미소와 여인의 눈빛이 머물고 있었다. 열심히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행자의 모습도 엿보였다.
나침반의 속더께를 닦는 남편의 얼굴이 진지하다. 기름 바른 걸레가 지나갈 때마다 반질거리며 윤이 난다. 몇 번의 걸레질에 광택이 나는 나침반처럼 남편의 인생도 저렇게 빛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찬 풍파에 시달린 자국들, 나침반의 상처는 정성스러운 손길에도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불도장처럼 오히려 더 또렷하다.
얼마 전 남편이 있는 인도에 다녀왔다. 그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들렀다가 책상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나침반 하나를 보았다. 요리조리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남편이 말했다.
“지난번에 뭄바이 갔다가 눈에 띄기에 두 개 샀는데 하나는 누굴 줬어. 두어 달 전에 인도에 온 사람이 내게 자문을 구하러 왔을 때 힘내라고 줬지. 어저께도 그 사람이 전화해 앓는 소리를 하더라. 힘들어 못 해먹겠다는 말을 하는데 처음 인도에 왔을 때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어. 그래서 몇 마디 도움되는 말을 해 줬더니 그 친구가 나보고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나 뭐라나….”
어느새 남편도 누군가의 나침반이 되어 가는 것일까.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났다. 몇 번의 고비를 견뎌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가 보였다.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말끝에 이제 자기도 인도 사람 다 됐다 한다. 지나가는 인도인이 인사까지 하니 머지않아 아마 시장 선거에 출마해도 될 거라며 껄껄 웃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도 어느 누군가의 나침반으로 개척해 놓은 길일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한다. 가끔은 고갯길을 넘다 지쳐 목 놓아 울 것이고, 지나온 길에 대한 회한에 잠겨 뒤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 또한 누군가의 나침반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좁은 길이든 넓은 길이든 그 꿈길을 발밤발밤 밟으며 걸어오리라.
거실장 안에 나침반들이 쉬고 있다. 비록 상처투성이지만 그들에게서 겸손한 승리자의 모습을 본다. 주인과 함께 방황하고 번민하다 마침내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도 목청 높여 외치지 않는 유순한 조력자들, 어깨 낮춘 그들에겐 오로지 사람만을 섬긴 순결함이 스며 있다. 깊은 묵상에 잠긴 나침반을 깨운다. 이제는 유물이 된 그들을 어루만진다. 몸에 난 흠집들이 훈장처럼 반짝인다.
그의 나침반 바늘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바로 이곳이다. 무사히 사명을 다 하고 또 다른 나침반 꾸러미와 함께 입성할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 당선 소감
찬바람에도 무릎 꿇지 않고 수필의 숲으로 걸어갈 터
제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철쭉이 피었습니다. 개나리도 노랗게 꽃을 틔워 초겨울 엷은 햇살에 반짝이고 있습니다. 벌 나비 모두 떠나고 이파리마저 제갈 곳으로 가고 없는 겨울 화단에, 수줍은 듯 환하게 봄꽃이 피었습니다. 철모르고 뒤늦게 핀 그 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애처롭지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저의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시작한 수필 공부는 내 삶의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사는 게 힘들어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을 때 우연히 접한 것이 수필이었고, 수필은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헤매는 내게 동반자가 되어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수필은 맑은 거울이 되어 나를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어리석고 못났던 삶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젊은 날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고 사랑하게 해주었습니다. 먼저 용서하고 화해를 청하는 손을 내밀게도 했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바닷바람이 겨울 화단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봄꽃이 바람에 파르르 흔들리지만 이울지 않고 견디고 있습니다. 저들처럼 나도 의연히 나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 길이 외롭고 힘들지라도 찬바람에 무릎 꿇지 않고 수필의 숲 속으로 걸어가겠습니다.
당선이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떨리던 가슴과 손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몇 년을 짝사랑했던 사람이 마침내 내 앞에서 사랑 고백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아! 간절한 내 사랑이 드디어 전해졌구나….
아직은 부족한 글을 애정 어린 눈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수필의 맛을 알게 해준 이화련 선생님, 수필 공부를 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한 문우 여러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무엇보다 내 글의 글감이 되어 주고 나침반과 함께 열심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인도에 있는 남편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순애 당선자 약력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효성여대 국문과 졸업
형산수필, 포항수필 연구회 회원
제1회 형산수필 문학상 수상
◆심사평◆
나침반의 문학적 의미를 남편의 삶과 접목시킨 수작
수필쓰기는 지나간 체험을 불러와 현재에 해석하고, 다시 내일에 적용하는 작업이다. 이를 버무리는 과정에서 감동과 깨우침이라는 수필의 효용성, 문학성이 생겨난다. 여기에서 한 작품이 가지는 감동과 깨달음의 총량은 작가와 독자, 작중 주인공, 이 트라이포트 간의 일체감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하겠다.
