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문화 콘텐츠 개발
집필 :신광철(한신대 디지철문화콘텐츠 학과 교수)
Ⅰ.머릿말
Ⅱ.전통음악의 자리와 공연예술 콘텐츠의 세계진출 가능성
Ⅲ.전통문화 공연 콘텐츠의 현주소와 전통음악 세계화 가능성모색
Ⅳ.축제를 통한 전통음악의 콘텐츠화
Ⅴ.전통음악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킬러 콘텐츠 창출
Ⅵ.맺음말
머리말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문화콘텐츠 현상’이라 부를만한 사회적 관심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문화콘텐츠산업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견되기도 한다. 문화콘텐츠에 있어 핵심적인 경향 가운데 하나가 과학 기술(디지털 기술)과 문화(인문학) 및 예술의 융합이다. 문화콘텐츠는 상품인 동시에 예술로서의 속성을 지닌다. 문화콘텐츠에서 예술의 비중은 문화콘텐츠의 기술환경이 하드웨어(hardware) → 소프트웨어(software) → 콘텐트웨어(contentware) → 아트웨어(artware)로 변화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이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한국적 문화콘텐츠’의 창출이다. 한국적 문화콘텐츠의 창출의 출발점은 ‘우리 예술의 콘텐츠화’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예술의 콘텐츠화는 ‘세계화’와 ‘대중화’라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문화콘텐츠 개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을 해 보고자 한다. 전통음악의 세계화는 전통음악의 대중화라는 또 다른 요소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며, 이러한 두 가지 요소 즉 세계화가 대중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전통음악의 콘텐츠화가 중요성을 확보하게 된다.
전통음악의 콘텐츠화에 대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전통음악의 산업화론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국악산업의 전략진출 분야에 대해서는 매체를 활용한 전통공연예술 상품화(CD-ROM 타이틀 및 DVD 제작), 대중문화와의 교류(국악반주에 의한 가요 음반 유통), 레퍼토리의 확장(작품의 브랜드화, 의식문화의 무대양식화, 타악장르 다듬기 등), 타장르와의 결합(다악 등), 전통공연예술 벤처기업 창설 등의 과제가 제시된 바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제 달성을 위한 국악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전문성 제고와 적절한 투자 전략, 지식 콘텐츠의 축적, 국악 인프라 구축, 전문 보조미디어(국악 FM 방송 등) 스몰 미디어 개발, 지역화 세계화 네트워킹 등의 조건이 제시된 바 있다.
한편, 전통음악의 문화상품으로서의 대중화 기능을 보강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교육적 활용을 위한 강의 콘텐츠 개발, 판소리 연창자 스타시스템 발굴, 어린이를 위한 창극 공연 활성화, 창작 판소리 활성화,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학제간 연구 성과 교류 통합의 장 마련 등의 과제가 제시된 바 있다. 전통음악의 문화상품으로서의 개발과 관련해서는 해외 공연 상품 개발(기존 공연을 수출하는 방안, 해외공연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공연 개발), 음반 및 영상자료 개발, 첨단 문화산업과의 접목(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사이버축제, 대중음악), 효율적인 유통 방안 마련(기존의 음반 쇼핑몰과 음악제공 사이트 활용, 국악 포털 사이트 신설, 데이터방송과의 접목-디지털방송) 등의 과제가 제시된 바 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전통음악의 콘텐츠화를 통한 세계화의 방향성에 대한 거시적인 조망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주제를 천착함에 있어 미시적 접근이 보다 생산적이겠지만, 필자 스스로 그와 같은 미시적 접근을 수행할 만한 전통음악 관련 지식을 충분하게 갖고 있지 못한 까닭에, 문화콘텐츠학의 관점에서 거시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물론, 현단계에서 이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담론이 충분히 구성되지 못했다는 필자 나름의 판단도 이러한 결정에 한 몫을 하였다. 따라서, 이 글은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문화콘텐츠 개발보다는 그러한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음을 밝혀 둔다. 필자가 전통음악의 콘텐츠화를 통한 세계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전통음악의 현재적 위상과 전통예술 콘텐츠의 가능성, 전통공연예술 콘텐츠의 현주소와 전통음악 세계화의 가능성, 축제를 통한 콘텐츠화의 방향, 전통음악 관련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킬러 콘텐츠의 창출 등이다.
