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가 차세대 배터리 공급망으로 떠오르는 이유
풍부한 원자재, 사회적 책임 경영, 지리적 이점, 정부 지원 등 강점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 원자재 가격 급등 및 수급 불균형 등의 문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은 셀 제조의 75%, 양극재 및 전해질 생산의 90% 등 절대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국가가 갖지 못한 여러 이점을 보유한 캐나다가 새로운 배터리 공급망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2위 국가=지난해 11월 블룸버그NEF(BNEF)가 발표한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평가에서 중국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캐나다가 그 뒤를 이어 2위에 올랐다. BNEF는 매년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망과 관련된 5가지 주제에 대한 45가지 측정 척도를 기준으로 주요 30개국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각 순위는 원자재 공급 및 가용성, 배터리 셀이나 부품 제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산업·혁신·인프라, 탐사·채광·제련·제조 등 광물 관련 다운스트림, 현지 수요 등 5가지 부분으로 나눠 매겨진 후 최종 순위가 결정된다.
순위에서 한국은 배터리 제조 부문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원자재에서는 17위에 그쳐 독일과 공동으로 6위에 올랐다. 캐나다의 경우 2021년과 비교해 4개 부문에서 2~9단계씩 고르게 상승했고 전 부분 상위권 순위를 선점하며 최종적으로 2위를 차지했다. 중국산 원자재 의존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캐나다가 2위로 올라선 점이 눈에 띈다.
캐나다의 이런 결과는 2021년(5위)보다 3계단 상승한 수치로, 글로벌 자동차 생산업계가 캐나다를 중요한 광물 채광, 정제, 가공 및 생산을 위해 중요한 국가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새로운 개발 전략=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로, 거대 영토에서 나오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강점이다. 캐나다는 60가지 이상의 광물자원과 200여 개의 광산, 6500여 개의 채석장을 보유하고 있다.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주요 광물은 코발트, 흑연, 리튬, 니켈 및 희토류 원소 등인데 캐나다는 이를 모두 보유한 국가 중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배터리 생산에 필수인 리튬의 경우 최근 생산을 재개한 것이 순위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캐나다는 2014~19년 리튬 생산이 제한적이었고 2020년에는 전혀 생산되지 않았다. 하지만 리튬의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리튬 개발을 위한 다수의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퀘벡주는 캐나다 최대의 리튬 매장지로, 8634만 톤의 예상매장량(PPR)을 자랑한다. 퀘벡 주정부는 핵심전략광물(CSM) 채굴 부문 및 북미 자동차 산업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 부문의 리더가 되기 위해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주요 광물 채굴을 늘리고 관련 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지난해 BNEF는 ESG 생산이 세계적으로 규범화되면서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 여부를 중요 평가 기준으로 삼고 책임 있고 윤리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원자재 부문에서 4위를 차지한 브라질의 경우 ESG에서는 23위로 밀려 최종 순위가 21위에 그쳤다. 1위인 중국의 경우 대부분의 부문에서 상위권이었지만 원자재가 새로운 ESG 요건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커 ESG 부문에서 17위를 받았다.
ESG 6위인 캐나다의 경우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의 제조 및 생산 처리 과정이 이런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캐나다는 청정에너지, 특히 수력 전기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배출가스 없는 수력 전기로 생산되는 알루미늄과 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철강 공장의 막대한 투자 등으로 캐나다의 친환경 전기차 잠재력이 높게 평가됐다.
캐나다 기업들은 사용한 물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배터리 폐기물 처리, 나아가 재활용 배터리 솔루션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ESG 생산방식 도입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캐나다 광물은 서로 인접한 곳에 있어 채굴, 처리 및 재활용돼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및 업계의 활발한 투자=캐나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며 친환경 사업 육성, 세금 감면,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을 적극 펼치고 있다. ‘혁신, 과학 및 경제 개발 캐나다’ 펀드는 캐나다를 중요 광물 투자를 위한 더 매력적인 목적지로 만들고 전기차 및 배터리와 같은 상품의 생산 증가 촉진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이 전략은 새로운 유망 광산에 대한 투자부터 제조,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배터리 재활용 강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다.