응모작 514편 중에 절대 강자는 없었으나 세 차례의 관문을 넘어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들은 제각각 한 칼을 품은 역작들이었다. 한 편을 선정하기 위해 오히려 나머지들의 미세한 흠결을 찾는 일이 난감하였다.
작품 ‘초록은'(울산) ‘초록’이라는 추상어의 속성을 다양하게 구체화하는 작업이 신선하였으나 화소를 너무 많게 그리고 넓게 잡은 탓에 산만해져 버렸다. ‘수국과 흙갈이'(서울)와 ‘감나무 현관'(경산)은 수사적 기교가 주제를 가린 경우이다. 수사(修辭)라는 ‘옷’은 ‘몸’이라는 주제를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나미비아의 풍뎅이'(대구)는 서두 부분에서 기대를 한껏 받았으나 후반부에서 긴장감이 확 풀렸다. ‘밀어뜨리기보다는 뽑아 올리고 싶어서'(서울)는 현실 문제를 젊은 감각으로 시니컬하게 치고 나가 놀라게 했으나 정제되지 못한 표현들로 아깝게 손에서 비껴났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바람꽃 언덕'(서울)과 ‘어느 삼거리에서'(서울), 그리고 ‘나침반'(포항)이었다. ‘바람꽃 언덕’은 구성요소들이 그야말로 정교하고도 섬세하게 짜여 글의 흡인력을 높였다. 다만 스토리의 골조가 약하다는 점과 이를 수사적 기교가 대신하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어느 삼거리에서는’ 정지된 한 컷 사진을 보는 듯 이미지 중심의 투명한 글이었다. 풍경 속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배치도 좋았고, 의식의 흐름 기법도 적절했다. 후반부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어머니에 대한 해명이 없다는 점, 문단 나누기 등의 기본적인 퇴고가 문제되었다.
‘나침반’은 수필작법의 원론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중심 제재가 되는 나침반의 속성을 작가가 충분히 체화하고 있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나침반이 가지는 일반적 속성과 용도는 물론 나침반의 문학적 상징까지도 진지하게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그런 뒤에 유용한 자료만을 선별하고 이를 남편의 삶에 접목하여 의미화에 성공하였다. 글의 직조력이나, 언어의 세련미에서 다소 흠이 있었으나 제재를 불러내어 해석하고, 다시 적용하는 작법의 진지함과 충실성에 가점을 보태어 당선의 낙점을 찍었다.
이례적으로 최종 후보작을 평에 모두 올린 것은 이번 수필부문의 경쟁이 치열하였음을 알리고자 함이고, 선에 들지 못한 후보들에게 가멸찬 정진을 요청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홍억선(수필가), 정성화(수필가)
[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반쪽 지구본- 안은숙
거리를 배회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느리게 아주 천천히 걸었다. 저녁 어스름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어쩌면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누군가 내다버린 반쪽의 지구본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묵하게 파인 반쪽의 지구본, 마치 분화구 같기도 하다. 그 안엔 반나절 동안 내린 빗물이 얌전하게 고여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지구본 속엔 온갖 난파된 배와 격렬한 해전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듯 고요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다녀온 나라들은 없었다. 모국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나머지 반쪽의 지구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인 빗물은 쏟아버리고 나는 반쪽의 지구본을 품에 안았다. 집으로 가져왔다. 기울여도 기울여 봐도 밖으로 쏟아지지 않는 세상이 어쩌면 나를 꼭 붙들고 있다는 생각, 나를 따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집 현관 입구 허리 높이의 선반 위에는 반쪽의 지구본이 있다. 오다가다 건드리면 아슬아슬 흔들리거나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나는 이 속에 무언가를 자꾸만 들어앉혔다. 초승달 모양으로 기우는 브래지어를 넣어두거나 새로 산 살구색 스타킹을 넣어두었다. 가끔은 서랍이 되기도 하고, 액세서리 보관함이 되었다가 은행 창고가 되는 날도 더러 있었다. 동전을 담아둔 날엔 여러 나라들이 그 안에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우울한 날엔 발리섬의 날씨를 빌려다가 껴입고 외출하고 싶었다. 약속이라도 생기는 날엔 갈라파고스제도를 닮은 스타킹 하나를 꺼내 신고 나갔다. 그런 날이면 나는 또 어김없이 다른 반쪽의 지구본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궁금해졌다. 나의 모국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을 떠돌고 있을까. 어딘가에 분명 엎어져 있거나 뒤집어져 있을 것이다. 세상 수상한 날들의 연속이다. 마음의 안정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따라온 반쪽 지구본 앞에서 하릴없이 한참을 서있는 버릇이 생겼다. 여러 나라 앞에서 머뭇거릴 때가 참 많았다. 그러다 그리웠던 정서를 찾곤 했다. 혼자 옛 거리를 찾아다니거나 나의 첫 작품인 오디오로 음악에 젖어 마음을 달래거나 아무도 듣지 않는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한 장 한 장 악보를 뒤적거리다 마음이 뭉클해졌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나는 이 곡을 여러 차례나 수도 없이 연주했다. 광화문연가에 푹 빠지게 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도 훌쩍 넘어섰다. 가슴 뭉클해져서 다시 찾은 광화문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꽉 차 있었다. 내 손엔 손을 맞잡았던 연인도 없다. 다만 촛불만이 들려져 있다. 오월의 향긋한 꽃 대신에 노란 리본이, 촛불과 내 가슴은 금세 타들어갔다. 반쪽의 지구본을 감싸 안고 집에 온 날이 혼자 거리를 배회했던 날이었다면, 지금은 물결을 타듯 많은 인파 속에서 내가 섞여 걷고 있는 날이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감정이 밀려든다.
