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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만주족의 역사는 한국사 (금나라, 청나라는 고구려의 후계 왕조) 『삼국지』"위서" '오환 선비 동이전'에서는
부여편, 고구려편' 동옥저편, 읍루편, 예편, 한(마한,진한,변한등 삼한)편을 순차적으로 기술해 놓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한족은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 한(삼한), 읍루(말갈)를 같은 종족으로 보고 있었음을 증언해 주는 기록이다.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가 생존할 당시의 읍루(말갈)의 인구수가 삼한, 부여, 고구려, 예 등은 물론 5천호의 동옥저보다 적어 후에 북옥저, 동옥저, 예 등과 통합을 거쳐 부여와 통합하는 494년부터 고구려가 멸망하는 668년까지의 읍루(말갈)의 호수는 고구려 총 호수의 5%내외에 불과했다. 『구당서』"지리지"는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직접 통치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각 부족의 부족장, 거수들이 통치하던 지역의 통치권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음을 증언해 주는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영토를 분할하여 설치한 9도독부의 도독, 42주의 자사, 100현의 현령에 임명된 부족장, 거수들과 그 부족이 당나라에 복속하지 않고 자신의 땅을 지키면서 돌궐과 말갈의 도움을 받아 고구려 부흥운동을 전개하는 등 강력히 저항하였기 때문에, 668년 12월에 평양에 설치된 안동도호부가 8년도 안된 676년에 요동군 고성으로 쫓겨 갔고, 그 다음해인 677년에 다시 신성으로 쫓겨 갔으며, 714년에는 평주로 쫓겨 갔고, 743년에는 요서군 고성(현재 중국 하북성 당산 부근)으로 쫓겨 났다가 757년에 폐지되었다는 것, 끝까지 당나라에 복속한 세력은 안동도독 덕무를 비롯한 14주의 자사 가족을 포함하여 1,582호 밖에 없었다는 것 등을 증언해 주는 기록이다. 697,000호 즉, 300여만명에 이르는 고구려인들이 돌궐과 말갈에 투탁하여 이들이 699년에 발해를 건국하는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신당서』"동이" '백제편'의 기록도 말갈족 인구의 20배가 넘는 고구려 유민이 말갈족으로 편입되었고, 백제인도 일부가 말갈족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종합해 보면, 최소한 말갈족 인구의 90% 내외가 고구려인, 백제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더욱이 읍루(말갈)는 본래부터 부여,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다. 그 읍루(말갈) 총 인구의 90% 이상이 고구려인, 백제인이었다. 따라서 말갈족의 역사는 한국사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숙신(읍루, 물길, 말갈, 여진, 만주)족의 언어가 다르므로 그들의 역사를 한민족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없다."라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더 이상 되풀이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고구려인, 백제인으로 구성된 말갈은 발해(699~926)가 되었다. 그 후 발해가 거란족이 세운 요(916~1125)에 의하여 멸망당하자 여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여진족은 요를 멸망시키고 금(1115~1279)을 건국하여 중국 양자강 이북의 광활한 지역을 식민지배하였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몽골족이 세운 정복국가인 몽골제국(1271~1368)에게 멸망당한 후 여진족은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만주족은 정복국가인 청(1616~1912)을 세워 명을 멸망시키고 약 300년동안 중국 한족을 식민지배하였다. 만주족은 중국 본래의 영토뿐만이 아니라 중국 본래의 영토보다 훨씬 더 큰 내몽골, 신강성 등에 있던 많은 국가들을 정복하여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 지배하였다. 그러나 그 땅을 지키지 못한 만주족은 그들의 고유한 영토인 만주대륙마져 잃고 그들이 멸망시켰던 많은 나라의 국민들과 더불어 중국 속의 소수종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떻든 말갈(여진, 만주)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포함시킨다면, 고려와 금나라의 관계는 고려와 금나라의 남북국시대, 근세 이씨조선과 청나라의 관계 또한 남북국시대로 기술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씨조선이 청나라에 칭신한 것을 근거로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라는 왜곡된 역사에 의하여 영토분쟁이 일어날 일도, 중국 한족에 대하여 역사 문화적으로 자긍심이 상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 만주, 중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역사는 일본의 역사이고, 한국, 중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이사, 필리핀 등의 입장에서는 침략을 당한 역사,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일 뿐이다.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여 지배한 역사가 중국사일 수 없듯이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의 청나라의 역사는 중국 한족의 역사일 수 없다. 중국 한족의 입장에서는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의 청나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일 뿐이다.
여진족, 만주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포함시켜 고려와 금의 남북국시대, 이씨조선과 청의 남북국시대로 세계사와 한국사를 개편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연도 『삼국유사』에 말갈(물길), 발해를 수록하여 물길, 말갈을 한국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이씨조선 지배층이 사대사관에 물들어 감이 그러한 주장을 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과오이므로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만일 고구려의 후계 왕조인 금나라와 청나라를 우리 한국사에 편입시키지 않는다면 고구려 역사도 중국에 빼았겨 결국은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마저도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첫댓글 https://youtu.be/uG45IPmP6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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