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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재단의 교권 탄압과 대응 방안
진보평론 제10호
성낙돈(덕성여대 교수/교육학)
1. 머리말
우리 나라 고등교육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사립대는 학생 수를 기준으로 전체의 8할 이상을 자치하고 있어, 사실상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주) 따라서 고등교육의 성패 여부는 사립대학의 질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 전체 4년제 대학생 중 77.2%(1,226,252 명)가 사립에 22.8%(361,415 명)이 국공립에 다니며, 전문대의 경우 96.0%(824,991 명)이 사립에 4.0%(34,556 명)이 국공립에 다닌다(이용구,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실태와 사립학교법 개정방향”, 전국 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연합회 정기 총회 자료집, 2000.10.11).}}
사립대학의 현실로 보아 우리 나라의 고등교육은 대단히 비관적이다. 사립대는 오랫동안 전횡과 파행,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분규의 원천이 되어 왔으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널리 오르내리는 말의 하나가 되었다. 사립대의 비리와 부패, 전횡과 파행에 대한 수많은 보도와 관찰, 체험이 반영된 결과이다.
비리와 부패, 전횡과 파행, 이로 인한 분규로 대표되는 사립대의 문제는 사학 재단의 불건전성에 있다. 재단의 목적은 대학의 자율적 활동을 지원, 촉진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사학 재단은 대학을 소유, 통제하는데 주된 목적을 둔다. 이에 따라 대학은 재단에 예속되어 학문의 자유, 교육의 독립성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학사, 인사, 행정, 재정 등 대학 운영의 모든 면에서 재단의 횡포와 비리에 시달리고 있다. 한마디로 대학의 자치권이부정되고 억압되고 있으며, 이중 교권 탄압은 핵심적인 것이다.
최근 사립대에서의 교권 탄압은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며 사립대학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당 재임용탈락뿐 아니라, 징계와 사법 처리 등 극단의 방법으로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에 대한 탄압을 적극화하고 있다. 사립대에서 교수가 재단의 부정과 비리, 전횡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은 교수직 박탈과 투옥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심각한 양상에 있는 사립대 교권 탄압의 실상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2. 사립대 교권 탄압의 배경
교권 탄압은 교수 탄압 즉 교수의 직업적 권리에 대한 탄압을 뜻한다. 교수 탄압은 부당 해직과 징계 등 신분상의 위협에서부터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 사회 참여에 대한 억압 등을 포함한다.
교권은 교수 자치권의 요체이며 대학 자치의 근간이고, 사립대에서는 재단으로부터 교수진과 대학의 자치권을 지키는 보루이다.*주) 교권의 보호, 보장이 없이 재단의 비리나 전횡을 견제할 수 없다. 대학을 재단의 일방적 통제로부터 지키려면 교수들은 재단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견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주){{ 사립대학에서의 대학 자치권에 대해서는 고 신현직 교수의 글 “사립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 확보를 위한 국가감독”
(http://www.kpla.or.kr/FileBoard/86haksul/bal -8.html)”이 상론하고 있다.}}
교권 탄압은 보다 광의로는 대학의 자치권에 대한 탄압으로 이해된다. 사립대의 자치는 곧 재단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며, 이는 교수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문의 연구와 활동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학교가 재단이나 국가의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말한다. 대학 자치는 대학의 이상이며, 규범이다. 학문의 창조가 결코 타율적으로 제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깊은 내면의 정신이 스스로 방향을 찾고 힘을 발휘할 때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에 대해 사립대에서의 교권 탄압은 생사 여탈권을 행사할 정도로 강력한 재단의 대학 지배력을 보여준다.*주) 재단은 교수들에게 신분상의 불안과 위협을 가하여 재단 권력에 순응ㆍ굴종하도록 내면화한다. 교수들이 일신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비리와 부정에 대항할 용기와 정의감을 발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교수들은 대학 바깥의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대학 내부의 문제 특히 재단의 비리나 부패, 부정과 전횡에 대해서는 함구하며, 심지어는 동료 교수의 탄압에 대해서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재단은 바로 이러한 교수 사회의 무기력과 유약함에 힘입어 대학 통제력을 강화시켜 나간다.
*주){{ 물론 교수 신분과 자치권이 완전히 보장되고 있는 소수 명문 사립대의 경우는 예외이다. ‘귀족 사학’에서의 교권과 ‘비리 사학’에서의 교권의 차이는 크다. 전문대에서의 교권과 4년제 대학에서의 교권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립대에서의 교권의 전반적인 열악상이 비리 사학에서의 교권 탄압의 사례로 표출되기 때문에 개별적 교권 탄압의 사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교권 탄압은 비리와 전횡, 월권과 파행으로 점철된 사학 재단의 대학 통제 의도와 맞물려 있다. 비리 재단은 교수의 자치권을 부정하며 자율성을 억압하여 교수들을 왜곡된 대학 운영의 구조와 부패한 재단 권력에 순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이 탄압의 대상이 되며, 형사 고소고발, 징계, 해직 등 수 많은 탄압의 방식이 동원된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사립대 내부의 부정과 비리, 전횡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비리 재단은 바로 교수들의 이러한 심리를 활용하여 일방적인 재단의 대학 지배력을 강화시킨다.
교권 탄압은 재단 비리와 전횡을 심화시키고 교수들의 생존권과 직업적 권리를 빼앗는 것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봉쇄하고 자유로운 학문과 교육, 사회 비판 정신과 실천을 지향하는 학문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치 정신을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일이다. 교권 탄압이 사립대 문제의 중추를 이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권 탄압의 근본 원인은 사학의 구조가 수십 년 동안 왜곡되게 형성되어 온 데 있다. 정부는 재단에게 학교 설립의 대가로 학교 재정과 인사권을 독점적으로 보장하여 주었고 외부 감독을 소홀히 하였다. 이에 따라 학교 내부의 통제ㆍ견제 장치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어 전근대적인 족벌 경영과 전횡, 파행적인 학사운영, 학교의 사유재산화, 공금 유용ㆍ횡령 등의 사학 비리가 관행화 하게 되었다.*주)
*주){{ 이용구, 앞의 글.}}
사립대의 교권 탄압 실상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다. 사학 재단은 교수들의 자유 정신을 죽임으로써 재단의 독점적 대학 지배를 꾀한다. 재단의 비리와 전횡에 맞서 싸우는 교수들은 해직과 구속에 직면한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조치로 강제 해직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재단은 연구 업적과 교육 능력 면에서 우수한 교수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부담 없이 재임용에서 탈락시킬 수 있다. 사학법은 교수들이 부당한 재임용탈락조치를 당하는 경우에도 그 어떤 구제 절차도 가능하지 않게 되어 있다. 재단의 전횡과 비리에 맞서 비판ㆍ대항하고 사학 민주화를 요구한 수많은 교수들이 부당하게 해직 당하여 고통을 겪고 있다.
