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1. 큐티
고린도전서 16:1 ~ 12
성도를 위한 연보에 대하여
관찰 :
1) 성도를 위한 연보에 관하여
- 1절.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 이 연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연합하고, 한 마음으로 함께 신앙생활 하도록 하기 위한 지혜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당하는 환란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함에 대한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기근이 있었고, 특별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궁핍한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경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을 상실 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유대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려주지도 않았고, 그들과 경제적인 교류를 하지 않고자 했기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경제적으로 돕게 될 때, 이제까지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풀 것이라고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작은 공동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한번 복음을 증거함으로 5천명이 돌아오고, 또 3천명이 돌아오고 한 상황을 염두에 놓고 본다면 수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푼돈으로는 그들의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운 지경인데, 그들의 경제적인 활동을 위한 seed-money를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큰 액수의 헌금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위시로 하여 매우 큰 액수의 헌금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것이다. 그것이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에 맡긴 사명이었고, 또한 고린도교회에 맡기는 사명이었던 것이다.
- 2절.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 여기서 “매주 첫날”이라는 것은 안식후 첫날, 곧 지금의 주일이다. 이렇듯 초대교회에서 주일날 모여서 예배를 드렸음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사도 바울은 억지로가 아니라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헌금을 낼 것을 명한다. 그리고 매 주 매 주 성실하게 모을 것을 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 때에 부랴부랴 헌금을 모으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 3절.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 사도 바울은 재정에 대해서 분명하게 하고자 그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게 되었을 때, 자신에게 그 연보를 맡기라고 하지 않고, 고린도교회가 인정한 사람에게 그 인정하는 편지를 동봉하여 그 연보(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라고 명하고 있다. 성도들의 연보로 모인 공금은 아무리 담임목사라 하더라도 혼자서 그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용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4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 사도 바울은 그 연보를 보내는 일에 자신이 포함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자신도 그 자격에 합당하다면 그들과 자신이 함께 연보를 전달하는 일을 맡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2) 사도 바울의 이후의 스케줄
- 5절.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 원래 사도 바울의 계획은 그가 현재 체재하고 있던 에베소에서 직접 고린도로 갔다가 마게도냐로 간 뒤에 다시 고린도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다(고후 1:15 ~ 16).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원래 계획을 변경하여 마게도냐를 경유하여 고린도에 가고자 한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여행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인해서 사도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거리가 되었다(고후 1:17). 그러나 작정하였다고 모든 것을 다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고후 1:18-24).
3) 사도 바울의 소망
- 6절.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성도들과 만나 깊은 교제를 나누고, 그들의 후원을 받아 이후의 선교지를 가고자 하는 사도 바울의 원함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관계였다.
- 7절.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원래 계획을 접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단지 지나가는 길에 고린도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변덕이 심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철저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의 모든 스케줄을 정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 8절 ~ 9절.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유월절 조금 전이었다. 사도 바울이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있겠다고 하는 것은 대략 두 달 동안 에베소에 머물겠다고 하는 것이다.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라는 것은 에베소에 복음 전하는 일이 크게 열려서 열매가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행 19:19 ~ 20). 거기에 대적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에베소에 더 체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복음을 대적하는 이들이 있으면 복음의 문이 막힌다고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관점을 사도 바울이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복음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고, 그 박해가 극심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복음이 더욱 크게 열리고, 그 열매가 크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러한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자 에베소에서 더 머물겠다고 밝히고 있다.
