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의 자서전과 같다. 1번부터 32번까지 각각 서로 다른 곡들이지만 그 곡들은 베토벤의 일생이 담겨 있다. 피아니스트에게 이러한 베토벤 소나타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꿈이다. 그리고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을 하는 일은 일생에 한 번 다다르고 싶어하는 길이다.
백건우, 그가 그 대장정의 길을 올랐다. 데카에서 첫 번째로 내놓은 석 장의 음반에는 제16번부터 제26번까지 수록돼 있으며, 내년 가을 제1번부터 15번까지의 음반이, 그리고 200년 봄 제27번부터 32번까지를 녹음한 세 번째 음반이 발매될 예정이다.
백건우의 베토벤은 그 누구보다 강하며, 여리다.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베토벤, 그러다 숨죽인 듯 속삭이는 베토벤이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이렇게 말한다.
"베토벤에게 영웅적인 투쟁, 운명에 맞서려는 의지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만을 떠올린다면 그를 온전히 감상할 수 없을 터. 이번 앨범에 수록된 소나타들에서 백건우는 작곡가 특유의 우아함과 유머 감각을 적절히 포착해내고 있다. 어떤 곡을 노래하든 격조 높은 서정성과 따뜻함을 지닌 그의 톤 컬러는 베토벤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는 백건우는 음반 발매에 맞춰 내한, 약 2개월에 걸쳐 전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일생을 피아노와 함께 살아온 백건우에게는 천진함이 있다. 그가 살고 있는 파리에서 이른 아침 산책겸 빵을 사러 나가는 것을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그다.
언젠가 인터뷰를 할 때 백건우는 음악과 함께 한 삶에 대해서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이들수록 음악이란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라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긴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음악은 즐기는 대상이 아닌, 끊임없이 넘어야 할 산들일 뿐이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넘어야 할 산들을 즐길 수 있는 법. 젊은 시절, 피아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진에 빠져들기도 했던 그의 그러한 일탈이 오히려 긴 세월 음악과의 끈끈함을 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어느덧 환갑에 이른 백건우. 그의 깊어진 음악세계는 우리에게 진짜 베토벤을 만나게 해 준다.
첫댓글 어릴때는 윤정희라는 배우보다 백건우씨가 유명세에 모자란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윤정희씨가 백선생을 더욱 존경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언제나 간사한가 봅니다. 어느날 나이가 들고보니 사람의 가치가 자로 잴수는 없지만 눈대중은 가늠이 되더군요. 좋은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