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가 주섰다.
수필문예대학 40기 김 근 필
‘오다가 주섯다’는 ‘오다가 주웠다’의 경상도식 사투리 발음이다. 이 말을 생각하면 나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정성스레 선물을 샀음에도 정작 “오다가 주섰다.”며 멋쩍게 불쑥 내미는 모습이 그려진다. 진심을 담은 만치 예쁜 말과 함께 주면 오죽 좋으랴! 나도 그랬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마음은 있으나 쑥스럽고 어색해서 표현도 잘 못 하고 베풀지도 못하는 것이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27년을 산 이후 직업상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2011년부터 시작한 주말부부 생활은 대구, 전주, 대전, 다시 대구, 광주를 거쳐 지금 대구로 돌아왔다. 삼 대가 덕을 쌓고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주말부부를 할 수 있다는데 과연 누구의 조상이 덕을 쌓았을까? 내 쪽인가, 아내 쪽인가. 지금까지 우리 두 사람 논쟁의 끊이지 않는 주제이다. 우리는 아마 둘 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을 것이라는 데는 서로 동의한다. 그 벌을 받느라 서로 만나서 고생을 찔찔이 하며, 지금까지 옹기종기 티격태격 알콩달콩 서먹서먹 살고있는 것이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경상도 남자 특유의 과묵함이랄까. 객지에서 영업직을 그렇게 오래 하고 사람을 많이 상대하였음에도 마음과 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겉보기에는 외향적이나 속은 아주 내성적이다. 고객을 업무적으로 불편함 없이 해드리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고, 술 한잔하며 대화도 하고,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하는 부분들은 아마도 당연히 그래야 하니 잘했었던 것 같은데 유독 집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약간 차갑고 무뚝뚝한 아빠요 남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부드럽고 자상하고 나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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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태어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 나는 대인 관계, 특히 직장상사들과의 소통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다. 서울 출신으로 아주 아부를 잘한다고 팀 내에 소문나 있는 절친한 동기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는 네가 윗사람들에게 아부를 잘하는 것이 부럽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할 수 있냐?"라고 했을 때, 그 친구의 답변에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게 아부로 보여?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지.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아."라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생각을 해보니 직장상사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태도와 행동의 이유가 바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담기지 않았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아내와 상의를 하였다. "나 윗분한테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어.". 아내가 깜짝 놀랐다. 매번 직장상사가 나만 괴롭힌다고 투덜대며 흉이나 보더니 갑자기 선물을 드리고 싶다니. 그래서 친구가 한 이야기에 느낀 점이 많음을 설명했다. 선물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앞으로 잘 모시고 싶다는 내 말에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정말 잘 생각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백화점에서 패션 감각이 좋은 그분께 어울릴 만한 겨울 목도리를 골랐다.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좋은 제품이었다. 그리고 차 트렁크에 실어 놓고 상사께 드리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였기에 회사 사무실로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특별한 이슈를 만들어서 상사께 만나자고 요청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마음처럼 안되는 것이, 항상 업무로만 연락드리다 보니 이유 없이 찾아가서 탁월한 업무추진능력과 리더십을 존경한다고 평소의 내 마음을 솔직히 말씀드리기에는 왠지 낯 간지러웠다. 몇 날 며칠 차에 목도리를 싣고 다니며 끙끙 앓고만 있었다. 별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 왔다. 내 지역으로 출장을 오실 일이 생긴 것이다. 아침에 만나서 함께 다니는 동안 계속 머리 속은 트렁크의 목도리가 가득 차 있었다. 뭐라고 말씀드리고 드리지? 어떻게 드리지? 혹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면 어쩌지? 혼자 긴장하며 이랬다저랬다 소설을 쓰는 동안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사의 차를 주차한 곳에 다시 도착해서 헤어지기 일보 직전, 드디어 용기를 내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차로 걸어가실 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말씀드렸다. "이사님. 잠시만요." 심장이 벌렁거리고 땀이 뽀작뽀작 나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무슨 여자친구에게 고백하는 날도 아닌데 뭐 하는 건지... 트렁크에서 예쁘게 포장된 목도리를 꺼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되나 고민했다. 구름을 걷는 것 같았다. 상사는 선물상자와 나를 번갈아 보며 무슨 일인가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이사님. 평소에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이사님 말씀 잘 듣고 팀에 더 큰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목도리는 백화점 갔다가 이사님께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최근 덕분에 시상도 받고 해서 꼭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멋진 멘트와 함께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가 멍해지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뭔가 이야기는 드려야 되는데 머리도, 입도 말을 안 들었다. 그러다 겨우 한마디 했다. "집사람이 이사님 드리라는 데요." 양손으로 선물상자를 쑥 내밀고 90도로 인사를 드리고 호다닥 차로 돌아갔다. 창피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이게 아닌 데를 되뇌며, 좀 더 멋있게 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드렸냐고. 그래서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웃겨 죽겠단다. 10분 뒤 장모님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아내가 전화를 드렸나 보다. "아이고, 김서방 많이 발전했네. 잘했어. 뭐 줘서 싫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어."라고 하시며 막 웃으셨다. 장모님 전화를 받고 보니, '내가 무슨 문제가 있긴 했구나. 집안의 화제가 될 정도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내가 내 성격을 고치려 부단히 노력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먼저 내 마음을 열어 보이려 농담도 하고 장난도 걸었다. 천성을 고치는 게 쉽진 않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자상한 남편과 아빠가 되어 갔다. 상사는 평소 내가 상사에게 좌충우돌, 도발적이라 오해를 많이 했는데 그 후로 마음이 편해지셨단다. 지금도 선물을 드린 그 상황을 생각하면 '오다가 주섰다.'란 것 같아서 민망하다. 침묵은 금이 아니었다. 표현해야 상대와 공감을 한다. 오다가 주워도 좋다. 내 마음속의 정을 실제로 표현해야 부드럽고 윤택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