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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30>수퍼 쌀.<31>수면의 신비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이장희 추천 0 조회 263 16.01.03 00: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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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가뭄에도 풍년 들게 할 유전자 지도와 유전자 가위

 

<30> 수퍼 쌀

 

 

 

보통 땅콩 잎(왼쪽)은 해충 애벌레의 먹잇감이다. 세균의 살충(殺蟲) 유전자가 첨가된 잎(오른쪽)을 먹은 벌레는 결국 죽고 만다(미국 농무부 자료).

 

 

“소년 잭은 소를 팔러 시장에 나갔다가 소 값 대신 콩을 얻어왔습니다. 마당에 떨어진 콩은 순식간에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잭은 하늘에서 황금알을 낳는 닭과 하프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성난 거인이 쫓아 내려오자 잭은 도끼로 콩나무를 자르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영국 동화 ‘잭과 콩나무’의 줄거리다. 잭의 ‘마술 콩’이 쑥쑥 자라는 것으로 봐 아마도 세계 최초의 ‘유전자 변형 식물(GM식물·Genetically Modified)’일 것이란 필자의 실없는 농담에 강의실이 일순 썰렁해진다.

세상 콩의 81%가 GM 콩인데 GM 콩은 지구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황금알을 낳는 닭’일까? 아니면 괴물 식물을 만들어내는 ‘무서운 거인’일까?

 

2012년 9월 ‘미국 식품독성학회’지에 주목할 만한 논문이 한 편 실렸다. 논문은 제초제에 견디는 유전자를 삽입한 GM 옥수수(NK603)가 쥐의 간·신장을 손상시키고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연구가 진행된 프랑스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순식간에 논란에 휩싸였다.

논문 발표 후 프랑스 정부기관과 유럽식품안전청(EFSA)에선 두 차례의 검토 결과 실험 쥐의 숫자가 너무 적은 데다 유독 암에 잘 걸리는 종(種)의 쥐를 실험에 사용한 사실 등 실험 방법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며 논문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문은 결국 이듬해 11월 철회됐다.

 

국내 수입 콩의 70%가 GM 콩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사료나 가공용으로만 사용된다고 하지만 가끔씩 터져나오는 안전성 관련 뉴스가 소비자들을 찜찜하게 한다. 콩엔 없던 세균의 ‘농약 저항성’ 유전자를 콩에 집어넣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며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식물을 육종(育種)하는 방법이 없을까?

 

 

 

 

 

GM 식품 안전성 논란 핵심은 외부 유전자

 

필자의 유학시절인 1990년에 방문한 미국 몬산토 연구소는 온통 온실 천지였다. 농약을 주로 합성했던 화학실험실에서 식물연구실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몬산토 연구소는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잘 견디는 유전자를 박테리아(세균)에서 분리한 뒤 이를 옥수수 유전자에 끼워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온실은 이렇게 만든 GM 옥수수가 실제로 어떻게 자라는지를 관찰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GM 옥수수·GM 콩은 1996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세계의 재배면적은 100배나 늘어 현재 전체 콩의 81%, 옥수수의 35%가 GM 씨앗으로 재배되고 있다. 제초제 저항성인 GM 옥수수·GM 콩은 콩·옥수수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 제초제를 뿌려도 GM 식물은 죽지 않고 잡초만 죽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1세대 GM 식물들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GM식품에 대한 찬반은 개발 초기부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구 식량난 해결책이란 찬성 측 주장과 종자 독점, 생태계 혼란 우려 등 반대 측 의견이 아직도 팽팽하다. 상품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일반인들에게 ‘안전한 식량기술’로 인정되기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GM 식물, 특히 식품의 경우 우려의 핵심은 원래 식물엔 없던, 즉 다른 종(種)의 유전자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다른 종의 유전자와 단백질이 콩에 삽입된다 하더라도 사람의 위(胃)에서 대부분 분해돼 별 영향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수백, 수천 년을 먹어온 전통식품처럼 안전하다는 확신을 소비자에게 100% 심어줄 만한 연구결과와 데이터가 나와야 일반인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러운’ 식물 개량 방안은 없을까?

