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용욱이는 없고
벌집 32호와 온정은 남아있다
[공개수배] 네티즌 울린 10년 묵은 편지
김미선(news) 기자
▲벌집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해서 속칭 '벌집촌'으로 불리는 구로구 일대 쪽방촌. 방 한 칸과 부엌을 합쳐 3-4평에 불과한 이 공간에서 2-4명 가량이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
실존하지도 않는 '구로초등학교 3학년 용욱이'가 2001년 한여름에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다. 또 그를 돕겠다는, 만나고 싶다는 이들이 구로초등학교로 찾아오거나 성금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01년 7월 26일 오마이뉴스 제보란에는 이런 사연이 올라왔다.
이 글은 서울시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1등한 구로초등학교 3학년 용욱군의 글
입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글을 (옮겨) 씁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초등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우리 식구는요, 외할머니와 엄마, 내 여동생 용숙이랑 네 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박스만해서 네 식구가 다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로2동 술집에 나가서 일하시는 엄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한달에 두 번(그것도 운이 좋아야) 취로사업장에 가서 돈을 버시구요. 아빠는 청송감호소라는 데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그래요..."
속칭 '벌집'으로 불리는 3평 남짓한 쪽방에 산다는 '구로초등학교 3학년 용욱이'의 절절한 사연이 인터넷 공간에 급속히 퍼지면서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다.
이 글은 예수님께 쓰는 편지글 형식으로 작성된 것으로, 구로동 벌집촌의 실상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고 있다.
올해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이 글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신문사·방송사들은 용욱이를 찾아나서고 있다. '불쌍하고 착한 용욱이'를 돕겠다고 교회와 학교, 심지어는 해외에서까지 나서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감이 '훈화시간'에 용욱이의 편지를 낭독, 이 학교의 한 여학생이 '1만원짜리 1장과 5천원짜리 문화상품권'을 구로초등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취재 결과 '2001년 구로초등학교 3학년 용욱이'는 없었다. 서울시도 "최근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그런 글이 우수작으로 뽑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편지글은 2001년이 아닌 1991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었다. 그 글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기독교잡지 <낮은 울타리>의 1991년 5월호를 통해서였다.
그렇다면? 10여년 전의 그 편지글이 어떻게 다시 부활해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을까? 현재 사이버공간에 퍼지고 있는 글은 10여년 전 것과 동일한 것인가?
초등학교 3학년이 썼다고 보기엔 그 편지는 '너무 조리있고 너무 감동적'인데 91년 당시 용욱이는 실제로 그런 편지를 썼을까. 그 벌집 32호에 어렵게 살았던 용욱이는 그렇다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무엇보다 왜 2001년 한여름에 네티즌들은 실체가 확인되지도 않은 용욱이에게 온정을 보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2001년 서울 구로에는 초등학교 3학년 용욱이는 없어도 '벌집 32호'는 있기 때문이다.
구로초등학교 "용욱이 찾는 전화에 업무 마비"
기자는 최근 구로구 구로초등학교를 찾아가봤다. 교무실에 들어가 한 선생님에게 "용욱이를..."이라고 말을 건네자 손부터 내저었다. "요즘 용욱이를 찾는 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라는 하소연까지 보탰다.
김관수 교감은 "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감이 '훈화시간'에 용욱의 편지글을 낭독하는 바람에, 이 학교의 한 여학생이 1만원짜리 1장과 5천원짜리 문화상품권을 우리 학교에 보내왔다"면서 "그런 학생이 없다는 답장과 함께 그것들을 다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구로초등학교는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 중에서도 용욱이가 있는 지를 찾아봤다. 그러나 졸업생 대장을 뒤져 '주용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졸업생을 찾아내긴 했지만 동일인물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현재 D고 2학년인데, D고 최중식 교감에 따르면 주군 스스로도 "국민학교 3학년 때 덕수궁에서 그림을 그리고 상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주군은 편지글 속의 용욱이와 가족관계, 가정형편 등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한편 서울시 관계부서들도 "올해 어린이날에는 글짓기대회 행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1991년 5월 기독교 잡지에 처음 실려
|
▲인터넷 상에 떠돌고 있는 '용욱의 편지글'은 91년 5월호에 기독교 잡지 '낮은울타리'에 최초로 실렸다. 사진은 91년 5월 '낮은울타리'에 실린 글.
