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 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장 2절
고 김진웅 장로님 장례를 모시면서 내 생전 가장 마음 고생을 한 장례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인과 그 유족이 입은 상처에 아픔을 더 할까 염려되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 고백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2014년 4월 13일 오후3시 44분
두레교회 은퇴장로이신 김진웅 장로님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 예수님이 나를 인도하시네” 라고 말씀 하시고는 가래 한번 끓지 않고 그분의 성품대로 그렇게 깔끔하게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미망인 박안나 권사님은 평소 고인이 되신 김장로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당회 서기 장로한테 전화를 걸어 부음을 전하고 두레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러주기를 부탁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다려 보라면서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의 응답은
“ 김진웅 장로님이 동두천 두레교회로 교적을 옮기셨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였습니다.
“ 우리 장로님이 언제 동두천 두레교회로 교적을 옮기셨다는 말입니까? 그런적이 없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편찮으시기 전까지 두레교회에 출석하셨잖아요.. . .“
박권사님은 다시 담임 목사님 한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 그동안 병원비를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진웅 장로님의 장례를 교회에서 치러주시도록 부탁드립니다." ( 담임목사가 직접 심방하고 3개월동안 200여만원의 병원비를 지원하고서도 두레교인이 아니라고 말 할수 있는지요?)
“ 구리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옮기셨으면 모르겠는데 동두천에 모셨다면 동두천에 어르신(?)도 계시고 하니 거기서 장례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위로예배는 생각해 보지요.”
( 미망인 박안나 권사는 동두천 수도원의 숲속창의력 학교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에 장로님을 입원하게 하셨고 운명하시자 동두천성모병원으로 옮기신 것인데 동두천두레교회에 출석하지도 않으신 장로님 장례를 왜? 본교회 놔두고 동두천두레교회에서 치르라 하는지요?)
유가족이라고는 박안나 권사와 33세 미혼인 아들 성민이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언제 예배를 드려 줄지 마냥 기다리며 그 밤을 보냈습니다.
( 후에 안 일이지만 바베큐 파티를 즐기느라 은퇴장로님 소천쯤은 안중에도 없었나 봅니다)
2014.4.14 장례 둘째날.
두레교회 새벽예배때도 김진웅 장로님 소천하신 안내 광고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11시 40분
"고 김진웅장로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빈소는 동두천 성모병원입니다. 두레교회 "
오후 2시 6분
3-6셀 박안나권사 부군 /故 김진웅장로별세/ 동두천중앙성모병원장례식장 2호실입니다. 두레교회
( 교회 버스가 몇 시에 출발한다던지 위로예배를 몇 시에 드린다던지 하는 말은 끝내 없었으며 교회의 도리는 장례식 부의금 10만원뿐이었습니다. )
그리고 당회 서기 장로와 류 부목사가 와서 문상만 하고 갔습니다.
상주 성민이가 두레교회 청년부에 장로님의 병간호로 인한 사정도 있어서 한참동안 출석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식을 들은 청년들 10여명이 밤 열한시쯤 문상을 하고 갔습니다.
( 그 청년들 앞에 두레교회 장로로서, 어른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2014.4.15
빈소에서 한밤을 보내고 김진웅 장로님 영정 앞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장로님과 함께 하였던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이북에서 오신 실향민으로 친지들이 없었고 마흔 두 살에야 얻은 하나뿐인 아들 성민이가 스물 세 살이었을때 부인 박명자 권사님이 암으로 돌아가셔서 우리 함께 장례를 치렀고, 2004년 5월 22일 두레교회 2기 장로로 임직을 하였고, 박안나 권사와 재혼을 하고, 홍대 건축과를 나와서 잘 이끌어 나가던 건축사업이 부도가 나서 생계조차도 어렵게 되었고, 병이 들고 요양병원에 서너달 입원해 계시다가 소천하신 것입니다.
두레교회 초창기 1기 2기 장로들은 인창동 지하교회에서 힘써 일하였습니다.
성도들은 부쩍 부쩍 늘어났고, 모든 경조사에 거의 참석하며 기쁜 일과 슬픈 일을 함께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이 구리에 위치하면 장례를 치러주고 동두천이면 못 치러준다는 법(?)도 없었고, 부산까지도 갔고, 섬에도 간적이 있었고 전국 어디든 달려가곤 하였습니다.
두레유치원을 한다리에 지을 때 김진웅 장로님은 건축위원장이었습니다.