전통음악의 자리와 공연예술 콘텐츠의 세계진출 가능성
전통음악의 세계화 혹은 콘텐츠화를 논하기에 앞서 지금· 여기에서의 전통음악의 자리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여기에서의 전통음악의 자리에 대한 성찰은 전통음악론의 역사에 대한 회고를 요청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전통 음악을 아(雅)와 속(俗)으로 구분하며 속악을 경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가 열리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한 변화는 민속악 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 극장(劇場)의 출현이었다. 극장이라는 새로운 공연장의 확보는 민속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창극(唱劇)과 같은 새로운 장르를 계발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만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극장을 중심으로 공연되는 대중예술에 대한 특정 계층의 비방과 몰이해가 하나의 시대 풍조처럼 만연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정악을 높이 사고 흥과 재미를 앞세우는 속악을 경멸하는 유교적 음악관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전통음악의 역사는 민족 음악의 새 지평을 위해 정반합(正反合)의 문화적 변용을 꾀해 가던 통과의례적 (通過儀禮的) 세기로 평가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전통음악은 국제교류라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국악 분야의 국제교류 경향은 ① 정부가 문화 사절로 파견하는 국립예술단의 활동, ②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국악 연주 단체 및 학교의 활동, ③ 판소리 명창들을 주축으로 한 민속 예술인들의 활동, ④ 사물놀이 연주단들의 활동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물놀이의 국제 활동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단순한 국제교류를 넘어 교육 활동을 겸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였다. 국악 분야의 국제교류 활성화는 자연히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대한 성찰을 촉발하였다.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이끈 국악 분야의 국제교류의 일차적인 매개는 다름 아닌 공연예술 콘텐츠였다. 공연은 주요한 오프라인 문화콘텐츠로서, 오늘날 중요성을 더 해 가고 있다. 공연은 대중문화 위주의 한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바야흐로, “공연 보러 한국 가는 시대”가 개막되었다. 현재로서 이러한 추세를 주도하고 있는 콘텐츠는 <난타>, <도깨비 스톰>, <점프>와 같은 ‘넌 버벌(비언어) 퍼포먼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공연예술 콘텐츠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전통무용이나 사물놀이에 대한 선호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공연예술을 매개로 한 전통음악의 콘텐츠화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인 셈이다. 시나위 합주, 살풀이 춤, 판소리, 판굿 등으로 짜인 정동예술무대가 2000년 상설공연으로 바뀐 후 해마다 3만~4만 명의 외국인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이다. 정동극장, <난타>, <도깨비 스톰>, <점프> 공연장이 모두 광화문 일대에 밀집돼 있는 점, 그리고 이 일대가 덕수궁-서울시립미술관- 역사박물관-청계천-인사동-경복궁 관광 벨트를 품고 있다는 점 또한 주요한 기회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은 이처럼 차세대 관광 상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뉴욕 관광객이 뮤지컬로 유명한 브로드웨이를 필수코스로 들르는 것처럼, 최근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상당수가 공연장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적 정황에서 공연예술을 매개로 한 전통음악의 세계 진출은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판 <미녀와 야수>로 불리기도 한 어린이 뮤지컬 <반쪽이전>은 마당놀이와 국악을 접목시킨 것으로서, 어린이들로 하여금 국악의 아름다움을 확연히 느끼게 해 준 미덕을 보여준 콘텐츠이다. <반쪽이전>은 2005년 아비뇽축제 오프 공연과 일본 히타치 거리극 축제를 통해 전통음악의 소통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한편, 정악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세계 진출이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다악(茶樂)과 명상음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악과 명상음악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요한 문화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웰빙’(참살이)의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이 인격 수양의 필수조건으로 삼았던 차(茶)와 전통음악을 결합해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다악이 'Korean Tea Music'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시장에 본격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오는 11월 14~18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규모의 아트마켓 CINARS에 다악이 공식 초청받은 것이다. 클래식, 연극, 무용, 복합예술 부문 등의 장르에 걸친 공식 선정 작품 28개 가운데 90분짜리 단독(Full-Length) 공연은 모두 4개인데, 다악은 복합예술 부문 중 유일하게 단독 공연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한국 작품이 CINARS 아트 마켓의 쇼케이스 작품에 공식 선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98년부터 ‘차와 우리 음악의 다리 놓기’ 작업을 해온 한국창작음악연구회 김정수 회장은 이번 공연의 의미를 “사물놀이와 판소리 등 민속악 위주에서 탈피해 새로운 해외 진출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된 점에서 찾고 있다. 3~4개의 국악기로 빚어낸 실내악 연주에다 춤, 미술, 퍼포먼스를 결합한 다악 공연은 공감각적 요소가 크다는 게 장점이며,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다악은 최근 서양에서 고조되고 있는 명상음악과 선(禪)에 대한 관심을 수용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에 기반한 21세기형 멀티미디어 공연으로 발전시킬만한 소지가 큰 장르라고 하겠다.
