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킹제임스흠정역의 요한복음 2장 10절에서는 영어의 “wine”을 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이라고 번역했나요? 특히 개역성경으로 보면,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라고 분명히 “취한 후”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포도즙이 아니라 포도주가 맞는 것이 아닌가요?
[답변]
“그에게 이르되, 모든 사람이 처음에 좋은 포도즙을 내놓고 사람들이 충분히 마신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즙을 남겨 두었도다, 하니라.”(요 2:10)
이 구절에서 “사람들이 충분히 마신 뒤에..”라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는 “when men have well drunk”라고 되어 있어(문법적으로는 소위 ‘현재완료형’으로서 실질적으로는 과거의 행위가 완료된 상태를 표현합니다), “사람들이 충분히 마신 뒤에..”(After men had good drinking)라는 뜻입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 2:10, 개역개정)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셨군요."”(요 2:10, 카톨릭역)
다시 말해서, 개역성경 또는 카톨릭성경에서 말하듯이 “취한 뒤에..” 또는 “손님들이 취하면”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취해 있을 때”(when men are drunken)가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저 “마셨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취했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 “마시다”[drink, drank, have(또는 had) drunk(en)]라는 말은 어떤 경우건 “술취함”과는 관련이 없고, 그냥 음료수를 마시듯 “마신다”는 행위만을 표현합니다.
반면에 술에 “취하다”[(be drunk(en), have(또는 had) been drunk(en) : be동사를 수반한 수동태]라는 말은 단순히 “마신다”는 행위와는 구별됩니다.
킹제임스성경이 이처럼 유달리 섬세하고 까다롭게 표기상의 구별을 고수하는 까닭은 그리스어가 갖고 있는 모호성을 배제하고 의미를 선명하게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그 어떤 성경을 보아도 영어 킹제임스성경 만큼 그리스어가 갖고 있던 모호성과 거기서 초래하는 혼란을 이처럼 깔끔히 해결해 놓은 영어 성경은 없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말 개역개정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취한 뒤에..”라고 서술하고 있어서, 이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첫 번째 기적을 사람들이 마시고 취하라고 발효된 알코올성 포도주를 만드신 것처럼 오해시킬 소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술을 즐기셨던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더 나아가 로마 카톨릭 신부들의 음주벽을 정당화시켜 주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술을 마실 때 그 핑계로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사실상 발효된 포도주(술)은 구약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것이었고, 심지어는 그것을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29 재난이 누구에게 있느냐? 슬픔이 누구에게 있느냐? 다툼이 누구에게 있느냐? 재잘거림이 누구에게 있느냐? 까닭 없는 상처가 누구에게 있느냐? 붉은 눈이 누구에게 있느냐?
30 오랫동안 포도주에 머무는 자들에게 있고 섞은 포도주를 구하러 다니는 자들에게 있느니라.
31 너는 포도주가 붉거나 잔에서 제 빛깔을 내거나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에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
32 마침내 그것이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쏘며
33 네 눈은 낯선 여자들을 바라볼 것이요, 네 마음은 비뚤어진 일들을 말하리라.
34 참으로 너는 바다 한가운데 누운 자 같으며 혹은 돛대 꼭대기에 누운 자 같으리니
35 네가 말하기를, 그들이 나를 쳐도 내가 아프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나를 때려도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였노라. 내가 어느 때나 깰까? 내가 또다시 그것을 구하리라, 하리로다.”(잠 23:29~35)
여기서 특히 31절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너는 포도주가 붉거나 잔에서 제 빛깔을 내거나 스스로 똑바로 움직일 때에 그것을 바라보지 말라.”(31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포도주, 술)을 바라보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유혹이 들지 않도록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신 29:6). 그들은 다만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습니다(신 32:14). 개역성경에서는 신명기 32:14의 “포도의 순수한 피”란 부분을 “포도즙의 붉은 술”이라고 옮겨 놓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마치 발효된 알코올성 포도주로 상징되는 것처럼 만들어 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NIV 영어 성경은 한술 더 떠서 “the foaming blood of the grape”(포도의 거품이 이는 피)라고 표현하여 그것이 어찌나 발효가 잘 되었던지 부글부글 거품이 일 정도로 된 포도주로 묘사해 놓고 있거니와, 이런 포도주를 정말로 즐기는 사람들이 누군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이처럼 “새 포도즙”으로 예표되었는데, 이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가 되어야 흘리시게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리스도께로 와서 “그들에게 포도즙이 없다”(요 2:3)고 알리면서 지금 포도즙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지금은 “내 때가 아직 오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라고 대답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첫 기적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포도즙 즉 알코올 성분이 없는 음료를 만드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