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와 시공 레포트 20161012(수)
20152850 박지수
- 서로 양보할 수 없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교수님들의 가르침에 대한 욕심으로 가장 힘든 2학년 2학기가 벌써 중간고사 시즌을 맞이한다. 지난 일년 반의 시간동안 그랬듯 대부분의 과제가 많은 건축학과 과목들이 저주이자 축복인 이유에 시험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주는 시기다.
얼마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내가 달려야 하는 지점의 절반 정도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지난 기억들을 되돌아본다.
재료와 시공 수업의 오리엔테이션을 들었을 때, 반 학우들 다 같이 몇천페이지에 달하는 건축 재료와 시공에 관한 교재를 만든다고 하는 교수님의 ‘선전포고’에 겁먹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교수님께서는 주말에 연애할 시간도 없이 산과 들, 공장을 쏘다니며 팀플을 해야 하니 데이트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나를 무척 당황시켰다. 지난 1학기를 열심히 보냈기에, 재료와 시공 수업이 기대되는 한편 지금 듣는 것보다는 내 역량이 성장했을 때쯤 듣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자기합리화에 빠질 뻔 했다.
- 어느 순간 나는 손승완 조의 조원들과 함께 시멘트에 대해 공부를 하고 교재본, 발표본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조에게 ‘시멘트의 종류와 특징’이라는 주제가 주어졌고,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다. 공장도 가봐야 할 것 같고, 시멘트에 관한 책들을 다 살펴봐야 할 것 같고, 막상 선배들의 교재본과 발표본을 보니 모르는 내용이 천지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갈피를 못잡고 있던 중 우리 조의 조장 손승완 선배님께서 조원들을 한자리에 다 모우시고는 목차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직접 딴 동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셨다. 각자 중점적으로 공부할 부분을 정하고 그 자리에서 다 같이 공부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보고 시멘트의 제조공정을 조사하라고 하면 공부 안하고 대충 배낄까봐 감시하려고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는가 하는 의심이 먼저 생겼다. 보통은 자료조사 팀을 두세명에, 피피티 두 명 정도, 발표하는 사람을 따로 뽑는 게 내가 일반적으로 해왔던 팀플의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조장님께서는 나의 의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소 빡센 마감기한인, 처음 모이고 나서 이틀 후까지 그 단원의 내용을 정리해오라는 지시를 남기셨다. 교수님의 크리틱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조장선배의 크리틱을 여러번 받았고, 다른 조원이 작성한 교재본도 틀린 부분과 각주가 없는 부분, 사진이 선명하지 않은 부분 등을 찾았고 교재본은 많은 크리틱을 받지 않고 무난하게 패스했다.
중간에 조원들 중 세 명이 외진 시골지역에 있는 아세아시멘트 공장에 견학을 다녀왔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네 사람은 수업과 사정이 있어 가지 못했는데, 발표본을 만들려고 모였을 때, 공장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거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실감나는 설명을 들었다. 단지 단체카톡방에 동영상을 올렸을 때는 이해가 잘 안 갔던 것이 7명이 다 같이 모여 수다떨 듯 시멘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공부가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시멘트 제조공정에 대한 내용들이 흥미로워 어떻게 보여주면 좋을지 고민하다, 내용을 다 설명하고 동영상을 트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동영상을 틀어 동시에 설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사람의 말소리에 맞춰서 동영상의 속도를 빠르게 조정했다.
오후 2시에 모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발표본을 만들다가 다들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어있었는데, 혼자라면 1시간도 집중하기 힘든 주제를 무려 6시간동안 공부를 한 것이다. 이쯤 되니 처음에 가졌던 조장님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교수님께서 학우들에게 알려주시려 했던 팀플의 진짜 목적이 다 같이 공부를 하는 것이라는 것에 격하게 공감했다.
- 네 번째 수업은 우리 시멘트조의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발표자 4명이 아니어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발표자들이 며칠 전부터 523호에 와서 PPT와 동영상이 잘 작동이 되는지 확인해봤었다고 했다. 게다가 한시간 전에 다른 강의실에서 돌아가면서 발표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정말 존경스러웠다. 맨 처음 발표자가 아니라 부담감을 덜려는 내 비겁함을 발견하고 부끄러워하게 된 것이고, 나보다 능숙해보이는 조장과 조원 뒤에 숨어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이기도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잠도 자지 않고 연습하는 조원들의 모습을 보며 정면으로 부딪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발표자가 아닌데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었을 교수님의 여담도 잘 들리지 않았다. 백주년 기념관 개관식을 해서 술을 많이 마셨다는 이야기, 팀플의 목적이 모여서 공부해서 만들기 위한 것, 시공법은 글로벌하고 기초적인 것을 배운다는 것, 간단하다는 사실은 기초적인 건데도 모르면 어려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건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데,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긴장감 때문에 수업의 시작을 놓치고 흘러가는 맥락을 놓쳤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 안타깝다.