교수는 사실상 근로자로서의 기본적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신분이 극도로 불안정한 직업인이다. 일체의 소명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갑작스런 해직 통보를 받고 수년간 근무한 교정에서 쫓겨나면서도 그 어디에도 호소할 수조차 없다. 교수직이 기실은 명백한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대항할 수 없는, 통상의 ‘노동직’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업인 셈이다. 부당하게 재임용 탈락된 교수들의 체험이 이 점을 절실히 말해 주고 있다.
사립대에서의 교권 탄압은 재단이 자율과 자치 존중에 토대를 둔 대학발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부당한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고 대학을 권력에 순치시키고 정치 권력에 편승하여 대학 지배를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심화되었다. 재단의 교권 탄압은 국가가 사학에 대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착화되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학들은 주로 해방 정국에 설립되었다. 이 시기에 사학은 여전히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여 억압적인 학교 통제의 체질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등의 위기를 겪으면서 공교육의 기반이 전무한 가운데 졸속적이고 기형적으로 성장하였다. 해방이 되자 국민들의 교육열은 폭발적으로 일어났으나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에 공교육이 이러한 교육열을 담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미군정은 고등교육 수요를 민간 자본의 유치로 해결하였다. 이때 유치된 민간자본은 대다수가 일제시대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지주들의 재산이었다. 이들의 재산은 사실상 교육 자본이라는 명분으로 재산권의 보호를 약속하는 정부 시책을 통해 활성화되었다. 이 교육자본들은 독자적인 교육 이념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려는 민족 자본적 요구에 의해서 보다는 자기 재산을 제도적으로 보호받으려는 지주들의 경제적 동기에 의해서 투입되었다. 이처럼 초기의 사학들은 교육의 본래적 가치에 대한 충실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주)
*주){{ 이문원, ‘사립대학의 변천, 어제와 오늘’, 대교협, 「대학교육」 통권 39호, 1989.}}
국가가 사립대를 방치한 가운데 사립대학들은 학생들의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학생 수를 늘리려는 노력이 상존하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립대 운영자들이 부족한 학교 운영 재원을 학생 등록금을 통해 충당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립대는 급속하게 팽창하였고 사학 부조리는 필연적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국가 재정의 부재, 사학 재단 재정의 빈곤이 등록금 관련 부조리로 이어졌다.
아울러, 계속되는 군사 독재가 사학을 권력에 순치시키려 함에 따라 정치 권력과 재단의 상호 유착은 심화되었다. 사학은 정권의 눈치만을 보면 되었고, 학내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정권의 의도대로 억압과 탄압으로 침묵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학내 비리에 대한 구성원들의 감시를 제한하였고, 이에 따라 사학 재단의 비리는 뿌리깊게 착종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학 설립자들은 사립대학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윤리를 무시한 채 대학 경영과 학사 운영에 지나친 간섭이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대학 자치의 성장을 방해하였다. 적지 않은 사학 재단이 육영사업에 대한 재정적 후원과 헌신이라는 명분을 겉으로만 내세우면서, 기실은 대학을 수탈하였다. 재정비리와 교권탄압은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인상이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군사 독재가 물러가는 시기에도 사학 재단은 대학 지배권 강화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990년의 사학법 개정이 그것이다. 3당야합으로 인한 민자당의 출현 직후에 이루어진 이 사학법 개악으로 사학은 수십 년간의 구태를 증폭시키며 대학이 본연의 연구와 교육 및 봉사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심화시켰다. 이 사학법 개정은, 사학 재단의 강력한 정치권 로비로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 교육계의 민주적 사학법 개정의 요구를 묵살한 것이었다. 이 법은 이미 허약해진 정부의 공적 지도ㆍ감독 능력을 더욱 약화시켜 재단에게 사실상 무소불위의 대학 통제력을 부여하였다. 재단 권력을 극대화한 반면 재단의 독점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를 완전히 제거하였다. 특히 교권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져 당시 교육부에서도 폐지를 공언하여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교수재임용제가 악화되어 부활됨으로써 대대적인 교권 탄압을 예고하였다.
결국 사학의 형성 과정에서 뿌리 깊게 배태된 대학에 대한 재단의 독점적 지배력에 기초한 사립대의 왜곡된 운영 행태는 90년 사학법이 대대적으로 개악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90년의 사학법 개정은 약해질 때로 약해진 교수 자치, 대학 자치의 기반마저 무너뜨리며 만성적인 재단의 교수 탄압, 교권 탄압의 시대를 열었다. 이 사학법 개정을 기점으로 재임용제 악용은, 정권이 주도하고 사학 재단이 보조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형태에서, 사학재단이 주도하고 정권이 보조하는 문민정부 시대의 형태로 전환하였고, 새로운 형태의 재임용제 악용은 교권 탄압을 훨씬 더 가혹하게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90년대 사립대에서의 재단 전횡과 교권 탄압은 전면화되었고, 1999년 사학법이 또 한차례 개악되면서 사학의 파행적 운영 및 교권탄압과 그에 따른 분규가 지속되었다.*주)
