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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베소서 3:14-21절
제목: 이것을 기도하라.
서론
저에게 5만 원이 있습니다. 5만 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드리겠습니다. 단, 5만 원이 필요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은 다릅니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내 이멜다는 명품 구두가 3천 켤레였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더운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이멜다의 옷장에는 모피 코트가 가득했습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건 이렇게 구분합니다. 살기 위해 있어야 하는 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걸 갖고 싶은 건 원하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은 말씀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는 원하는 것을 구해야 할까요,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할까요?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본론
강건하게 하소서.
“이것을 기도하라.” 오늘 제목입니다. 16~19절까지 세 가지를 기도합니다. 그중 우리가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강건하게 하소서.” 16-17절 중반까지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우리가 강건해야 할 것은 겉사람인가요, 속사람인가요? 속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얼마 전 한 권사님이 저에게 그럽니다. ‘목사님도 이제 나이가 보이네요.’ 얼굴 주름을 보고 말씀한 겁니다. 또 한 권사님이 그럽니다. ‘목사님도 옆머리가 횡 하네요.’ 저도 한때는 볼 만 했습니다. 하지만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우리는 겉사람과 속사람 중 어디에 더 관심 갖고 사나요? 겉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를 보십시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희집 욕실을 봤습니다. 욕실용품들을 세어보니까 22개였습니다. 샴푸, 린스, 바디 클린저, 트리트먼트, 클린징 오일, 전동으로 얼굴 각질을 제거하는 기계까지 있더군요. 여자들과 살다보니 제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나 피부 좋아진 것 같지 않아?”, “나 머리 자르면 어떨 것 같애?”, “속눈썹 펌 할까?”, “아빠, 나 어때?” 여기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 겉사람이란 겁니다.
겉사람은 중요합니다. 제가 아내에게 내가 머리 스타일이 이러면 나와 결혼 했겠냐고 물었습니다.(가운데 가르마) 아내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남편, 아내 얼굴 안 봤습니까? 봤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그는 용모가 뛰어났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힌 이유가 뭔가요? 키가 크고 잘생겼습니다. 모세는 태어남과 동시에 나일강에 던져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난 이유가 뭔가요? 출애굽기 2장 2절입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라고 합니다. 잘생긴 것, 예쁜 것, 건강한 것은 경쟁력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이유는 믿음의 경쟁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80세에 부르셨습니다. 겉사람이 중요하다면 40세에 불러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80에 부르셨을까요? 속사람을 준비시킨 겁니다. 창세기 40장에서 감옥에 갇힌 요셉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죠.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말합니다. 여기서 나가면 나를 기억해 달라고. 그런데 23절에서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4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여기서 46절을 보세요.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왜 30살에 바로 앞에 섰을까요? 애굽은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30세 이전에는 관리로 등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 이 년이 필요했던 겁니다. 우리는 감옥같이 답답한 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만 이 년은 겉사람은 썩지만 속사람은 익어가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누구를 인정하는지 보십시오. 서울대학교를 나와 검찰 총장이었던 사람, 그러다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에 대한 긍정 평가는 29%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왕을 뽑으러 왔을 때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다윗은 왕이 될 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시며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속사람이 경쟁력입니다.
결혼 후 후회하는 남자가 말합니다. “여자는 얼굴이 다가 아니야.” 여자도 말합니다. “남자는 능력이 다가 아니야.” 얼굴과 능력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겉사람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은 결혼할 때 신랑, 신부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 부모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보고 배운 게 뭔지를 보는 겁니다. 보고 배운 게 나의 속사람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속사람은 언제 강해질까요? 내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1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요? 이것을 기도하십시오.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시기를 구하십시오. 겉사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속사람이 먼저입니다. 마차는 무엇이 움직이면 굴러가나요? 말입니다. 속사람이 움직여야 겉사람이 굴러갑니다. 나의 인생은 예수님이 계실 때 잘 굴러갑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저는 옆에 먹을 게 있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게 바나나입니다. 지난주 7천 원에 한 송이를 샀습니다. 책상 한쪽에는 볶은 콩이 있습니다. 저는 왜 자꾸 먹으려고 할까요? 박광리 목사의 <기도에도 튜닝이 필요하다>에서 그 답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지 않으면 자꾸 다른 걸 먹게 된다고 합니다. 마음의 허기는 언제 채워질까요? 사랑을 경험할 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 번째로 이것을 기도하라 하십니다. “사랑을 알게 해 주소서”입니다. 17절 중반 이후를 보십시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여러분, 부평초를 아십니까? 일명 개구리밥입니다. 부평초가 떠다니는 이유가 뭔가요?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예수의 사랑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감정을 믿고, 기분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여러분, 하나님의 특징 중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 뭐던가요? 실실함입니다. 성경도 말씀합니다. 시편 89편 1절을 보십시오.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하나님은 사랑도 성실하게 하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 인간을 살리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와 연결됩니다. 하늘에 내리느냐, 땅에 내리느냐입니다. 하늘에 내리면 하나님의 뜻을 공급받습니다. 땅에 내리면 내 감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말씀 대로와 감정 대로가 나뉩니다. 여러분은 믿음 생활을 말씀대로 하십니까, 감정대로 하십니까? 아마 이번 설에도 가족과 만났을 때 그런 경우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기분이 나빠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사람이 있고, 기분 나쁘면 안 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 생활도 그렇게 합니다. 