광화문에 서있었다. 등잔 접시 위에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주(主)자의 모습으로 나는 이 광장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나는 오래 이 자리를 지켰다. 또 다른 뭉클함이 가슴깊이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세상은 모르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지구상에 있었고, 내가 가방을 메고 등교한 날로부터 세계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여러 나라에 대해 암기를 하고 확인을 받고, 많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 그 무엇들, 그 무언가는 수수께끼처럼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모름을 알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모여든다는 것은 분명 기분이 좋은 일일 수도,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의 뜻을 이뤘다. 말씨와 식성과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드는 세상이다. 낯선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어디에서는 햇볕에 그을린 사람들이 자꾸만 집 밖으로 도망치려 한다. 이미 하나인 것들은 더 단단히 뭉치려 하고 어긋난 것들은 서로가 두 갈래로 갈라지려 한다. 뜻 하나로 하나가 되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공간의 소통의 부재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나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갈등을 꽤 오래 겪었다. 가슴에 꽂히는 눈동자를 보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맹목적인 얼굴을 거느리면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부릅뜨기 예사였다. 미간은 나도 몰래 찌푸려지고 금세 힘은 빠졌다. 마침내 침묵으로 들어가 굳게 닫혀 있는 입술,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속마음은 읽지 못한다.
사람의 얼굴 속에는 수천 겹의 마음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소통이 없으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반쪽이다. 너무 오래 앓았다. 많이 지나쳐왔고 그 사이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거리를 혼자 배회하지 않았다. 다시 찾아와 본 광화문 거리, 그곳에서는 긴 행렬이 있었다. 그 틈에서 걸었다. 행진은 질서정연하며 아름다웠다. 촛불의 향연은 어두운 밤을 찬란하게 수놓았다. 가족과 연인과 동창과 단체가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던 밤, 뜻 하나로 하나가 되었다가 각자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가는 밤이다.
현관문을 여니 모처럼 텅 비어 있는 반쪽의 지구본이 흔들거린다. 그처럼 나도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많이도 허전함을 느꼈다. 점점 더 나는 손톱과 머리카락을 키우고 굽어지는 등을 갖게 될 것이다. 어눌한 말씨로 느리게 말을 할 것이며 지금보다도 더 느리게 걷게 될 것이다. 저녁 무렵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듯 그렇게 젊은 나도 저물어 갈 것이다.
반쪽의 지구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일생 넘치고 넘쳐서 반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아닐까. 나의 반쪽은 없다. 설사 찾는다 해도 감쪽같이 이어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 당선소감]
희망 품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물고기
나는 한때 해일의 어류(魚類) 같았습니다.
오고가는 물살에 다만 유영할 뿐이었습니다.
내 몸에 키가 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시동을 걸고
연안이나 몰려가 죽는 고래들처럼
표류를 꿈꾸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깨어났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파도에 지느러미를 달며
이 순간, 나는
비로소 온전한 물고기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2017년 문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문들 앞에서 서성거렸을 나,
간절하면 이루어지나 봅니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려 보았던 수필이라는 장르, 제게 문을 활짝 열어주신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겸허한 자세로 오래도록
문학하는 일에 정진하겠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앞을 향해 헤엄쳐 나아가겠습니다.