내가 발표자라면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을까? 교수님의 말씀이 들리기는 할까? 자꾸만 이런 생각들로 내 눈은 흐릿해지고 다른 곳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매번 ‘발표’를 하시는데 어떻게 긴장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씀을 하시는지 정말 궁금했다. 학우들과 교수님의 수업의 가장 큰 차이는 ‘자연스러움’인 것 같은데, 진짜 대화하듯이 편안하게 이론적인 내용을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수업 비결을 너무나 알고 싶다.
- 저번주 시간이 부족해 발표를 하지 못한 장광민조의 자기소개 후 선형이와 용우가 발표를 했다. 내용 많은 점토조라 그런지, 장광민조도 20분을 초과했는데 너무 빨리 말을 하는 바람에 나도 마음이 급해져 점토의 시공방법보다는 시간 안에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시간이 정해져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항상 1등급만 받던 영어 모의고사에 자신감이 생겨 그해 고3 수능 영어를 시험삼아 쳐봤는데 결과는 78점으로 4등급이 나왔었다. 문제를 푸는 내내 시간이 다 될까봐 조마조마하고 시간을 신경쓰니 글자는 더더욱 눈에 들어오지 않아 생긴 결과였다. 그 후로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험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고, 마찬가지로 마감기한이 임박한 설계도 두렵다. 학교에서 설계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마감시간이 다가오며 점점 초조해하는 다른 친구들의 모습이 내 트라우마를 건드려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늘 말씀하시듯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고,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시간과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좀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봐도 우리는 시간을 매개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정해진 시간이 있는 인간의 삶에서 시간을 엄수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건축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경유해 행동을 축적해나가며, 사람들끼리 상호작용하는 것은 시간을 타협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나의 트라우마를 고쳐 좀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라는 건, 자신을 그렇게 만든 현실 때문에 최초로 발현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비슷한 어떤 대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즉, 다른 이름을 가진 비슷한 아픔이다. 트라우마를 고치는 방법 중 하나에 유사한 사례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아픔에 익숙해져 트라우마 자체에 익숙해지는 방법이 있는데, 재료와 시공의 시간 제한이 있는 발표를 통해 내 트라우마가 해결될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다.
- 김정근 조의 도상혁이 벽돌쌓기에서 마감방법에 따라 무슨 차이가 있냐는 질문을 했다. 장광민 조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교수님께서는 나중에 추가로 설명할 내용이었는데 도상혁의 날카로운 질문 솜씨에 감탄하시며 김정근 조에 가산점 2점을 주셨다.
벽돌의 토막에는 여러 종류 중 이오토막과 칠오토막이 주로 많이 쓰이는데, 현장에서 자르는 타일과는 달리 공장에서 나온다. 이오토막의 이오는 25를 의미하고, 벽돌 한 장 크기의 (표준 190X90X57) 25%, 칠오토막은 같은 원리로 벽돌 한 장의 75%크기인 벽돌을 말한다.
그런 토막들이 중요한 이유가 벽돌쌓기 방법에 따라 쓰이는 벽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쌓기방법에는 길이쌓기, 마구리쌓기로 나눌 수 있고, 나라별 쌓기 방법에 따라 영식쌓기, 불식쌓기, 화란식쌓기, 미국식쌓기가 있다.
길이쌓기는 0.5B로 건축물의 내벽에서 주로 쓰이며, 마구리쌓기는 온장쌓기라고도 하는데 1.0B로 구조벽과 외벽에 쓰인다.
영식쌓기는 1.5B쌓기로 한 층은 온장쌓기와 다른 층은 길이쌓기를 번갈아 쌓은 것으로, 이오토막으로 부족한 길이를 보강한다. 외국벽은 이 영식쌓기로 쌓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쉽게 허물어지는 벽과 달리 오래간다고 한다. 불식 쌓기는 프랑스의 벽돌쌓기 방법으로 길이쌓기와 온장쌓기를 한 층 내에서 번갈아가면서 쌓는 방법이다. 화란식쌓기는 네덜란드식 쌓기방법으로, 영식쌓기와 같으나 이오토막대신 칠오토막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식 쌓기는 2B쌓기이다.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건 아기돼지 삼형제에 나와 어릴적부터 지독하게 많이 들어온 재료다. 그래서 건축재료로 친근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벽돌을 한 층만 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벽돌을 쌓을 때 백화현상의 원인이 되는 모르타르를 섞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쌓아야 하는 높이도 표준 1.2m에 최대 1.5m로 정해져있다는 것도 참 새롭다.