*주){{ 1990년 이후 최근까지 발생한 사립대 문제는 ①재단의 학교공금횡령 ②교수 임용 및 재임용비리 ③입시 및 편입학 부정 ④재단전횡, 족벌체제 구축, 학사행정 간여 ⑤총장 선임을 둘러싼 갈등 등의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많은 대학의 문제들이 여기에 속한다. 유형①에 속하는 문제를 야기한 대학에는 광주예술대, 서남대, 한려대, 광양대, 청주대, 경원대, 단국대, 한국외대, 인천대학, 서원대, 동서대, 대구미래대, 한성대, 동신전문대, 동남보건전문대, 상지대, 대구산업정보대, 경문대, 경인여대, 제주산업정보대학, 탐라대학, 태성대학, 경동대학, 경복대학, 동우대학, 서일대학, 대경대학이 있다. 유형②에는 광주예술대, 동남보건전문대, 덕성여대, 서원대, 동명정보대, 평택대, 계명대, 경원전문대, 대구미래대, 경산대, 광주여대, 대불대, 동신전문대, 순천대, 원광보건전문대, 대구산업정보대, 중부대, 경문대, 제주산업정보대 등이 있다. 유형③에는 한국외대, 인하대, 서남대, 단국대, 광운대, 경원대, 경기대, 동덕여대, 동의대 등이, 유형④에는 덕성여대, 광주예술대, 서남대, 한려대, 서원대, 대구대, 계명대, 한성대, 경산대, 동강대학, 동남보건전문대, 한국외대, 그리스도신대, 경복대, 경문대, 경인여대, 오산대, 나주대, 남서울대가, 유형⑤에는 대구대, 계명대, 인하대, 성신여대가 속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만도 경문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성균관대, 제주산업정보대, 계명대, 서일대, 경인여대, 태성대, 아주대, 강남대, 서울산업대, 한려대, 서남대, 그리스도신학대, 남서울대, 청주대, 대구대, 대구미래대, 광주여대 등의 수십 개 사립대가 파행적 대학 운영이나 교권탄압으로 분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용구, 앞의 글).}}
3. 사립대 교권 탄압의 실상
90년대 사학 재단의 재단 전횡과 교권 탄압은 폭압적인 것이었다. 개정된 사학법은 사학의 자율을 ‘대학 자치, 학교 자치’가 아닌 ‘재단의 자유방임’으로 규정하면서 재단에 독점적인 대학 지배력을 허용하였다. 이 법은 당시 교육민주단체들이 국회에 청원한 교육관계법 공동개정안과는 거리가 먼 반민주적이고 퇴행적인 것으로, 심지어는 이미 사문화되었던 재임용제를 부활ㆍ강화시켜 재단비리에 비판적인 교수들에 대한 교권 탄압의 여지를 극대화하였다.*주)
*주){{ 이하 90년대의 교권 탄압에 대한 기술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가 1995.10.16일 주최한 “사학비리구조와 그 개혁방안: 대구대ㆍ상지대ㆍ목원대ㆍ청주대를 중심으로” 토론회 자료의 발제문, 2000.4.25일 주관한 “사립대 재단의 전횡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 토론회의 발제문 등에 기초한 것이다.}}
사학재단은 사학법을 악용하여 사회 및 대학 민주화에 적극적이거나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무수히 탈락시켰다. 사학법이 개악된 1990년에만도 상지대에서 13명의 교수가 무더기로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을 비롯하여 덕성여대, 호남대 등에서 사회 및 대학 민주화에 적극적인 교수들이 우수한 연구실적에도 불구하고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당시 사학 비리의 전형으로 언급되던 세종대를 비롯하여 동의대, 수원대에서 교수들이 추가적으로 재임용에서 탈락되어 교권 탄압이 증폭되었다.
재단 중심의 대학 통제로의 틀 전환을 꾀하는 정치권의 의도와 맞물려 교권 탄압은 확대되었다. 대표적으로 상지대에서는 92년 8월 박정원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고, 93년 초에는 광운대의 부정입학사건 등 대학 입학과 관련된 비리 사례들이 표면화되었다.
교권탄압과 사학비리, 재단전횡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93년 8월에는 효성여대 이윤석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95년에는 배제대 재단 이사회의 총장 선임 결정, 상지대 총장 해임 의결과 관련하여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목원대 총장 임명 문제, 청주대 재단의 초지 불법 횡령 등이 터져 나왔다. 대구대 사태는 총장 당선자에 대한 날치기 불신임 투표, 총장 후보 재선거, 외부 영입 후보의 총장 당선 등으로 전개되어, 구 재단이 복귀하는 우려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경원대 등에서의 교내 사태가 재단 권력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교수재임용제의 악용은 96학년도로 이어졌다.
한편 95년 2학기 말, 울산대 재단은 일방적 총장 임명을 관철시켰다. 사학 재단의 독점 경영권의 강화는, 정부의 ‘재단 중심’의 사학자율화 정책에 힘입어 이후 계명대 연세대 국민대 재단의 총장직선제 폐지로 이어지며 적극화되었다. 그 결과 96년 3월말 7개 사립대 총장들이 총장 직선제 폐지를 결의한 후 최초로 계명대 재단은 4월 8일 총장직선제 폐지를 발표하였으며, 연세대와 국민대도 그 뒤를 따랐다.
96년 5월 계명대 재단이사회의 신일희 총장 임명을 항의하는 교수들의 침묵시위는 비민주적 사립대에서의 교권탄압을 예고하고 있었다. 96년 8월 16일 계명대 일부 동문회가 조직한 ‘비사회’ 소속 20여명의 폭력배가 ‘교수협의회’에 난입하여 교수들을 폭행하고 사무실을 폐쇄하며 자행한 백주의 테러는 극도로 억압적인 사립대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교수들의 저항 의지를 압도하는 우울한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가운데 교권탄압의 극명한 사례가 발생하여 대학사회를 경악시켰다. 97년 3월 덕성여대 재단은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한 교수는 대학 내에서는 물론 학계에서도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는 중견 사학자로 14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재단 박원국 이사장은 덕성여대를 일인지배의 왕국으로 만드는데 방해가 되는 한 교수를 재임용에서 제외시켰다.
한 교수는 사회 및 대학 민주화에 적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1990년 이 대학에서 재임용 탈락된 동료교수의 복직 투쟁을 이끌며 박원국 이사장의 전횡에 대항한 바 있었다. 박원국 이사장은 90년 이후 수년간에 걸친 자신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한 교수를 마침내 재임용제를 악용하여 쫓아냈다. 한 교수의 재임용탈락은 재단 전횡의 상징적 사례로, 대학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며 재단의 횡포로 야기되는 사립대의 황폐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덕성여대 재단의 교권탄압이 대학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98년 서원대에서 교수를 무더기로 해직시킨 사태는 사학 재단의 비리에 한계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96년 5월 서원대 재단을 인수한 최완배 전 이사장은 인수 당시의 투자 약속과 부채상환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은 채 오히려 총장직선제를 임명제로 바꾸고 교수 임면권을 총장에서 이사장에게로 귀속시키는 등 학원 사유화에만 골몰했다. 빚 갚겠다며 재단을 인수한 이사장이 빚을 갚기는커녕 교육부 기채 허가를 받아 36억원이라는 새로운 빚을 얻었다. 또한 이사장에 의해 임명된 총장은 15명의 교수를 파면, 재임용 탈락시켰고 51명의 학생 대표를 퇴학 등으로 중징계하였다.
