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장(第二十一章). 무서운 여자귀신(女子鬼神).
마악 욕실의 문을 열려는 순간 먼저 그 문이 열리며 왕산산이 눈
앞에 나타났는데, 방금 목욕을 마친 그녀는 간편한 속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야말로 투명(透明)하고 부드럽게 빛나는 피부가
뽀얀 안개를 피워올리는 듯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금몽추는 반라(半裸)의 그녀의 몸을 보고 갑자기 넋이 달아나 버
린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나는 방금 혹시 당신이 무슨 일을 당하지 않았나 해서 와 보았
던 것이오. 다른 나쁜 마음은 없었소. 이해...... 이해해 주시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왕산산의 표정은 어딘가 엄숙하고도 아주 우
아(優雅)해 보였다.
"저는 이제 행복(幸福)해요, 이와 같이 건강한 인생(人生)을 살
게 되었으니. 저는 이제 행복해요, 이와 같이 훌륭하신 분을 낭군
(郞君)으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저는 이제 행복해요, 이와 같이 훌
륭하신 낭군님을 진심(眞心)으로 사모하게 되었으니......"
'이 여자는 지금 마치 시를 읊고 있는 것 같군. 하, 하지만 대체
이를...... 이를 어쩌지? 나는 아직 이럴 경우에는 여자를 어떻게
다루어야만 하는 지를 배우지 않았으니 말이야. 만일...... 만일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약간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으으으! 앞으
로 그녀는 두고두고 이 일을 두고 웃으며 나를 놀려댈 것이 아니냔
말이다. 이것은 실로 곤륜삼성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왕산산이 깊은 애정(愛情)이 깃든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금몽추는 엉겁결에 뒤로 물러서다가, 그만 침상에 걸리게 되자 내
심 크게 당혹해 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 그대는 아직 경험이 없을 것이오. 하지만 걱정할 필
요는 없소. 나는 이런 일에 이미 노련(老鍊)하여 어떠한 실수도 없
이 잘 해낼 수가 있소. 하 하 하, 이건 별로...... 별로 어려운 일
이 아닐 것이오."
그 때 문득 밖에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죄송하지만, 곤륜삼성 나으리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시 들
어가도 되겠습니까?"
금몽추는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순 짐짓 크게 화를 내고 침
상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아니 뭐, 뭐라고? 이건 그야말로 나의 이 모처럼의 즐거운 일을
망치려고 하는 구나! 흐흐, 하지만 나로서는 좀 더 넓은 아량을 보
여서 이런 일에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지 않소, 왕소
저?"
왕산산은 가볍게 웃더니 옷을 걸치며 말을 받았다.
"그래요. 저는 상관이 없으니 어서 나가서 일을 보세요. 호호
호......! 하지만 누구도 이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지는 마세요."
금몽추는 몸을 바로 하고 짐짓 숙연한 표정을 지은 뒤에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오. 하지만 혹시 무슨 일이 생길 지도
모르니 그대도 스스로 몸조심을 하도록 하고, 그리고 옷을 모두 입
고 잠을 자도록 하시오."
왕산산은 빠르게 옷을 모두 걸친 다음에 다가와 그의 입에 애정
깊은 입맞춤을 하면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알겠어요, 몽랑! 저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이 곳에서 무공(武
功)을 수련할 테니, 어서 밖으로 나가 보세요."
금몽추는 그녀와 입맞춤을 하게 되자 그만 정신이 아득해 지고
황홀해 져서 잠시 망연히 서있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쉰 뒤에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만일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금방 돌아 오도록 하겠소.
아니 설령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내 그것을 무시하고 얼른 돌아 오
도록 하겠소."
문밖에 서있는 사람은 아까 거대한 그 전각(殿閣)에서 보았던 하
철생의 옆에 서있었던 젊은 도사였다.
이 도사는 비록 입가에 남의 비위를 맞춰주는 듯한 웃음을 띠고
저자세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골격(骨格)이 전체적으로 상
당히 우수하고 또한 눈빛이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라? 이 녀석의 생김새는 오히려 아까 그 못생긴 장문인보다
더 나은 것 같군. 혹시 이 녀석이 장문인이 아닐까? 아니야. 이 녀
석은 이렇게 어리니 아직 장문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오? 나는 아주 바쁜 몸이오. 즉, 아주 중대한 일을 하
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외다.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라면 그저 간
단히 용건만 말하고 즉시 사라져 주시오. 게다가...... 아니 뭐 중
요한 일이라면 시간을 낼 수도 있는 일이지."