게다가 단순히 벽돌을 쌓는 거면 그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쌓느냐에 따라 영식쌓기, 불식쌓기, 화란식쌓기 등 이름이 제각각 더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벽돌을 두껍게 쌓으면 좋겠지만, 두꺼울수록 실내공간이 점점 좁아져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실면적이 줄어들거라는 생각에 가까우면서도 먼 재료라고 생각했고, 내가 알고 있었던 ‘벽돌’이란 그저 쌓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이름 중 하나였을 뿐임을 알았다.
타일의 시공방법의 주의점에는 반드시 벽부터 시공한 다음에 바닥을 시공해야 된다는 점이 있다. 그밖에 교수님께서는 점토 시공시 주의사항에 관해 기와와 테라코타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시고, 시멘트 개요를 시작하셨다.
- 시멘트의 성분이 석회석, 점토, 산화철로 이루어져있고, 산화철은 보통 2-4% 함유되어 있는데 이 산화철을 없애 포틀랜드 시멘트를 백색 포틀랜드 시멘트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시멘트 종류 부분은 교재본의 맨 뒤쪽에 나오는 부분이라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새롭게 느껴졌다.
시멘트 소성과정 중에서 로터리 킬른에서 회전하면서 굽는 과정이 있음과, 그로 인해 클링커가 나오고 이 클링커의 회색 색깔을 결정하는 것이 석회석, 점토, 산화철 등 성분들이 합해져서인 것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클링커에 3%정도의 석고를 섞는 이유는 석고가 응결완화제 역할을 해서 클링커가 굳는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것도 말씀하셨다. 시멘트의 성질 실험을 하는 테스트에는 무엇무엇이 있다 정도를 알아두면 된다 하셨고, 대표적인 예로 분말도 실험을 들어주셨다. 또, 시멘트가 풍화에 약한 것을 말씀해주셨다.
다른 조의 발표 전 교수님의 개요를 들을때는 본격적인 수업 내용을 듣기 전 예습을 하는 것 같아 발표에 집중이 잘 되었는데, 우리 조의 개요를 들으니 이때까지 공부했던 것들을 복습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교수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니 이상한 감각을 느꼈는데, 교수님께서는 내가 공부하기 이전에도 알고계셨을 것이지만, 한달동안 공부하며 교수님의 설명을 복습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알게 된 거구나 하는 감격이 섞여있는 느낌이었다.
다음으로는 시멘트의 종류에 포틀랜드 시멘트, 조강 포틀랜드 시멘트의 차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셨는데, 이때 알아둘 개념이 수화열이다. 수화열은 시멘트와 물을 섞을 때 나오는 열을 의미하는데, 조강 포틀랜드 시멘트의 조강은 조기강도의 준말로 수화열을 많게 해서 한랭 시, 긴급공사 시에 유리한 시멘트다. 동해란,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수분이 다 날아가서 강도가 원래대로 발현이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중용열 포틀랜드 시멘트는 열을 서서히 굳혀지게 하는 것으로, 수화에 의한 발열량을 줄인 시멘트로, 물이나 큰 체적을 가진 댐 원자력 차폐장치 등에 많이 사용된다. 고로 시멘트는 고로와 포틀랜드 시멘트를 섞어 화학저항성을 높이고, 물에도 강해 방파제, 교각공사에 사용되고 장기강도가 좋은 시멘트다. 실리카는 포틀랜드 시멘트에 석고대신 화산재와 규산토를 섞어 만든 것이다. 알루미나 시멘트는 초급속 조기강도가 좋고 수화열이 높고, 화학저항성이 높으며, 내화성이 높아 긴급공사에 주로 사용된다. 그리고 아까 전에 산화철의 비율을 현저히 줄여서 만들어낸 백색 포틀랜드 시멘트는 인조석을 만들 때 쓰인다고 한다.