98년 10월 국정감사와 교육부의 특별감사의 뒤를 이은 관선 이사진 파견으로 서원대가 정상화되었고, 99년 2월 덕성여대가 2년 이상의 민주화 투쟁의 결과 한상권 교수가 복직됨에 따라 재단의 전횡은 다소 완화되는 것으로 전망되기도 하였으나 이는 곧 피상적인 관찰임이 판명되었다. 비리로 쫓겨났던 재단 이사장들은 교육부 장관의 교체를 틈타 복귀를 시도하였고, 김덕중 신임 교육부 장관은 이 같은 움직임을 부추겼다. 대학 사회의 질타와 여론의 질책으로 장관이 입장을 철회하기는 하였으나, 정부에 대한 재단의 막후 영향력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특히 99년 말 국회교육위가 상지대 외대 덕성여대 등 9개 대학에 대해 벌인 국정감사는 정치권에 대한 재단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하였다. 한려대, 서남대, 그리스도신학대 등 극단의 재단 비리가 장기화되어 정상적 대학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들에 대한 교육부의 강력하고 신속한 조치를 의도했던 국정감사에서, 구 재단의 전횡을 종식시키고 정상화되고 있는 상지대 외대 덕성여대 등이 국정감사 대상으로 선정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관선이사의 임기를 2년으로 제한하여 비리 재단의 조속한 복귀를 용이하게 만든 99년 8월의 사학법 개악의 뒤를 바로 잇는다는 점에서 구 비리 재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사학법이 또 다시 개악되는 퇴행적 분위기 속에서 사립대 재단의 교권탄압과 자치권 탄압이 물의를 빚었다. 서남대 재단은 사회 및 대학 민주화에 적극적이던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그리스도 신학대에서는 재단의 전횡에 저항하여 학생 지도자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여 분신까지 시도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성신여대 재단 이사회는 전체 교수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 대신 2위 후보를 차기 총장으로 선임하며 총장 임명권 장악을 기도하여 분규를 촉발시켰다. 성신여대의 12년간의 전통을 무시하면서까지 2위 후보를 총장에 선임한 것은 교권탄압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이내 교수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아주대 재단은 교수들과는 사전 협의도 없는 채 4년임기를 보장받은 총장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전격 퇴진시키고 김덕중 전 장관을 퇴임 7일만에 총장으로 다시 임명하여 대학을 파란으로 몰아넣음으로써 대학의 자치권을 무시하는 재단 파행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사학 재단의 교권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주1) 재임용 탈락 교수만 하더라도 2000년 상반기에만도 30명이 되었다.*주2) 최근의 교권 탄압은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재임용제와 징계를 악용, 남용하여 교수들을 해직ㆍ파면시키는 것은 물론, 민형사상의 고소 고발, 구속 등의 사법적 수단도 서슴치 않는다.*주3) 특히 경문대 이용구 교수에 대한 부당 재임용탈락 및 형사 고소 및 구속, 경인여대 교수협의회 교수들에 대한 긴급구속 및 기소, 덕성여대 등에서 학원 민주화에 앞장서는 교수들에 대한 고소ㆍ해직과 징계ㆍ구속 기도, 대학 내외의 민주화에 헌신적으로 기여해 온 인하대 교수협의회장 김영규 교수에 대한 불법 파면, 한세대 교수협의회 교수들에 대한 부당 재임용 탈락 조치 등은 사학 재단이 무분별한 전면적 교권 탄압에 나섰음을 말해 준다.*주4)
*주1){{ 고 이수인 의원이 2000년 5월 발간한 “사학재단 부정부패ㆍ개혁 백서”에는 대구대, 상지대, 한려대, 경문대 및 관련 대학, 경원대, 중부대, 청주대, 한국외국어대, 덕성여대, 그리스도신학대의 사례가 수록되었다. }}
*주2){{ 4년제 대학에서만도 76~93년까지 108명에 그쳤으나 94년 36명, 95년 8명, 96년 19명, 97년 17명, 98년 38명, 99년 25명이었다. 재단이 재임용 탈락 조치를 할 경우, 사전에 본인에게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방식을 동원하기도 한다는 점에도 볼 때, 실제로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교수들의 숫자는 이러한 교육부의 공식 수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문대의 경우는 재단의 횡포에 교수의 저항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교육부에 보고되는 수치 자체가 의미가 없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주3){{ 교권 탄압을 보고할 수 있는 경우보다도 보고조차 하기 두려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권 탄압이 일어나고 있는 사립대의 수효는 클 것이다. 특히 전문대의 경우에는 보고되지 않는 교권 탄압의 사례가 매우 많을 것으로 보인다. 200.11.10일 출범한 전국교수노조가 발행한 “사립대 백서”는 최근 상황을 포함하여 수년간의 사립대 비리와 부패, 재단 전횡과 교권 탄압 사례 등이 상세히 수록하고 있어 사학 비리나 재단 전횡, 교권 탄압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백서 중 대체로 교권 탄압 사례 중심으로 언급할 수 있는 대학으로는 대구대, 상지대, 강원관광대, 경인여대, 인하대, 광주여대, 경문대, 계명대, 덕성여대, 청주대 등이 있다. }}
*주4){{ 2001.10.22일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준비위원회,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전국대학교수회,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 전국전문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학술단체협의회가 참석한 “대학의 위기, 대학개혁 선언을 위한 교수7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대학민주화 탄압 실태 고발이 있었다. 이 때 대표적 사례로 보고된 대학으로 덕성여대, 숭실대, 인하대, 한세대, 대구효성가톨릭대, 경인여대, 경문대 및 기타 전문대 등이었다. }}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공공성을 요구하는 교수들을 해직시키고 징계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교권 탄압이 된다. 교수들이 재단의 전횡과 비리를 견제하지 못하면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합리성, 투명성은 확보될 수 없다. 비리 재단에게 비판적 교수들이란 목의 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부당한 재임용 탈락 조치, 불법 파면 등의 중징계 조치로 교권 탄압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이면에는 저항하는 교수들만 없으면 권력을 계속 독점하며 소유주로 행세하며 대학에 대한 전적인 지배권과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사학법 개정 과제
사립대에서의 교권 탄압은 비정상적인 재단이 대학 구성원에 가하는 전횡으로 본질적으로는 대학 자치권에 대한 탄압이다. 대학의 자치권을 탄압하는 재단의 전횡이 가능한 것은 사학법의 잘못 때문이다.
사학법은 학교법인 이사회, 즉 재단에 대학 운영과 관련된 거의 모든 권한을 부여하여 사실상 대학의 자치권을 부정함으로써 사학 비리와 재단 전횡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자치는 대학의 생명이다.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율은 대학 자치의 구조와 관행에서만 가능하다. 학문의 자유 없이, 사회와 역사를 이끌어 갈 비판적ㆍ창조적 인식력과 가치관, 실천력을 조화시킨 인격의 배양은 불가능하다.