젊은 도사는 다소 야릇하고 기이(奇異)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전음(傳音)으로 말했다.
'이 일은 오로지 귀하를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가장 중
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테지요. 후후후, 아마도 이런 흥미있
는 기회는 앞으로 다시 없을 것입니다.'
금몽추는 다소 의아해 져서 도사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며 생각했
다.
'뭐, 뭐라고? 아니 이 녀석이 지금 내게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당장 네녀석의 팔다리를 부러뜨
려 버릴 것이다.'
"뭐라고? 하! 하! 하!...... 그거야 말로 중요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구려. 그렇지 않소? 하하하, 만일 그것이 일푼이라도 덜 중요
한 일이었다면 나는 아무래도 그것을 상관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
오. 헌데 대체 그 중요한 일이란 어떤 것이오?"
도사는 가볍게 웃다가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저희들은 당연히 귀하를 잘 대접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솔직히
귀하께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것
은...... 바로 여자(女子)에 관한 것입니다.'
'여자? 여자에 관한 일이라고?'
금몽추는 이내 안색이 변하여 도사의 옷소매를 붙잡고 웃으며 전
음을 펼쳐 말했다.
'그게 정말이오? 하하, 당신은 과연 안목(眼目)이 깊고 지략(智
略)이 놀라운 바가 있소. 솔직히 지금 나와 한 방에 들어 있는 저
여자는 아직 나의 마누라도 아니올시다. 그런 면에 있어서 당신이
여자를 내게 소개시켜 주겠다는 것은......, 하하 나는 마땅히 정
인군자(正人君子)로서 사양할 것이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거듭해
서 내게 부탁을 한다면 나는 그 부탁을 받아들일 수가 있소.'
도사는 미소하며 그를 밖으로 이끌면서 역시 전음으로 말했다.
'물론 당연히 그렇지요. 하지만 귀하께서 이와 같은 넓은 흉금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도 역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본
래 본파의 장문인께서는 보다 깊이 당신을 대접해 드리고자 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주위의 시선(視線)들이 있기 때문에 이
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금몽추는 이미 그와 마음이 서로 통하여 계속해서 전음으로 이야
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그렇다면 역시 장문인이 내게 여자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
오? 이것은...... 이것은 물론 대단히 훌륭한 일이오.'
도사가 안내한 곳은 일행의 숙소와 다소 떨어져 있는 어느 으슥
한 내전(內殿)과도 같은 곳이었다.
불빛도 그리 밝지 않고, 또한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다지 화려(華
麗)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오히려
일행이 묵고 있는 숙소보다 내부(內部)가 잘 지어져 있고 또한 호
화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규모가 작은 편이어서 거실 하나와 그 주위에 딸린 두어
개의 방(房)이 고작이었는데, 도사는 곧장 금몽추를 침실(寢室)로
안내했다.
방의 크기가 작아서인지 그 호사스런 침상은 거의 방의 절반 정
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면 흐흐......, 그야말로
기막히고 마음에 꼭 드는 여자가 들어 와서 모든 시중을 들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귀하께서는 그 여자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
지요. 그럼...... 헤헤헤,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도사가 물러간 뒤에 잠시 침상위에 드러누워서 기다리니, 과연
소리없이 방문이 열리면서 한 아름다운 소녀(少女)가 안으로 들어
섰다.
"호호......, 처음 뵙겠어요. 저는 장문인의 지시를 받고 당신을
모시기 위해 온 사람이예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 있어서 구태여 저
의 이름을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금몽추는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지며 속으로
놀라 생각했다.
'만일 나이가 많거나 노련해 보이는 여자라면 나는 실망을 하며
속으로 도리어 그 곤륜파의 장문인을 욕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날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군살이 붙어 있거나, 혹은 얼굴이 어
느 한 곳이라도 예쁘지 못하다면 역시 나는 실망을 하며 도히어 그
곤륜파의 장문인을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흐흐흐...... 지금 이
여자는 비단 전혀 노련하지 않은 소녀인 데다가, 용모(容貌)도 대
단히 아름답고 또한 아주 야릇해 보이지 않은가......?'
"하 하 하, 물론이오. 물론이외다. 그대는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소. 그러니 내게 있어서도 이름이 무엇인가 하고 묻지 말아 주시
오. 우리는 지금 서로가 모르는 가운데 만나고 있는 것이외다. 만
일 서로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알게 되면 그것은, 그것은 아무래도
우습지 않겠소?"