내 생각, 감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섭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도 그걸 압니다. 하지만 절대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감정에 뿌리 박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디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고 하나요?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입니다. 같은 말을 18절에서는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입니다. 여기서 사랑을 안다는 건 사랑을 지식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삶의 허기를 느낍니다. 그걸 걸신들렸다고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걸신’은 빌어먹는 귀신을 뜻하더군요. 신앙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영적 허기를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장 11절을 보시면 바울이 글로에의 집 편으로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글로에는 노예에게 주는 이름입니다. 예전 고린도 교회는 노예도 함께 예배드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쟁이 있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왜 이런 파당이 생겼을까요? 바울파는 개척 맴버입니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볼로파는 이성적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볼로는 성령을 받지 않았지만 설교를 잘했답니다. 아볼로파는 성령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그 말이 이성적으로 맞으면, 내 생각에 맞으면 좋아합니다. 게바파는 베드로파입니다. 베드로는 고린도 교회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 중 가장 높다는 걸 압니다. 이들은 우두머리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리스도파는 누군가요? 예수님파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 한 번이라도 직접 예수님을 만나거나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파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너희들은 사람파지만 우리는 예수님파다.’ 영적 우월의식이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나요?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8절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지식에 넘친다는 말은 지식을 초월한다는 겁니다. 사랑은 아는 게 아닙니다. 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은 말씀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아는 것으로 삶을 대신하지 마십시오. 질문합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 했었다.’ 좋나요? 싫습니다. 그럼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는 어떤가요? 뭔가 부족합니다. 이건 어떤가요?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사랑은 했어다가 아닙니다. 할 것이다도 아닙니다. 사랑은 ‘한다’입니다. 딱 맞는 말을 에베소서 5장 2절에서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에 소 한 마리 잡는 것보다 살아계실 때 닭 한 마리 잡는 게 낫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사랑이 구체적으로 일어나야 할 공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입니다.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함께 해봐야 압니다. 혼자 기도는 잘 하는 사람이 성도와 관계가 나쁘다면 반쪽입니다. 꼭 자연인과 같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를 보면 하나같이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 대부분은 아내, 자녀들과 떨어져 삽니다. 혼자 살면 되는데 함께 살면 왜 안 될까요? 자극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극으로 증명됩니다.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을 보십시오. 혼자 하는 것인지, 함께 하는 것인지. 4-7절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저도 혼자 살면 오래참을 수 있고, 온유할 수 있습니다. 시기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혼자의 신앙은 얼마든지 거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계도 그겁니다. 딱 혼자만 잘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왜 이것을 기도해야 할까요? 그래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충만하게 하소서.
여기 청년들과 교회학교 친구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어제 세뱃돈 받았죠? 어른들에게 세배할 때 모든 분들이 세뱃돈을 주시던가요? 안 주시는 어른도 있습니다. 세뱃돈을 주는 분이 좋은가요, 안 주는 분이 좋은가요? 주는 분이 좋습니다. 세뱃돈 많이 주는 분이 좋은가요, 적게 주는 분이 좋은가요? 많이 주는 분이 좋습니다. 그럼 세배를 안 해도 세뱃돈을 주시는 분이 계시던가요?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세뱃돈을 받으려면 세배를 해야합니다. 충만한 삶이 그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충만은 구할 때 이루어집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게 뭔지 보십시오. “충만하게 하소서.”입니다. 19절을 봅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 너비, 길이, 높이, 깊이가 나옵니다. 이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말하는 겁니다. 동시에 내가 충만해야 할 목표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넓게 사랑하시던가요? 창녀와 세리와 간음한 여인, 병든자, 가난한자, 귀신들린 자,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길이는 얼마나 길던가요? 예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높이는 얼마나 높나요?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깊이는 얼마나 깊던가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그 사랑에 잠겨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잠김과 스침으로 나눕니다. 이번 설에 저는 밭에 거름을 냈습니다. 20키로 거름 포대 150개를 냈는데요. 잘 사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거름 포대를 노지에 쌓아두면 물기가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물은 똥물입니다. 처음엔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포대를 멀찍이 잡았습니다. 그럼 몸이 힘듭니다. 나중엔 몸이 힘드니까 옷이고 뭐고 딱 둘러매고 옮겼습니다. 그리고 몸을 보니 완전히 척척하게 젖었습니다. 그 물이 무슨 물일까요? 똥물입니다.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날까요? 똥 냄새입니다. 제가 뭐가 된 겁니까? 똥입니다. 예수님을 스쳐서 믿지 않고, 잠겨서 믿으면 세 가지 현상이 생깁니다. 내 몸에 예수의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인생이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정말 멋있는 인생입니다.
결론
저에겐 5만 원이 있습니다. 필요한 분에게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줄까요, 안 줄까요? 안 줍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더 원하는 것은 안 주시지만, 꼭 필요한 것은 지금 주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속사람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예수의 사랑에 뿌리가 박히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충만이 나의 충만이길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구할 때 하나님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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