정농악회(회장 정재국)의 ‘명상음악회’ 또한 세계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주선에 의한 ‘기업과 예술의 만남’의 성과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 하다. 정악은 병원에서 심리치료용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정농악회는 오는 10월 전주, 11월 부산 공연에 이어 내년(2007년) 2월에는 일본 오사카 분라쿠(文樂) 극장에서 초청 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전통곡으로는 정악의 진수인 관악 합주 <수제천>을 비롯해, 4중주 수룡음, 피리독주와 무용,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가곡 <태평가>가 연주되고, 창작곡으로는 황병기 작곡의 <침향무>가 두 대의 가야금 제주로 연주되며, 김영재 작곡의 <적념>과 원일 작곡의 <꿈속 도드리>가도 연주된다.
전통음악의 세계 진출은 이른바 크로스오버(서양음악과의 만남)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馬友友)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에 의한 재미 작곡가 김지영의 신작 <에밀레 종> 초연이 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김지영의 <에밀레 종>은 오는 9월 16~17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초연된다.
<에밀레 종> 이전에도, 2001년 요요마의 위촉으로 가야금 병창과 오보에·첼로를 위한 3중주 <밀회>(김지영 작)가 실크로드 앙상블에 의해 초연된 바 있다. <에밀레 종>은 첼로와 바이올린, 장고, 네이(퉁소와 비슷한 이란의 관악기) 등 4개의 악기를 위한 실내악곡으로서, 서양악기와 한국, 이란의 전통악기가 어우러지는 이색 작품이다. 첼로는 요요마가 맡고, 장고는 2001년부터 실크로드 앙상블 멤버로 활동 중인 김동원이 연주한다. 장고 연주자는 구음(口音)까지 1인 2역을 맡아 작품 전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구음을 낼 때 요요마는 첼로의 몸통을 두드리면서 한국의 전통장단을 구사하게 된다. 작품의 처음과 끝에 미리 녹음해 둔 에밀레 종소리가 삽입된다. 김지영은 최근 <팔만대장경>(Tripitaka Koreana)도 완성했다. 이 곡은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결성된 한불 트리오의 9월 25일 파리 레쟁발리드 대성당 공연에서 초연된다.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의 현주소와 전통음악 세계화 가능성모색
외국인을 위한 자국의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는 단순한 상업적 이익 이상의 문화적 효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일본의 ‘기온코너’나 중국의 ‘노사차관’ 같은 공연 콘텐츠는 자국의 문화를 외국인에게 알리는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매겨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한국의 집’과 ‘정동극장’ 등에서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우리의 ‘한국의 집’과 ‘정동극장’의 공연 콘텐츠를 분석한 후, 일본의 ‘기온코너’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봄으로써 우리 공연 콘텐츠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한국의집 민속공연프로그램의 기획 취지는 “한국전통의 가(歌)·무(舞)·악(樂)을 한 군데에서 감상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한국의집 공연 콘텐츠는 전 체적으로 볼 때 무형문화재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의집 공연 콘텐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계절에 따른 컨셉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채춤과 판소리 같은 기본 콘텐츠에 계절의 특성과 어울리는 콘텐츠를 가미하여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교체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름 프로그램에는 선녀춤과 해녀춤을, 그리고 가을 프로그램에는 강강수월래와 농악을 삽입하고 있다. 세부 콘텐츠 구성에 있어서는 ‘정’(靜)과 ‘동’ (動)의 흐름을 교차시켜 지루함을 덜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고 있다. 