그 소녀는 즉시 그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욕실쪽으로 이끌며 말
했다.
"우리가 충분히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간에 일정한
예의(禮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요. 설마하니 당신은 남자로서
여자의 행동을 거부하지는 않으시겠죠?"
'이거 이상해 지는구나. 어째서 이 여자는 나를 욕실로 데려가는
것일까?'
"물론이오. 나는 이미 모든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아예 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그 욕실은 오히려 침실보다도 더 넓은 것 같았고, 온갖 호사를
즐길 수 있는 장치와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알맞게 데워져 있는 따뜻한 물에는 짙고 야릇한 향취(香臭)가 가
득 배어 있었고, 이 욕실 전체는 고급의 대리석(大理石)으로 덮혀
있어서 그야말로 우유빛의 광채가 은은히 일어나는 것 같았다.
소녀의 모습은 어느 정도 순수(純粹)해 보이는데도 그녀는 안으
로 들어서자 주저하지 않고 즉시 옷을 모두 벗어 버렸고, 이내 전
라(全裸)가 되어 금몽추의 옷을 모두 벗게 한 뒤에 욕탕속으로 밀
어 넣었다.
금몽추는 그녀가 갑자기 그와 같이 전라가 되어 버린 이후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어졌으므로 도무지 저항을 하지 못하고 그와 같이
당하게 되었는데, 이윽고 욕탕속으로 들어간 이후에 그녀가 따라
들어와서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려고 하자 마치 불에 데이기라도 한
사람처럼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잠깐! 잠깐만 기다리시오. 나는...... 나는 아직 소변을 보지
못한 것 같소."
소녀는 그가 소리치는 바람에 약간 놀랐다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는 그냥 소변을 보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만일 당신
이 정녕 원한다면 저 쪽으로 나가셔서 보고 오세요. 호호......,
우리는 이미 서로가 모든 것을 다 본 사이가 아닌가요?"
금몽추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오더니 구석으로 가서
소변을 보지는 않고 즉시 옷을 하나씩 걸치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것을 보고 문득 얼굴에 가벼운 노기(怒氣)를 떠올리더
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죠? 감히 제게 무안을 주자는
것인가요? 호호......, 나는 곤륜삼성이 천하의 호색한(好色漢)이
라고 소문을 들었어요. 그는 무엇이든 못하는 것이 없다고 말이죠.
하지만 지금 그와 같은 광경을 보니, 호호호! 그야말로 닭 한 마리
도 잡지 못하는 백면서생(白面書生)보다도 더 못하군요?"
금몽추는 약간 흠칫하여 옷을 입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 보
다가 길게 한숨을 내쉰 뒤에 말했다.
"좋소. 내가 일단 낭자에게 항복한 것으로 합시다. 게다가 우리
는 이미 함께 모든 즐거움을 맛본 것이오. 그렇게 하면 되겠소?"
소녀는 전혀 부끄럽지도 않은 지 전라의 모습 그대로 천천히 욕
탕의 밖으로 걸어나와 몸을 바로 세우며 싸늘한 안색(顔色)으로 말
했다.
"나는 전혀 그럴 수가 없어요. 당신은 이 일에 있어서 그저 장난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왕왕 목숨이
걸린 중요한 일이 될 수가 있는 것이죠. 만일 당신이 이대로 나간
다면 나는 평생토록 당신을 저주(咀呪)하며 증오(憎惡)할 뿐만 아
니라, 또한 당신의 진면목(眞面目)이 어떤 지에 대해서 자세히 모
든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 거예요."
"알겠소. 알겠소. 항복을 하겠소. 모든 일을 낭자(娘子)의 처분
에 맡기도록 하겠소. 그러니 제발 이 일을 좀 더 빨리 끝내 주었으
면 좋겠소."
금몽추는 이제 겨우 서둘러서 바지를 걸쳤을 뿐이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그 바지가 도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으으으, 이거야 말로 나 곤륜삼성의 체면이 엉망이 되어 버린
꼴이로구나. 이 일을 대체 어쩌지? 나는 그저 기분이 좋을 것이라
고 생각을 했지, 어떻게 이렇게 끔찍스럽게 될 줄을 미처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차라리...... 차라리 나의 그 왕소저가 훨씬 더
나았다.'