 

비타민 A가 풍부한 ‘황금쌀’엔 수선화와 옥수수의 유전자가 들어갔다. 황금쌀을 필두로 과학자들은 식물 고유의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작물을 개량하는 방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내뿜는 ‘화학무기’

 

요즘 동네 목욕탕에선 ‘희노끼’라 불리는 편백나무 욕조가 인기다. 편백나무의 상쾌한 향이 숨을 탁 트이게 해서다. 이 향기는 침엽수가 즐비한 산 속에서도 맡을 수 있다. 건강에 이롭다는 이 향기, 즉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에 삼림욕을 하는 사람이 많다. 비록 피톤치드란 전문 용어는 몰랐겠지만 우리 조상들도 바람을 쐬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생각해 호젓한 산 속에서 옷을 벗고 누워 풍욕(風浴)을 즐겼다. 요즘도 산 속에서 담요 하나만 둘러쓰고 명상을 하는 건강요법이 인기다.

피톤치드는 좋은 향수가 아니라 사실은 식물(phyton)이 내뿜는 항균물질(cide)이다. 알려진 5000종의 피톤치드는 모두 식물이 보유한 ‘화학무기’다. 피톤치드는 잎을 갉아먹는 곤충이나 곰팡이를 공격한다. 이 화학무기 중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퍼지능형 무기’가 있다.

 

진딧물처럼 떼로 움직이는 곤충 사이의 소통은 ‘곤충 페르몬’이란 냄새 물질을 통해 이뤄진다. 이 중 ‘경보 페르몬’은 주위에 적이 나타났을 때 전파되는 ‘튀어!’란 경보 사이렌이다. 식물은 이렇게 소통하는 진딧물에게 세 가지 화학무기를 내뿜는다. 하나는 진딧물의 경보 페르몬과 똑같은 물질이다. 이 냄새를 맡은 진딧물들은 진짜 적이 나타난 줄 알고 동시에 떼로 도망친다. 두 번째 무기는 진딧물의 천적인 말벌을 부르는 천적 호출 물질이다. 말벌은 진딧물의 애벌레에 침을 꽂고 그곳에 자신의 알을 낳아 진딧물을 몰살시킨다. 세 번째 무기는 마취 물질이다. 식물은 진딧물의 애벌레를 마취시켜 말벌이 쉽게 침을 꽂도록 돕는다.

 

이런 식물의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이런 식물무기를 이용하면 진딧물을 죽이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거나 굳이 살충유전자를 삽입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식물 A에 있던 이런 방어물질 생산 유전자를 식물 B에 삽입해 진딧물 제거 효과를 확인한 연구결과가 있다. 이 살충 유전자는 원래 식물이 갖고 있던 것이어서 박테리아(세균)에서 얻은 유전자를 식물에 끼워넣었을 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험성 걱정을 경감시킬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이 원래 갖고 있던 고유의 능력을 개량·증폭시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이 다음 세대 식물 개량의 연구 방향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법을 이용해 식물 속에서 우수한 종자를 골라왔다. 매년 거둬들인 많은 종류의 옥수수 중에서 씨알이 굵고 벌레가 먹지 않은 것을 골라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뒤 이듬해 다시 심기를 수백 년 이상 계속해 왔다. 시간 여유를 충분히 갖고 식물 육종(育種)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 약점이다. 전통적인 육종 방법은 일종의 확률 게임이다.

 

 

 

차세대 식물 개량 기술을 확보해 식량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선인장의 장점을 벼에 접목하면…

 

어느 여배우가 영국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에게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면 내 미모와 당신의 두뇌를 가진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가 되받았다.