ⓒ 오마이뉴스 김미선
|
취재 결과 용욱이의 편지는 10여년 전인 1991년 이전에 작성된 것이었다.
1991년 5월 <낮은울타리>라는 기독교잡지에는 '난 못죽어 인제'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당시만 해도 창간된 지 얼마 안되었던 이 잡지에 실린 용욱 군의 글은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던 99년 1월 '낮은 울타리' 편집국은 100호특집 기념으로 그 동안 실렸던 글 중 좋은 글을 선별해 특집호에 실었고, '난 못죽어 인제'도 그에 포함됐다.
현재 인터넷을 떠도는 '용욱의 글'은 바로 '난 못죽어 인제'라는 글과 동일한 글이다.
그것이 인터넷을 떠돌면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청송감호소'가 '청송교도소'로 바뀌고, 내용이 더 매끄러워지면서 '91년 구로국민학교 3학년 용욱'이 '2001년 구로초등학교 3학년 용욱'으로 부활한 것이다.
99년 특집호에 용욱이의 편지를 게재했던 <낮은울타리>의 서정희 편집국 차장은 "10년 전에 편집국에서 일했던 직원은 현재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 어떤 경위로 91년에 그 글이 실렸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 묵은 편지의 위력, 용욱이는 없되 벌집촌은 있다
▲80년대 초반 123명까지 살았다는 건물. 지금은 30-40명 가량이 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벽에 1, 2, 3, 4,...번호가 써있어요. 우리 집은 32번이예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요,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21번 방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서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가는 날이 더 많아요..."
그렇다면 용욱이의 편지글에 등장하는 '벌집촌'은 실재하는 걸까.
구로초등학교 인근은 새 건물이 많이 들어섰지만 옆 동네인 구로3동, 가리봉동 일대의 벌집촌은 여전했다. 편지글에 등장하는 용욱이가 실존인물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제2, 제3의 또 다른 용욱이들이 여전히 구로동 판자촌 쪽방과 다닥다닥 붙은 벌집촌에서 그늘진 생활을 하고 있다. 10년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벌집촌을 채운 세입자들 중에 가출청소년, 조선족들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구로구 구로3동 구로남초등학교 뒷편에 죽 늘어선 판자촌 쪽방과 가리봉 1,2동 언덕배기를 가득 채운 속칭 벌집촌 등은 2001년 한국사회에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한 집단 평균 6가구가 살고 있는 벌집촌은 지금도 보증금 30-50만원, 월세 13-15만원에 임대차가 이뤄지고 있으며, 방 한 칸과 부엌을 합쳐 3-4평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쪽방마다 매겨진 번호표도 여전했다. 대부분의 벌집은 이 일대에 공단이 들어설 당시 지어진 채로 15년에서 20년간 방치된 상태다.
가리봉 1동 벌집촌 근처에 사는 한 40대 주민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방도 많을 뿐더러 보증금 다 까먹고 '나가라'고 해도 안나가고 버티는 사람, 야반도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91년의 용욱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용욱이를 가슴 아프게 한 벌집촌의 현실은 오늘도 여전했다.
이어진 다음 기사에 더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8월3일로 예정됐던 후속기사가 취재보강을 위해 6일(월요일)로 연기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독자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용욱이의 91년 편지'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은 오마이뉴스 편집국으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33-5505, ohmynews@ohmynews.com)
▲아래에서 올려다본 벌집촌.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이곳은 화재를 대비해 소방차 대신 맨홀에 소방호스가 연결돼 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
2001/08/02 오전 9:49
ⓒ 2001 OhmyNews
|
첫댓글 그렇군요!..그때 쓴글이 지금도 감동이 되네여...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