"그럼 어서 저 안으로 다시 들어가요. 저는 당신을 즐겁게 해 드
리기 위해서 온 것이지 무슨 고문(拷問)을 하러 들어 온 것은 아니
니까요. 호호호......!"
금몽추가 하는 수 없이 다시 욕탕속으로 들어 가니, 그 소녀는
즉시 뒤따라 들어와서 뻣뻣해진 그의 몸을 등뒤부터 서서이 밀어
주기 시작했다.
'여자, 여자는 본래 좋은 것이겠지. 하지만...... 하지만 실로
여자가...... 이렇게 무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왜 가만히 있는 거죠? 제가 그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나
요?"
소녀의 손이 부드럽게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크게 흥분되어 있는
아랫도리 부근으로 접근하자, 그는 그만 다시 놀라서 흠칫해 하며
밖으로 뛰쳐나갈 뻔했다.
바로 그 때 문득 시퍼런 비수(匕首)가 그의 목에 겨누어 지며 소
녀의 살기(殺氣)어린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왔다.
"이 바보같은 놈의 자식! 죽으면서도 감히 나를 모욕하다
니......! 하지만 네 놈의 운세(運勢)도 이것으로 마지막이 되었
다!"
본래 그와 같은 상황에 접하게 되면 마음이 경직되는 법이지만,
도리어 금몽추는 순간 다시 심신(心身)이 유연하게 변하여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오? 내가 무슨 커다란 잘못이라도 범한 것이오?"
소녀는 그의 표정이 갑자기 오히려 편안하게 변모하자 어리둥절
해 하다가 더욱 얼굴 가득 냉기(冷氣)를 발하며 말했다.
"네 놈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 대죄(大罪)를 범하는 것이
다. 네놈이 살아 있기 때문에 나 하운봉(何雲鳳)이 처음으로 남의
앞에서 옷을 벗고 이와 같은 더러운 모욕(侮辱)을 당하고 있는 것
이다. 거기에 비하면 네놈은 백 번을 죽더라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
다!"
"미안하오. 하지만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오."
소녀의 무공(武功)은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상승(上乘)의 무공을 소유하고 있
었으며, 금몽추가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 이미 손을 써서 비수로
그의 목을 빠르게 베어 왔다.
하지만 금몽추는 번개보다도 빠른 속도로 그 끔찍한 살수(殺手)
를 피해냈으며, 이어 밖으로 뛰쳐나가 역시 번개보다도 빠르게 옷
을 걸치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으으으, 나는 혹시 오늘 밤에 악몽(惡夢)을 꾸고 있는 것이 아
닐까......?'
숙소로 돌아 오니 왕산산은 침상위에 단정히 앉아서 운기행공(運
氣行功)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러죠? 혹시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요?"
금몽추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목부위를 어루만지다가 어색
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대수로운 일은 아니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지
금 즉시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건 우
리가 지금 너무나도 바쁘고 또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오."
왕산산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침상위에서 내려오더니 다시 그
의 뺨에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즉시 준비하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너무 그렇게 심려
(心慮)하지 마세요."
금몽추는 조금전의 일이 생각나서 다시 그녀가 만지는 부위가 불
에 데이는 듯하여, 즉시 뒤로 물러나며 밖으로 나가 소리치기 시작
했다.
"어서, 어서 일어나시오! 모두 함께 떠납시다. 지금은 잠을 자고
있을 시기가 아니오. 모두 함께 떠나서 빨리 백리선생(百里先生)을
만나 보도록 합시다!......"
혹시 곤륜파를 떠나는 길에 누군가가 방해를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그러나 의외로 그렇게 한밤중에 떠나는 일행의 앞을
막는 사람은 없었고,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일행은 이윽고 무사히
그 곤륜파를 벗어나게 되었다.
워낙에 금몽추가 서두른 탓에 일행은 새벽ㄴ이 되어서는 곤륜파
와 제법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래도 금몽추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
어서 거의 백여리를 더 가서야 비로소 나아가는 속도를 늦출 수가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서 다시 강가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미 곤륜파의 추격(追擊)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금몽추
는 마음이 느긋해져서 그 마을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마을은 작고 아담한 편이었고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가옥
이 많았는데, 대개가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편이므로 지나가
는 과객(過客)들을 자신의 집에 투숙시켜 부수입을 올리는 것이 당
연해 보였다.