군무(群舞)와 독무(獨舞) 반복·교차 배치 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봄 프로그램의 경우, 가인전목단을 출발점으로 하여 ‘정’과 ‘동’ 사이를 오가다가 결말부에서 사물놀이를 통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 구성은 공연 전체의 다이내믹스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기는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우선, 공연의 다이내믹스 확보 차원에서의 ‘정’과 ‘동’의 교차·배치에 주안점이 놓이면서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앞의 문제와의 연결 지점에서 전통음악의 비중이 제대로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동극장은 한국전통문화의 향기를 전하는 ‘전통예술무대’를 통해 전통문화의 저변확대는 물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전 하는 무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명소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정동극장은 최근 전통예술무대의 콘텐츠의 컨셉에 수정을 가했다. 정동극장 전통예술무대의 기존 콘텐츠는 ‘365일 만나는 즐거운 국악세상!’이라는 모토 아래, ‘전고-산조합주-부채춤-사물-국악관현악협주곡-화관무-판소리/가야금병창/삼고무/판굿’의 순서로 전개되었다. 기존 공연 콘텐츠 구성은 한국전통예술무대의 네 장르인 풍물, 무용, 기악, 소리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2006년 4월부터 새롭게 선을 보인 정동극장 전통예술무대 공연 콘텐츠 구성은 ‘시나위합주와 춤-판소리-삼고무-실내악-태평무-판굿과 소고춤’의 흐름으로 짜여져 있다. 콘텐츠 구성의 모토 또한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이제 당신이 느낄 차례입니다!(Korea! It’s Your turn to feel it!)’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구성된 콘텐츠는 ‘사랑방에 들어와서 공연을 보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창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수동적 음악감상회에서 능동적 참여형 공연으로 기본 컨셉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컨셉 변화는 기존의 암전(暗轉)이 아닌 명전(明轉) 방식의 도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세부콘텐츠 간의 흐름을 끊지 않고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을 연출하는 점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의 공연은 무대의 현장감을 살리고자 모든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는데, 이 점 또한 참여형 공연으로의 전환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악기 고유의 소리를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공연에서 의 전통음악의 비중에 주목한 결과로 여겨진다. 한편, 기존의 전통예술무대 프로그램의 콘텐츠 구성이 뚜렷한 스 토리텔링 개념 없이 소리와 감정의 기복이 컸던 반면에, 새롭게 기획된 프로그램의 콘텐츠 구성은 ‘정’에서 ‘동’ 으로 서서히 상승하는 흐름의 스토리텔링 전략 아래 미시 콘텐츠를 선정·배치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일본 교토의 기온코너는 일본의 다양한 전통예술을 한 무대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다. 전통적인 색채가 짙은 기온의 시죠도오리와 하나미 코지도오리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기온코너에서는 매일 저녁 7시와 8시 각각 50분 동안 전통예술 공연을 하고 있다. 1962년 문을 연 이래로 각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 잡은 이곳은 ‘Let’s Experience All about Traditional Kyoto’라는 취지 아래 전통 음악 연주, 전통 무용을 비롯해서 꽃꽂이와 다도에 이르기까지 교토를 중심으로 발전한 일본 전통예술의 다양한 면모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온코너의 공연 프로그램은 7개의 다양한 전통예술 공연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의 오른편에 마련된 다실에서 관람객 중 체험을 원 하는 이를 상대로 다도(茶道) 시범이 있고, 다도 체험이 진행되는 중에 무대의 막이 오르며 거문고 연주와 함 께 꽃꽂이 시연이 병행된다. 다도(茶道)·화도(花道)와 코토(琴) 연주가 병행되면서, 지연스럽게 일본문화와 일본음악의 접맥 체험이 이루어지고 잇는 것이다. 거문고 연주와 함께 꽃꽂이가 끝나면 다음으로는 아악이 연 주된다. 기온코너의 공연 콘텐츠 구성에서 일본 전통음악의 비중이 큰 편이다. 아악 연주에 이어 쿄겐(狂言)이 라고 하는 희극 공연이 이어진다. 관객들이 쿄겐을 보면서 한바탕 웃음 삼매경에 빠지고 나면,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마이코(舞妓)들이 추는 우아한 춤인 교토의 춤, 즉 쿄마(京舞) 공연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인형극인 분라쿠(文樂) 공연을 끝으로 공연이 매듭지어진다.