사립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단이 대학 자치, 곧 구성원들의 자주적 의사결정과 실행방식을 존중하고 수용하여야만 한다. 재단이 명목상 학교에 대한 관리를 대표하는 법인의 지위를 가진다는 것이 학교 자치를 침해하며 학교를 사유물화 할 수 있는 ‘소유’나 ‘지배’의 권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설립의 주체가 국가이건 지방자치 단체이건 교회이건 혹은 기업이건 간에, 대학으로 설립되고 존재하는 한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치의 원리를 존중하여야만 한다.
설립과 관리가 공적 주체이든, 사적 주체이든 대학은 설립됨과 동시에 사회의 보편적 편익에 기여하는 공익기관으로서의 법인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사립학교 법인을 특별히 교육법인으로 규정하여 일반 재단 법인과 구별하고 사립학교를 사회에 기여된 공적 재산으로 관계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고, 영리적ㆍ사익적 조직이 향유할 수 없는 국가 보조나 면세 등의 다양한 사회적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사학 재단은 ‘지원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공익에 기부된 자산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대학 활동의 재정적 지원과 촉진을 사명으로 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사학 재단이 ‘지원은 하지 않고 지배만 하려고’하며 대학 자치를 파괴하고 대학의 지배ㆍ통제를 통한 영리 추구와 대학 사유물화에 주된 목표를 두고 팽창해 왔다. 재단이 대학의 ‘소유자’나 ‘주인’으로 군림하며 대학을 ‘지원하기는커녕 수탈’해 온 것이다. 재단은 학교 운영의 90% 이상을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고 불과 5% 내외의 전입금으로 대학 보조의 책임을 대신하면서도 행정ㆍ재정ㆍ인사 등 주요 권한을 독점하며 학교자치를 탄압한다.*주)
*주){{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은 외형적 시설의 건립 이후 재단의 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학생등록금, 국가지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정부 또한 학교 수를 늘리는데 치중하여 재정 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설립을 인가하기 때문에 사학의 재정이 부실하다. 대학의 재단 전입금이 학교의 총 운영수입(등록금 수입+전입 및 기부수입+교육부대수입+교육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6년 6.9%(운영수입 4,594,440,910 등록금 3,125,056,488 전입금 317,854,508), 97년 7.0%(운영수입 5,307,643,309 등록금 3,579,494,426 전입금 370,492,514), 98년 5.6%(운영수입 5,633,318,260 등록금 3,817,926,522 전입금 314,458,695)로 해마다 점점 낮아지고 있고,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8.5(96년) 67.4%(97년) 67.8%(98년)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체 운영비 대비 재단 전입금의 비율이 2%미만인 사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94년 18.3%, 95년 27.9%, 96년 34.7%, 97년 34.3%, 98년 42.9%로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이용구, 앞의 글) }}
결국 비리와 파행으로 점철된 사학의 문제는 학교 자치를 부정ㆍ억압하는 재단의 독단적 대학 운영에서 야기되며, 사학법은 이를 부추기고 있다. 사학법이 비정상적 재단을 규제하여 사학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함에도, 오히려 비정상적 재단의 대학 사유물화를 조장해 온 것이다.
많은 사학 재단 운영자들은 ‘법인 및 대학이 사회에 공여된 자산’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투자와 치부의 수단’으로 여겨 왔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고등교육의 모든 왜곡과 파행이 생겨났다. 학교를 돈벌이 사업으로 여기는 데서 비리의 사슬이 형성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패한 사학 재단은 막강한 자금력과 인맥을 통해 정치인과 관료 등과 유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한 법을 이용하여 대학 지배를 강화하였다. 재단의 학교 지배는 대학 운영상의 교수임용 및 재임용 비리, 입시 부정, 학교예산의 유용과 횡령 등 다양한 유형의 부정과 비리를 확대 재생산하며 대학을 왜곡시켰다. 고 이수인 의원은 ‘사학마피아, 교육마피아’라는 말로 정ㆍ관ㆍ학(政官學)의 유착이 배양하는 광범하고 고질적인 사학의 부패와 비리 구조를 지칭하였다.*주)
*주){{ 국회의원 이수인, “사학의 부정부패와 교육마피아의 실태”,『사학재단 부정부패ㆍ개혁백서』41 쪽 (2000.5). 아울러, 지난 해 비리로 쫓겨났던 상문고 재단 이사장과 덕성여대 재단 이사장을 복귀시킨 사법부의 판결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ㆍ관ㆍ학의 유착 관계의 범위를 더욱 넓혀 생각하게 하였다. 사법부마저도 이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국민들은 사학 재단의 교권 탄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광범하고 뿌리깊게 착종된 부정부패비리 구조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의혹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한편 2001년 3월 MBC 피디수첩을 통해 알려진 덕성여대 재단 이사장의 정치권 로비는 이러한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디수첩은 덕성여대 재단 박원국 이사장이 지난해 국감을 전후하여 한나라당 ㄱ의원에게 1천만원의 후원금을 냈고, 앞서 9월엔 같은 당 ㅎ의원에게 후원금 1천만원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박 이사장은 지난해 초 한나라당 중앙당에도 후원금 5천만원을 냈다. 후원금을 받은 한나라 당 의원들은 실제 국감 과정에서 재단쪽을 비호하는 태도를 보여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가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거센 반발을 샀다. 덕성여대는 1997년 이후 학내분규가 계속돼 지난해 11월3일 교육위의 국정감사를 받았으며, 당시 박 이사장은 교육부에 의해 임원승인이 취소된 상태였으나 올해 초 대법원 판결을 받아 이사장직에 복귀했다. 민교협, 사교련, 국교협, 학단협, 전교조,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등 32개 단체로 구성된 ‘덕성여대 민주화와 사학비리척결을 위한 공동투쟁위원회’(상임공동의장: 김영규 인하대 교협회장․박거용 민교협 공동의장․김진균 서울대 교수․오세철 연세대 교수)는 성명서(“교육부는 인사상의 불법․비리를 자행하고, 뇌물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덕성여대 박원국 이사장을 해임하고 관선이사를 파견하라!”, 2001.3.21)를 통해 사학재단과 정치권의 유착을 규탄하였다.
