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기자 초년시절, 필자는 퇴근 시간이 무섭게 장안의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걸로 유명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이면 골목을 걸으며 작고 허름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겼는데, 월급의 7할을 모두 그것에 사용했을 정도다. 당시 TV나 신문, 잡지에서는 연일 소문난 맛집을 소개했고, 한 번 소개된 집들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며 인기몰이를 했다. 그야말로 매스컴을 통해 탄생한 스타 맛집 전성시대였다.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음식에서조차 위엄이 묻어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필자는 소문난 집보다는 작은 식당에서 친근함을 느꼈다. 그곳에는 한입에 감탄을 자아내는 감동적인 맛은 없지만 소박하고 담백한 맛이 있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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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돈의동 골목길을 걷다가 테이블 4개 정도의 작은 식당을 마주하게 되었다. 식당은 저녁 시간이 지난 터라 손님이 빠진 상태였고, 주인아주머니 홀로 주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암모니아 냄새. 단번에 남도 식당임을 알 수 있었다. 평소 홍어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전라도 음식을 한창 좋아하던 때라 거침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모 밥 되요?" "탕 먹을 줄 알제?"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본 홍어애탕에 눈물을 흘려야 했고, 주인아주머니는 땀과 눈물을 흘리며 꾸역꾸역 먹는 필자에게 이것저것 목포식 찬을 내오셨다. 물론 필자는 그날부터 주인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친분을 쌓아오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필자는 이 집을 포함해 돈의동 골목의 작은 식당을 함께 묶어 특집 기사로 냈다. 기사가 나간 뒤 이 골목은 '인심이 남아 있는 장안의 숨은 맛 골목'으로 소문이 나면서 조금씩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도 돈의동에 가면 몇몇 식당의 이모들은 필자를 귀한 손님으로 대해준다. 어쨌든 필자에게 홍어애탕의 맛을 알려준 '목포 홍어집'도 그 뒤 규모를 넓히며 목포 음식을 제대로 하는 식당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목포 홍어집은 간판에서도 알 수 있듯 홍어로 유명하지만 진짜 숨은 매력은 목포식으로 내는 음식이다. 목포에서도 주당으로 통하는 주인아저씨 이종배 씨와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주인아주머니 김용란 씨가 걸쭉한 목포 사투리로 운영하고 있으니 콘셉트가 똑 떨어지는 식당이다. 주 메뉴는 다양한 목포식 술안주와 맛깔진 밑반찬. 애초에 목포에서 올리는 주재료가 술 좋아하는 주인장 선택에 있으니 주요 메뉴는 그야말로 술 한잔하기에 더없이 좋은 제철 재료만을 사용한다. 특히 전라도 출신의 주당들에게는 소문이 자자하다. 자, 그럼 어떤 메뉴들이 있을까? 강호동 손바닥만 한 병어(요즘은 병어가 귀해 장안에서 이 집처럼 질 좋은 병어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를 이용한 병어회, 무안 앞바다에서 직접 공수한 뻘낙지 요리(산낙지와 연포탕, 낙지꾸리), 양파를 먹여 키우는 것으로 유명한 함평 한우를 그대로 썰어내는 한우 육사시미, 신안군 지도(대한민국 최대 민어 위판장이 있는 곳)에서 직접 선별한 민어로 썰어낸 민어회, 그리고 그 민어를 걸쭉하게 끓여내는 민어 어죽 등 철 따라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남도음식들이 절로 술잔을 부른다.
곁들어 나오는 반찬도 천상 목포식이다. 된장으로 무쳐낸 가지와 미나리, 참기름과 까나리액젓으로만 맛을 낸 감태, 간장과 술로 달달하게 조린 오분작조림, 막걸리 식초로 새콤하게 맛을 낸 홍어무침, 각종 양념으로 시원하게 맛을 낸 어리굴젓 등 10여 가지의 반찬 하나하나 허투루 내는 것이 없다. 사실 목포에는 유명한 특산 재료가 따로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남도의 모든 식재료가 목포에 모여 다시 거래가 된다.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맛과 조리법이 공존하는 곳이 목포다. 여름의 끝자락, 남도의 향과 맛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진한 목포식 술자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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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메뉴:장홍어삼합 6만원부터, 병어회 4만원부터, 민어회 육사시미 반반 7만원
영업시간:오후 5시 30분~오후 11시
주소:서울 종로구 돈의동 13번지 1층
문의:02-747-9022
※ 음식칼럼니스트, 에디터, 신문기자, 방송작가, 여행기자, 영상 디렉터, 프로젝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컨텐츠 제작 전문가다. 클럽컬처매거진 < bling > , 패션 매거진 < maps > 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크리에이터스 매거진 < eloquence > 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컨텐츠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 호화대반점 > < 포장마차프로젝트 >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식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