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이 밝았어도 동서남북을 모르는데 어떤 도둑놈이 남의 옷을 갖고 갔냐?” 이 이야기는 심청이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전국에 맹인 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 뺑덕 어미가 같이 한양으로 가다가 바람이 나서 다른 맹인 따라 가버렸다. 냇가에서 멱을 감던 심봉사가 지팡이와 옷을 찾는 부분이다. 요즘에도 동서남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공과금을 납부하려고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 이것 좀 찾아주소. 어떤 할머니가 기초연금을 찾으려고 하는데 글을 몰라서 부탁하는 것이다. “내가 눈만 뜨면 얼마나 좋을까?”참 안타까운 일이다.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할머니를 따라서 일하는 곳으로 갔다. 건물 한쪽에 천막을 치고 농산물을 조금씩 놓고 장사를 하고 계셨다. 사람들은 글을 모르면 까막눈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분의 눈이 유난히 검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할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끝에 한글을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큰 종이에 자음 모음을 칸 속에 쓰고 1부터 100까지 숫자도 써서 칸막이 벽에다 붙였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듯이 하면서 이름하고 숫자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은행에 가서 돈 찾는 용지를 여러 장 가져다 거기에 이름을 쓰고 필요한 숫자를 쓰도록 했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가는데 나를 보고 반가워 하시며 동생이라고 부르신다. “오늘 오전에 은행에 가서 처음으로 혼자 돈을 뺏어”어린애 응석부리듯이 자랑하시는 할머니 등을 토닥이며 성공 했어요. 그날부터 나는 길가에서 할머니들을 보면 다가가서 묻는다. ‘비 내리는 호남선’노래 가사를 보이며 할머니 이 노래 아세요? 물으면 글씨를 아시면 읽는데 글을 모르는 사람은“몰라”하시며“그것이 뭣이여?”하는 사람들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다보니 48명을 모았다.
김성복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성인학생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러 와서 주차장에는 차가 가득 세워져 있다. 자동차 위로 오색의 낙엽이 떨어져 날린다. 바쁜 일손을 놓고 달려오는 학생들은 머리위에 가랑잎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교실로 달려간다. 진도와 장흥, 강진, 각 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제일 정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정이 있어서 진학을 못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렇게 공부해서 사회 각 기관에 접하여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어린 시절은 삶의 현장에서 항상, 먼저 시험부터 치르고 난 다음에 배우는 식인데, 학교에서는 공부는 먼저하고 시험은 나중에 치르는 것이다. 이것이 삶에서와 학교에서 배우는 차이다.
이곳은 오전반 오후반 야간반으로 나눠서 하루 세 번 수업을 한다. 교육부에서 학력을 인정하는 학교다. 졸업 후 자기가 하려고 하면 대학교 대학원 유학까지도 갈 수 있는 것이다. 교장선생님께 평생교육 한글학교를 만들어서 어머니들을 눈을 뜨게 해 주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그때 만들어진 한글학교에서 지금은 많은 어머니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런 학교가 없었더라면 절망이 그들을 지배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소나 염소가 되새김질을 해서 영양분을 얻듯이 잘 안되지만 애쓰는 모습이 엿보인다. 70세 전후해서 모인 성인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몇 번 반복을 해도 흐리고 지워지는 기억력을 어찌 할까. 미리 예고한 일이지만 세월의 야속함을 느낀다.
옛날에는 글공부를 하려했으나 가난이 앞을 막아 동냥글로 채웠다. 험한 길 헤쳐나 자녀들 낳아 기르고 가르쳐서 결혼시킨다. 할일 다한 척 두 다리 쭉 뻗고 안방에만 앉아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즘에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모두가 최고 학벌을 취득 한다. 부모가 글을 모르면 대화가 되겠는가? 며느리가 아들 불러 놓고 할머니 무엇 좋아하시나 물어봐라 하면 대화가 끊긴다. 소나 돼지처럼 먹을 것이나 받아먹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산다는 의미를 어디에 기준을 둘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되풀이로 이어진 삶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요즘에는 세상 살기 좋아졌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열심히 해서 대학교도 갈 수 있고 컴퓨터도 배우고 자녀들과 메일도 주고받으며 학벌의 말뚝을 뽑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