- 우리 손승완 조의 조원 각자의 자기소개 후 민정이언니와 김재우선배가 발표를 했다. 고슴도치가 제 자식은 예쁘다고 한다는 옛 속담처럼 내 눈에는 정말 멋진 발표였지만 교수님께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크리틱을 해주셨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발표의 초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시멘트의 종류와 특징”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데, 시멘트의 정의부분과 제조공정 부분이 주제보다 더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제조공정에서 나온 동영상들도 너무 빨라서 도대체 뭘 말하는건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던 것과 각 시멘트별로 어디에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지가 언급되지 않은 점을 크리틱하셨다.
발표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동영상의 속도를 2배속으로 조정했던 게 나라서, 교수님의 크리틱을 받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 너무 미안했다. 나는 제조공정을 이미 10번 넘게 공부했으니 채광, 소성 동영상 2배속쯤이야 누구나 알아볼 수 있고 오히려 빨라서 좋다고 생각했고, 볼밀이 회전하는 동영상도 너무 따분해 3초정도만 등장하게 했다. 교재본을 미리 예습한 사람들이 봤다 하더라도 정말 눈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뭔가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기도 전에 동영상이 끝나버린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날마다 발표를 하는 목적이 ‘자기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하시는 그 말씀에 대해, 레포트에서는 그 말이 지당하다며 찬양했지만, 정작 나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에 진정으로 놀랐다. 과연 저번학기에 프레젠테이션 관련수업을 들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의 회의감과 부끄러움이 솟았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지극히 나의 입장에서만 발표를 생각했고 그랬기에, 수업초반에 우리조의 발표만 생각하다가 교수님의 말씀과 다른 조의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해”라는 명목 하에 나의 능력과 이런 저런 경험, 과거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포트는 그런 자랑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었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정말 가장 놀랐던 건, 발표의 주제도 몰랐다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크리틱을 해주시기 전까지 우리 조의 발표 주제가 ‘시멘트’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시멘트 개요를 하실 때 왜 그렇게 시멘트의 종류와 특징을 그렇게 많이 설명하시는지 이해가 안 갔었다. 교재본과 발표본을 만들 때도 맨 뒷부분에 나오고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그냥 다른 조의 사람들처럼 끄적끄적 필기를 했을 뿐이었다.
교수님께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이 빠졌다고 하는 건 발표본뿐만이 아니었다. 정작 그 조에 속한 나는 “시멘트의 종류와 특징”이라는 주제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 장광민조에게 도상혁이 질문한 벽돌의 쌓기방법과 일치하는 맥락이다.
이때까지 나는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 두루뭉술하게, 있어보이게 포장해왔다. 마치 벽돌쌓기가 “벽돌쌓기”인 것처럼, 시멘트가 단순한 “시멘트”인 것처럼. 즉, 벽돌쌓기에 존재하는수많은 방법론인 영식쌓기, 화란식쌓기, 불식쌓기 등의 방법이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그리고 시멘트의 포틀랜드 시멘트, 백색 포틀랜드 시멘트, 고로시멘트, 알루미나 시멘트, 실리카 시멘트, 조강 포틀랜드 시멘트, 중용열 포틀랜드 시멘트이든 시멘트이기만 하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설계 교수님께 내 설계의 재료가 노출콘크리트라고 말하던 그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재료 몇 개 더 알게 되었다고 우쭐해져 '다른' 이름들을 '하나의' 이름이라고 착각하고만 있었다.
- 크리틱을 통해 잠시 자신의 성찰과 반성의 과정을 겪고 나니까 단순히 웃어넘겼던 수업시간의 혼화자이와 혼화저이가 떠올랐다. 시멘트에 대한 요약과 함께 ‘혼화제’와 ‘혼화재’에 대한 요약도 함께 해주셨는데 혼화자이는 분말이고, 중량에 포함되며, 혼화저이는 액체로 증발되어 조금씩 줄어들다가 결국은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혼화저이는 중량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개요를 들을때는 혼화자이와 혼화저이의 발음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을뿐인데 돌아보니 교수님께서 듣는 이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설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각적인 자료없이는 ‘혼화제’와 ‘혼화재’가 같게 들릴 수 있는데, 혼화저이와 혼화자이로 설명하시며 다른 이름을 정말 다르게 만드셨다. 카페에 처음 올라왔던 김정근 조의 교재본 크리틱 댓글을 읽어보면 그 조도 처음에는 혼화제와 혼화재가 같은 건 줄 알았다는 게 있었다. 글자만 봐도 헷갈리는데 발음이 같은 상황에서, 다른 것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각 재료별로 다른 성질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계시는 교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다.
