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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필 때 / 손순미
창을 활짝 열고 이층의 여자는 아래층 해당화 향기를 끌어당기고 있다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의 상반신이 창문 언저리까지 내려왔다 아래층 해당화도 덩달아 고개를 젖히고 여자를 향해 붉은 향기를 밀어 올린다 조.금.만.더. 향기는 아래층과 이층의 정점인 여자의 풍만한 가슴이 드러난 부위에서 그만, 추락했다 아~이 실패한 체위를 속상해 하듯 여자는 줄담배를 핀다 해당화 붉은 꽃이 사.랑.해 하고 쿨룩거리자 여자는 단호하게 창문을 닫아 버린다 여자의 슬리퍼 소리가 오후 속으로 들어간다 전화가 울린다 이층의 여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각의 다방이 남편처럼 여자를 껴안고 오후의 적막 속으로 잠자러 간다 손님이 없는 다방으로 노을이 들어간다 제기랄, 해당화가 붉은 향기를 자꾸만 쏘아올린다
청사포 사진관 / 손순미
바다가 전용 배경인 사진관은 비어 있다 가끔 파도가 들렀다 가고 벽에는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이 유물처럼 걸려 있다 그들은 추억을 포기한 것이다 점포세가 놓인 사진관은 종일 손님이 들지 않는다 그들 삶은 다시 인화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밀물다방 오토바이 커피 대신 레지를 날라대는 소리 포구를 밀고 간다
해의 긴 렌즈가 사진관을 포착한다 활어차가 지나가고 생선장수가 지나가고 술취한 사내들이 지나가고 저녁 어스름도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가 고무대야에 얹혀 간다 어디에도 정박되지 못한 사람들이 뱃머리를 돌리며 사진관쪽을 건너다 본다 삶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해의 긴 렌즈가 남아 있는 빛마저 찍어간다 깜깜한 포구는 거대한 암실이다 사진관은 그 암실에 맡겨진다 밤새 현상된 풍경은 사진관에 다시 내걸린다 아무도 그 풍경을 찾아가지 않는다
공사장 15층에서 그는 낮잠에 빠졌다. 꿈속에서도 망치질을 하는 듯 두 손을 불끈 쥐고 있다. 14층, 13층, 느슨한 잠의 엘리베이트를 타고 그의 영혼은 두고 온 지상의 집을 다녀간다. 여~보, 아내는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아내의 배꼽 같은 초인종을 누른다. 딩~동 아내의 이름처럼 부드럽지만 쓸쓸한 집의 목소리. 그는 집안 곳곳에서 아내가 버리고 간 추억을 뒤진다. 낡은 슬리퍼, 물방울무늬 원피스... 여보, 우리는 제비 같아요, 평생 남의 집 처마 밑만 떠돌며 살아 왔으니. 그때 아내의 눈이 우물처럼 깊어져 있었던 것인데, 세상 어디에 살아도 지구의 처마 밑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뭐! 아내는 돌아올 것이다 아내는 돌아올 것이다. 나의 처마가 그리워 지지배배 제비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가 외우는 봄날의 주문에 황급히 피어나는 불안한 꽃들.
목단꽃 이불 / 손순미
내가 버린 이불이었나
이웃들의 수다는 끊겨 있고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빈방과 거실 버려진 모든 것들이 버려짐으로 살아 있다 그들은 모든 슬픔을 무책임하게 장악하고 있다 사방으로 매달린 녹슨 창문은 그 슬픔이 빠져나갈 틈이 없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썩은 반찬 냄새가 아우성치고 있다 푸른 냄새의 공화국이 생겼구나 그 곳엔 또 다른 生이 은밀한 번식을 하고 있다 액자 속의 가족들은 단장된 거실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웃음은 버려져도 웃고 있다 꿈은 서둘러 그 배경을 빠져나가고 집은 침묵을 장기 수혈 받고 있다 이 집의 힘은 저 버려진 웃음 속에 있을까
전기가 끊긴 집에 어둠이 들어온다 흐트러진 집안의 집기와 모든 슬픔들이 그 어둠에 안긴다 근처 아파트 불빛이 밤새도록 집의 내력을 밝혀 내고 있다
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 / 손순미
그 집은 담벼락 속에 들어가 있다 햇볕이 아무렇게나 흘러 다니는, 담쟁이덩굴이 꽃처럼 피어있는 담벼락을 열어보면 허물어진 집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담벼락 속으로 집이 도망치던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집의 내력은 보이지 않고 집이 서 있던 자리, 시퍼런 잡초와 썩어 나동그라진 기둥들 서로의 뼈를 만지며 세월을 굴린다
