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주라호 가는 길 내내 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쫒아 온다. 아니 보름달을 보고 쫒아 간다.
산길을 넘으니 이어지는 넓은 들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달빛만이 교교하다.
환한 밤하늘에 떠 있는 달에 익숙해진 눈에는 인도의 달도 이국적이다.
달빛에 취해 하루의 여정에 취해 한두 사람이 부르든 노래가 점점 커져 버스 안은
추수를 끝내고 카주라호로 관광가는 묻지마 분위기로 확 바뀐다.
기계에 의존하여 부르는 세대가 아닌지라 두뇌창고에 저장된 노래 가사는 술술
서로의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 이어진다.
흥겨운 노래도 시간을 넘어서 잦아든다.
버스가 흔들어 대는 잠의 나라로 하나둘 빠져든다.
한참동안 달에 눈 맞추고 달리다 마주치는 길가 점포에 켜져 있는 텔레비전도, 평상에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도 정겹다.
(델리 호텔에서 내려다 본 본 결혼식 행렬)
어느새 잠에 빠졌나보다, 갑자기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 창밖을 내다보니, 폭죽을 터뜨리며 나팔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가는 행렬을 볼 수 있다. 배터리에 연결한 수십 개의 등불을 든 사람들이 행렬을 구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춤추며 그들을 쫒아간다.
어느정도 간 후에는 음악을 크게 틀고 젊은 아가씨들이 막춤 비슷하게 춤을 추는데 축제가 따로 없다.
(무거운 보석등불을 들고 가는 손이 애처롭다.-뉴델리)
내생각으로 달의 신 소마를 찬양하는 푸자인가 했는데,
산티님이 결혼행렬이란다.
제주도의 전통결혼식도 격식을 갖추면 3일동안 치러진다는데 이곳도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하루, 신부가 다시 신랑집에 와서 하루, 양가가 모여서 하루 삼일을 치룬단다.
아가씨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는 것을 보니 신부집에서 신랑집으로 가는 행렬인가 생각된다.
버스가 정체되니 일행들은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자신들에게 카메라와 시선이 쏟아지니 아가씨들은 더욱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고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며 '어서와 나를 가지세요' 하는 손짓을 보낸다.
'버스 좀 세워주세요' 외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기다려요 아가씨 내가 가리다' 마음은 앞서는데,
야속하게도 정체가 풀리자 여인을 눈빛만을 가슴에 남기고
버스를 휑하니 떠나간다.
지나는 마을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결혼행렬에 인도 사람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에만 결혼하는 줄 알았다.
인도에서도 처녀들은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지 신랑은 황금색 옷에 돈으로 도배를 하고 백마를 타고 있다.
(신부의 집에 도착하여 신나게 춤을 추는 신랑측 친구와 친척들-뉴델리)
곳곳에 포장중인 도로가 인도의 개발을 보여준다.
지역을 벗어날 때 마다 도로에 차단기가 설치된 풍경도 낯설다. 일반도로에서도 통행세를 걷는 것 같다.
교통사고로 막혀 있는 길을 인도경찰의 배려로 중앙선을 넘어 빠져 나갈 때는 외국인의 우월감속에 현지인에 미안한 마음도 품는다.
트럭이나 버스가 교통사고를 내면 그 뒷감당이 무서워 기사는 차를 내버려두고 도망간다는 말에 웃음도 나고 그들에 대한 연민도 느낀다.
동녘에 걸린 달이 중천 가까이 더 올랐을 때가 돼서야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다섯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아직 인도 도착 만 24시간도 되지 않았다.― 시점이지만 이런 일도 다 있구나. 감탄이 나온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바닥과 벽이 모두 대리석이다.
어제 묵은 집에 대한 기억이 이곳을 매우 호화롭게 느끼게 한다.
좋고 나쁨도 언제나 상대적이다. 조금만 처지가 좋아져도 행복감이 들게 만드니
이정도면 쓸모없는 별똥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반짝이는 별똥쯤 되지 않을까?
한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지 식당 이름이 장금이 이다.
물론 장금이 식당에는 이영애처럼 생긴 여자는 커녕 아예 여자가 없다.