△1965년 서울 출생 △건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 졸업 △201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 부문)
['수필' 심사평]
면밀한 관찰력·밀도있는 문장력 탁월 / 한후남. 이동이
두 명의 심사위원이 각기 5편씩을 골라내어 10편의 후보작을 놓고 수회 정독한 후, 장고의 토의가 있었다.
주제의 일관성과 소재의 참신성, 구성의 효율성을 중점으로 문장력을 갖춘 작품의 완성도 등을 따져서 안은숙의 ‘반쪽 지구본’을 당선작으로 선했다.
‘반쪽 지구본’은 감상적 몰입보다는 객관적 거리를 두는 통찰적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기울여도 기울여 봐도 밖으로 쏟아지지 않는 세상들이 어쩌면 나를 꼭 붙들고 있다는 생각… (중략) 어딘가에 분명 엎어져 있거나 뒤짚어져 있을 것이다.’ 등의 묘사가 예사롭지 않다. 절제된 내면의 자연스러운 감정 유출은 사회문제를 환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통한 면밀한 관찰력과 밀도 있는 문장력으로 주제를 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하여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참신한 문장력과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흡인력, 소재와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응모자의 자질에 앞으로 쓰여질 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신뢰감이 들었다.
최종심에 오른 ‘도리샘’은 제목의 참신성과 주제의 방향이 선명했다. 묘사력이 뛰어났으나 다소 감상적으로 치우친 점이 조금 아쉬웠다. 또 다른 경선작 ‘단짝’은 간결한 문체와 정감 있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으나 소재의 형상화에서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두 응모자는 다음 해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응모작 과반수에서 보인 다소 평범한 소재와 단조로운 톤의 서술은 신춘문예 특유의 치열함이 아쉬웠다. 수필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독자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는 철학적 사유와 심미적 시각을 필요로 하며, 인생에 대한 통찰과 새로운 해석으로 울림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온 국민이 혼란 속에 빠져 있는 시국의 아픔 속에서도 문학의 힘으로 올곧게 서고자 하는 글들이 더러 보여 마음이 푸근하다. 곧 환한 세상에서 화색이 돌기를 희망하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또 아쉽게 뽑히지 못한 두 분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한후남·이동이 )
[영주일보 수필 당선작]
노루발 / 김지희
자운영 붉게 핀 옷감 위를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두 귀 쫑긋 지나간 자국마다 박음질된 실들이 오솔길처럼 펼쳐진다. 촘촘한 길 가로 새소리며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챠르르! 챠르르! 할머니가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눈부신 천들이 지어져 나온다.
노루발은 재봉틀의 부속품이다. 박음질 할 때 옷감이 밀리지 않도록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지그시 누르는 힘이 없다면 실이 끊어지거나 선이 비뚤어져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중간이 갈라져 끝이 살짝 들린 생김새가 노루의 발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언제 들어도 정답고 살갑다.
몇 번씩이나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엄마는 신주단지처럼 재봉틀을 모셨다. 혹여 생채기라도 날까봐 이불로 고이 싸매고 난 후에야 다른 짐을 챙겼다. 이사한 집에서도 가장 호젓한 자리를 차지했다. 재봉틀을 앉히고 구도를 잡은 후에야 다른 가구들을 배치했다. 그건 어쩌면 청상과부로 반백년을 보냈던 외할머니의 체온이 고스란히 스며들었기 때문이리라.
할머니는 육이오 전쟁에 남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학도병이던 아들까지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했으니 삶이 얼마나 곡진했을까. 난리 속에 자원입대한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밤낮 분간 없이 사방을 헤매며 다녔다고 한다. 수소문으로 듣게 된 아들의 죽음은 청천벽력이었고 할머니는 한동안 실어증환자처럼 말문을 닫아버렸다. 그런 할머니에게선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아련하고 쓸쓸한 냄새가 났다. 뒷산 바위 틈새에 피어난 구절초 향기 같기도 했고 늦가을 들판 위로 피어오르는 수숫대 타는 냄새 같기도 했다.
할머니는 매일 꼭두새벽마다 장독대에 촛불을 밝힌 후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면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무명치마저고리를 띠 둘러 입고 윤이 나도록 마루를 닦았다. 보리밥 한 소쿠리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잠 덜 깬 내 손을 잡고 집 뒤 작은 암자에 새벽기도를 가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을초입의 기생집에 들러 바느질거리를 받아왔다.
