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림고개
황미라
간판뿐인 문 닫은 육림극장 앞을 지나
언덕을 오른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초입새 기름집,
어르신들 쪼그리고 앉아
노란 올챙이국수 후루룩후루룩 자시던
고개를 넘어간다
도루묵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삽으로 양동이에 퍼 담던 도매상도
맷돌로 녹두를 갈던 허리 굵은 중년 여자도
없다
이색적인 청년몰에 밀려
모두 저 너머로 이주했는지
뭉게구름 짐보따리처럼 잔뜩 부풀고
중앙시장 못미처
꽃무늬 몸배바지 줄지어 걸려 있던 갈래길 따라
꽃잎이 그립게 흩날린다
언젠가 우리도 사라진 옛 가게처럼
누군가의 기억의 편린이 될 터,
어디로 가는 건지
어디쯤 와 있는 건지
육림고개에서 한참 낯설다
황미라_1989년 《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두꺼비집> <털모자가 있는 여름> <꽃 진 자리, 밥은 익어가고>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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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
황미라/육림고개(2024년 여름호)
양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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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
24.05.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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