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추억
마을 앞동산 뒷동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 골마다 전설의 고향으로, 부엉새가 살고 있는 부엉 더미, 장승 골 장승배기, 큰 바위 우뚝 서있는 선바위 골, 도깨비 씨름장 빼 골, 어릴 적 옆집 양목 할아버지 웅 양장에 나가셨다 밤늦게 돌아오시든 중, 빼 골 도깨비를 만나 밤새껏 씨름을 하시다, 새벽녘에 겨우 집을 찾아오셔서 혼절을 하셨지요.
마을의 어느 아저씨는 도깨비들과 개울에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아, 고무신에 담아 오신 이야기도 있습니다. 도깨비들이 비가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밤이면 파란불을 켜고 이쪽저쪽 산으로 날아다니곤 했었지요. 이렇게 모두들 한전설씩을 간직하며 우리 마을과 대(代)를 이어 내려오며 끈끈하게 맺어진 프렌들리입니다. 도둑떼들이 살았다는 골짜기 도둑 골. 산속 흐르는 물 아래로 명당자리 있다는 물 명산. 동내이름에서 암시하듯 땅속에 고양이만한 금덩어리 묻혀있어, 동내이름을 금광동(金光洞)이라 지어셨고, 어르신네들 부르기가 힘들대서 친근한 이름으로 금 개이라(금고양이)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산 저산 골짜기마다 금덩어리 발굴한다고 파고 뚫어놓은 많은 동굴 들, 짧게는 수 미터 길게는 수십 미터, 길이를 알 수없는 굴들도 여러 개가 있고 동굴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깜깜한 동굴 속에는 박쥐 떼도 살고, 지네를 닮은 벌래도 살고, 이름을 알 수없는 여러 벌레들, 다함께 상하(上下)연방제를 이루며 사이좋게 살고 있나봅니다. 어느 벌레는 눈이 퇴화하여 없는 것 같고, 대부분의 벌레들 몸길이는 길고 굴속이 깜깜하고 어두워 위험해서인지 발이 많이 달려있는 게 어둠속을 살기위한 자연의 시혜(施惠)일까요?
매일매일 목욕을 하는지 몸은 희고 깨끗합니다. 박쥐야 날개가 있어 바깥출입이 가능하지만 연약한 동굴 속의 그네들 무얼 먹고 살아가는지? 바깥세상에 빛(明)이 있다 는걸 알기나 할까요? 바깥출입이 자유로운 박쥐가 그 지하왕국의 황제로 등극하여 생명가진 모든 것들을 종(種)에 분별없이 국민으로 받아들여 선정을 배 풀고 있는 “에덴의 동산” 일까요?
Page 9*
어릴 시절의 동굴 속 탐사 놀이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쭈뼛 그리고 등골이 오싹오싹 가슴이 덜덜거리는, 아이들 좋아하는 한편의 스릴러 영화입니다. 스티브 스필버거 감독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의 모험은 깜도 아니고, 깜깜한 동굴 속을 촛불을 밝히고 깊숙이 들어가면, 수백 마리도 넘을 것 같은 박쥐들 찍찍 찌 직 울음소리는 귀신소리를 방불케 합니다.
이쪽저쪽 사방으로 날아오르며 지르는 아우성 소리는, 출입 금지구역을 침범한 불청객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 지하왕국은 우리의 선조님들이 하느님께 물려받은 가나안 땅이다. 조금도 지체 말고 빨리 떠나라. 다시 경고 한다! 무단침입한 자들은 조용히 떠나면 목숨만큼은 살려준다. 이 시간 이후 일어날 모든 불상사에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평화로운 우리 땅을 불법 침입한 너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한편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투태세를 갖춰, 일전(一戰)도 불사 할 분위기로 몰아가며, 지들이 무슨 최신예 전투기로 착각을 하는지, 저공비행으로 사람들 머리위로 날아들며 위협과 공격을 병행해오고, 일촉즉발의 전운(戰韻)이 감돌며 때에 따라선 “가미가제도” 불사할 태세로 내 한 몸 희생하여 “백척간두” 에선 나라를 기필코 구하고야말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최정예 전투부대원들인지 기개가 대단합니다.
사람도 무서워않고 공격을 감행하는 용맹스러운 이놈들 굴속이 깜깜하여 보이는 게 없는지, 지하세계도 과학이 발달하여 로봇으로 만들은 전투병인지, 두려움을 모르는 백절불굴의 용기는 미군의 은성(銀星)무공훈장을 하나씩 줘도 마땅할 만큼 용감무쌍합니다.
간담이 서늘한 모험이고, 스릴 넘치는 지하세계의 동물(動生物)연합군과 인간의 성전(聖戰으로 마치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를 능가하는 대모험으로 놀이공원에서 높이 올랐다 떨어지는 드롭자일이나, 다리위에서 발목을 매고 뛰어내리는 스카이점프의 스릴이 비교나 될까요?
page 10 *
동내 입구를 들어서면 옛날 고려시대일까 아니면 조선시대였을까 후대의 어느 시대인지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철광석에서 철을 체취하든 장소가 있습니다. 길바닥 여기저기에 철을 제련하고 버린 부산물 찌꺼기 들이 까맣게 깔려있고 딴딴한 부산물들도 산제해 있습니다.
언제인지 아시는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련을 했다는 전설만 전해질뿐 철광석은 어디서 채광을 했을까요. 분명히 동내 산속 어딘가에 철광석 묻혀있기에 채광을 하고 제련을 했을 텐데요. 다른 지역에서 철광석을 운반하여 선철을 했을 만큼 좋은 입지조건이나 훌륭한 인프라가 구축 되 있을 시대도 아니고. 그 시절 철 박사님이 계셨을까요. 이렇게 훌륭한 유산으로 존재하는데 그 시작과 끝은 모릅니다.
처음마을을 일구신 15대 선조님 경기도 양주퇴계원이 본이셨고, 한양 참판으로 계시다 무슨사화에 연유되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야음(夜陰)을 틈탄 남행을 하시여 아무도 살지 앉든 이 깊은 골짜기로 오셔서 여기라면 생명도 부지하며 후일을 도모할 것 같기에 바위아래 초막을 치시고 고향땅으로 돌아갈 기다림의 날들을 보내고 계셨지만 염원의 그날은 끝내오지 않았고, 세월은 흘러 어느 듯15대를 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양각산 아래동내 금광동의 시원(始原)입니다.
이렇게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모르고 흘러 왔을까요? 현장은 존재하는데 물증은 있는데, 혹시나 모두들 알고 계시는데 본인 혼자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제가 원래 엄청 이단아였고 고향을 일찍 떠나서 마을의 연혁을 제대로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철도 나고 금도나 동내 이름을 금광동(金光洞)이라 명명(名銘)하신 선조님께서 는 명리 학을 통달하셨는지 이름 하나는 참으로 잘 지어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 주셨습니다. 빛나는 금(金)과 철(鐵)이 나는 골짜기라! 여러 가지 정황상 단지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만이 아니란 것을 현장들이 대변하고 있습니다.
page 11*
첫댓글 어릴때 시골에선 동네마다 귀신이야기가 실감났었습니다.금광동의 후손들은 지금 다 부자이시겠습니다.
성남에도 금광동이 있습니다.ㅎㅎ
스프링님 & 칼로스님. 감사합니다. 위의 금광동은 경남의 한 두메 산골입니다.
전설의 고향과 다규멘터리 그리고 뭐랄까? 옛날 생각?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