앉은뱅이 손틀은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론 노루발을 조절해야 바느질이 고르게 된다. 북에 실을 감을 때에도 요령이 있다. 바퀴처럼 생긴 북에 송곳을 끼우고 재봉틀의 손잡이를 돌리면 오동보동 배를 불리며 북이 넘친다. 대롱이 뾰족한 양철기름통 밑동을 누르면 한 방울씩 내어줄 듯 말 듯 한다. 손잡이에 기름 몇 방울이 떨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노루발은 천을 뒤로 밀어내며 걸어간다. 그때마다 나는 산중턱을 겅중겅중 뛰어오르는 한 마리 노루를 상상하곤 했다.
할머니의 재봉틀은 달그락거리며 한나절 옷감을 지었다. 노루발은 발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기생들의 갑사저고리와 치맛단을 총망하게 밟고 다녔다. 잠자리 날개 같은 치마와 저고리를 만들고 빳빳한 동정을 달았다. 대나무자로 이리저리 재단을 하는 할머니의 숨 깊은 휘파람 소리도 곁들여졌다. 가끔 나를 부를 때도 있었다. 바늘귀에 실을 꿰어야 할 때였다. 실을 꿸 때면 노루발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그윽이 바라보곤 했다. 할머니의 희끗한 머리엔 자투리 실이 올라가 있거나 입술엔 보푸라기가 물려있기도 했다.
할머니는 가져온 일감이 다 끝날 때까지 밤샘을 했다. 자투리 천이 생기면 손가방을 만들어 수를 놓거나 목수건을 만들었다. 덕분에 설빔으로 한복 한 벌씩은 내 차지가 되었다. 할머니는 여러 손자손녀 중 유독 나를 어여뻐했다. 어쩌면 이목구비가 당신을 빼닮은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옷감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는 종일 실밥처럼 폴폴 웃음을 날리고 다녔다.
노루발은 옷감뿐 아니라 자꾸만 비어져나가려는 슬픔도 지그시 눌러준 게 아닐까. 할머니는 시댁도 친정도 의지가지가 없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수십 년 세월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순간순간 닥치는 외로움과 허망함을 새끼손가락만한 그걸로 눌러 가슴 한켠에 꼭꼭 여미며 한 많은 세월을 이겨낸 게 아닐까.
어느 해 가을, 할머니는 당신이 손수 박음질한 수의를 입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있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돌아가시기 전 잘 간직하라며 재봉틀을 엄마에게 물려주었다. 엄마는 입다 헤진 옷으로 원피스며 천가방 등을 만들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 재봉틀은 꽤 도움이 되었다. 어떤 날은 엄마 방에 새벽이 이슥하도록 불이 켜지고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노루발이 할머니의 슬픔을 눌러주었던 것처럼 엄마의 가난도 지그시 눌러주었을까. 어린 우리들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불편한 것 없이 자랐다. 그 후 연로한 엄마는 나에게 재봉틀을 넘겨주었다.
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로 또 내게로 대물림되어온 재봉틀은 이제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손잡이는 헐거워져 헛돌기를 하고 북은 자꾸만 실을 끊어 먹는다. 관절이 꺽꺽 소리를 내는가하면 걷다가 퍼질러 앉아 일어나질 않는다. 헐거워진 경첩을 조여 보기도 하고 삐걱대는 나사를 조절하며 윤활유를 발라보지만 종내 옛날의 모습을 회복하진 못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사회적문화도 많이 변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엔 집집마다 유행처럼 재봉틀이 놓여 있었다. 이젠 전문수선집이 아니면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요즘 새로 나온 노루발은 빠르기도 하고 주름도 예쁘게 잡아주며 앙증맞기까지 하다. 거기다 실도 자동으로 꿰어준다. 두꺼운 청바지단도 지그시 밟으며 소리 내지 않고 달린다. 그러나 아무리 편리해졌다 해도 할머니의 재봉틀만큼 섬세하진 못하다. 손 때 묻은 바퀴며, 덜컹거리는 소리며, 그 소리를 따라 왁자하게 피어나던 꽃무늬며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노루발은 삶을 견디는 무언의 힘이 아니었을까. 가끔씩 사는 것이 고단하고 힘이 들 때면 재봉틀 앞에 앉아 본다.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면 늙은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가끔씩 멈추어 “괜찮아, 괜찮아”하고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그러면 나는 또 서툰 재봉질로 가슴 속 맺힌 것들을 풀어내어 가만히 내일을 박음질해보는 것이다.