일행은 마을의 중앙에 있는 어느 제법 큰 집을 잠시 빌리게 되었
는데, 그 집의 주인은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들은
다른 집으로 옮겨갔고 안채까지 모두 다 내주었다.
'여기서는 그래도 잠을 잘 수 있겠다. 그래도 일단은 잠을 자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말이야......, 대체 그 하운봉(何雲鳳)이라는
여자는 정체(正體)가 무엇일까? 나이도 아직 어린데 그와 같은 무
공(武功)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이상하고 말이야......'
안채로 들어와서 왕산산과 다시 한 방에 들 때까지만 해도 금몽
추의 뇌리에는 그와 같은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을 왕산산과 의논(議論)할 수는 없는 노릇
이라서 금몽추는 오늘 마치 반쯤은 넋이 달아난 사람처럼 멍청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 주인아주머니가 벌써 이렇게 말끔하게 청소를 다 해 놓았네
요. 정말 친절하신 분이예요."
왕산산은 아무래도 아직 어색하기만 한 지 방안의 이곳저곳을 둘
러 보며 공연히 정리하는 척하고, 은근히 금몽추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금몽추는 잠시 망연히 뭔가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큰 죄(罪)를 진 것 같소. 이는, 이는 아주 심각
한 일이외다. 내가 어젯밤에 그야말로 단아(端雅)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행동하지 않았소? 물론 그것은 나의 평소의 행동일 뿐이
고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런 곳의 여자들은 간혹 상사병
(相思病)을 앓게 되는 것이라오. 당신은 혹시 하운봉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소?"
왕산산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하운봉이라는 여자가 어젯밤에 당신을 보고 첫눈
에 반해 상사병을 앓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금몽추는 고개를 이리저리 내두르며 말했다.
"아마도 그 여자는 곤륜파의 여제자(女弟子)들 중의 하나일 것이
오. 그 몸매는 확실히 아름다왔소. 허허허...... 그렇다고 내가 뭐
그녀의 벗은 몸을 보았다는 것은 아니오. 하 하 하, 아니외다. 하
지만 나로서는 지저분하게 여자들을 곳곳에 깔아 두는 성미가 아니
외다. 나는 그저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한 여자만을 사랑하
는...... 이를테면 당신이 나의 마누라가 된다면 나는 오직 그대만
을 사랑하게 될 것이오."
'나의 이 말은 약간 이상하다. 오해(誤解)의 소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마치 그 여자 때문에 한밤중에 소란을 떨며 이곳까
지 도망쳐온 것 같이 생각되지 않은가? 하지만...... 하지만, 사실
은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닐 것이다.'
왕산산은 금몽추의 얼굴을 바라 보며 뭔가 짐작가는 부분이 있는
듯 가벼운 고소(苦笑)를 떠올리다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언젠가 제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호위무사(護衛武士)들로부터
그 여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여자는 바
로......"
금몽추는 이제 바야흐로 그 하운봉이라는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귀가 솔깃하여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
만, 그러나 왕산산은 갑자기 말을 하다가 말고 도리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뭔가 지저분한 것이 묻어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이 여자가 어째서 말을 하다가 말고 저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
는 것이지?'
금몽추는 즉각 실소(失笑)하며 왕산산에게 다시 그 질문을 하려
고 했지만, 그 순간 느닷없이 그의 뒤쪽에서 귀에 익숙한 다른 여
자의 음성이 차갑게 들려왔다.
"설령 당신이 세상(世上)의 끝까지 도망친다고 해도 나는 결국
찾아내게 될 거예요. 쇠신발이 닳아 없어지게 된다고 해도 그건 상
관도 없는 일이죠. 하지만 호호! 당신은 이제 겨우 이곳까지 도망
쳐 왔을 뿐이로군요!"
금몽추는 일순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고개
를 그쪽으로 돌리는 순간 마치 귀신(鬼神)이라도 보는 듯하여 하마
터면 놀라 뒤로 볼쌍사납게 나동그라질 뻔했다.
하운봉! 그녀가 어느새 그의 뒤에 나타나 있었는데, 비단 경장
(輕裝)차림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이 차갑고 살벌하기 그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그가 전혀 느끼지 못한 사이에 나타났다는 자
체가 이상스럽게 여겨졌다.
비록 하운봉의 무공이 나이에 비해 대단하다고는 해도, 금몽추의
이목(耳目)을 속일 수 있을 정도는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대체 누가 도망쳤다고 하는 것이오? 나는 그저 이미
알겠지만...... 아니 모르고 있을 것이오.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시
오. 흐흐흐! 다 그런 법이외다. 낭자는 그렇다고 생각해 주시오."
