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항쟁과 만남의 철학
■518 반란군 답사
▪︎시인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1922년 출간한 시 ‘황무지’에서 따스하고 화사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전문가 해설에 따르면 엘리엇은 이 시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를 그렸다고 한다.
▪︎송필경(1955〜)은 1980년의 싱그러운 5월의 광주에서 일어난 ‘518’이 잔인하고 황폐한 군인들이 일으킨 폐륜적인 사건으로 본다.
▪︎하지만, 그는 이제 해마다 맞는 5월의 ‘518’에 찾아가서 가장 소중한 내 손녀들에게 줄 따뜻한 희망을 찾는다.
그 까닭은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아래 글에 518의 숭고한 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철학의 헌정(518을 생각함). 2014. 도서출판 길. - 13쪽)
▪︎근원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진리는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518자체가 만남의 사건이었듯이,
518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만남으로 일어날 때에만 진리의 사건이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삶을 통해 새로운 진리가 아테네인들에게 개방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삶이 새로운 만남의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폭력이 아니라 오직 이성으로 열리는 만남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증거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예수의 삶 역시 마찬가지인데, 예수는 법칙이 아니라 사랑으로 열리는 만남의 길을 열어 보였다.
▪︎이처럼 최초에 일어난 진리의 사건이 만남의 사건이었던 까닭에 그 진리의 사건을 개념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철학적 성찰 역시 만남의 사건으로 일어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만남이 이어지는 것이 진리가 이어지는 것이요, 만남이 확장되는 것이 진리가 넓어지는 일이다.
▪︎그리하여 플라톤 철학의 비길 데 없는 생명력은 그 철학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의 기록이기 때문이요, 사도 바울로의 신학의 생동성 역시 그와 예수의 인격적 만남의 당연한 열매인 것이다.
▪︎518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개방했던 만남의 진리에서 잉태한 사건이지만 그것을 넘어 새로운 만남의 지평을 열어 보인 사건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사상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 했고,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종교-신화적 상상력으로 예수를 사용했다. ㅡJK)
▪︎그런 점에서 518은 전대미문의 진리사건이었으니, 모든 새로운 진리의 계시가 그렇듯 518은 기존의 어떤 생각의 틀로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철학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518은 오직 만남의 사건이었으니, 518이 우리에게 열어 보인 진리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518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수밖에 없다.
▪︎철학적 사유 자체가 역사와 만남으로 일어나야 한다. 이 만남 속에서 철학은 잉태되고 성숙한다.
▪︎내 손녀들이 철학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여 진리와 사랑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나는 해마다 5월이면 대구에서 광주를 찾는다.
▪︎나는 518 동안에 희생한 특히 전남 도청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이름 없이 스러져간 분들에게서 전태일 정신을 엿본다.
**5월 26일 일요일 <반란군 답사>
8;30분 풍암동 시청자미디어센터 앞에서 출발
광주공항 편의대—상무대 전교사, 영창—505 보안부대—광주공원—사직공원—구도청. 이렇게 답사한다.
이 행사를 후원하는 ‘광주광역시 서구청’과 주관하는 ‘협동조한 시민의 꿈’을 보면 광주의 민관 의식수준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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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사 전날이 25일 토요일 오후 5시에 광주 풍암동에 있는 ‘싸목싸목 카페’에 가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김순흥 선배님과 그 분 일행을 만나 <반란군 답사> 전야 모임(축제?)을 의미 있게 치를 예정이다.
(송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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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의 뜻을 ‘철학적’으로 드러내려 한 첫 단행본 연구 결실: 5ㆍ18에 대한 철학적 헌사
▪︎5ㆍ18민중항쟁은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변곡점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여타의 다른 역사적 변곡점을 이룬 사건들에 비해 5ㆍ18만큼 특별한 의미에서 긍정과 형성의 사건이었던 것은 없었다.
▪︎동학혁명이나 3ㆍ1운동과 같이 5ㆍ18민중항쟁도 분명 저항과 부정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형성의 계기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으나, 5ㆍ18민중항쟁은 새로운 세상을 지향한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지향하는 새로운 세상을 비록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스스로 형성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각별하며 그런 점에서 다른 모든 혁명적 봉기 또는 항쟁과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5ㆍ18 민중항쟁》은 단지 ‘항쟁’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공동체’라고 규정한다.
▪︎이른바 5ㆍ18공동체이다. 그 기저에는 열흘이라는 항쟁 기간 동안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도덕성과 질서 그리고 연대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5ㆍ18을 지금 이 땅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바로 5ㆍ18이 단순히 엄청난 사건이었다거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주체성(또는 공동주체성)의 집약된 표현이고 실현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주체가 자기를 정립한 사건임을 자각하는 일일 것이다.
▪︎주체가 따로 있고 객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모두가 더불어 자기들을 주체로 정립한 사건, 그것이 바로 5ㆍ18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논지이다.