▲ 김지희씨( 수필 부문 당선자)
ⓒ영주일보 [당선소감]
낡은 외투를 껴입은 가로수위로 난청의 새떼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잔뜩 흐린 하늘에서 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득, 설움 같기도 하고 회한 같기도 한 것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밀려왔습니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늦은 저녁까지 함께 공부하는 <시거리문학회> 문우들과 수필의 글귀를 열어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주신 김영식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언제나 따뜻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병상에 계신 부모님께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멀리, 오래 걸어가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벅찬 영광을 안겨주신 영주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1964년 경주에서 출생
동리목월문학관 연구반 수료
시거리문학회 회원
경주시 황성동 용담로92번길27
[수필부문 심사평]
[심사평]
열정의 땀방울이 맺어지는 작가들의 삶
글을 쓰는 사람들의 열망이 하나로 뭉치어 10회까지 온 영주일보신춘문예 수필작품을 앞에 두고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신인작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을 토해내는 글이 어느 해보다 신선하고 풍성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잉태하기까지 감내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출산의 기쁨으로 전율했던 작가들의 떨림이 전해 왔다.
그렇지만 10회를 맞이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영주신춘문예의 기대에는 간발의 미진함이 있었다. 정제된 언어와 촘촘한 구성, 삶에 대한 비의를 담은 작품들을 갈망했지만, 쉽게 심사위원들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본심에 부쳐진 작품으로는 김지희, 김현숙, 이정선, 조일희 씨의 작품들이었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면서도 오랜 세월 습작의 이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신춘문예 작품의 취지에 맞게 열정적인 작가의 작품을 고르기로 합의하였다
예심을 통해 고른 4명의 작품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김지희 「노루발」, 김현숙의 「등을 돌려보면」 조일희의 「엄마의 집」, 이정선의 「신문지 꽃다발」를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모두 나름대로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영주일보 신춘문예가 문사들의 등용문으로 튼실하게 자리 잡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당선작 후보에 오른 작품이 한 편 있었다. 바로 김지희의 ‘노루발’로 선정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할머니의 재봉틀을 기억하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사회가 변하는 것을 재봉틀 노루발이 꾹꾹 눌러서 삶을 견뎌내는 힘을 얻고 사는 게 힘이 들 때 가만히 내일을 박음질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쉬움이 있다면 고유명사에 대한 사용을 명확히 하여 문장의 흐름에 매끄러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신춘문예 당선은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명심하여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구양수의 ‘삼다’를 실천해 나간다면, 김지희 작가는 한국수필문학의 거장으로 성장하리라 확신한다.
당선자가 걷는 문학의 길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낙선한 분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대표심사위원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2016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작
먹감나무 /신정애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시간이 응축된 결 사이로 먹빛 농담들이 그윽하게 번져 있다. 백년의 세월 속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이 망설이듯 멈춰 섰다간 일필휘지 굽이쳐 흘렀다. 마을회관을 지으려고 빈 집을 허물면서 베어진 감나무였다. 차탁으로 귀히 쓰인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간 자리였다. 반으로 자른 단면을 손으로 쓰다듬으니 아릿한 기억들이 묻어나온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시골마을이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담장을 넘어온 가지마다 홍시가 탐스럽게 익었다. 초가집 일색인 마을에서 단 하나 뿐인 기와집이 할머니의 집이다.
고샅길 막다른 곳에 이르면 솟을대문이 어린 나를 압도했다.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아래채에 기거했고 본채의 큰 방이 할머니 방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문고리가 달린 방문이 열리며 긴 곰방대를 문 할머니의 무표정한 얼굴이 담배연기와 함께 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살가운 큰어머니가 부엌에서 뛰어 나와 반겨주었다. 그럴 땐 아래채와 본채 사이로 등이 굽은 작은아버지가 설핏 그림자처럼 지나가곤 했다.