드러나는 유착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것이 사회적 여론이다. 1990년 사립학교법의 개악이 정치권에 대한 재단의 대규모 로비로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당시 문공위원장 정대철 의원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대학법인연합회의 치밀한 로비 계획 문서가 발견됨에 따라 단순한 의혹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당시 재단상임이사실에서 농성 중이던 중앙대 학생들이 발견한 문건(대학법협 130-13, 1989.1.21)에는, 한국대학법인협의회가 교섭분담 임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지난(1989년) 1월 18일 본 협의회 이사회에서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을 위해서는 대 국회 및 정당에 대한 정책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여․야 주요 당직자에 대한 교섭을 분담키로 한 바 있습니다"라고 하며, 각 임원들의 로비 대상 주요당직자와 문공위원들 명단이 기재되어 있었고 정대철 문공위원장은 덕성학원 박원국 이사장의 접촉 대상으로 명기되어 있었다. }}
교수들이 재단의 전횡과 비리를 견제하지 못하면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합리성, 투명성은 확보될 수 없다. 부당한 재임용 탈락 조치, 불법 파면 등의 중징계 조치로 교권 탄압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이면에는 저항하는 교수들만 없으면 권력을 계속 독점하며 소유주로 행세하며 대학에 대한 전적인 지배권과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교권과 자치권이 강화될수록 재단의 비리와 전횡은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교권과 자치권은 신분의 안정으로 향상된다. 재단을 견제하고 재단의 비리와 횡포에 대항하여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학자 및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임도 직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신분 안정의 토대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신분의 보장과 안전은 정의와 양심의 필요 조건이다. 교권 탄압은 좁게는 교수의 학자적, 교육자적 권리에 대한 탄압을 뜻하나 넓게는 대학의 자치권에 대한 탄압을 뜻한다.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율, 비판적 인식과 실천 등은 대학의 본질적 가치와 사명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교수들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비리 사학이 교권 탄압에 앞장선다는 것은 교권, 자치권이 사학 비리를 비판하고 견제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권의 적극적 보호 없이 사학 비리의 근절은 불가능하며, 사학 분규는 그치지 않는다.
현 사학법은 교수들의 교권, 자치권보다는 재단의 학교 소유권ㆍ지배권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재단은 총장과 교원 및 직원 임면권을 포함한 일체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교수재임용제 및 징계를 얼마든지 악용할 여지를 허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과 재정에 대한 공개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사립대학은 사학 이사장 개인의 소유물로 치부되어 사욕을 위한 자의적 경영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공교육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부정․부패, 재단 전횡으로 사립대는 연일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사학재단은 법인 전입금 확충에는 별반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학교예산을 법인이 마음대로 전용하거나 유용하고, 횡령까지 한다. 학생등록금은 교육여건 개선보다 건물이나 토지매입, 건설비 등 학교 외형 늘리기에 집중 투자되고, 많은 액수가 적립금으로 쌓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고보조금을 유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립대학들이 이사장 친․인척을 채용하여 학교를 사유화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에서는 학교운영자가 법규를 무시한 채 학교 인사에 개입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사학법을 개정해야만 하며 그 방향은 사립학교의 공공성 확보와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참여와 의견 수렴 장치를 제도화하며, 부패 방지와 국가 및 감독관청의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학의 공공성을 확대․명문화하고, 공익이사․공영이사 제도를 도입하며, 친인척 이사의 선임 요건을 강화하고, 사학의 자주성을 교수 자치를 중심으로 한 학교 구성원들의 자치권의 의미로 규정해야 한다. 또한 민주적인 대학 운영을 위한 예․결산의 전면 공개 의무를 명문화하고, 이사장이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총장 선임도 교수와 학생들의 대의를 반영하는 선출 방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학교법인 및 학교 운영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법인 이사회의 회의 내용과 결과가 반드시 공개되어 이사회 기능의 정상화와 민주적인 관행이 학교사회에 정착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교권 탄압과 인사 비리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교수 임용, 재임용, 승진 등과 관련하여 공정한 기준과 절차가 준수되지 않을 시 처벌은 물론 시정 조치를 강제할 수 있게 하여야 하며, 부정․비리를 저지른 당사자의 학교 복귀 금지, 임원 승인 취소․임시이사 파견 요건의 확대 등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립대학 신규 교직원 임면권은 이사장에서 총․학장에게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사학법에서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는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요건은 학교 운영이 파국으로 돌입하기 이전 단계에서도 분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확대하여야 한다. 부정․비리 당사자에 대해 횡령 또는 유용한 금액은 마땅히 변제하도록 하고, 변제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이 이루어지고 학교 복귀가 불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비리 당사자가 학교에 복귀하여 다시 비리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복귀금지 기간을 늘려야 한다.
사학법은 또한 교육부의 사학 감독권 강화를 포함하여야 한다. 교육부가 수많은 사립대학을 정기적으로 감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만큼 사학의 내부감사 기능 강화를 통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감사를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출석하도록 통지하고 감사 중 1인은 의무적으로 참석하여 이사회 의결사항에 대한 적법성여부를 발언․진술토록 하며 회의결과 회의록에도 기명․날인토록 하고, 외부감사의 구체적인 기준과 감사할 사항 등 세부기준을 규정으로 제정하여 비리내용을 포함한 실질적인 회계집행의 적법성을 감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교육부 관련 관료들이 퇴임 후 일정기간 동안은 사학 총․학장 등에 취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그간 교육부와 사학 재단과의 유착 의혹이 컸었던 만큼, 필요할 것이다.
요컨대 사학법 개정의 요체는 교수 자치를 대학 자치의 중심에 놓고 교수자치조직에 법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교권과 자치권을 최대한 부여하고, 재단의 교권 탄압에 대해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감시ㆍ견제하도록 하고, 부당한 교권 탄압에 대한 구제 절차를 제공하는 데 있다. 재단의 독단적 운영, 전횡, 비리를 철저히 감시하여 처벌하고, 비리가 일정기간 내 시정되지 않으면 국공립학교로 전환하거나 자산을 국고로 환수할 수 있는 공적 관리의 토대를 공고히 하는 것, 공익이사 파견 제도를 도입하고 이사 해임 요건과 관선이사 파견 요건을 확대하여야 하며, 비리와 전횡에 대해 즉각적인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적극적인 내용이 아니면, 만성적인 사학 비리의 근본적 해결은 어렵다.
