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 임정자
아파트에서 살 때보다 집안일이 더 많아졌다. 거실과 방 청소하는 건 일도 아니다. 잔디는 풀과의 전쟁이라더니 하루가 멀다고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근데 자세히 보니 풀에도 꽃이 피어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그랬다. 올망졸망 앙증맞다. 작은 꽃들을 보려면 고개를 숙이던지 앉아서 봐야 한다. 눈높이를 맞춰 인사하게 된다. 잔디를 키우려면 잡초를 뽑아야 하는데 도저히 뽑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마냥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전원주택에 산 지 3년 차다. 정원이 있어 계절마다 다른 꽃들을 마당에 들어 놓는다. 여름에 수국을 엊그제는 활짝 핀 국화를 심었다. 한 평도 안 되는 텃밭에는 배추와 김장 무 새싹이 올라와 푸르게 자라고 있다. 고작해야 배추 열 포기, 무 열두 개, 상추 여섯 개, 이도 벌레 먹으면 우리가 먹을 게 작아진다. 작년부터 자리 잡고 있는 부추는 꽃대를 잘라도 싹이 나온다. 일주일에 두어 번 부추전을 해 먹을 정도로 올라온다. 난 호박을 좋아한다. 호박전, 호박죽, 맑은 물에 황금색 호박을 찜통에 넣어 푹 삶아 먹곤 한다. 남편은 잔디에 호박 덩굴이 덮으면 보기에 좋지 않다고 심지 말자 했다. 남편 몰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호박씨를 뿌려 놓았더니 이제야 꽃이 올라오고 있다. 열매가 맺어 남편 밥상에 호박전을 올려야 될 텐데.
남편은 광주로 매일 출퇴근하기 힘들다고 주말부부를 자청했다. 장성한 아이들은 타지에서 가족 모두가 독립했다. 전원주택에서 나 혼자 산다.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큰 집에서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으냐고. 직장 일이 바빠서 무서울 새가 없다. 일이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말해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정원으로 나간다. 코딱지만 한 텃밭에 물을 주고 호미를 들고 풀을 찾는다. 매일 흙이 있는 땅을 밟고 잡초를 뽑아도 다음 날 또 나와 있다. 시들한 꽃나무는 베어버리고 담으로 둘러있는 홍가시나무는 윗자라지 않게 잘라 준다. 집 안팎으로 청소하고 나면 불편한 마음도 가지치기가 된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텔레비전에서 '나 혼자 산다'를 시청한 적 있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박나래가 명절 음식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방송이었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그 수고로움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젊은 사람이 바지런도 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재미있어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가정주부 같다.
나 또한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밥 먹는 걸 좋아한다. 지인이 준 집된장에 배추쌈, 소박한 밥상을 차리지만 하나의 주요리는 준비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친구들은 추억을 불러오는 그리운 맛이라 말한다. 어찌 엄마 손맛에 비교할 수 있겠냐만 어릴 적 먹어 본 맛이라는 평을 한다. 예를 들면 메밀배추전이라든지 큰 호박을 나박하게 썰어 밀가루를 묻혀 계란 옷을 입힌 전을 지진다. 팥죽을 쑤더라도 밀가루로 반죽해 밀고 썰어 직접 만든다. 추억을 불러오는 음식이라며 좋아한다. 나이가 드니 부모 없는 고아가 된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집에서 먹었던 음식을 먹게 되면 좋아한다. 깨복쟁이 친구들이 모이면 음식에 마음을 더 담는다
쌈을 식탁에 올리더라도 상추보다는 배추쌈을 올린다. 김치 하나에 나물은 고사리, 토란, 고구마 순 주로 제사 음식으로 상차림 한다. 들깨가루를 넣고 버무려 가열하면 간단하게 만들어진다. 엄마가 만들어 준 맛을 기억해 더듬더듬 흉내 낸다. 찰밥을 하더라도 찹쌀에 팥을 삶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고슬고슬한 팥찰밥을 먹어 본 친구는 말한다. "정말 엄마 맛이다." 설령 그 맛이 아니더라도 그리 말해주면 기쁘다. 찰밥에 나물을 먹으면서 친정엄마를 기억하고 도란도란 앉아서 먹었던 형제자매를 그리워한다. 나 또한 요리하면서 친정 식구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건 행복이다. '나 혼자 산다'의 박나래도 혼자 먹기 위해 음식 하는 건 아닐 것이리라.
지금 누리는 혼자만의 자유가 좋다. 집안일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늘어지게 뒤집어져 잔다. 게으름 피우다가도 남편이 온다면 부랴부랴 냉동고를 뒤적인다. 마트로 간다. 반찬을 만들고 갈치조림을 했다. 오늘은 금요일 남편이 온다. 아, 퇴근하고 바빠지겠다.
첫댓글 선생님. 정말 멋있어 보입니다. 자유가 부럽고요.
황선생님도 곧 올 겁니다. 스스로 선택하지않아도 환경으로인해 오는 경우가 있을거에요.
하지만 자유가 다 좋은건 만은 아니라는 거 알죠?
사람 좋아하시는군요?
가까이 살면 저도 밥 먹으러 가고 싶게 맛깔스런 밥상을 차리시네요.
애호박전, 새우 넣은 애호박 볶음, 애호박 찌개, 호박죽, 호박 시루떡, 호박잎 쌈도 모두 제가 좋아합니다.
호박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음식이죠.
그래서 한때 아이디를 <복호박>이라고 한 적도 있답니다.
동지를 만나 반갑습니다. 하하!
와,선생님도 호박 좋아하시군요. 언제 우리집에서 호박파티 해 볼까요?
네. 좋아요.
먼 길, 달려갈게요.
부지런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 나누고 밥 해 먹이는 걸 좋아하지요. 저는 꿈도 못 꾸는 일입니다. 멋지십니다.
음... 부지런은 좀 덜하고요. 인정은 좀 있다는.... 하하하
제가 꿈꾸는 삶을 이미 살고 계시는군요. 전원주택, 엄마의 손맛, 혼자만의 자유.
백선생님 나열한 단어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립다. 외롭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쵸? 저편에서 보면 꿈꾸는 삶이지만 이편에서는 꿈깨라 말하고 싶어요. 좀 쓸쓸해요. 만만하지않아요. 주택을 관리하는 거, 고향에 왔는데 엄마는 없어요. 자유는 좋으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어요. 한편으로는 오롯이 내 삶을 사는것 같아 좋아요. 나, 30대 연년생 키우며 힘들어할 때 50대 큰언니가 말했어요. 그때가 행복한 줄 알아라. 그때는 몰랐지요. 50대를 살아보지않아서요. 아이들이 얼른 컸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백선생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요?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시는 삶이 부럽습니다.
가족한테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시니 부럽습니다.
오롯한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만 덤은 외롭다입니다. 하하하
저도 시골 생활을 꿈꾸는데 부지런하지 못해 걱정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부지런하지않아도 시골생활은 가능해요. 느리면 느린대로 자연의 순리에 맞으면 되니까요. 자연에서 배우는 재미도있어요.
선생님 요리, 글로 읽어도 맛있게 전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