아름드리 감나무 속에 검은 무늬가 들어간 것을 먹감나무라고 한다. 먹감나무는 탄닌 성분이 많아서 오래 묵은 심재일수록 무늬가 더 검다. 감을 딸 때 가지를 함께 꺾게 되면 이 때 생긴 상처를 타고 빗물이 나무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스며든 빗물이 나뭇결을 따라 추상적인 무늬를 만들어 낸다. 나무 안에 먹물을 들인 것 같은 자국은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더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며 자연이 만들어낸 담채화이다. 그런 먹감나무는 기품이 있고 아름다워 조각이나 가구 등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선천적 척추장애다. 늘 땅만 보고 걸어 다녔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이 곱사등이 흉내를 내고 다니면 할머니는 아궁이속에 지피던 솔가지 연기로 눈물을 감추었다. 제 때 호적에도 못 올려 소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고 나서야 몰래 출생신고를 했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손자를 부정하고 싶었겠지만 할머니에게는 평생 품어야할 가슴 아픈 상처였다. 손이 귀한 종가였다. 아들 셋을 낳고도 집안에 병신자식을 두어 가문에 흠집을 남겼다는 이유로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다. 어쩌다 손자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도포자락 제키며 돌아앉아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커다란 바위를 안고 살얼음판을 걷는 시집살이였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있던 할머니는 세월이 흐르면서 장수하신 당신의 시아버지와는 등을 돌리며 살았다. 아래채에서 기침소리가 나면 본채에서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아들을 업고 할머니는 용하다는 곳이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침술과 한약방을 찾아다녔다. 발품을 판 보람은 없었지만 덕분에 작은아버지는 냄새만으로도 약초를 구분했다. 침과 뜸을 뜨는 것을 몸으로 익혔고 나중에는 한약을 조제해서 직접 달여 먹었다.
그 당시 시골에 약이라고는 빨간 옥도정기와 종기에 바르는 고약 따위가 전부였다. 마을에서 급체라도 나면 환자 가족들이 찾아와 작은아버지를 업고 갔다. 때로는 이웃마을에서 침을 맞으러 오기도 하였다. 집안에 침쟁이를 두었다는 역정이 잦아지면서 용하다는 소문도 담을 넘어 퍼져나갔다. 싸늘한 도포자락에 서릿발이 날려도 할머니는 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애써 막지 않았다.
재주가 많고 돈이 있어도 꼽추에게 시집 올 처녀가 없었다. 가끔씩 혼담이 오갔지만 병신이라는 결점 탓에 번번이 깨어졌다. 낙담한 할머니의 가슴속에 멍만 깊어져 갔다. 하는 수 없이 꼽추라는 것을 속이고 먼 곳에서 처녀를 사오다시피 데려와 혼사를 치렀다. 놀란 숙모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할머니는 매일 밤 문밖에서 잔기침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친정집에 논 세마지기를 안겨주고 시집온 숙모는 행랑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해마다 시아버지 눈을 피해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돈집으로 소달구지에 쌀가마니를 실어 보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날이면 장애를 안고 홀로 남겨질 아들이었다. 못마땅한 혼사로 망신스럽다는 집안의 냉대가 먹감나무에 빗물이 스며들 듯 가슴에 젖어들어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그 이듬해 한약방을 차려서 작은아버지 내외를 분가시켰다. 장애가 죄인이 아니건만 땅만 보고 살던 아들을 새처럼 훨훨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내준 것이다. 뒷마당에 자라던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를 베어 거기에 ‘감나무한약방’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살림나던 날, 큰절 올리는 작은아버지 등을 만지며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작은아버지는 먹감나무의 상처 속에 스며든 당신의 소중한 수묵화였다. 눈물과 회한과 아픔과 고통이 어우러진 세상에 하나 뿐인 그림이었다.
검은 멍 자국이 무늬가 되기는 어렵다. 나무는 고통을 제 안으로 온전히 껴안은 후에라야 비로소 한 폭의 수묵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아버지의 냉대와 동네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멸시가 힘들어 비루한 목숨을 아들과 함께 놓아 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할머니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힘으로 한 많은 운명을 극복했다. 오늘날 작은아버지의 성취는 오롯이 할머니의 지극정성 때문이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조개는 제 살 속을 파고든 모래를 감싸 안아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한 뒤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낸다. 장애아들은 할머니의 살 속에 파고든 모래알이었다. 고통을 참으며 자신 안의 상처를 조개처럼 감싸 않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작은아버지를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으로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었다. 상처를 승화시켜 만든 할머니만의 진주였다.
상처받고 힘들었던 날들 속으로 스며든 빗물은 내 삶에 어떤 무늬를 그려 놓았을까?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빗물이 새어 들지라도 참고 견뎌낸다면 언젠가 나만의 무늬가 새겨지리라. 상처가 깊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먹감나무처럼.
길게 가로누운 나무 위에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다. 검은 무늬 사이로 그 옛날 할머니 집으로 가던 고샅길이 떠오르고 감나무 잎 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린다. 정갈하게 가르마를 쪽진 할머니가 곰방대를 물고 미소 짓는다. 햇살아래 펼쳐진 수묵화가 일순 환해진다.