 

“못생긴 내 얼굴과 덜떨어진 당신 머리를 닮은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처럼 원하는 성질을 가진 후손을 한 번에 얻을 확률은 사람이나 식물 모두 극히 낮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가뭄에도 잘 자라는 볍씨는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가 원산인 벼는 수확량이 높으나 가뭄·병충해에 약한 편이고, 아프리카가 원산인 벼는 수확량은 적지만 강인해 논이 말라도 오래 견딘다. 두 종류 쌀의 장점, 즉 가뭄에 견디면서 수확량까지 뛰어난 벼를 전통적 방법으로 육종하려면 15년이 필요하다. 두 종류를 교배해 얻은 씨앗을 모두 논에 뿌려 본 뒤 마른 논에서도 볍씨가 굵고 또 많이 달린 녀석이 있는가를 매번 확인하려니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

 

수확량이 높은 아시아 쌀에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유전자’를 넣어주면 안 될까?

가뭄에도 잘 견디는 벼의 아이디어는 사막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선인장에서 얻었다. 잎을 가시로 진화시켜 물의 증발을 최대한 억제하는 선인장은 몸 안에 ‘수퍼 보습제’를 갖고 있다. ‘트리할로스(trehalose)’란 당(糖)이다. 이 당은 알로에의 끈끈한 성분에도 포함돼 있다. 보습력이 뛰어난 트리할로스 유전자를 벼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가뭄에 잘 견디는 벼가 탄생했다.

 

하지만 벼가 선인장의 도움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보다는 수확량이 많은 아시아 벼와 가뭄에 견디는 아프리카 벼를 혼합 육종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전통적인 육종 대신 원하는 종만을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섞을 수 있는 ‘족집게 육종’ 방법이 없을까? 과학자들이 최근 그 답을 찾았다.

답은 식물의 ‘유전자 지도’와 ‘유전자 가위’에 있다. 즉 식물의 완벽한 유전자 순서를 알게 되고 또 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아주 정확하게 잘라낼 ‘수퍼 유전자 가위’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식물세포를 손바닥의 눈금처럼 들여다보는 ‘현미경 수술’이 가능해졌다.

 

욕심을 더 내보자. 가뭄에 견딜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이왕이면 제초제 없이도 잘 자라는 벼를 만들 수는 없을까? 2013년 미국 미시간대학 우스리카 교수는 벼가 가진 모든 ‘방어무기’ 리스트를 완성했다. 외부 곰팡이·해충·추위·가뭄·장마 등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조절 유전자 196개를 찾아낸 것이다. 이 중엔 ‘잡초와의 경쟁’에서 벼가 이기도록 하는데 유용한 ‘방어무기’도 포함돼 있다. 이 ‘방어무기’를 잘 연구해 논에서 잡초가 자라도 벼가 낱알을 제대로 맺을 수 있게 한다면 뜨거운 땡볕에서 풀을 뽑거나 몬산토의 ‘라운드 업’ 같은 제초제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GM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불안 여전

 

그만큼 안전한 벼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만든 ‘수퍼 벼’가 100% 안전하단 말은 아니다. 이 ‘수퍼 벼’도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인체·환경에 대한 안전성이 100% 검증돼야 한다. 왜냐하면 식물생명체 내에서 유전자(DNA)가 과학자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물은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살아서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 식물의 존재 이유다.

 

2050년엔 지구 인구가 90억 명이 된다. 지금도 12억 명이 하루 1.25달러로 먹고사는 식량 부족 상황이다. GM기술은 이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세계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바이오 안전성정보센터(장호민 센터장)가 실시한 국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7%는 백신 치료제를 만드는 GM 바나나처럼 의약·산업용으로 쓰이는 GM 식물의 개발을 찬성한다. 이에 비해 먹거리인 GM 식품에 대한 찬성률은 47%에 머물러 있다. GM 먹거리에 대한 불안·불신이 여전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다. 이런 불신을 넘어 차세대 식물 개량 기술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발전이 가능하다.

