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달라졌다. 책을 읽거나 빌리거나 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찾는 딱딱한 공간은 추억 속에 남겨두자. 여기, 널찍한 공간에 채워진 풍부한 도서와 DVD 그리고 디자인 작업을 위한 장비까지 갖춘 똑똑하고 세련된 도서관이 있다. 서울시 옛 청사에 들어선 서울도서관이 주인공이다.
서울도서관 4층 세계자료실. 세계자료와 외국어자료, 외국정기간행물 등을 열람할 수 있다.
2002년 붉은 물결로 일렁이던 시청 앞 광장을 기억하는가.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며 온 국민이 뜨거웠던 그때, 서울광장은 ‘시청 앞마당’에서 시민들의 소통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2004년 공모전을 통해 ‘서울광장’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곳은 전시, 스케이트장 등 계절마다 다양한 변신을 통해 시민들이 자연스레 드나드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의 여행지는 서울광장을 앞마당 삼아 자리한 서울도서관이다. 서울광장을 먼저 소개한 이유는 서울광장과 서울도서관, 이들의 ‘바늘과 실’ 같은 관계 덕분이다. 서울광장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 ‘시청 (앞) 광장’으로 불리던 것만 봐도 그가 지금처럼 독립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시청의 일부였음을 읽어낼 수 있다. 동선만 봐도 서울도서관 정문으로 나오면 바로 서울광장이 이어지니 다른 공간으로 보기도 조금 곤란하다.
잠시 서울광장 주변을 둘러보자. 빌딩숲 사이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덕수궁 대한문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걸으면 헤어진다는 풍문을 품은 돌담길이 이어진다.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길이다.
주변을 둘러봤으면 서울도서관으로 가보자. 그가 품은 시간을 오롯이 드러내는 건물 외관이 눈길을 끈다. 서울도서관, 이곳은 4년간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지난 2012년 20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서울을 대표하는 도서관으로 개관했다. 그전까지는 서울시 청사였다. 1926년 건립된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 청사였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시 청사로 쓰였다. 80년 넘게 서울의 중앙, 같은 자리에서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똑똑히 보아온 그의 정체는 문화재(등록문화재 제52호). 서울시 새로운 청사는 옛 청사(서울도서관) 바로 뒤에 터를 잡았다. 그가 속한 중구는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다.
옛 서울시 청사였던 서울도서관의 현재(왼쪽)와 과거(오른쪽). 옛 서울시 청사 사진은 서울도서관 3층 서울기록문화관에 전시 중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번지, 서울도서관의 주소다.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인다. 가만히 서울도서관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제강점기부터 2002 한일월드컵까지 그가 품은 역사를 들려주는 것 같다. 어느 시대인가는 서민들이 감히 드나들지 못하던 높은 문턱을 자랑하던 폐쇄적인 공간은 21세기로 진입하며 누구나 들고 날 수 있는 열린 공간, 도서관이 되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많은 얘깃거리가 담겨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지만 책을 대여하기 위해서는 회원증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 소재지로 된 신분증 가졌거나 직장이 서울인 경우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 가입한 후 신분증이나 학생증 등을 가져가면 회원증을 만들 수 있다. 회원증을 만들면 도서, DVD(영화, 애니메이션만 가능), 점자자료, 전자책 등을 대출할 수 있다. 회원증 발급도 대여도 모두 무료이다.
서울도서관 정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지나면 중앙 안내데스크가 자리한 2층이다. 북카페 ‘책사이’와 ‘디지털자료실’이 함께 있고 다른 공간에 ‘일반자료실2’가 자리한다. 디지털자료실에서는 비디오와 오디오 자료, 인터넷, 디지털 전자신문 등을 볼 수 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DVD 감상과 대여가 가능하다.
또 포토샵과 일러스트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스마트 오피스’ 공간이 있어 작업자들이 많이 찾는다. 컴퓨터는 모두 예약제이다. 미리 예약한 자리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께 자리한 북카페 ‘책사이’는 좀 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서가에 배치된 잡지 등으로 머리를 식히기 좋다.
1층과 2층을 잇는 벽면서가
자, 이제 최근 2년 동안 발행된 기술과학, 예술, 어학, 문학, 역사지리 분야의 장서를 비치한 ‘일반자료실2’로 가보자. 1층의 ‘일반자료실1’에서 공간이 이어진다.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지는 벽면서가는 그 높이가 무려 5m가까이 된다. 아래쪽에는 어린이 자료, 위쪽에는 전시용 자료가 있다. 그야말로 책 세상이다.
이렇게 많은 책 중 과연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할지 바람직한 고민이 생긴다. ‘일반자료실1’에서는 철학, 종교,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도서를 접할 수 있다. 어린이 코너도 같은 공간에서 이어져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는 엄마들을 배려했다. 책 읽을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일반자료실1 맞은편에는 기획전시실과 장애인자료실이 있다. 서울시 청사 시절, SCN방송실과 통신실이 있던 곳이다. 기획전시실의 전시도서는 열람만 가능하고 대출은 불가능하다.
장애인 자료실의 점자도서는 대출이 가능하다. 시청각 장애인용 점자자료와 영상자료를 갖추고 있다. 지상 1층에 자리한 서울도서관 후문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1, 2층의 모든 공간은 평일에는 오전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말에는 오전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자료와 수화 영상자료를 갖춘 장애인자료실.
3층으로 올라가보자. 서울시와 정부 발간물을 갖춘 서울자료실과 서울시의 기록물을 볼 수 있는 서울기록문화관이 있다. 모두 실내 열람만 가능하고 대여는 불가능하다. 서울시청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어 흥미롭다. 또 옛 청사시절 시장실과 접견실, 기획상황실을 복원해 눈길을 끈다. 당시 분위기가 절로 전해진다. 4층에는 각국 대사관과 문화원 등에서 제공한 자료와 외국정기간행물 등을 살필 수 있다. 대출은 불가능하다.
흔히들 도서관은 공부를 급하게 해야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대여할 때 찾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박하고 멋없는 딱딱한 공간의 옛도서관은 이제 잊을 때가 되었다. 꼭 책을 읽거나 빌리지 않아도 서울도서관은 한 박자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다. 영화 취향이 상이해 다투는 커플이라면 언제든 DVD 관람이 가능한 디지털자료실에서 서로 마음에 드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다. 아이와 주말이면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다면 서울도서관으로 가보자. 서울 시내 중앙에서 누리는 책과의 데이트, 봄날을 기다리는 최적의 여행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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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 정문으로 들어서면 디지털자료실과 일반자료실이 자리한 2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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