기온코너의 공연 프로그램은 교토를 중심으로 꽃피웠던 일본의 전통예능을 한 곳에서 모두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기온코너의 공연 콘텐츠는 교토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전통예능 콘텐츠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이 콘텐츠 들은 일본문화를 대표할만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기온코너 공연 콘텐츠의 흐름은, 아악을 중심으로 공연의 전반부에는 정적인 콘텐츠가, 공연 후반부에는 동적인 콘텐츠가 주로 배치되고 있어서 ‘정’ 에서 ‘동’으로 서서히 진행하는 점입가경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취하고 있다.
기온코너의 공연 콘텐츠 구성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토의 문화의 특성으로부터 공연 콘텐츠 구성의 기 본 컨셉을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교토가 전통 문화유산의 보고라는 점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 이다. 우리의 경우, 경주나 전주 같은 고도(古都)의 문화로부터 공연의 컨셉을 자아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전주의 경우, 소리문화의 전당이나 전북전통문화센터를 무대로 해서 판소리를 중심축으로 하는 공연 콘텐츠 기획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전주에 이미 일련의 공연 프로그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주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중심 테 마로 설정하는 공연 콘텐츠 구성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경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정’에서 ‘동’으로 서서히 진행하는 점입가경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 전통음악 이 중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전체 공연 프로그램에서 전통음악 콘텐츠의 위상이 분명한 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음악이 만국의 공통 언어라는 점을 전제할 때, 전체 공연 프로그램에서 전통음악의 역할과 위상을 설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축제를 통한 전통음악의 콘텐츠화
축제와 이벤트는 문화예술의 다양한 소재와 현대사회의 생활문화가 집약적으로 녹아 있는 인류의 발명품이다.22)축제에서 특정 장르 및 주제의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 에딘버러가 여름만 되면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까닭은 세계 최대의 공연축제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때문이다. 축제는 예술을 매개로 세계인이 소통하는 장(場)인 것이다. 축제는 참여자들 간에 구체적인 신체적·시청각적·언어적 표현과 반응이라 는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일어나는 장이다. 우리가 전통음악 콘텐츠화의 한 가능성을 축제에서 찾고자 하는 배경 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미 전통음악을 핵심 콘텐츠로 삼고 있는 축제를 가지고 있다. 전주 세계소리축제와 영 동 난계국악축제가 그것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어느덧 올해로 여섯 번째에 이르렀다. ‘소리’만으로 축제를 연다는, 자칫 무모해 보이던 계획은 어느덧 안착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 되고 있다.23) 지난해만 해도 관객이 15만여명(거리 공연을 포함하면 43만여명, 외국인 관객 3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대중적 관심이 높은 편이다. 전주 소리축제를 있게 한 밑바탕이 되는 것이 한국의 전통음악 판소리라는 점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소리축제는 판소리의 생성과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주 소리축제는 또한 세계의 전통음악 및 현대음악과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올해에는 5대양 6대주의 소리꾼들이 모이는 세계적 행사인 ‘소리-워매드(WOMAD)’ 가 처음으로 전주에서 열리게 된다. 전주세계소리축제 곽병창 예술감독은 ‘소리-워매드(WOMAD)’ 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포르투갈의 파두, 아르헨티나의 탱고, 아프리카의 재즈 등 월드뮤직으로 발전한 민속음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현대화에 성공했다”며 “한국의 판소리도 월드뮤직이 될 수 있는 만큼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워매드’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벌어지는 축제장 전나무 숲 속에는 100여 동의 ‘세·중·굿 소리캠프’ 텐트촌이 마련되는데, 이는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음악캠프 페스티벌을 국악축제에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함께 캠핑을 하면 서 우리 장단과 판소리, 추임새, 춤동작 등을 전문 강사와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축제를 활용한 전통음악 콘텐츠화는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추동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악의 문화관광 상품화 방안에 대한 연구 결과 제시된 과제로 지역축제와의 연계, 관람객들의 참여가 가능한 국악 레퍼토리 활용, 문화관광 패키지화 등이 제시된 바 있는데, 국악을 주제로 하는 축제를 문화관광 콘텐츠로 개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충북 영동에서 개최되고 있는 ‘난계국악축제’와 관련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일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난계국악축제 참관자들에 대한 만족도 측정 결과, 행사 평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국내 관광객들보다 높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는 난계 국악축제의 국제 관광 상품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례라고 하겠다. 