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남편은 부안 채석강 옆 숙소를 예약하였다. 작년 초부터 둘이서 여행을 다녀봤지만 좀 심심한 것은 사실이다. 현호씨 부부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하였다. 좋단다. 군더더기 말이 없다. 매사에 긍정적인 부부다. 여행은 가장 편안한 사람과 함께하라고들 말한다. 그 부부에게 남편이 여행을 제안한 것도 분명 그런 맥락일 것이다.
현호씨는 남편이 군대 시절 군대 밥을 함께 먹은 전우이자 그 이후로 만남을 지속해 온 오랜친구다. 그 부부가 연애할 때에는 셋이서 여러 번 만나기도 했단다. 남편과 재희씨는 잘 아는 사이라는 얘기다. 나중에 우리 넷이 만났을 때 재희씨는 말했다. 병훈씨 씨까맣고 마르고 볼품없더니 얼굴이 보기 좋으네 아내를 잘 두셔서 그런가봐. 소녀처럼 높은 소리로 깔깔 웃었다.
현호씨 군대 시절 애칭이 곰두이고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무던하고 착한지를 가늠하게 한다. 재희씨는 자그마한 몸매에 눈코입이 참 이쁜 여자다. 처녀 시절 남자들이 꽤 따라다녔을 것이다. 웃음소리가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말이 적은 현호씨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부지런하다. 녹두전을 부쳐서 가져온 적이 있는데 크기도 크기려니와 다섯 쪽이었다. 냉동실에 두고 먹었다. 외모와는 딴판으로 손이 크다. 막내딸임에도 친정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할 즈음에 모시고 살다가 두 분 모두 편하게 보내드렸다. 마음 씀씀이가 막내딸 같지 않다.
첫째날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는 친구 부부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만나자마자 하하호호다. 장조림과 오이피클을 준비해왔단다. 역시다. 그동안 함께 다녀본 사람중에 반찬을 준비해 온 사람은 없었다. 재희씨는 순 서울깍쟁이 얼굴이지만 마음이 넉넉하다. 부안까지는 4시간의 거리. 군산 휴게소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기로 했다. 시레기 해장국과 차돌배기 된장찌개와 아욱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다. 내가 입맛이 좋아진 것도 한몫했으리라.
오오! 아아! 눈을 뗄 수가 없다. 새만금방조제로 새롭게 생겨난 드넓은 땅을 만났다. 새만금은 김제시 김제평야의 다른 이름 만금평야의 만과 김해평야의 금이 합쳐진 이름이다. 여기가 바다였다니. 상상할 수가 없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놀라운 업적 앞에서 다시금 그를 돌아보게 한다. 강원도 고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희망이 보이지를 않아 어머니의 옷장에 숨겨져 있던 소를 판 돈을 훔쳐서 서울로 도망, 쌀가게 점원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열정적인 삶을 읽어본 적이 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만 아니라 나라의 부강을 위해 전력 질주한 사람이다. 그 광야에 서면 누구나 그를 떠올릴 것이다.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내소사에 갔다. 선운사의 말사다. 전나무들이 군인처럼 줄을 서서 반듯한 인사로 반겨준다. 중간중간에 초록빛 어여쁜 단풍나무들이 부드럽게 작은 손을 흔들어 준다.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었던 어느 가을에 와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단풍잎이 하도 고와서 전나무는 그냥 지나쳤다. 내소사 일주문 앞에는 수령이 500년 된 할머니 당나무가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할머니 당나무와 짝을 이루는 할아버지 당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1000년이라 한다. 무조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바라는 것을 빌면 이루어질 것 같다.
내소사의 중심전각인 대웅보전은 철못을 쓰지 않고 나무만으로 지어졌단다. 날렵한 팔작지붕과 연꽃을 하나씩 조각한 빗살문이 섬세해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보물 2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연꽃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을까. 부처님 앞에 엎드려 삼천 배를 올리는 사람의 불심도 따라가지 못할 불심이다. 법당에 들어가 재희씨와 공손하게 엎드려 절을 올렸다. 불교를 믿고 있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예법은 잘 모른다. 부처님이 바로 보이는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그곳에 계신 보살님이 한 말씀 하신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오세요. 절을 한 번만 하려고 했더니 세 번 올리란다. 모르는 게 많은 중생이다. 이곳에 왔음을, 건강함을 감사했다.
채석강. 언니 셋과 형부 둘과 우리 부부가 함께 왔었다. 우리가 막 도착해 팬션에 들어갔을 때 서쪽으로 향한 거실 창문으로 석양에 물들어가는 바다가 보였다. 다들 환호를 했었다. 남자들이 고스톱에 열중하는 동안 언니들과 채석강을 구경하였다. 격포항 쪽으로 빙 돌아 채석강을 구경해야 제대로 보는 것인데 격포항 쪽으로는 가보지도 않고 반쯤 가다가 돌아오고 말았다. 반만 구경한 것이다. 사진으로 봤던 그 비현실적이어서 놀라운 풍경은 어디로 갔지. 그랬었다.
다행하게도 이번에는 격포항 쪽 채석강으로 간다. 채석강은 부안군 변산반도 서쪽 격포항 옆 닭이봉 밑에 있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과 바닷물과 어울려 풍치가 신비스럽다. 물이 나간 시간이니 구경하시기 최고입니다. 어서들 다녀오세요. 저희 횟집으로 싱싱한 회 먹으러 오세요. 횟집 아저씨가 가게 앞에 서서 손님을 끌고 있다. 저녁노을은 아직 멀었는데 구름이 낀 하늘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넓적한 현무암이 깔린 바닥으로 구름에 반쯤 가리운 햇살이 비춰들어 푸르스름한 기운을 냈다. 현호씨에게 주문하였다. 남편과 내가 연인처럼 그 바닷가를 걸어가는 장면을 찍어달라고 말이다. 얼굴이나 몸매는 늙었지만 실루엣만으로라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남기고 싶었다. 친구가 내가 보낸 그 사진을 보고 말했다. 와우 연인들이야. 서른여덟 번째 결혼 기념사진 제대로 남겼다.