"대체 뭐가 그렇다는 거죠? 호호......!"
하운봉은 차갑게 조소(嘲笑)하며 말을 받더니 이어 왕산산을 향
해 말을 계속했다.
"보다시피 나는 지금 이 뻔뻔스러운 사람에게 받아낼 빚이 있는
상황이예요. 만일 당신이 이와 같은 광경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면
나는 말리지는 않겠어요."
왕산산은 안색이 다소 창백해져 있었지만,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나자 오히려 차분한 기색(氣色)이 되어 금몽추를 돌아 보더니 미소
하며 말했다.
"몽랑, 저는 생각해 보니 밖에 나가 무공(武功)을 좀 더 연마(練
磨)하도록 해야 하겠어요. 하지만 언제라도 제가 나서야 할 일이
있다면 부르세요."
"하하, 그렇게......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것은...... 좋소.
모든 것이 다 좋소. 나는 마땅히 지금 말을 해야 할 것이외다. 나
로서는 할 말이 있소. 할 말이 있더라도 그 말을 다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하 하 하, 나는 곤륜삼성이오. 곤륜삼성이기 때문
에 지금 다음과 같은 말을 해야 할 것이외다. 그것은...... 하하,
그럼 잠시 나갔다 오시오."
왕산산은 짐짓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평소대로 다가와 그
의 뺨에 가볍게 입맞춤을 한 뒤에,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가 버렸다.
금몽추는 이제 단 둘이 남게 되자 더욱 기분이 괴이쩍어 지고 어
색해 져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웃으며 말했다.
"하, 하낭자! 우리 구태여 이렇게 일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겠
소? 하하하! 만일 낭자에게 피치못할 어떤 사정이 있다면 내가 따
로 손을 써서 도와줄 수가 있소. 나 곤륜삼성의 명성(名聲)에 대해
서는 당신도 이미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오. 하하
하...... 그럼 안녕히 가시오."
하운봉(何雲鳳)은 일순 몹시 처연한 기색이 되어 한숨을 내쉬다
가, 금몽추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짐짓 야릇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왜 그러죠? 호호, 당신은 지금 누구를 두려워 하기라도 하나요?
설마하니 당신이 나와 같은 조그만 계집아이를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시겠죠? 당신은 남자(男子)고, 나는 어엿한 여자(女子)예요.
그것도 이제는 완전히 성숙하여 엉덩이가 벌어진 여자지요. 남자라
면 당연히 그런 여자에게 욕심(慾心)을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요?"
"나는 전혀 그와 같은 욕심이 없소. 나는 실로 소심하기 짝이 없
는 녀석인 데다가, 여자도 알아볼 줄을 모르고, 게다가...... 고자
이외다. 나의 이 남성은 전혀 쓸모가 없소. 만일 당신이 나를 곤륜
삼성이 아니라고 해도 하하하, 상관이 없소. 상관이 없소. 나는 곤
륜삼성도 아니고, 그 무슨 평범한 남자구실도 못하는 태감(太監)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하하...... 그만 돌아가도록 하시
오."
하운봉은 금몽추가 계속해서 달아나려고 하자 신법(身法)을 펼쳐
빠르게 다가오더니, 음산(陰散)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당신도 이미 알겠지만, 이 일은 우리 두 사람이 매듭을 짓지 않
으면 안 되요. 만일 당신이 계속 달아나기만 한다면 나는 죽을 때
까지 쫓아다닐 것이고, 또한 죽게 되면 한(恨)을 품고 당신을 영원
히 저주(詛呪)하게 될 거예요. 아마도 지금 당신의 능력이면 얼마
든지 다시 달아날 수가 있을 거예요. 호호, 어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달아나 보세요."
'이 여자는 정말 무섭구나. 아니, 실로 세상(世上)의 모든 여자
들이 다 이렇게 무섭다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호, 나는 실
로 세상의 여자들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해 온 것이다. 남자들보다
도 오히려 여자들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存在)들인 것이다. 으
으으, 정말로 여자(女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구나......'
금몽추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에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자
그만 땅이 꺼져라 하고 한숨을 내쉰 다음에, 침착한 표정으로 침상
위에 걸터 앉으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좋소. 그럼 좋소! 당신의 말이 다 옳은 것 같소. 나는 달아나지
않을 테니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해 보시오. 우리는 좀 더 서로
에게 유리한 방향(方向)으로 타협을 해 보도록 합시다."
