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차 문학기행 시인 정채봉편(순천시, 4/15)
시인 정채봉은 1946년 11월 3일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서 무녀독남으로 태어났고, 1948년 1월에 일가족과 함께 옆 동네인 광양시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으나 어머니가 3살 때 세상을 떠났고, 5살 때는 아버지마저 일본으로 이주한 뒤로 소식이 끊겨 정채봉시인은 줄곧 할머니 밑에서 어쩌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 후, 광양농고를 거쳐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샘터 편집국장으로 오랫동안 근무를 했다.
그러던 중에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꽃다발”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를 해서 우리나라의 성인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1983년 동화 “물에서 나온 새”를 발표한 이래, 11권의 동화와 7권의 생각하는 동화, 11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발표하였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 발표한 물에서 나온 새(1983), 오세암(1984), 생각하는 동화(1991) 시리즈 7권 등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침체된 한국의 아동문학을 부흥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주요 작품에는 동화 “초승달과 밤배”(1987), “모래알 한가운데”(1989), “느낌표를 찾아서”(1991), “입 속에서 나온 동백꽃 세 송이”(1997), “눈동자 속으로 흐르는 강물‘(1997),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 가”(2000), “그대 뒷모습”(2001) 등이 있다. 대표 수필집으로는 “눈을 감고 보는 길”, “첫 마음”이 있다. 1983년 동화 “물에서 나온 새”로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1986년 동화집 “오세암”으로 제14회 새싹 문화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1986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오세암”은 종교적 진리에 결합된 참된 삶의 의미를 보여주며 한국 동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어린 시절 정채봉이 할머니를 따라다녔던 순천 선암사에서 들은 옛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썼다고 하는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표현은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 눈이 바다보다 넓게 내린다. 머리카락 씨만 뿌려져 있는 사람이야 맛없는 국 색깔이야 때 지난 나물국 빛이다. 이렇듯 어려운 글자가 하나도 없는, 그런데 읽다가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단어들... 정채본 시인의 글은 어려운 글자나 내용은 하나도 없이 아주 쉬운 글자로 이처럼 맑음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티끌하나 없는 아주 깨끗한 문장의 맑음을 느껴보면서, 마치 그가 생전에 자주 교감하던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를 읽으면서 나도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마치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며, 거기에 깃들여진 그리움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주 예쁜 동화라는 것을 알 것 같다. 한편 1990년에 박철수 감독은 이 “오세암”을 영화로 제작하여 김혜수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불교와 가톨릭 사이의 화해에 관해 다루었으며, 또한 2003년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도 1983년 동명의 정채봉 동화가 원작이며 2004년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장편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바 있다.
정채봉의 동화는 대상으로서의 독자층을 아동에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어휘나 문장 자체로서는 웬만한 어린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깊이가 깊고 오묘해서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그의 동화는 어린이보다도 어른이나 청소년층에서 오히려 환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동화 작품이 갖는 절대적 장점은 대부분이 환상적인 내용을 추리 문학적 구성으로 전개해서 매우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정채봉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동화가 소설보다 한수 아래라는 편견을 과감히 뿌리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는 전문적인 글쓰기의 영역에 동화라는 장르를 편입시켜 그 가능성을 확대하였다.
그는 깊은 울림이 있는 문체로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성인동화'라는 새로운 문학용어를 만들어냈으며, 한국 아동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가 독일에서 그리고 ”오세암“은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시인 정채봉은 방정환 선생이후 침체되었던 한국의 아동문학 부흥에 이바지했으며, 마해송, 이원수로 이어지는 아동문학의 전통을 잇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모교인 동국대, 문학아카데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 등을 통해서 숱한 후학을 길러 온 교육자이기도 했으며, 동화작가, 방송프로그램진행자, 동국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던 중 1998년 말에 간암이 발병했다. 죽음의 길에 섰던 그는 투병 중에도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으며, 그가 겪은 고통, 삶에 대한 의지, 자기성찰을 담은 에세이집 “눈을 감고 보는길”을 펴냈고, 환경 문제를 다룬 동화집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 가”, 첫 시집인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펴내며 마지막 문학적인 혼을 불사르기도 했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정채봉은 사람과 사물을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과 생명을 대하는 겸손함을 글로 남긴 채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향년 54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으며, 순천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시인 정채봉의 족적을 만나보기 위해 엊그제 주말을 이용해서 7남매 중 6명이 봄맞이 꽃놀이 남도여행을 겸해 순천을 대표하는 작가인 정채봉시인(丁埰琫, 1946~2001)과 순천만을 배경으로 무진기행을 쓴 소설가 김승옥(金承鈺, 1941~)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순천시에서 건립한 순천문학관으로의 문학기행을 나섰다. 인천, 청주에서 출발한 차량 2대는 여산휴게소에서 합류하여 남원 광한루원을 들러, 이도령과 춘향이의 향취를 관람하고, 춘향이 가묘가 있는 육모정(六茅亭)을 거쳐 정령치를 지나 구례 화엄사에서 철지난 홍매화(紅梅花)를 구경하고 순천시 대숲골농원에서 남도음식을 즐기며 순천에서의 편안한 휴식을 취해보았다.
다음 날, 얼마 전 4월 1일에 개장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관람하며 순천시의 맑고 깨끗한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순천문학관으로 향했다. 순천시 무진길 130번지 순천만 PRT 문학관역에 위치한 순천문학관은 승용차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으로 2~3번 접근을 시도했으나 헛수고를 반복하다 가까이에 수시로 왕래하는 갈대열차(모노레일)를 바라보며 가다가 갈대열차문학관역 승강장 못 미쳐 농로에 차를 대고 걸어서 가게 되었다. 간신히 도착한 순천문학관은 주변의 순천만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형 초가건물 9개동으로 조성되어 2010년 10월에 개관하였다. 문학관 시설물은 정채봉관, 김승옥관, 다목적실, 휴게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 작가의 전시관은 그들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입체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시인이 화순 운주사 와불 옆에서 쓴 “엄마” 라는 시가 있다.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 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중략
이 시와 연관이 되어 있는 시가 또 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위의 2개의 시를 읽다보면 아주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시인의 유년시절의 환경이 애달프지 않을 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정채봉 작가가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분들의 면면을 보며, 김수환 추기경과는 각별한 사이로, 추기경의 일생을 “바보 별님”이라는 동화로 그려내기도 했다.
한편, 이해인 수녀는 정채봉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문병을 갔던 일과 못 다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병원을 찾았더니 환한 얼굴로 자신을 반겨주었고, 많은 간호사들에게 그녀를 보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저서에 사인을 해주는데 손이 몹시 떨려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해인 수녀는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본명이 이명숙이며, 해인은 필명이고 세례명은 클라우디아 이다. 2008년 직장 암 판정을 받고 2009년 4월부터 부산에서 장기 휴양 중이다. 정채봉 작가는 이해인 수녀, 피천득, 법정스님 그리고 최인호 작가와 함께 “샘터5인방”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5인방 중에서 이미 4분이 소천하시고 이제는 이해인 수녀 한 분만이 생존해 계시다. 예정대로 문학기행을 전부 마치기 전에 수녀님을 만나 뵐 수가 있을는지.....
2023년 4월 20일 |
첫댓글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 이곳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정채봉 시인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극대화 되어 저에게 전달 된것 같아요.
물에서 나온 새와 오세암은 도서실에서 좀 빌려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