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1장 1~17절/제사장의 구별된 삶의 방식(595/421)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공동체이다. 예배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비추는 거울이고, 부정함이 확산되지 않게 관리하는 소금과 같은 존재다. 그러한 만큼 제사장이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그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철저하게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까 일반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규율이 적용이 되었다. 일반 백성들에게 허용이 되던 것도 제사장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제사장은 더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어떤 삶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여야 하기 때문이다.
1.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하고, 백성들보다 더 거룩해야 한다. 특히 제사장은 자신의 거룩함을 보존하고 지키는 일에 흩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풍성히 젖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 은혜의 영광의 광채를 비출 수 있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갔을 때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음에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는 영광의 빛이 빛나고 있었다. 모세는 그것을 알지 못했으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와 같이 우리 자신이 먼저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때 그 영광의 빛이 우리 안에 스며들게 되고 그 영광의 광채가 빛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제사장은 장례에 참여하는 것에 있어서 엄격하게 제한이 되었다. 제사장이 장례에 참여를 할 수 있는 것은 부모와 자녀와 형제와 출가하지 않은 누이의 장례다. 그 외의 장례에는 참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제사장이 장례에 참석하여 시체를 만지게 되면 14일간 부정하게 된다. 그러면 14일 간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결예식을 행해야 한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참석을 하다보면 수시로 참석을 하게 되고, 그러면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장례에는 참석하지 말고 구별되라고 한 것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고, 거룩한 삶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더 엄격한 거룩의 수준을 요구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지도자인 만큼 하나님께서 더 높은 수준의 영성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인격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더 많이 말씀을 연구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지도자는 본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지도자가 타락하면 본받을 대상이 없기 때문에 공동체는 방향을 잃고 쉽게 타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 제사장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 더 거룩함과 정결함과 인격적인 성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고귀한 존재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보다 더 거룩하고 구별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되자.
2.제사장은 세상을 따라서 가면 안 된다. 장례식에서 제사장은 이방 풍습을 그대로 따라서 하면 안 된다(5). 이러한 모습들은 당시 이방인들이 장례식에서 했던 풍습들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장례와 세상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는 방식이 다르다. 똑 같은 장소에서 장례를 치르지만 그 모든 과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먼저 임종예배를 드림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영원히 부름 받았음을 선포한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일단은 하나님께 영원히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의의 심판으로 천국의 복을 누리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악에 대한 심판으로 지옥으로 멸하게 된다.
입관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집은 헛되다는 것을 밝힌다. 결국 사람의 육신은 작은 나무 상자에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렸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육신에게 허락이 되는 것은 작은 나무 상자다. 그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다.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이제 완전히 하나님께 들어갔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물론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께 영원히 들어갔지만, 장례 절차를 통해서 하나씩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우리가 갈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관예배를 통해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는 다시 부활할 것을 선포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장례는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영원한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다시 천국에서 만날 것을 소망하며,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을 소망하면서 장례의 절차를 지낸다.
기독교 장례식에서는 영정에게 절을 하지 않고, 향을 피우지 않는다. 영정에게 절을 하는 것은 천신에게 고인을 잘 봐달라고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향을 피우는 것은 향이 위로 올라가는데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방황하지 말고 좋은 곳으로 가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향을 피우거나, 절을 하지 않는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인도해 가셨고, 심판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따라서 해야 할 것이 아니다.
3.제사장의 결혼이다.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부정한 여인을 피하고 자기 백성 중에서 거룩한 여인과 결혼을 해야 한다. 가정의 정결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론의 후손으로 정결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자녀들에게서 일어난 범죄는 일반 사람들의 자녀가 범죄한 것보다 더 엄하게 다룬다(9). 일반 백성의 자녀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는데, 제사장의 자녀는 불에 태워서 죽이라고 하였다. 가정에서 정결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결한 여인과 결혼을 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