격포항. 횟집이 모여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열 군데도 넘는 횟집 아주머니들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잘 해주겠다고 난리다. 회도 회지만 소라와 전복과 오징어와 홍합등 찌기다시가 더 싱싱하다. 백합이 잔뜩 들어간 백합탕이 일품이다. 맛있게 배불리 먹고 나오다가 그만 보고 말았다. 백합이 싱싱하게 담겨있는 그릇에 푯말이 꽂아있었다. 베트남산. 격포항까지 수입산이 판을 쳐! 국산이라 여기고 그렇게 맛있게 먹은 백합탕이 수입산이라니! 아니 본만 못하였다.
둘째날
고군산도에 갔다, 전라북도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군을 이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1991년 11월에 착공하여 19년 후 2010년 4월에 준공하였다. 총 33.9km 1991년 11월에 착공하여 19년 후 2010년 4월에 준공]를 따라가면 섬들이 모여있다.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섬들, 선유도와 장자도와 무녀도와 신시도등 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16개가 유인도다.
선유도에서 내렸다. 섬이라서 바람이 휘몰아친다. 비가 내려 체온이 떨어지는 그때 골목에서 호떡집을 만났다. 바로 구워낸 땅콩 호떡이라서인지 아침 일찍 먹은 누룽지가 소화가 벌써 되었는지, 달고 고소하고 맛있다. 꿀꺽꿀꺽 잘도 넘어간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점심 시간은 멀었고 카페에 들어갔다. 평일이라서 손님이 적다. 언덕배기에 현대식 3층 건물이다.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있고 어디를 봐도 바다다. 창문으로 빗물이 흘러내린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 분위기다. 보슬비처럼 잔잔한 행복감이 내게 내렸다.
격포항 근처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바지락 칼국수다. 백합죽도 있다. 수입산인 줄 알면서 짓궂게 서빙하는 아주머니께 슬쩍 물었다. 백합은 국산인가요? 아주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국산이 떨어지면 수입산을 넣지요. 진실 주변을 빙빙 돌아 말하는 습성을 가진 요즈음 정치가들을 하도 많이 보아서인가. 정치가 못지않은 언변이다. 바지락 칼국수는 끝내주었다. 점심을 먹은 뒤 한 시간쯤 쉬는 시간을 갖는 우리 부부다. 우리가 쉬는 동안 재희씨부부는 다른 곳을 한바퀴 더 돌고 들어왔다. 체력이 대단하다.
계속 비가 내렸고 이때다 싶은지 남자들은 당구장으로 갔다. 여자들은 비가 내리는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온 젊은 날들을, 결혼한 아이들을, 늙어가는 우리를 이야기했다. 재희씨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면서 맛깔나게 잘한다. 남편이나 자식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깔깔거리는데 오히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웃게 만든다. 나도 박자를 맞춰 누군가를 험담하면 좋으련만, 잃었던 건강을 되찾은 나는 매사를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셋째날
공주 마곡사에 갔다. 부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목이다. 태화산에 자리잡고 있다. 유네스코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들어가는 길에는 벚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마곡천에 연등을 띄워놓아 푸른 나무들의 반영과 어우러져 기도를 올리고 싶은 풍경이었다. 속세를 지나 불교 세계로 들어간다는 해탈문을 들어섰다. 영산전 안에는 천 불이 모셔져 있다는데 천 불을 만든 공덕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극락교를 중심으로 남원과 북원으로 사찰 건물이 나뉘어져 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본전으로 외부장식이 화려하고 건축기법이 독특해 보물 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1년간 머물렀던 집이 있다. 첫 번째 소원도 두 번째 소원도 세 번째 소원도 대한민국의 독립이었던 진정한 애국자. 마곡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왔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마곡사 주변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들과 도로와 주차장은 산골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음식점들도 정갈하다. 그중에 순두부 전골집으로 들어갔다. 두부탕수와 도토리묵과 깻잎에 간장소스를 뿌려 붉게 양념한 비지를 싸 먹는 음식은 특별하면서 맛있었다. 두부 전골이 네 사람이 이야기 없이 먹느라 정신이 팔릴 만큼 맛있었다.
현호씨 부부는 본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일찍 일어나는 우리에 맞춰주었다. 본인들은 바닥이 더 편하다는 주장으로 침대방을 우리에게 양보해주었다. 여행이 끝난 뒤 이틀을 꼬박 쉬었다고 재희씨는 말했다. 힘들었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상대방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들이 요즈음 어디 흔한가. 밥을 먹은 뒤에는 먼저 일어나 부지런히 설거지를 끝내는 재희씨다. 돌아오는 날에도 설거지를 해서 깔끔하게 제자리에 그릇들을 놓았다. 선반이 높아 그릇을 올려놓기가 힘든데 남자들에게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의자에 올라가 정리했다. 그렇게 바지런하니 친정 부모님들을 모시고 살았으리라.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가 보인다. 그 사람을 진실로 알려면 여행을 함께 하라고 했다. 재희씨 부부는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긍정적이고 배려심이 많았다. 참 편안한 여행이었다. 감사한 여행이었다. 여행 내내 즐겁게 운전을 맡아준 내 남편에게 고개 숙여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