추억은 남아있을까 항아리를 들여다보면 구름이 누렇게 익어가고 세상은 집이 삭아가는 것을 방관한다
벽 속의 집은 봉긋하게 솟아난다 마당을 건너가는 풍금소리 몸을 찢어 잎을 내 보내는 나무들 투명하게 널려 있는 빨래들 우물 속으로 곤두박질친 두레박이 집 한 채를 다 씻어내는,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한다
페인트공 / 손순미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적사과 / 손순미
남자는 빨갛게 구워진 사과를 팔고 있었다 사과는 남자의 직영농장에서 알맞게 구워 온다고 하였다
남자의 농장은 거대한 아궁이 인 셈이다 그 아궁이 속에는 늘 다량의 햇빛과 투명한 공기가 불탄다고 하였다
나는 사과 한 상자를 주문했다 남자는 사과 맛이 한 마디로 뜨겁다며 태양같이 웃었다 배달된 사과를 보고 아이들은 불덩이 같다고 하였다
나는 사과껍질을 조심스럽게 깎았다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사과 속에 들어앉아 있다 나도 사과 속으로 들어 갔다 덜커덩 사과의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었다
사과향은 오래도록 이글거렸다 사과의 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남자와 농장과 햇볕과 공기를 자꾸 분석하였다
먼 집 / 손순미 문 밖엔 늦은 저녁이 서 있다 폐타이어가 엮어진 지붕 위 설익은 꿈이 자주 바람에 들춰져도 마음들은 꼭꼭 여미고 산다 가파른 골목을 밀고 온 지친 눈들 불빛을 당기고 부엌으로 들어간 식욕은 세간을 달그락거린다 시렁 위엔 칸칸이 달빛이 포개져 있고 간고등어 한 마리 온 식구들을 구워낸다 오순도순 둘러앉은 눈빛들 한 그릇씩 비워내는 얘기에 아랫목 온 기가 올라온다 식구들 한 이불의 별빛을 덮고 자면 어둠이 풀풀 새어나오는 집집이 몇 채의 꿈을 꾼다
신발들 저희끼리 내일을 쓰윽 신어본다
고등어 파는 사내 / 손순미
저, 소금을 칠까요? 내가 지그시 눈을 감아주자 남자의 눈이 고등어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철철, 눈부신 소금을 뿌렸다. 잠깐 동안 메밀
소가죽 구두 / 손순미
늙은 소의 발을 굽는다 늙은 아버지의 발을 굽는다 토막난 아버지의 발을 잡고 아버지의 삶을 다듬기 시작한다 검은 육질에서 기름이 돌기 시작한다 탕약처럼 검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온 아버지 평생의 켤레, 아버지 고통의 부위가 누릿하게 익어간다 나는 아버지의 삶에 지나친 광택을 낸다 아버지 평생의 車, 아버지 구두가 모처럼 호사를 한다 반짝! 아버지의 영광은 짧았다 사람의 발을 한 짐승이, 짐승의 발을 한사람이 아버지를 짓밟았다 그렇게, 칠십 평생 찍어온 아버지의 낙관(落款)은 불발이었다 윤을 낸 구두를 선반 위에 올려둔다 평생 바닥이었던 아버지가 높은 곳에 올라가 계신다 한밤중 구두의 울음이 구성지게 들린다 아버지가 구두를 타러 오신 것일까
- 현대시학 (2005년 11월호) 시인시각 창간호 재수록
이팝나무 / 손순미
땅 구덩이 속에 가마솥 걸어놓고 밥을 짓고 있는 중 이에요 고정관념이 늘 문제였지요 햇살을 끌어들였어요 어디 햇살 뿐 이겠어요 뜨거워진 관절들이 고통의 입김을 토해내더군요 솥뚜껑을 열었지요 모락모락 설익은 밥 냄새를 풍기며 어린잎들이 속속 피어나데요 하늘 아래 놓인 눈부신 한 그릇의 슬픔에 경배했어요 떠도는 새들이여 그리고 불쌍한 삶이여 이리 와서 내가 지은 이 기가 막힌 밥 한 그릇 드시오
작약이 피는 동안 / 손순미
붉은 비단처럼 요요한 작약이 핀다 이까짓 것! 어머니는 댕강댕강 작약의 목을 친다 밭고랑에 작약의 머리통 흥건하다 또, 지랄이야! 아버지의 화려한 정원은 끔찍한 현장이고 날씨는 환장하겠다 들판을 타고 산을 타고 천지사방 작약을 타던 어머니가 고질적인 혁명을 일으켰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아욧! 백합나무 가로수를 따라 어머니의 흰 저고리가 나비처럼 날아간다 속수무책 아버지의 농업은 망하지도 못했다
물냄새 연한 유월, 비자나무 숲 산비둘기 처연한 울음 마을로 내려오고 붉은 작약의 주술이 들린 어머니는 위험하다 작약의 꽃 속에 빗물이 고인다 젖 달라는 동생의 채근을 뿌리치고 어머니는 술냄새를 풍긴다 툭툭, 붉은 작약이 지고나면 어머니의 백일몽白日夢은 수습됐다 작약의 구근들이 밭고랑 가득 넘쳐났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다시 경작한다
2005년 현대시학 12월호
민들레 / 손순미
히힛 히힛. 웃는다
곧,
만천하에
애비 없는 자식들이 생산될 것이다
계간 <시와사상> 2006년 봄호 발표작
밤의 푸른 냉장고/손순미