 

‘잭과 콩나무’처럼 차세대 식물 기술이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되고, 한국이 식량 주권국가가 돼 지구촌 다른 곳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숙면은 불로초 … 세상 모르고 자야 몸이 젊어진다

 

<31> 수면의 신비

 

 

‘잠의 신, 히프노스’(1874년·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그의 동굴 침실엔 빛도 소리도 없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년)이 동해 유배지에서 지은 시조다. 새벽에 일찍 잠이 깬 노인의 잔걱정들을 담고 있다. 당시 남구만의 나이는 61세. 소를 돌보는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에 나이 든 그는 왜 잠에서 깨어 있었을까?

 

비단 그만의 얘기가 아니다. 필자가 어쩌다 소변이 마려워 새벽에 깨면 집안 어르신은 두꺼운 안경을 끼고 신문을 보고 계셨다. 기력이 떨어지는 노년에 잠이라도 푹 자야 할 텐데 나이들면 오히려 잠이 줄어든다.

 

노인들의 조각난 잠은 뇌에 치명타를 가해 치매를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 청소년도 수면 부족으로 두뇌 집중력에 노란불이 켜졌다. 우울증 환자의 90%는 불면에 시달리며, 그들의 평생 소원이 숙면이다.

 

최근 이들의 귀가 솔깃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자들이 뇌 수면 스위치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 신호를 보냈더니 금방 곯아떨어졌다. 이제 불면증의 악몽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인가? 잠을 잘 자면 몸이 시간을 거슬러 젊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제 잠 좀 제대로 자 보자.

 

 

 

 

 

깊거나 얕은 수면 사이클 밤새 반복

 

밤손님들의 활동시간은 오전 2∼4시 사이다.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지는 시간이 잠든 지 2시간 이후란 과학적 데이터 정도는 밤손님들도 잘 알고 있다. 잠이 들면 4단계의 수면 과정을 거친다.

각 단계에 따라 뇌의 활동 패턴이 달라진다. 깊은 잠과 얕은 잠이 밤새 4∼5번 정도 반복된다. 가장 얕은 잠 상태에선 눈동자가 ‘휙휙’ 돌아가고 뇌는 거의 깨어 있다. 이 같은 소위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이 자는 동안 4∼5회 반복된다. 꿈의 대부분은 이때 꾸며 이 시간대에 꾸는 꿈이 뇌를 자극해 뇌 발달을 돕는다.

 

어릴 때는 꿈을 많이 꿔야 ‘쑥쑥’ 잘 큰다. 필자는 어릴 적에 동전을 줍는 꿈을 자주 꿨다. 길가에 널려 있는 동전을 양손에 가득 주워 동네 아이스케이크 가게로 달려가는 순간에 꿈에서 깨곤 했다. 깨어서 비어 있는 손을 바라볼 때의 허탈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동네 개에게 쫓기는 꿈도 자주 꿨다. 이때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 탓에 대개 허우적거리다가 깬다. 얕은 REM 수면 상태에서 뇌는 거의 깨어 있지만 근육은 역설적으로 완전 마비 상태다. 그래서 꿈에 귀신이 쫓아와도 팔다리가 안 움직여 공포의 시간을 경험한다.

만약 꿈을 꾸는 동안 팔다리가 움직인다면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가 깨질 수도 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실제로 꿈을 꾸면서 옆 사람을 칠 정도로 손발이 과도하게 움직인다면 병원 검사가 필요하다.