사립학교법은 1963년에 제정된 이래 18차례나 개정되었지만, 이는 올바르고 충실한 교육적 성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 법인 이사장을 겸하였거나 재단과 관계가 있는 의원들이 국회교육위 소속을 자원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0년 상반기만도 70여 개가 넘는 사학이 크고 작은 각종 비리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사학의 비리가 만연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고 사학을 명실상부한 공교육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학교 운영의 민주성, 공공성,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사립학교법은 사학재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른 교육'을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주)
*주){{ 문단의 내용은 백수인 조선대 교수(전남일보 2001.2.21 "전일시론: 사립학교법 개정, 왜 무산됐나”)로부터 빌린 것이다. }}
교육관계법의 개정은 교수회를 대학 자치의 중심 조직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 잘못된 사학의 지배ㆍ운영의 구조에 교수 사회가 주체적으로 대응할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한 점이 교권 탄압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교수회는 법적 지위를 확보 받아야 한다.
또한 교육관계법의 개정 혹은 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부당한 교권 탄압에 대한 구제 절차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교권 탄압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학 재단의 부정ㆍ부패와 비리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의 사립학교법이 총장과 교원 및 직원에 임면권을 포함한 일체의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교수재임용제 및 징계를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악용할 여지를 허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과 재정에 대한 공개의 책임도 지지 않는 등 불투명한 운영에 대한 견제 장치를 배제하고 있는 한, 사학이 재단 이사장 일인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교권 탄압은 근절될 수 없다.
사학법의 민주적 개정은 너무나 느리게 진행되었고 방해를 받아왔다. 1990년 평민당이 문공위를 주도하던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사학법 개악이 이루어진 직후 평민당은 정책토론회를 통해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고 하였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현 대통령은 이 토론회에서 “사립대 교수들은 2중으로 탄압받고 있다. 하나는 정치 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재단권력이다.”라는 말로 사립대 교수들의 고통을 대변하며 사학법의 민주적 개정 요구에 대한 공감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국민의 정부는 사학비리척결과 교권보호를 위한 사학법 개정에 소극적이었다.
1990년 이 법이 대대적으로 개악된 이래 교육 단체들의 민주적 재개정 요구와 그에 따른 운동은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후 최초의 개정이 이루어진 1999년 8월의 개정에서 이 법이 더욱 악화되었고, 이에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정치인들에 대한 교육계와 사회의 분노가 분출하면서 이 법의 개정을 위한 운동은 더욱 조직적으로 거세게 번져나갔다.
교육단체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99년 8월 사립학교법 개악에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낙천, 낙선 운동을 전개하여 이들의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4.13 총선에서 당시 교육위원장 함종한 의원을 선거에서 패배시킨 것은 대표적인 것이다. 이에 힘입어 교육ㆍ시민 단체들은 선거 후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을 위한 상시적 운동을 정착시키기에 이르렀다. 2000년 9월 21일 전교조, 사교련, 국교협, 민교협,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민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30여 개 단체가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이후 약 두 달간 전국 주요 거점지역별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범국민 홍보․서명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준비하여 국회에 제출하는 등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을 본격화하였다.
이에 민주당 교육위원들은 올 해 ① 교원 임면권은 이사회, 교원회, 학교장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의 제청을 받아 학교장이 행사하고 ② 학교장 4년 연임제를 도입하며 초중등기관은 교사회와 학부모회, 고등기관은 교수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며 ③ 해임된 비리분규 당사자가 다시 이사로 선임될 경우 그 제한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④ 외부 회계 감사를 의무화하는 등을 골자로 '교육의 공익성과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그간 교육계가 요구해 온 내용에는 크게 미흡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학 재단과 보수 정치권의 거부로 좌절되었고, 이어지는 국회 등 정치권의 파행으로 사학법 개정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5. 학원 민주화의 과제
사학법 개정 운동이 결실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대학 현장에서의 민주화 투쟁은 사학 민주화 운동의 주된 거점이 된다. 대학 현장의 구체적 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은 법개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설령 법개정으로 사학 민주화에 우호적인 법률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대학 내부의 구성 주체들이 활용할 역량이 없으면 그 효과는 미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 개정 운동의 전망과는 별도로, 단위 대학에서의 학원 민주화ㆍ자주화 운동은 핵심적인 것이다. 학원 민주화 운동은 학내 민주 세력의 힘을 모아 사학 운영의 비민주성을 청산하고 민주적ㆍ공익적 대학 운영의 틀과 내용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악법의 적극적 보호 속에 있는 비정상 사학이 다수인 현실에서 성공적인 학원 민주화 운동은 뚜렷한 대의 명분에 바탕을 둔 굳건한 노선과 목표의 정립, 그리고 이를 종국적으로 달성하려는 일관된 의지, 과학적 정세 분석과 그에 따른 전략ㆍ전술, 운동을 주도하는 조직의 지도와 관리,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끌어 낼 수 있는 실천 행동 프로그램의 계획과 집행 등 종합적이고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본질적으로 비정상 사학에서의 학원 민주화 운동은, 초기에는 개량적 목표에서 시작되었더라도 급진적으로 발전할 요소가 잠재해 있으며, 전개 과정에서 상대방의 회유ㆍ포섭 등의 타협책에 응하거나 압력ㆍ위협에 굴복하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부패 사학 자체뿐만 아니라 부패 사학을 옹호ㆍ비호하는 우리 사회 전체의 포괄적 부패ㆍ병리 구조와의 전면적 투쟁의 속성을 띄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단위 대학에서의 학원 민주화 운동이 언뜻 보기보다 성과를 얻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운동은 작게 시작했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예측 불허의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학원 민주화 운동은 사회의 양심과 정의감을 자극하여 사회적인 여론을 불러일으켜 교육부 등 제도권의 핵심적 의사 결정자들이 부패 사학 척결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운동의 중요한 개념이 된다.
법․제도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보유한 사립대학 운영자들은 친․인척을 채용하여 대학 사유화의 발판을 만들고, 이들을 통해 학교 운영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각종 부정․비리를 저질렀다. 이들은 대학 구성원들이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학교 운영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각종 법․제도를 이용하여 대학 민주화를 철저히 막아 나서기도 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교육여건은 질적인 부분이 발전하기보다는 양적으로만 팽창되어 갔으며, 이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들은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하게 되었다. 사학의 뿌리 깊고 광범한 부패 구조는 우리 사회 전반의 부패ㆍ비리 구조에 뿌리 깊게 착종되어 있기 때문에, 비리 사학 재단 하나에 대항하는 싸움은 사실상 우리 사회 전체의 부패와의 전쟁의 양상을 띈다. 이 때문에 학원 민주화 투쟁은 최종적으로는 교육부로 대표되는 공권력의 문제 해결 의지와 방식에 의해 해결의 방식을 결정적으로 영향받게 된다.