한밤에 얼음사내 웅웅, 흐느낀다. 최대한의 추위가 보관된 저, 얼음몸을 하고서 웅웅, 덩치가 아까운 울음이, 덩치가 아까운 슬픔이, 식구들이 잠든 틈 몰래 흐느낀다. 줄곧 새나오는 울음을 애써 집어넣으려 하지만 서랍 칸칸 저장되어 있던 울음은 본격적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김치 냄새, 고등어 냄새, 가족의 냄새가 뒤섞인 무거운 울음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병신, 반푼이 같은 울음이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무능한 울음은 심야 TV도 보고 라디오도 듣는다. 어쩔 수 없었어. 최선을 다 했어. 지치고 주름진 울음이 웅웅, 잠을 쏟아낸다. 밤은 가야 할 길처럼 아득히 멀고 깊다. 푸른 밤의 품에 안겨 얼음사내, 모처럼 응석 한번 부려 본다.
<시로 여는 세상> 2005년 가을호 발표
칸나 / 손순미
찬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마당에 칸나가 피었다 소스라치게 피었다 체한 것이 아닐까 아닐까 했을 때 붉은 꽃의 성대에서 칸나가 피었다 터져 나오는 자궁의 홍등紅燈을 어쩌지 못한 나는 주근깨가 많은 소녀였다 달은 아예 뜨지도 않은 밤에 수돗가에서 몰래 팬티를 빨았다 공포와 수치심이 온몸에 스멀거리는 꽃의 향기는 어두웠다 야광의 안구를 갈아 낀 고양이가 뒤꼍으로 돌아나가고 나는 자궁이 쏘아대는 꽃폭탄에 배를 싸쥐고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식구들은 밥을 먹고 있었다 칸나가 피었다 배가 아프다 칸나만 보아도 배가 아프다 뜨거운 태양의 여름이 칸나를 지진다 칸나의 음순이 붉어졌다 십만 볼트의 전류가 내 자궁을 지지는 고통을 지나 나는 새끼를 낳은 어미가 되었다 칸나가 어둡다 새끼를 낳은 공포의 추억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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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돌아오지 마세요 / 손순미
미안하구나, 어젯 밤 불쑥 나타났던 엄마는 쪽지를 남기고 떠난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날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논리는 늘 아득했다 우리가 유기된 것이 아니라 엄마의 과도기 속에 우리가 놓여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아, 모르겠다 탈이라면 엄마는 자신의 삶을 너무 사랑했고 낭만적이라는 것, 그 사이에 우리는 잠시 보류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쓸 데 없는 슬픔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집세를 독촉하려고 들렀던 주인 아줌마도 냉정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아, 모르겠다 수도가 끊기고 전기가 끊기고 이것이 절망인지도 뭔지도 우리는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햇볕 좋은 베란다에 모여 키득키득 웃고 떠든다 아빠는 수퍼 손님처럼 들락날락 한다 아빠는 원래가 그런 것인가 익숙해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습관을 만들면서 사회는 학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아, 모르겠다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는 끝내 풀리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다 아아, 모르겠다
<2006년 계간시와사상 봄호 >발표작
청춘 여관 / 손순미
열 일곱의 머릿결 같은
비의 떨림을 들으며
나는 旅館여관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집에 누웠다
어두운 편지 한 통을 던져두고 내가 도망쳐온
세상에서 가장 먼 집은 여관이었다
어머니를 뒤지고 아버지를 뒤지고 아무리 뒤져도 집은 빈털터리
비는 박음질하듯 신작로를 뛰어가고 있었다
기차와 비둘기와 그림자와 알 수 없는 중얼거림 속에
나는 아무 곳에나 운반되어졌다
내가 제대로 도착할 곳이 없었다
위험한 평화는 계속되었다
세상 바깥을 걷는 듯
독한 방황을 가방 메고
내가 도착한 한 사나흘 여관의 시절
나를 말없이 꼬옥 덮어주던 여관이라는 따뜻한 이불
내 청춘의 바슐라르가 은신하고 있는,
시멘트 바닥을 가슴 치는 비의 현絃이 골목을 돌아나가고
연보라 등꽃의 여관이 비에 젖는다
저 여관이 외로울 때는 누가 안아주지?