▪︎하지만 5ㆍ18에 대한 연구는 이 땅에서 유독 사회과학 분야에서만 비교적 활발하게 연구되어 왔다. 대표적인 연구성과로 최정운 교수의 『오월의 사회과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진경이나 조정환, 그리고 외국 학자로는 5ㆍ18을 파리코뮌과 비교ㆍ검토한 조지 카치아피카스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계, 특히 철학 분야에서는 이렇다할 단행본 연구성과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 김상봉 교수의 책은 5ㆍ18에 대한 철학적 연구의 첫 단행본이자, 5ㆍ18의 뜻을 ‘철학적’으로 드러내려 한 첫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5ㆍ18의 철학적 의미를 단순히 형이상학적 물음과 그 답에 머무르지 않고 신학적ㆍ정치철학적ㆍ예술철학적 의미 등 종합적 인식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머리말 7
제1장 응답으로서의 역사: 5ㆍ18을 생각함 ㅡ23
제2장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두 개의 나라 사이에 있는 5ㆍ18 ㅡ41
1. 이정표로서의 5ㆍ18 ㅡ41
2. 절대적 공동체와 참된 만남 ㅡ60
3. 만남의 범주들 ㅡ74
4. 에필로그 ㅡ95
제3장 항쟁공동체와 지양된 국가: 5ㆍ18공동체론을 위한 철학적 시도 ㅡ97
1. 5ㆍ18민중항쟁과 5ㆍ18공동체 ㅡ97
2. 5ㆍ18공동체에 대한 이전의 연구들과 그 한계 ㅡ99
3. 항쟁공동체와 지양된 국가 ㅡ106
4. 지양된 자유로서의 만남 ㅡ117
5. “너도 나라” ㅡ126
제4장 계시로서의 역사: 5ㆍ18민중항쟁에 대한 종교적 해석의 시도 ㅡ135
1. 5ㆍ18민중항쟁과 계시의 문제 ㅡ135
2. 그리스도교와 계시 ㅡ139
3. 은폐된 하늘나라 ㅡ143
4. 5ㆍ18민중항쟁과 하늘나라의 계시 ㅡ148
5. 완전한 만남의 이념 ㅡ151
6. 에필로그: 「다시 남한강 상류에 와서」 ㅡ157
제5장 국가와 폭력: 주권폭력에 대하여 ㅡ161
1. 5ㆍ18과 폭력의 의미에 대한 물음 ㅡ161
2. 예외상태와 주권폭력의 문제 ㅡ167
3. 계엄령과 주권폭력의 문제 ㅡ175
4. 시민군과 주권폭력의 문제 ㅡ182
제6장 예술이 된 역사와 역사가 되려는 예술 사이에서: 광주시립교향악단의 5ㆍ18 30주년 기념공연에 부치는 말 ㅡ191
1.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의 가사와 번역 ㅡ191
2. 사사로운 물음 ㅡ193
3. 예술이 된 역사 ㅡ196
4. 예술과 역사 ㅡ202
5. 다시 예술에서 역사로 나아가기 위하여 ㅡ204
제7장 이제 남들이 우리를 기념하게 하라!: 5월 기념사업과 기념의 서로주체성에 대하여 ㅡ209
1. 기억하는 것과 기념하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ㅡ209
2. 왜 무엇을,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가 ㅡ211
3. 이제 남들이 우리를 기념하게 하라! ㅡ215
제8장 귀향: 혁명의 시원을 찾아서, 부끄러움에 대하여 ㅡ221
1. 간단한 소묘 ㅡ221
2. 물음 224
3. 국가의 내적 모순과 식민지 백성의 곤경 ㅡ229
4. 박정희의 독재와 국가의 내적 모순 ㅡ235
5. 부끄러움 ㅡ246
6. 왜 부산과 마산이었는가 ㅡ262
7. 부마항쟁과 김영삼 ㅡ271
7-1. 보론: 현실의 모순과 그 해석의 문제 ㅡ279
8. 누가 주체인가: 부마항쟁과 서로주체성의 문제 ㅡ283
9. 왜 잊혀졌는가 ㅡ288
10. 에필로그: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ㅡ293
참고문헌 ㅡ297
출전 ㅡ303
찾아보기 ㅡ305
■김상봉
▪︎부산에서 태어나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과 고전문헌학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고 이마누엘 칸트의 『최후 유작』(Opus postumum)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그리스도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나 해직되었다. 그 후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를 만든 산파였으며 이사장을 지냈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공동의장과 5ㆍ18기념재단 이사를 지냈다.
▪︎저서로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칸트철학과 근대적 주체성의 존재론』(한길사, 1998), 『호모 에티쿠스: 윤리적 인간의 탄생』(한길사, 1999), 『나르시스의 꿈: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한길사, 2002),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김상봉 철학이야기』(한길사, 2003), 『학벌사회: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한길사, 2004), 『도덕교육의 파시즘: 노예도덕을 넘어서』(도서출판 길, 2005), 『서로주체성의 이념: 철학의 혁신을 위한 서론』(도서출판 길, 2007), 『만남: 서경식 김상봉 대담』(공저, 돌베개, 2007), 『5ㆍ18 그리고 역사: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공저, 도서출판 길, 2008), 『다음 국가를 말하다: 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공저, 웅진지식하우스, 2011),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꾸리에, 20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