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⑮ 약물치료가 필요한 이유
"배터리가 방전된 자동차와 비슷한거죠"
셔터스톡
결국 아는 의학 전문기자를 통해 임상경험이 풍부한 개인병원을 소개받았다. 내 증상과 과거 이야기를 들은 원장이 말했다.
“급성인 것 같은데 완쾌될 수 있습니다. 원래 그런 기질이나 병력의 소유자도 아니고요, 선생님 상황이나 연령대가 우울증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약이나 치료 방법이 좋아져 만성 환자도 고치죠. 물론 본인 스스로 이겨내야겠다는 의지, 의사의 처방을 믿고 따라가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에서 나는 희망과 신뢰를 동시에 느꼈다. 아, 의사는 이래야 한다.
“어느 정도 치료받아야 하나요?”
“넉넉잡고 1년 정도? 환자마다 다르죠. 더 갈 수도, 단축될 수도….”
“완쾌하면 전처럼 정상 생활로 돌아올 수 있나요?”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우울증은 심리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절망감의 신호를 계속 주기 때문이었다.
“그럼요. 오히려 정신력이 더 강해지기도 하는데요. 자신의 약점을 알면 더 조심하게 되고, 그래서 노력하다 보면 오히려 더 강해집니다.
성공한 스포츠 선수들을 보면 어렸을 적에 병에 걸린 걸 계기로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많아요.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말은 내게 하늘에서 내리는 복음같이 들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관건은 환자의 ‘의지’와 ‘자신감’입니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요, ‘난 못해’라고 생각하면 못 하는 것이죠. 꼭 이겨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십시오.”
그는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짚어주고 꺼져가던 전의(戰意)를 되살려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환해졌다. 희망의 빛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치료에는 ‘약물 요법’과 ‘인지행동치료’ 두 가지가 병행되었다. 내가 약을 거북스러워하는 걸 아는 원장은 거듭 강조했다.
“몸살이나 식중독에 걸렸을 때 약을 먹어야 하듯, 우울증도 마찬가지죠. 의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는 우울증 환자를 배터리가 방전된 자동차에 비유했다. 방전된 차는 그냥 놔두거나 민다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외부에서 전원을 배터리로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주어야 한다. 우울증에 약물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인지행동치료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환자가 스스로 잘못된 심신 상태를 교정하고 활기를 되찾게 해주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또다시 방전이 안 되도록 운전 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이다.
“차가 시동이 걸리고, 이후 운행을 통해 배터리가 충전되면 외부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잘 굴러가게 됩니다. 그것이 1차 치료의 핵심입니다.”<계속>
남산 작가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