4) 동역자들을 선대하라
- 10절.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 디모데는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교정하고자 고린도교회에 사도 바울이 보낸 사람이었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바른 복음으로 그들을 이끌어줄 지도자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천거하고 있다. 그렇기에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디모데를 영적 리더로 인정하고 따를 것을 명하고 있다. 디모데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운데 사역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과 동급으로 인정할 것을 말하며, 그가 주님의 일을 힘쓰는 귀한 일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1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디모데를 멸시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디모데가 젊고 유능한 사역자이지만 그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의 지도력이 발휘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염려와도 같이 디모데가 고린도교회에 갔지만 그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안타깝게도 더 많은 근심거리를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 12절.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서 담임 목회자로 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 분당이 생기고 무엇보다 자신을 따르는 아볼로 파가 발생한 것으로 인해서 상당히 상처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볼로는 고린도교회를 떠나 에베소에 와있는 상황이었다. 아볼로에게 사도 바울이 다시 고린도교회에 가서 목회할 것을 권하였다. 그것도 여러 차례 권면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너무 상처받고, 그래서 사도 바울 앞에서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의 믿음을 통해서 유추해 볼 때, 자신이 고린도로 가게 되면 바울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 등의 분파의 상황에서 자신이 고린도교회로 가게 되면 아볼로파가 득세하여 교회를 더욱 쪼개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 아니었을까? 고린도교회의 아볼로파는 당연히 아볼로를 고린도교회에 다시 모셔오고자 모종의 노력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야 자신들의 세력이 견고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아볼로가 고린도로 가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믿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사도 바울이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볼로를 고린도교회의 담임 목사로 다시 돌아갈 것을 권면하는 것은, 진실로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의 분파를 개의치 않는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볼로는 결국 고린도교회에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역을 계속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유대인들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시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증거한 아볼로이기에 그가 끝까지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살았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 간의 화합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힘에 지나는 연보를 모아야만 했다. 바울은 그것을 위하여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이방인 교회에 연보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억지로 하거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도록 자주 권면 하는 것을 통하여 그 일에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매주 모여서 감사함으로 헌금을 드려서 그것을 모아 놓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이것은 구차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는 것이었기에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그런 구차한 일들을 맡기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깔끔한 성격을 보면 납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가 얼마나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이 하나되는 것을 간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연보는 그렇게 중요한 일에 사용되어지기 위하여 마땅히 교회를 통하여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직접 가능한 빨리 만나고 싶은 바램이 있지만, 에베소에서의 복음의 기회가 열리는 것으로 인해서, 그리고 핍박이 거세어지는 문제로 인해서 더 오랫동안 에베소에 있어야 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냥 기도하고 점지해 주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에는 분명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고, 그의 길을 도우셨지만 사도 바울이 먼저 계획하고 준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준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것이 온전하여지도록 주님이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도 바울의 순종이 있었다.
3) 사도 바울은 자신의 어떠한 유익도 구하지 않는다. 연보를 예루살렘에 자신이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허락을 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사도 바울의 이기적인 욕심을 배제하는 노력을 엿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추종세력과 대립하는 아볼로파의 지도자인 아볼로를 고린도교회에 다시 가줄 것을 여러 차례 권면하였다. 그것은 파당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던 바울이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아볼로를 자신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함께 주님의 일을 하는 자로 여길 것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다. 참으로 귀한 사도 바울의 중심을 보게 된다.
적용 :
1) 사도 바울은 진실로 어떠한 것도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하며 실제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계획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묻고, 그 계획을 동역자들에게 알리며, 함께하는 가운데, 또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을 계속 묻고 그 길을 따랐다. 언제나 이런 자세가 중요하다. 항상 계시를 의존하는 것이 옳지 않는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말씀을 주셨기에 그것이 옳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대로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고, 오류가 드러나면 언제든지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
2) 사도 바울은 자신을 위한 그 어떤 유익도 추구하지 않았다. 고린도교회 내의 영향력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볼로를 다시 그곳으로 가라고 여러 차례 권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욕심이 있으면 주님의 일을 바르게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국이 finishing well 할 수 없다. 항상 바르고 온전하게 해야 하는데, 나 자신의 욕심과 게으름과 나태함과 무지가 문제이다. 주님을 간절하게 갈망하길 소원한다.
3) 시간에 밀려서 어떤 결정들을 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급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따르는 것은 언제나 기본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우선순위를 먼저 떠올리고,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