 

필자는 어릴 적에 동네 어른들을 따라 참새 잡기에 자주 나섰다. 밤늦은 시간, 초가지붕의 처마 밑을 플래시로 비춘 뒤 그곳에 잠들어 있던 참새들을 손으로 잡았다. 새를 포함한 동물들도 잠을 잔다. 잠을 잔다는 것은 처마 밑의 참새처럼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모든 감각이 잠들고 근육도 마비 상태여서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당연히 진화에 불리할 텐데 왜 동물을 포함한 사람은 잠을 자는 걸까? 우리가 잠자는 동안 뇌가 어떤 일을 하는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만약 잠을 자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최근 미국 수면의학회지인 ‘슬립(Sleep)’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잠을 자지 않을 경우 뇌세포가 파괴될 때 나타나는 물질이 뇌에 축적된다. 이 노폐물은 낮보다는 밤에 10배나 빨리 청소된다. 결국 뇌 회로에서 낮 동안의 모든 작업의 흔적을 리셋(reset)시키는 청소작업이 지금껏 알려진 수면의 역할 중 하나다.

 

PC도 임시 메모리 공간이 꽉 차면 비워 줘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뇌도 임시 메모리 부분에 있던 하루 동안의 내용을 기억 저장공간에 옮기는 청소작업이 필요하다. 잠을 못 자는 사람은 따라서 뇌세포에 찌꺼기 독성물질이 가득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한폭탄을 몸에 안고 사는 셈이다.

 

 

 

조각난 잠은 건강에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낮잠은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고문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것이 잠 안 재우기다. 눈꺼풀에 테이프를 붙이고 강한 빛을 눈에 쬐면 어떤 사람도 2∼3일을 못 버틴다. 주야 교대를 하거나 시차를 자주 겪는 간호사·항공기 승무원의 경우 장기적인 수면 불균형이 생기면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하루 수면시간이 5시간도 채 안 되는 성인의 경우 비만·당뇨병·심혈관 질환·기억력 저하가 동반되기 쉽다. 건강을 해치는 주요인이 운동 부족(74%)과 수면 불량(49%)이란 연구 결과도 국내에서(서울대 박소현씨 박사학위 논문) 발표됐다. 사람마다 개인 차는 있지만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권하는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8시간이다. 아인슈타인과 처칠은 하루 4시간만 자도 문제없다고 했다. 하지만 22년간 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선 수면시간이 7시간 이하이면 일찍 죽을 확률이 23.5%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8시간 이상 자도 조기 사망률이 20.5%나 높아진다. 적당한 시간만큼만 자야 건강하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이다.

 

낮잠을 자는 것이 건강에 이로운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들쭉날쭉하다. 올해 미국 ‘역학학회(Epidemiology)’에 보고된 연구 결과는 낮잠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3년간 1만3000명을 관찰한 결과로 매일 한 시간 미만 낮잠을 자면 14%, 한 시간 이상 자면 무려 32%나 사망률이 높은 게 확인됐다. 몸이 약해져 낮잠을 자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 낮잠을 많이 자면 일단 건강에 적색 신호등이 켜졌다는 신호다. 평생 건강하게 지내려면 잠을 제 시간에 푹 자야 한다는 의미다. 눕자마자 자는 사람도 있지만 국내 성인의 절반은 잠을 쉽게 청하지 못하고 또 잠을 설친다.

 

인도의 민족운동가인 간디는 금방 잠이 드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의 수행원들은 그가 잠을 자겠다고 누우면 채 1분도 안 돼 곯아떨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필자의 한 지인도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잠을 잘 때는 “내가 먼저 잘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다.

 

불면증 환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잠에 금방 빠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지금은 밤이 이슥하니 잠을 잘 시간이란 사실을 알려 주는 생체시계와 잠이 들게 만드는 일정량의 피로다. 생체시계는 태양빛을 기준으로 맞춰진다. 우리 몸은 주변에 빛이 많으면 낮으로 인식해 활발하게 움직이려 든다. 반대로 빛이 없으면 밤이라고 여겨 멜라토닌 같은 수면호르몬을 분비시키고 활동을 멈춘다. 문제는 ‘적당하게 쌓인 피로’다.