계간 <신생> 가을호 발표작
가정 / 손순미
비츨비츨 여름비를 받아적는 그 집, 지짐이 굽는 소리 비츨비츨, 온 식구들 파전처럼 둘러앉아 서로의 가장자리를 떼어먹는다 아버지 한 입 어머니 한 입 모내기가 끝난 아버지의 들판을 아랫목에 깔아놓고 비츨비츨, 배부르게 배부르게 식구들 파처럼 나란히 누워 비의 젓가락 장단 아아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담장의 능소화 못 견디겠는 망울 터지고 햇볕이 그 집을 노릇노릇 익힐 때 집의 뚜껑을 열고 마침내 화려한 휴가 마친 아버지 아랫목에 깔아놓은 들판을 메고 나간다 해마다 여름비를 받아적는 아버지의 딸 비츨비츨, 액자 속에 눅눅하게 보관된 아버지를 닦는다
계간 <신생> 가을호 발표작
저녁 / 손순미
고양이 울음이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저녁보다 어두웠다 신발을 신은 울음은 모퉁이까지 걸어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골목은 먹물처럼 고요했다 어둠을 보관한 집들은 집의 입술인 창문을 열지 않았다 집의 근심은 하수구로 흘러나왔다 수챗물이 눈물처럼 조금 반짝였다 나뭇가지에 검은 색종이처럼 접혀있던 새들의 깃털 터는 소리 낮게 들려왔다 밥물 잣는 소리 같았다 다시 길을 당겼다 담장의 자귀나무 연분홍 서로 몸을 부딪고 깊은 저녁을 껴안고 갔다 가로등이 흰 새알을 까는 동안 손수레를 끄는 노인이 남아 있는 골목을 다 끌고 갔다 사라진 저녁의 끝에서 서둘러 발견한 나의 집 배꼽에 지그시 벨을 눌렀다
계간 <신생> 가을호 발표작
자판기 / 손순미
저 화냥기
누구에게나
기꺼이
몸을 내주는
단돈 200원에 저리 뜨거워지네
눈물로 우려낸
거리의 여자
깔보면 안된다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란
타당성이 있는 것
나를 잠깐 동안만 즐기는 당신
사랑했다는 말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네
일회용은 배반을 유행시키고
버려진 사랑은 비닐에 싸여 수거돼가고,
재활용은 자존심이 상한다
불을 켜다오
거리에 급하게 배달된 어둠을 달래야 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다
피아노가 있는 방 / 손순미
그 방은 열리지 않는 방, 피아노 소리가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연습 중 접근금지'라 써 놓은 문장은 속절없었다 나는 늦은 오후가 지나가는 것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곡명을 알 수 없는 피아노 소리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아름다운 날들이라 말할 수 없었다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떼들은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내 몸에서 단속적으로 추억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그 추억의 구멍을 닫아 버렸다 나뭇가지 속에 봉인되어 있는 꽃들이 속성으로 피어나기를 희망할 뿐이었다 나는 나무들의 관절을 꾹꾹 건드려주었다
방문은 들썩이고 있다 그 방은 열릴까, 여자는 허공에 앉아 있다 피아노 소리는 허공의 악보를 밟고 올라간다, 허공을 밟고 내려간다
어떤 식목 / 손순미
사각의 관(棺) 하나를 땅에 심었네 슬픔은 모르는 척 한줌의 흙으로 던져졌네 사람들은 몸 속에서 투명한 울음을 꺼내 골고루 뿌려주었네 그의 생은 흠뻑 젖었네
한 장의 햇살이 달려왔네 그의 생애를 따뜻하게 덮어주었네 그는 작은 씨앗 하나로 돌아갔네 그 씨앗 속에 혼돈과 좌절과 영광으로 우거진 거대한 숲이 밀봉되어 있네
첫댓글 좋은 시를 읽게 해 주는 옥구슬님 감사 합니다 ^^
묘사 기가 막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