하운봉은 이에 입가에 짐짓 요염(妖艶)한 웃음을 떠올리더니, 다
가와 침상위에 마주 앉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물론 그런 의미에서 당연
히 당신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지요. 지금 당신은 나를 취
하면 되요. 설마하니 내게 혐오감을 느끼고 나를 영원히 추악(醜
惡)한 여자로 만들어 놓을 것인가요?"
금몽추는 속으로 크게 의아해 하며 생각했다.
'도무지 이 여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 지 알 수가 없다. 솔직히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이렇게 야릇하게 생긴 여자를 취한다
는 것은 나로서도 손해는 아닐 것이다. 뭐, 내가 도중에 어떤 실수
(失手)를 하게 된다고 해도 이 여자는 그것을 소문낼 입장이 되지
못하겠지. 하지만 과연 이 여자의 목적이 그저 내게 자신의 몸을
바치는 데에만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운봉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손을 잡으며 은근하게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고 있는 거죠? 지금 이와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자체도 여자인 나로서는 굴욕적(屈辱的)인 것이라고 아
니할 수가 없어요. 지금은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그러나 당신이
계속 그렇게 시간을 끈다면 나는 기분이 더욱 나빠져서 더욱 더 당
신에게 한(恨)을 품게 될 거예요. 당신은 여자가 어떤 때에 가장
원한(怨恨)을 품게 되는 지 아직 모르고 있나요?"
금몽추는 그녀의 손길이 닿게 되자 다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
하여, 몸서리를 치며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이 여자의 생각에 대해서는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만일 그저 정말로 다른 문제가 없다면, 흐으으! 상관
없지 않을까? 이 여자는 사실 순결(純潔)한 것 같았고 또한 그 몸
매가 기막혔었다.'
"당신은 나 보다 더 많이 알고 있소. 당신은 나이가 아직 어리지
만, 그러나 실로, 실로 나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소. 나는 가장 비
천(卑賤)하기 짝이 없으며 보잘것이 없는 녀석이외다."
하운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올해 스물 한 살로 그다지 어리지는 않아요. 그리고 당신
도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고요. 만일 당신이 그처럼 형편없는 사람
이었다면 나는 결코 이와 같은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
소? 만일 이와 같은 일을 하고 나면 낭자(娘子)는 앞으로 시집도
가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하운봉은 대꾸도 하지 않고 즉각 침상위에서 몸을 일으키
더니, 스스로 빠르게 하나씩 옷을 벗어 버리기 시작했다.
전날 그녀는 아주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그
러나 지금은 전혀 그것과는 달랐다.
금몽추는 이 여자가 옷을 벗는 모습이 이렇게 살벌할 줄은 짐작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내 알몸이 되었는 데도 마치 무시무시
한 마귀(魔鬼)를 보는 듯하여 전신이 와들와들 떨리게 되었다.
하운봉은 이윽고 침상위에 반듯하게 드러누웠는데, 눈빛은 마치
표정이 전혀 없는 사람 같기도 했다.
만일 금몽추가 그녀의 그러한 모습 가운데에서도 어떤 야릇한 부
분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지 않았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감
당할 수 없어서 달아나고 말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다! 좋아......! 오늘 이 곤륜삼성 금몽추가 그만 이십오 년
간을 고이 간직했던 동정(童貞)을 빼앗기고 마는구나. 하지만 으흐
흐! 무서운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저런 부분들은 아직 야릇하기 짝
이 없구나. 이거...... 어째서 점점 더 내 몸이 이상해 지는 거
지?'
그것은 마치 어떤 사술(邪術)에 걸린 것 같기도 하여, 금몽추는
이내 어떤 이성(異性)을 대하는 흥분과 욕망(慾望)에 빠져들어 갑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신이 어떻게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그녀에게 달려들게 되었는
지, 그리고 그 뒤로 어떤 시행착오(試行錯誤) 끝에 어떠한 행동(行
動)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그러한 것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동안 정신이 없는 가운데 있다 보니 온 몸이 열에 들뜬 것
같은 가운데 제정신이 돌아 오고,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니
무시무시한 표정이 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이거! 이거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이
거...... 이거 대체 어찌된 일이지? 미안하오. 미안한 일이오. 내
가 당신의...... 아아아, 이거 미안하오. 미안하게 되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