 

낮의 활동으로 뇌엔 조금씩 피로물질이 쌓여 간다. 피로물질이 최대가 됐을 때 축적된 ‘피로’ 압력으로 ‘수면 스위치’가 ‘찰칵’ 켜진다. 수면 스위치가 켜지면 뇌세포를 잠재우는 물질이 분비돼 바로 곯아떨어진다. 잠자는 동안 뇌의 피로물질 탱크는 깨끗이 비워진다. 24시간 주기로 이런 사이클이 반복된다.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올 8월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의 수면 스위치가 위치한 곳은 뇌간(腦幹) 주변이다. 이 부위를 자극하면 가바(GABA)란 화학물질이 방출돼 잠에 떨어진다. 이 ‘스위치’가 있는 곳은 호흡·혈압·맥박 등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조절하는 부위다.

이는 수면이 생명과 직결된다는 간접 증거도 된다. 만약 새로 발견된 수면 스위치만을 족집게처럼 작동시키는 수면제라면 뇌세포 전체를 마비시키는 기존 수면제와는 달리 부작용이 훨씬 덜할 것이다.

 

인간 수명 연구에 흔히 쓰이는 초파리(fruit fly)도 나이가 들면 잠에서 자주 깨고 새벽에 서성인다. 우주탐사선을 먼 목성까지 보내는 인간이 초파리와 같은 신세라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초파리 덕분에 잠을 푹 잘 수 있는 물질을 찾아냈다. 올해 독일연구팀이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인의 잠이 조각조각 나는 것은 음식물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슐린 신호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줄이는 알약(rapamycin)을 초파리에게 먹였더니 잠이 조각나지 않고 밤새 숙면을 취했다. 게다가 시간을 거슬러 몸이 젊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현대판 ‘진시황의 불로초’를 수면 연구에서 발견한 셈이다.

초파리의 수면 유전자를 사람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밤에 깨지 않고 푹 잘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알약을 먹기가 거슬린다면 잠자는 기술을 배우자.

 

골퍼의 루틴처럼 나만의 수면습관 필요

 

미국 시애틀의 관광 코스엔 항구의 한 집이 포함돼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미국)이란 영화를 촬영한 장소다.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매일 잠을 못 자는 아빠의 사연이 어린 아들을 통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져 드디어 새로운 여인을 만난다는 줄거리다.

가족의 사별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 커피·녹차·콜라 등 카페인, 스마트폰의 청색 불빛 등은 뇌를 각성시켜 수면 스위치가 잘 켜지지 않도록 한다. 이는 모두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게 하는 요인들이다. 술은 수면 스위치는 켜지만 자는 도중 몸을 깨우는 역효과가 있다.

 

결국 자기 전에 뇌를 가라앉히되 수면 스위치가 켜질 만큼 뇌에 피로물질이 적절히 쌓여 있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낮에 햇빛을 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햇빛은 뇌의 생체시계를 유지시켜 밤낮의 사이클을 정상 작동하게 하고, 몸을 움직여 생긴 물리적 피로는 스위치를 켜는 데 필수적이다.

 

잠을 자는 기술의 핵심은 잠자는 행동의 습관화다. 일류 골프선수는 타석에 올라 ‘후다닥’ 공을 쳐 버리지 않는다. 먼저 목표를 흘끗 쳐다보고 고개를 한 번 흔드는 등 나름 ‘의식’을 하나하나 치른 뒤 스윙을 한다. 이런 행동은 반복 연습을 통해 체득되며 경기에 잘 적응하도록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잠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순서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분으로 잠들면 뇌 속에 그 과정이 각인돼 쉽게 잠이 든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저서인 『인간론』에서 “신은 여러 가지 근심의 보상으로, 우리에게 희망과 수면을 줬다”고 말했다. 세상일은 점점 복잡해지고 근심도 많아지지만 뇌는 예전 인간 그대로다. 따라서 예전 방식대로 사는 것, 즉 낮에 움직이고 밤에 숙면하는 ‘주동야숙(晝動夜宿)’이 건강 장수의 지름길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www.biocnc.com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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