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가로등 종로 네거리에 밝혀진 세 개의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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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3. 17:38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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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가로등
종로 네거리에 밝혀진 세 개의 가로등
요약 가로등 이전에 야간의 조명은 등잔에 피마자기름이나 생선기름을 부어 사용함.
1890년경 석유 사용이 보편화 된 후에는 가로변에 석유 장명등을 걺.
한성전기회사가 기술·자본 부족으로 경영권을 넘긴 미국 전차회사에서 민간 전등 사업에 착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리는 곳이라 하여 운종가라 불리던 종로에 세 개의 가로등을 세움.
종로 가로등 사진
출처: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서울 근대공간), 한국콘텐츠진흥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가로등이 밝혀진 곳은 종로였다. 옛부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리는 곳이라 하여 운종가(雲從街)라는 별칭으로 불려졌던 바로 그 종로에 밤에도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가로등이 생긴 것이다. 상점들이 즐비했고,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종로에 가로등이 처음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이때의 일을 '京城鐘街 始燃電燈'이라 했고, 정교의 「대한 계년사」에는 '米國電車會社人 始設電燈於鐘街'라고 기록되어 있다. 1900년 4월 10일의 일이었다.
이 땅에 전등이 밝혀지기 전까지 야간의 조명은 민간에서는 대체로 등잔에 피마자기름이나 생선기름을 부어 사용했다. 1879년 봉원사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 다녀올 때 석유와 성냥을 처음으로 가지고 오기까지 이 땅의 밤을 밝혀주었던 것은 그렇게 대부분 식물성 기름이었다.
서거정이 서울의 밤을 읊은 시에는 정월 대보름날 등을 밝히고 소원을 비는 놀이인 연등회 때의 모습을 은하수 같다느니, 삼천세계 산호수 같다느니, 천하의 다리를 수놓은 부용화 같다느니 하는 구절이 있다. 비록 조선조 초기 서울의 야경을 읊은 시지만 그 정경은 석유가 들어오기 전까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석유 사용이 보편화된 것은 1890년경부터였다. 글자 그대로 돌에서 나는 기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석유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지자 옛날에는 어두워서 어찌 살았나 하는 말이 나돌았다고 한다. 그리고 1898년 한성부에서는 가로변에 있는 각 점포에 지시하기를 문 앞에 석유 장명등을 걸어놓고 달이 없을 때에는 반드시 불을 밝혀놓으라 했다. 불을 밝혀놓았을 때 그 모습은 역시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것이 전깃불로 대체된 것이었다. 세워진 위치는 종로 네거리였고, 가로등의 수효는 모두 세 개였다고 한다.
「대한 계년사」에 가로등을 설치한 회사가 미국(米國) 전차회사라고 한 것은 곧 당시 서울시내에 전기, 전차사업 경영권을 획득한 한성 전기회사를 이르는 것이다. 이 회사는 원래 고종의 주도하에 설립된 것이었는데, 기술과 자금 부족으로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위크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것이다. 미국인들은 먼저 전차를 부설하여 성과를 보자 곧 전등사업에 착수, 동대문에 있는 발전소의 전력을 200kw로 늘리고, 그 첫 시도로 가로등을 점등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린 것은 가로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 전등사업을 벌이기 위한 것이었다. 전등은 아직 궁중에만 가설되어 있을 때였다. 종로에 그 실체를 보여준다면 인식은 당연히 새로워질 것이었다.
가로등은 이미 1885년에 뉴욕 주재 한국 명예영사인 프레이저가 우리 정부에 설치를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는 경복궁에 전등이 가설될 때에도 중간 역할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처럼 가로를 전등으로 밝혀보라 하고, 추진하면 자기가 힘을 써보겠다는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수완 좋은 콜브란에게 전기회사가 넘어감으로써 최초의 점등을 보게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콜브란이 전차 부설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콜브란은 전차가 다닐 수 있는 철로를 깔기 위해 한성의 길거리를 파헤치고, 일인 기술자들을 불러오는가 하면 각종 자재들을 들여왔다. 그런 일을 처음 겪는 서울 사람들의 당혹감은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공사장에서는 자칫 다칠 수가 있었다. 또 도난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당국에서는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시민들에게 특별 당부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선을 끊어가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범인 두 명을 곧 색출해냈다. 전선 12m를 절취한 자들이었다. 경찰은 재판도 하지 않고 그들을 모두 참형에 처해버렸다.
이는 정부가 전기의 이용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그 의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아무튼 이때의 가로등은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떤 사람은 개벽 이래 가장 신기한 빛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달아나기도 했다. 평양에서 올라와 이완용의 집에 불려갔던 어느 어린 기생은 그 빛을 보고 기절해버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가로등 - 종로 네거리에 밝혀진 세 개의 가로등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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