이곳에 차려진 인도음식으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우리가 많이 늦긴 늦었나 보다 손님이 오면 요리를 시작한다는 다른 식당들과 달리
이 집 음식은 미리 만들어 놓았는지 식어있다.
하긴 한국 손님을 받는 데 아무리 인도인이라고 인도스러울 수가 있을까?
빨리 빨리 공격에 얼마나 당했으면 음식이 식을 정도가 되었을까?
길고 긴 하루를 이겨내느라 힘이 빠진 사람들은 식어빠진 인도음식이 안 맞는지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숟가락 놓고 호텔로 상점으로 빠져나간다.
그래도 그 유명한 카주라호에 왔는데 그냥 잘 수는 없지
남은 사람들은 반주로 한잔 한다.
오고 가는 술에 곁들어 지나간 날에 겪은 무용담이 따라 붙는다.
인도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내일에 대한 기대가 퍼져나간다.
하루사이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느낌을 풍기며, 길고 긴 하루가 평화롭게 지나간다.
쇼핑하는 일행을 따라 민수가 하는 가게를 구경 간다.
오르차 과일가게가 생각나니 민수와 그의 친구가 부르는 가격에 신뢰가 가질 않는다.
사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별것 아닌 금액인데 그래도 흥정은 흥정이다.
왜? 여기는 인도니까!
쇼핑도 체력이 있을 때 하는 것 사지도 않을 것 구경하자니 슬슬 지겨워 진다.
쇼핑 하는 일행을 두고 먼저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로 돌아와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한다.
정말 길고도 긴 하루를 바쁘게 보냈는데 그렇게 피곤하질 않다.
인도체질인가? 내일 카주라호가 기대된다.
첫댓글 청한님은 문예창작을 전공하신 분 같네요. 결혼 행진할때 연주되던 그 크고 시끄럽던 소리들이 들리는것 같습니다...
저도 결혼식을 하면서 울리는 그 음악소리가 들리는듯 하네요...결혼식이 있는곳에서는 어김없이 그 음악소리가..ㅎㅎ
불빛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버스타고 가면서 본 보름달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장금이 식당 음식은 좀 심했지요. 식당앞 가게서 쇼핑한 옷은 갈아 입지를 못해 이틀을 입었던것 같기도 하고. 지분홍색 옷이 집에 와서 세탁하니 그냥 분홍색이 되었네요.
결혼식 장면 잘 잡으셨네요 흥겨운 모습이 절로 나오네요
졸다가 결혼식 소리에 잠이 깨었던 기억이 납니다. ^^
장금이 식당, 결혼식..우리가 인도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점차 가속도가 붙습니다.ㅎㅎ
장금이 식당집 아들 민수...때가 많이 묻어서 인도사람 같지않았죠 ..비상님이 주신 헛개나무 소주잔을 들고 카주라호에 도착한 흥분을 삭혔죠..ㅎㅎㅎ 벌써 추억이 되었네?~~~~ ㅎㅎㅎ
깜짝놀라서 깨어보니 봤떤 그 풍경~~ㅎㅎ..뭔일났는줄 알았어요~~ㅎㅎ..카주라호에 도착했을땐 정말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느낌~~..ㅎㅎ..모두가 공유했었네요~~~.. 청한님의 카추라호도 궁금합니다~~~
청한님..글. 들이.. 한편에 드라마 처럼. 펼처짐니다..인도에 관한 책 읽는것 같아서요..넘 멎지다...인도에 대해서 책 써도 대박 나겠은디요..청한과 인도..ㅋㅋ .몸건강하세요...다시 만난 그날까지..
청한님 글 읽으면서 좀 쉬고 있읍니다^^ 하루종일 머리위로 총알들이 막 지나가는 하루였어요ㅠㅠ 그리고, 인도체질 맞으신데요...^^
저는 민수를 오르차 버스 주차장에서 제대로 봤는데 그때까진 가이드인 줄도 몰랐어요, 어리버리의 진수지요? 주차장 옆에 있던 건물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부가 무척 우울해보였던 기억,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도스런 화장실을 경험했는데 별로 찜찜해하지 않았던 뛰어난 적응력을 실감했지요. 그러구선 녹아 떨어진 채 카쥬라호에 도착한 지라 교통사고로 정체되었던 거는 전혀~~~ 얼핏 결혼식 행렬응 본 기억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