- AE제는 감수제로 콘크리트에 물대신 넣어 콘크리트의 강도를 유지하면서 워커빌리티(시공성)을 좋게 하는 물질이다. 이 AE제와 플라이애쉬와 포졸란을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고 건축학도로서 필요한 양념이라고 비유하셨다.
내가 살던 남부 지방은 음식을 엄청 짜게 먹는다. 김치찌개나 기타 국을 먹고 나면 너무 짜서 입술이 근질거릴 정도다. 처음 서울에 와서 밥을 먹었을 때 너무 싱거워서 이대로 살다가는 소금 섭취가 안 돼서 위험한 것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방마다 음식을 양념을 하긴 하지만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음식의 양념의 간이 다르고, 건축 재료 역시 마찬가지로 필요한 특성에 따라 양념인 혼화제들을 비율을 조금씩 다르게 섞는다고 생각하니 이해하기 훨씬 쉬웠다.
- 그 뒤 김정근 조의 자기소개 후 안재성 오빠와 유용상 오빠가 처음에 비빔밥에 참기름을 섞는 것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참기름을 섞어서 비벼지기 쉽게 하는 것과 비슷한 건축재료로 혼화자이와 혼화저이가 있다며 발표를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시간 줄이기에만 급급하던 나와 달리, 김정근 조의 발표는 비유를 사용해 내용은 다소 길어지는 서두였지만, 발표를 듣는 청자들을 배려한 시작이었고 덩달아 흥미가 일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뒤의 내용은 너무 지루했고, 교수님께서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의 PPT라고 할 수 없다는 크리틱을 하셨다. 그리고 PPT를 만들 때는 자기가 공부하는 것을 정리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서 요점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이렇게 하나의 사이클이 끝났다.
재료와 시공 수업과 함께 설계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감했다. 아직 무언가를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나는 너무 엉성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다. ‘크리틱’으로 나의 잘못된 학습 결과를 평가하시지만 자존감이 깎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집 주변에 새로 공사 중인 건물에서 시멘트 트레일러에서 트럭으로 시멘트를 옮기는 모습을 봤다. 시멘트 트레일러는 시멘트가 내부에 잔여하지 않도록 가운데가 오목하게 생겼는데, 시멘트 제조공정에서 출하 이후에 벌크 시멘트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트럭으로 벌크 시멘트를 옮기는지 궁금했는데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보기 전에는 사진을 검색해도 안 나와서 오목한 원통이 들려서 트럭으로 쏟아붓는 건가 생각했었는데, 트럭으로 연결된 관으로 시멘트가 이동하고 있었다.
완전히 모르는 것에 대해 발표를 하려고 했다니, 정말 민망하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하라고 하셨다.
고등학생 시절 3년 내내 다녔던 통영시 영재원 영어선생님께서는 사람이 말을 해야할 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하셨다. 첫 번째는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은 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만 끙끙앓고 손해를 본다. 그렇게라도 참고 견디며 자신의 저항성을 시험하는 사람이 있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바보가 된다. 차라리 한 순간만 바보가 되어 이제라도 알아가는 게 낫다고 하셨다.
- 나는 지금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서는 자책할 수도 없고, 반성할 수도 없다. 조금은 뻔뻔할 수도 있지만, 모른다는 것은 잘못했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반성해야 했던 것은, “발표는 듣는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하는” 거라는 사실을 이해했다고 하면서 내 행동을 전혀 고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해시키기 위해 이해해야 된다니,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앞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나로 돌아갔다가 다른 사람에게로도 가야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이해한다면, ‘시멘트’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앞으로 배울 ‘골재’, ‘골조’, ‘목재’의 다른 이름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한다.
첫댓글 재료와 시공 팀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우리조 너무 조흠..
마쟈요..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긴 리포트를! 역시 지수팍!
호호 바쁜와중에도 열심히 채찍질하는 핑크용준만할까요!
@박지수15 오늘은 버건디 입니다^^
@15학번 전용준 아니 그런 고급스런 버전의 용준이라니 못봐서 아쉬울 지경이네요
역시 이번에도 멋진 리포트네요!!
하핫 부끄럽군요! 다 조원들같이 팀플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죠!!
항상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리포트다..사진을 자세히 보니 레미콘차량이 시멘트몰탈(시멘트 + 모래 +물)을 타설장소에 이동시켜주기위한 포터블 펌프카에 붓고 있는 광경으로 보인다..ㅎㅎㅎ so so good
그렇군요! 저 과정에 대해 짐작하고 나서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더욱 큰 도움이 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