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 보고와서

[어링불]

아내와 함께 걸어서 극장으로 가서 영화 '귀향'을 보고 왔습니다.

극장으로 가는 길가에 매화향기가 밤공기를 타고 코끝에 묻어왔습니다.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위해 부설한 철로의 철가닥을 걷어내고 그 부지를 시민들의 공원으로 꾸미고 길가에 백매화 연분홍색 매화나무를 심어 봄바람에 꽃몽우리가 만발하고 향기가 진동했지만 벌나비는 없고 아내와 나만 코를 벌름대며 정결한 꽃가지를 잡고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향기를 맡았습니다.

75,270명이 참여한 역대 최대의 크라우드 펀딩(대중투자)으로 제작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조차 합니다.

20만 명의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 우리 누이 우리 어린 딸들이 숱한 꽃몽오리들이 태평양으로 만주로 중국 북부로 전쟁터로 끌려가서 몸과 영혼을 짓밟히고 238명 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46명만이 생존해 있다.
중국인 네덜란드인도 있다.

조정래감독이 나눔의 집에 봉사갔다가 제작이 시작되어 상영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할머니들이 말했다.

'너그들은 우째 보고만 있노!'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의 재판정에서
미국에서 유엔에서 할머니들이 말했다.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영화 제목 귀향의 귀자는 돌아올 귀가 아니고 귀신 귀자이다. 귀신이 되어서야 어머니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영화 속에서
시공 저너머에서
역사 속에서
어린 우리 '딸들'의 그 처절하고 원한 사무친 목소리가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온 지금도 내 가슴에 메아리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변에서 한숨과 흐느낌과 안타까움의 탄식이 들려왔다.

영화 제작비에 후원금을 낸 75,270명의 명단과 함께 심리치료를 받으며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들 수십 점이 영화 마지막에 스크린에 함께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들을 보지 않고 일어났다.

나는 스크린이 멈출 때까지 앉아 있었다.

아내가 집으로 오는 길에 물었다. 일본 외에 다른 나라도 전쟁에서 이런 짓을 했느냐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베트남에 가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따이한들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물론 일제처럼 국가가 조직적으로 전선에 소녀들을 끌고가서 성노예로 삼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배달된 한겨레신문 1면에 대문짝만한 사진이 실렸다.

'파이 찌우 짝 니엠(책임져라)'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
9,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최대 규모인 '빈안학살'의 생존자 응우옌떤런(65세)씨는 지난달 26일 베트남 중부지방인 빈딘성 떠이빈사 고자이마을에서 열린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 연설에서

"한국정부가 이 일에 대해 책임지기를 원한다"
고 말했다.

50년 전 2월 이곳 떠이빈사에선 3주에 걸쳐 한국군에 의해 1,004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이때 런씨는 15살이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학살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기절했다 깨어났을 때 세상에 홀로 남겨졌고 눈앞이 캄캄해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작년 4월 평화박물관 초청으로 방한했고 맞닥뜨린 참전군인들은 런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날 이후 런씨는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결심 했다.

일본군 '위안부' 고 문명금 할머니와 김옥주 할머니가 기부한 7,000만원이 전쟁과 폭력을 성찰하기 위한 평화박물관 건립 종잣돈으로 쓰였다.

나머지 이야기는 영화를 보시고 나서 말합시다.

영화를 보며 참 부끄러웠습니다.

내일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담은 영화 동주를 볼 생각입니다.

왕이 된 남자 광해
암살
귀향
동주 같은 영화가
단순히 재미가 있어서
대중들이 극장을 찾아 관람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의분과 공분을 하는 것일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추위 속에서도 눈발 날려도
의연하게
순결한 자태로
진한 향기를 뿌리고 피어나 있는 매화향기를 다시
맡았습니다.

영화 암살에도 나오는 약산 김원봉 선생이 대장이었던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이었던 고 김학철 선생의 대하역사소설
'격정시대'에도 일본군 '위안부' 대목이 나온다.

[자운영(서정애)]

차분한 감상문이 설득력있네요. 아픈 역사와 맞닥뜨리기 두려워 아직 몬봤습니다.
영화 동주 보며 많이 부끄러웠는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