그 땅을 밞으며 눈물 흘리며 기도했고 부실공사가 우려되었을 때 과감히 시정을 요구하며
당회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전심전력 합력하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평소 과묵한 성품이셨지만 당회장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소신을 밝히셨기 때문에 당회원들 가운데 연장자로서 존경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장로님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셨고 오랫동안 코이노니아 남성합창단에서 함께 찬송을 부를 때 참으로 멋지셨습니다. 매주 목요일 마다 10년을 넘도록 함께 찬송을 부르던 그 대원들은 장로님 세상 떠나신 것을 아시기나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 난 두레교회 장로로 은퇴를 하였지만 난 두레교회를 떠날 수 없어요. 정말 울면서 기도했었지요. 어떻게 우리들이 힘써 세워 온 교회를 떠날 수 있겠어요. 난 떠나지 않을거예요.”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어찌 그리도 빨리 하늘나라로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3부 예배에 참석하셨었지요.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고 하면 ‘금방 먹고 왔다’고 하시면서 사양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니 그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모시고 밥 한끼라도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 되었습니다. 억대로 건축헌금을 드리며 교회일에 앞장섰던 장로님을 왜 이렇게 보내드려야 하는지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생각을 하면서 찬송을 부르는 내내 저는 울었습니다.
발인예배를 드릴 때에 이영래 장로의 기도는 차라리 통곡이었습니다.
벽제 화장터에서 육신의 장막은 불타고 파주 공원묘역으로 이동하는 자유로의 모든 길가에는 산천에 꽃들이 화사했고 꽃비가 눈처럼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길에 취토를 하고 돌아서면서 주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고난주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함께 기쁨을 나누고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한 죄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 교회의 먼저 된 장로로서 함께 동역하던 장로님 장례식을 이리도 허술하게 치러 드리는 것이 얼마나 애통한 일인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뭐라 말할 수 있을지,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장로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교회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지 가늠 할 수가 없습니다.
- 두레교회 담임목사가 은퇴장로님 장례식을 치르도록 허락하지 않아서 김진웅 장로님을
그렇게 쓸쓸하게 보내드리는 당회원들과 성도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지요?
-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며 영혼구원에 앞장서고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로 살아가는
사랑의 신앙공동체를 세워가지 못한 죄 또한 어찌 묵과 되겠습니까?
- 은퇴장로가 아니라 일반 성도의 장례라도 집례 해 주지 않는 교회가 있고, 목사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목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죄가 될 것입니다.
주님을 채찍질하고, 침뱉고, 머리를 치고, 모욕하고 온갖 못된 짓을 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주님의 피 공로가 아니면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 중에 죄인일 뿐입니다.
부교역자도 신앙의 양심으로 어려움이 있을테고 바른생각을 하는 장로라면 성도라면 절대 그리 할수가 없습니다 이제 양심선언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기준으로 예 아니오를 분명히 한다면 두레 교회는 바로설수 있습니다
사람따라 내편을 들어주며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저편이라 생각하면 무시하고 관심을 안보이며
봉사도 기도도 차별을 두더니
장로가 소천했는데 외면을 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성도여!!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것이 아니라 사탄이 죽어서 기뻐해야 한다는 담임목사의 설교는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종려주일에 바베큐 파티를 하게 하는군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않는목회자는 하나님이 심판대에서 어떻게하실런지 매우 두렵습니다 제발 우리두레교우님들 모두가 옷깃을여미고 진실되게 살아갑시다
어느 권사님이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위에서 내려다보시며
따뜻하게 환영해주셨습니다
잠시후에 어느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좌에서 뛰어내려와 반갑게
환영해 주셨습니다
이를본그권사는 서운한 마음이들어
하나님 천국에서도 어찌 사람차별을하십니까
권사는 앉아서 환영하시고
목사님은 뛰어내려가 환영하십니까?
하나님말씀하시길.
모른 소리마라. 3년만에 옥사한놈왔다
유머집에 있는 내용이
현실이 될까봐 참으로 서글픕니다
교회에 유족이 직접 담임목사와 서기장로 에게도 장례를 두레교회 주관으로 집례해달라는 연락을 했다는데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지 누구의 결정인지 밝혀야 합니다 재정장로의 이름을 빌려 1월에 교적을 옮겼다는 변명 구체적 진실도 공개해야 합니다 교회가 누구가 주인이길래 교인을 이렇게 무시 하나요? 당회원들은 무엇하고 있습니까?
고인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지금 말씀을 떠난 사람의 소리만 가득한 현실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하고 형편이 어려워도 마지막까지 두레교회를 출석해서 예배 드리고
가끔 뵈오면 교회를 위해서 당회원의 사명을 잘감당하라 하셨던 장로님의 당부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고난주간에는 평신도도 예수님의 고난을 상기하며 파티를 자제하고 음식을 가려 먹는게 교리를 떠나 생각하더라도 상식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그 때 바베큐를 먹어야 위로가 되는 매우 위중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해가 되는 일 입니다만. 모인 이들 중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심히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장례보다 위급했고, 교회 소속을 따져야할만큼 위중했던 그분의 불안한 안위를 위해...
김진웅장로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제 기억에 참 괜찮은 장로님으로 기억됩니다.
김진홍목사님앞에서 소신있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던 모습 지금도 생생합니다.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예수님께 부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