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자가 자신들이살던 집에서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티브에서 흐러 나온다. 가슴이 철렁했다.
119에 신고한 사람은 살아있는 남편이란다. 남편은 살아있고 힘이
약한 세 모자만 살해되어있단다.
그때, 나는 두 아이를 낳고 육아로
허둥대고 있었다. 남편은 하던 일을 접고서 일을 찾아다녔다. 아니, 일을 찾는 것이 아니고 돈을 쫓아다녔다고 해야 맞는 말이었다.
어깨가 축 처져서 집에 들어온 남편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체력적으로 육아가 힘들어서 부스스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편 머리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모습이 보였다. "범수 엄마 같은 여자도 있는데..."
이 말의 속뜻은 이 자리에 내가 아닌 범수 엄마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한 바람이 자신도 모르게 남편의 입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우리집에 범수 엄마가 왜 나온다는 거야 범수 엄마가 남편의 전처라도 된단 말인가되는, 나는 벌레를
씹는 기분이 들었다. 범수 엄마는 남편 절친의 부인이었다. 범수 엄마는 십 대때 남편 친구를 만나서 범수를 낳고서
직업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경제를 꾸려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능력자였다. 사업수단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어서 남편이 경제활동을 못해도 별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속이 뒤틀려서 한마디 했다.
"세상에 범수 엄마만 있어요? 내가
무슨 이유로 범수 엄마를 나의 롤모델로 삼는단 말인가요? 나에게 롤모델을 제시하기 전에 자신이 롤모델로 삼으면 되겠네요.
여자도 가정경제를 어럽지 않게 책임지는데 남자인 당신이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아서 나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주지 않으면 되겠네요."
남편의 얼굴이 빨개져서 "오늘 끝장을 내야지" 하였다. 무얼 끝장낸다는 것인지
자신의 인생을 끝장내다는 소리인지 우리 가정을 끝장낸다는
소리인지 아마도 둘 다 일거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능력자 아내를 만나서 제왕 대접을 받고
사는 꿈을 꾸었는데 내가 그 기대감에 미치지 못하자
절망을 느낀 모양이었다. "어쩌다
저런 여자를 만나서 이런 개고생을
한단 말인가"
뉴스에서 세 모자의 범인 잡혔다.
그범인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며 뒹굴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고 했다. 내 머릿속이 잉잉거린다.
남자들은 왜 가족을 가족으로 사랑하지 않은 걸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위해서
엄마, 혹은 다른 가족의 희생을 보고 자라서일까.
그래서 성장해서 가정을 이루어도
자신은 언제나 제왕이기를 꿈꾸었는데 경제력을 잃자 그 자리는 사라지고 없으니 통제력을 잃어서 일까 나는 생각해봤다.
여름에 태풍이 왔을 때 포항에
물난리가 와서 인명피해가 컸다.
몸이 불편한 엄마를 도우려 간 중학생 아들을 엄마는 너라도 살아야 한다고 등을 밀어 탈출하게 했다. 세 모자 사건에서는 죽일 계획에 없는 초등생 아들을 자신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서 죽이기
까지 했다. 단지 한 개인만의 이상
성격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들에게는 가족은 그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있는 미개 물이라는 잠재적 심리는 아닐까 그래서 밖에서 제왕으로 군림하지 못하면
집에서 제왕으로 군림해야지 살아가는 의미일까 고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여자를 가스 라이팅 해서 남편을 하늘로 섬기라고 했다. 해서 남편이 죽으면
제왕이 아니니 순장을 할 수 없으니
평생 수절하라는 형벌을 내려서 감당하게 했다.
지금은 여권이 신장되어서 여자들도 동등한 삶을 원하니 출구가 막힌 남자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의
화풀이를 하고 해치기까지 하는 것일까? 해서 남자들의 제왕을 꿈꾸는 잠재적 심리는 출구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