■ 수필 당선소감 /
신 정 애
한 알의 대추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고파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언젠가 광화문 사거리에 서서 대추 한 알에 대하여 하염없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 안엔 왜 태풍이며 천둥, 벼락이 없을까. 나는 왜 붉어지지 않을까. 붉어지려고 노력이나 했을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제대로 익어가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글쓰기를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격랑들이 내 안을 지나갔지만, 모르겠다.
그 파문들이 나를 조금씩 익어가게 했는지. 나는 아직도 제대로 붉어지지 않았는데 이제 한 알의 대추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려 한다.
미흡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동양일보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수필이라는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단단한 기초를 놓아주신 동리목월의 박양근, 곽홍렬 교수님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를 뽑아 올려 오롯이 한 채의 집을 짓게 해준 김영식 선생님의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지난한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시거리문학회, 동리목월 문우들, 그리고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준 남편과 먼 타국에서 늦깎이 엄마를 응원해준 아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 1955년 포항출생
● 한동대 영문과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 동리목월문예창조대학 연구반
● 시거리문학 회원
● 2017년 신라문학 대상 수상
-수필 부문 심사평
가족의 소중함 살려내는 글 솜씨 빼어나
이번 응모 편 수가 지난해보다 18편이나 늘었고, 전국에서 뿐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응모하는 등 홍보도 잘 되고 작품 수준도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건축 등 전문직종에 오래 근무했던 분이며 귀촌한 분, 식물에 조예가 있는 분, 전통 문화 등 다방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이 많아지며 수필의 영역이 넓혀지고 풍성한 소재가 재미를 더하여 심사하며 읽는 즐거움이 늘어난다.
‘홍시’(강전섭)는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어서 금세 눈길을 끌었다. 간결한 내용과 문체가 올바르고 너무 현학적이지도 않고 아무 군더더기 없이 잘 마무리 짓고, 홍시를 매개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효성심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더구나 우리 지역에서 만난 모처럼만의 좋은 작품이어서 반가웠다.
그런데 ‘먹감나무’(신정애) 작품이 나타나며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하고는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다. 오래 묵은 먹감나무를 베어낸 나뭇결을 보며, 척추장애인인 작은아버지의 삶이 장애로 멋진 무늬를 품게된 나무로 비유하며 스토리텔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능란한 문장력에 호감이 간다. 자식이 한약방을 차리며 자립하도록 치성을 기울인 할머니의 눈물겨운 사랑, 가족애에 대한 뜨거운 헌사다. “큰절 올리는 작은 아버지 등을 어루만지며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작은아버지는 먹감나무의 상처 속에 스며든 당신의 소중한 수묵화였다. 눈물과 회한과 아픔과 고통이 어우러진 세상에 하나 뿐인 그림이었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조개는 제 살 속을 파고든 모래를 감싸 안아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한 뒤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낸다. 할머닌 모래를 품은 조개였다.”
함께 보낸 ‘풀매’도 잊혀가는 우리 민속품을 사랑하며 가족의 소중함도 살려내는 좋은 글이어서 글 쓰는 솜씨가 빼어남을 확인시켜 주었기로 신정애 님의 글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잠망’, ‘풋굿’(김옥한)은 누에그물, 호미씻이로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농촌문화의 유산을 잘 그리고 애착심을 갖게 한다.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잠망과 마을 농촌 사람들이 어울리는 신명 나는 한마당 잔치를 경험했던 이들에겐 영원한 그리움이요, 현재도 고향 사랑으로 남아 있게 한다.
‘11월과 낙엽’(김광석)은 가을에 느끼는 사색적인 사고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고 다시금 공감을 자아내지만 다소 산만하였다. 문단을 묶어서 읽기 편하게 했으면 싶다.
시각장애인이 쓴 헌신적이던 선생님에 대한 추모글도 특이한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운 정윤민 선생님’(김성은)은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동생 둘과 함께 매몰된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잘 표현했다.
죽음에 대한 보상금이 장학금이 되어 이를 지원받아 대학에 다닐 수 있었고 지금은 맹학교 중견 교사가 된 사연이 심금을 울린다. 직설적이고 다듬지 않은 언어로 썼지만 그것이 더 감동적이다.
비록 설익은 글일지라도 자주 쓰는 자세가 중요하다.
■ 심사위원 : 조성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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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책 한 권 분량이오니 두고 두고 천천히 음미하세요.
고맙습니다.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오래두고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