현 상황에서의 사학에서의 학원 민주화 운동의 성패 여부는 사실상 교육부를 얼마만큼 사학 문제 해결의 중요한 참여자로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사학에서 발생하고 있는 파행적 재정 운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학교 운영자들에게 있겠지만, 이들을 지도․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립대학에 대한 지도․감독을 교육부는 사실상 방치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흔히 “국․공립대학과 전문대학은 3년마다 종합감사를 실시하고,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은 ‘필요한 경우’에 한해 실시한다”고 규정한 ‘교육부 행정감사 규정’과 감사인력 부족 등을 사립대학에 대한 감사 부실의 이유로 들고 있으나 사립대학의 공공성이 무너져 가고 많은 사립대학에서 부정․비리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현실 운운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원 민주화 운동은 교육부의 사학에 대한 감사ㆍ지도ㆍ감독의 당연한 책무에의 환기와 복무를 견인할 수 있다.
부패 사학에 대해 교육부의 사학에 대한 감사 권한을 행사하도록 이끌어 내는 것은 중요하다. 사실상 교육부의 감사 행태는 ‘수십 년간 종합감사를 한번도 받지 않은 대학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을 정도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에, 교육부에 대해 문제 사학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일 수 있으며 따라서 이는 교육부의 움직임을 상당히 끌어낼 수도 있다. 교육부에 사학에 대한 감사의 타당하고 엄정한 기준에 따른 대책을 세워 집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감사주기를 최소한 5년, 7년, 10년 등으로 명확히 하거나 ‘학내 구성원 일정 비율의 감사 요구가 있을 때’ 등의 조건을 명문화하는 방식으로 사립대학에 대한 종합감사 규정을 강화하여야 한다. 교육부는 또한 지금껏 사학에 대한 감사에서 적발 내용에 대해 솜방망이 제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학원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감사 결과 처분의 강도를 높이라는 요구를 활용하는 것은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학원 민주화 운동은 일단 시작하면, 포괄적인 사회 민주화 운동의 과제보다 우선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이 운동은, 포괄적 사회 민주화 운동 세력으로부터의 고립 속에서도, 성공하기 어렵다. 주된 역량을 학내 민주화 운동에 경주하면서도, 그것과의 호응 속에서, 보편적 교육ㆍ사회 민주화 역량과의 연대를 위한 지속적인 역량 교류를 통한 당면 투쟁의 가치와 대의에 대한 동의를 광범위하게 형성해 나가야 한다.
학원 민주화 운동은 법개정 운동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다. 단위 대학에서의 학원 민주화 운동의 성공 여부는 전체 사학 민주화 운동의 지형과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학원 민주화 운동의 최종 목표인 대학의 자치화는 사학의 민주적ㆍ공공성 보장이라는 사학법 개정의 목표에 다르지 않다. 요컨대 그 근본은 대학의 구성 주체들의 자주적인 의사 결정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고, 이러한 체제는 자동적으로 사학의 전횡․부패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내부 통제 장치의 역할을 내포하는 것이다.
단위 대학에서의 학원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의 노선과 목표에 대한 공유와 연대를 통한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총력 투쟁이 요구된다. 아울러 대학 외부의 교육민주화 단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당면한 학원 민주화 요구의 정당성 등 사태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여론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 나가며 종국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재단과 교육부가 인식하고 구성원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도록 압박하여야 한다.*주)
*주){{ 1990년 사학법 개악 이후 전면적이고 완전한 학원 민주화에 성공한 사례는 제한적이다. 이 중 상지대, 서원대, 대구대, 목원대, 경인여대, 덕성여대 등이 성공 사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특히 덕성여대의 경우는 교권탄압에 대한 항거를 시발로 하여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된 학원 민주화 운동의 결과라는 점에서, 또한 해임되었던 재단 이사장이 대법원의 판결로 복귀했으나 교수협의회ㆍ총학생회ㆍ직원노조ㆍ동문 등 학내 전구성원의 연대투쟁과 더불어 ‘덕성여대민주화와 사학비리척결을 위한 공동투쟁위원회(민교협 사교련 전교조 참여연대 등 35개의 사회ㆍ시민ㆍ교육 단체로 구성)의 지원을 통해 그를 다시 퇴진시키고 교육부의 관선이사 파견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학원민주화 운동의 전형을 제시함과 동시에 학원 민주화의 활성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6. 결론
최근 덕성여대, 인하대, 한세대, 경문대, 경인여대 등 사학 민주화, 학원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대학의 교수협의회 교수들에 대한 탄압은 사립대 재단의 교권 탄압과 대학 자치권 탄압이 극단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부당 재임용탈락 조치는 물론, 부당 파면 등의 징계와 형사 고소고발 등 비이성적 수단을 동원하여 재단의 비리와 전횡에 비판ㆍ저항하는 교수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명예를 유린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사학법 개정이 무산되었고 계약제, 연봉제의 전면 도입이 예고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립대의 민주화ㆍ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교수협의회 교수들은 물론 교수 사회 일반에 대한 탄압의 방법은 더욱 폭압적이 될 것이다. 교수재임용제와 징계를 악용ㆍ남용하여 저질러지는, 교육민주화 단체들에 보고되는 각 대학의 교권 탄압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사립대 교수들이 노동자로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직업인임은 이미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사립대 교수직이란, 부당한 해고에도 속수무책으로, 사실상 평균의 노동자직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처지에서 사립대 교수들이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나마 쟁취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주)
*주){{ 교수노조 건설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지금이 바로 교수노조의 깃발을 함께 세워야 할 때입니다”(교수노조추진단 정책자료집1, 2001.2)이 상술하고 있다. }}
교수들이 노동자로 자임하고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는 상황은 교권 탄압 및 그로 인한 신분 불안의 정도를 극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교수들은 부당하게 해직되고 징계되는 경우를 포함하여 교권이 탄압 받고 유린될 때 전혀 대처할 방법이 없다. 교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기구나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교수협의회마저도 법적으로 인정ㆍ보호받는 기구가 아닐 뿐 아니라 교수협의회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따라서 교수 노조의 건설을 통해 교수직의 권리를 확보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재단의 대학 지배ㆍ통제를 견제하고 재단의 전횡과 비리를 척결하여 사립대의 정상화ㆍ공익화에 기여하여야 한다.
사립대가 민주화, 공익화되지 않으면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는 없다. 사립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학의 구성원들이 나서야 한다. 교수들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비틀린 사립대에서 교수들의 교권, 대학의 자치권은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이 교권을 보호받고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자율을 누리려면 대학의 자치권을 세워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교수들이 스스로 부패한 사학 재단에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비틀린 구조에 맞서 싸우는 비장한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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