2020년 12월부터 향후 5년간 탈탄소 미래 기술 개발과 클린테크 육성에 30억 캐나다달러를 투자하는 ‘넷제로 액셀러레이터’, 청정연료 산업육성 및 투자 초기의 막대한 자본비용 부담 완화 지원을 위해 2021년 신설된 ‘청정연료기금’과 같은 다양한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지원 기금도 있다.
작년 12월 조나단 윌킨슨 천연자원부 장관은 ‘캐나다 중요 광물 전략’의 향후 계획과 관련, “2030년까지 배터리 공급망을 개발해 연간 57억 캐나다달러에서 240억 캐나다달러의 국내총생산(GDP)과 1만8500~8만1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캐나다에서 선정한 31가지 주요 광물 중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리튬, 흑연, 니켈, 코발트, 구리, 희토류 등 6가지에 우선순위를 두고 집중적으로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근접한 지리적 이점=캐나다의 자원 매장량은 자원 부국과 비교하면 비교적 점유율이 낮지만 지리적 이점은 이를 상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자원 부국은 풍부한 광물을 보유하고 있지만 배터리 제조 능력 및 기술 부족, 현지 전기차 수요 부족 때문에 BNEF에서 순위가 밀리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안정적인 인프라 보유, 충분한 수요 확보 등에 있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지정학적 장점이 캐나다의 배터리 공급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국이 지난 9월 발효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올해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 및 가공해야 현지 전기차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중국 이외 국가에서 핵심 소재를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캐나다는 미국 주도로 작년 6월 시작된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소속국이기도 하다. MSP는 안정적인 광물 수급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다자 협력체로, 전기차 및 첨단 배터리에 투입되는 중요 광물에 중점을 두고 있다. MSP 가입국은 호주,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스웨덴, 영국, 미국 및 유럽연합(EU)인데 캐나다처럼 IRA 역내 조달조건에 부합하는 국가라면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처로 주목받을 수 있다.
오는 2025년 7월 발효 예정인 신북미자유협정(USMCA)도 캐나다 배터리 공급망 형성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USMCA가 발효되면 전기차 부품의 75% 이상을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생산해야 한다. 캐나다는 무관세 혜택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동시에 공급망, 친환경 정책, 공장 가동 비용 등 효율성 측면에서 미국을 대신할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부총리는 작년 10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민주적 동맹을 통해 상호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12월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군사장비 구축 및 전기차 도입에 필요한 금속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캐나다 광산업체들과 프로젝트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 기업 시사점=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요 광물 수요가 2040년까지 2배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한편, 파리기후협약의 이행 노력에 따라 그 수요는 4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또한 작년 9월 에너지캐나다(CEC)와 온타리오의 비영리단체가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캐나다가 보유한 장점을 잘 활용하고 개발한다면 2030년까지 최대 2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매년 캐나다 경제에 480억 캐나다달러를 기여할 수 있는 견고한 배터리 공급망이 구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캐나다의 한 업계 전문가는 “캐나다는 필수 광물 자원부터 선도적인 청정기술 기업에 이르기까지 배터리 강국이 되기 위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며 “‘이제 왜 캐나다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캐나다를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한국의 경우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양극재 생산에 필요한 리튬의 중국 의존도가 64%에 달하는 등 가격 변동과 수급 불안에 취약한 상황이다. 또한 미국 내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높은 우리 기업들은 IRA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아 중국에 의존하는 원자재 공급망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런 점에서 캐나다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배터리 제조에서 상위 3개국에 들 정도로 생산능력, 기술력, 품질에서 앞서지만 소재나 원자재 경쟁력은 뒤진다. 캐나다의 경우 한국이 낮은 순위를 기록한 부문에서 상위권이지만 자원의 단순 채굴을 넘어 처리 공정 등 부가가치 산업은 아직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 한국과 캐나다는 배터리 공급망에 있어서 상호 보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한국-캐나다 정상회담에서는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핵심 광물의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한 바 있으며 양국 기업 및 정부기관 간 4건의 핵심 광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됐다. 향후 캐나다와의 지속적인 연대를 통한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와 ESG 표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채굴 작업용 장비, 설비 인프라 등 광산산업과 관련 있는 제품이나 기술을 보유한 우리 중소기업들은 캐나다의 배터리 공급망 전략과 대형 광산 클러스터 육성 계획 등을 참고해 현지 진출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KOTRA 밴쿠버 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