충북 영동의 포도와 국악을 접목시킨 ‘코리안 와인-뮤직 체험 축제’로의 확산도 생각해봄직한 돌파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전통음악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킬러 콘텐츠 창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와 같은 킬러 콘텐츠의 창출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는 영화 <서편제>의 성공 이후 판소리를 소재한 문화상품이 활성화되었던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서편제>는 전통음악 관련 이야기를 영화의 직접적인 소재 및 주제로 삼은 영화로서 한국영화 100만 관객 시대를 연 첫 작품인 동시에, CF나 대중가요 등에서 판소 리를 차용한 사례를 창출해 낸 전통음악 관련 킬러 콘텐츠였다. 임권택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춘향뎐> 또한 전통음악 관련 킬러 콘텐츠로 언급될 만한 콘텐츠이다. 영화 <춘향뎐>은 판소리 자체를 영화화하 였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소리뿐만이 아니라 영상적으로도 조선후기 문화의 실상을 충실히 재현해 냄으로써 판소리의 대중화 세계화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 콘텐츠로 꼽히고 있다. 28) 전통 음악 관련 킬러 콘텐츠들이 판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소리는 한국인의 정신세 계를 담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장르로서, 판소리 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에 담겨진 의미 파악은 우리 전통음악의 세계화 방 향을 모색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킬러 콘텐츠 창출을 위해서는 전통음악 관련 문화적 분위기 뿐만 아니라 전통음악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이다.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에 의해 구축된 판소리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은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디지털시대에 이르러 지식의 정보화 및 정보의 지식화 추세는 한 사회가 지닌 문화적 힘을 재는 주요 척도가 되어 가고 있다. 아울러,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 전통음악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은 전통음악 세계화의 종합을 달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며, 이는 또한 킬러 콘텐츠 창출 및 소통의 중요 계기가 될 것이다. 전통음악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은 단순한 자료 창고가 아닌, 소통과 활용을 전제한 본격적 의미에서의 포털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포털 구축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부문에서의 세부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먼저 행한 후, 종국에 가서 그러한 성과들을 집약 하는 포털 구축을 시도하는 방법도 선택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국악을 소재·주제로 했거나 차용한 대중가요와 관련된 사이트 구축도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악을 소재· 주제로 했거나 차용한 대중가요 콘텐츠의 종합 구축은 내외국인을 위한 전통음악 교육뿐만 아니라 새로운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의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음악의 크로스오버는 문화간 교류에 있어서 한 과정이다. 음악의 크로스오버 과정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이 서로 다른 문화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이해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는 특정 사회 음악의 세계화에 있어 중요한 사안을 이룬다. 크로스오버의 성과는 초월적 문화화로 평가되기도 한다.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레드선 그룹이 연주하고 안숙선이 노래한 '토끼 이야기' 는 이상적인 초월적 문화화를 이룬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맺음말
이상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문화콘텐츠 개발 방향에 대한 몇 가지 주제를 천착해 보았다. 현재적 정황에서 이러한 경향 을 선도하는 것은 사물놀이를 통해 대표되듯, 민속악이 주도해오고 있다. 하지만 본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악의 경우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악은 정악 나름대로, 그리고 민속악은 민속악 나름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정악은 음악의 흐름이 무리가 없고 성급하지 않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주고, 민속악은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체험한 기쁨과 슬픔이 그대로 담겨 있어 생생한 감동을 맛보게 한다는 점, 그리고 정악이 깊고 넓은 강물이라면, 민속학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라는 점 34) 등을 깊이 성찰한다면 정악은 ‘정’의 자리에서 민속악은 ‘동’의 자리에서 각각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음악의 콘텐츠화를 통한 세계화 과정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물놀이패가 다녀간 곳에는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라는 열광적인 사물놀이 팬클럽이 형성되었다. 해외 문화원 등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소중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메세나활동 등을 통해 기업이 이러한 네트워크 구축을 적극 지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통음악의 콘텐츠화를 통한 세계화를 단순히 문화상품의 차원에서만 접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세계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과제이기도 하다. 사물놀이 미국 공연이 끝난 후 『LA Times』가 언급한 “사물놀이 그룹에게는 한국 문화유산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이를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나누어 줄 의무가 있다”라는 과제 제시에 담겨진 뜻을 반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