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벌어진 6·25전쟁 중 사상 최초로 제트기가 전장에 등장한 가운데, 참전국들은 산지가 많은 데다 활주로가 제대로 깔리지 않은 환경에서 전투기를 운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실감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계 업체들은 활주로가 필요한 수평이착륙 방식 대신 최소한의 공간만 확보되면 이착륙이 가능한 수직이착륙(VTOL, Vertical Take-off and Landing)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각국 업체들은 만약 수직이착륙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면 민간 항공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장성이 크다고 판단했으나, 한편으로는 이 기술을 실제 군용기에 적용해 전장에서 운용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실제 기술 개발에 뛰어든 업체는 많지 않았다.
우선 롤스로이스(Rolls-Royce) 사는 1950년대에 골조 틀 위에 엔진만 얹은 추력측정장비[TMR, Thrust Measuring Rig: ‘하늘을 나는 침대틀(flying bedstead)’이라는 별명으로 유명]를 제작해 수직이착륙 기술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1957년에는 브리스톨 엔진(Bristol Engine) 사가 호커 에어크래프트(Hawker Aircraft) 사와 합작으로 올림푸스(Olympus) 및 오르페우스(Orpheus) 제트 엔진의 특성을 합친 방향전환형 팬 제트(fan jet) 엔진인 ‘페가서스(Pegasus)’의 개발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항공 컨설턴트인 미셸 위볼트(Michel Wibault)가 설계한 추력편향(推力偏向) 컨셉 설계가 적용되었으며, 브리스톨 엔진 사는 이를 수차례 개량하면서 엔진 크기와 중량을 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롤스로이스의 ‘하늘을 나는 침대틀’ <출처: Public Domain>
한편, 항공 전력의 중심을 유인항공기에서 미사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발표한 영국 국방부는 1957년 국방 백서를 발간하면서 P.1121로 지정했던 호커 헌터(Hawker Hunter) 대체 기종 도입 사업을 취소했고, 이에 호커 에어크래프트 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이하 나토)에서 발주한 피아트(Fiat) G. 91기 대체용 경량 전술 지원 전투기(LTSF, Light Tactical Support Fighter) 기종으로 제안하기 위해 ‘페가서스’ 엔진을 활용한 기체 개발 쪽에 집중하게 되었다. 호커 에어크래프트 사는 영국 정부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나토 사업을 준비하면서 P.1127 프로젝트로 명명했고, 1959년 페가서스 I 엔진이 첫 시연에서 9,000파운드 추력을 내는 데 성공하면서 프로젝트 시작 후 불과 3년 후인 1960년 10월에 P.1127의 초도 비행을 실시했다. 하지만 수직이착륙(VTOL) 기술이 아직 불안정했기 때문에 총 6대의 시제기 중 3대가 추락했으며, 심지어 1대는 1963년 파리 에어쇼 시연 비행 중 사고가 발생했다.
1963년 아크 로열 항공모함(HMS Ark Royal)에 착함 시험 중인 P.1127 <출처: 영국 국방부>
나토는 1961년 미래에 도입해야 할 전투기 설계 상세 요구도를 짜기 시작하면서 나토 기본 군사 요구도 3(NMBR 3)를 발행했다. 나토는 이 문서를 통해 도입해야 할 차세대 기체를 초음속 전투기(NBMR-3a)와 아음속 전폭기(NBMR-3b)로 나누었으며, 공산국가들이 유럽 대륙에서 기습적으로 지상군을 진격시켜 주요 활주로를 점령한 경우를 대비해 수직/단거리 이착륙(V/STOL) 항공기의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직/단거리 이착륙(V/STOL)이 가능하고 마하 2까지 비행해야 한다는 요구도를 갖고 있던 NMBR-3a 사업에는 10개 이상의 유럽 각국 항공사들이 초음속 기체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최종 후보로는 P.1124의 초음속 형상인 호커 시들리(Hawker Siddeley)의 P.1154와 다소(Dassault)의 미라주(Mirage) IIIV(참고로, 35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라주 III의 수직이착륙 형상[Vertical]이라는 의미임)로 압축되었다. 하지만 나토가 면밀한 평가 후 우선협상대상자로 호커 시들리의 P.1154를 선정하자, 이에 불복한 프랑스 정부는 NMBR 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하고 미라주 IIIV의 독자개발을 결정했다. 결국 프랑스가 빠지면서 사업 또한 좌초해 NMBR 사업은 1965년에 취소되고 말았다.
영국 웨스트 레이넘(West Raynham) 공군기지에 전개한 케스트렐 FGA. 1 비행대대 <출처: BAE 시스템즈>
NMBR 사업의 좌초와 함께 유럽 각국은 각자 수직이착륙 항공기를 개발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영국 왕립 공군(RAF)과 왕립 해군(RN)은 나토의 NMBR 사업이 취소되자 마자 P.1154를 기반으로 한 해·공군 겸용 전투기의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양군의 요구사항이 계속 충돌하다가 1964년 노동당 행정부가 들어섬과 동시에 P.1154 사업도 취소되었다. 왕립 공군은 P.1154 도입 사업이 좌초하자 독자적으로 P.1154 업그레이드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미국-영국-서독이 수직/단거리 이착륙(V/STOL) 성능 평가를 위해 진행했던 공동평가 비행대대용으로 개발한 케스트렐(Kestrel) FGA. 1을 기반으로 한 지상 공격기 개발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리했다. 왕립 공군용 P.1127로 명명된 기체는 총 6대가 제작되어 1966년 8월 31일에 시험비행을 실시했으며, 이후 양산으로 넘어가면서 해리어(Harrier) GR. 1으로 개명된 기체가 1967년 초부터 총 60대 가량 납품되었다.
해리어는 1969년 4월 18일부터 왕립 공군에서 전력화 되었으며, 1977년부터는 경 항모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스키 점프대 이륙 테스트를 1977년부터 실시했다. 이후 영국 왕립 해군도 함재기용 형상을 도입하면서 시 해리어(Sea Harrier)로 명명했다. 미국 또한 해병대용 강습 상륙함에서 운용할 용도로 단거리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해리어를 후보로 판단했으며, 1969년 해리어 도입을 위해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 사가 호커 시들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AV-8A 해리어로 명명했다. 이 1세대 해리어는 1970년대까지 양산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도태된 기체는 태국 왕립 공군이 사용하던 기체로 2006년에 퇴역했다.
해리어는 1969년 영국 왕립 공군에서 전력화되면서 최초로 실전 배치되었다. <출처: BAE 시스템즈>
최초로 개발된 호커 시들리 해리어의 후속 기종인 해리어 II는 1973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맥도넬 더글러스와 호커 시들리가 공동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 국방부는 예산 제약 때문에 약정 물량을 60대밖에 걸지 못했으며, 페가서스 15 엔진 및 기체 개발 예산을 지원해주지 못하면서 1975년부로 호커 시들리가 사업에서 철수했다. 결국 단독으로 남은 미국의 맥도넬 더글러스는 아예 기존 AV-8A 설계를 처음부터 손봐 AV-8B 해리어 II로 재설계했다. 이렇게 탄생한 AV-8B 해리어 II는 주익, 조종석 높이, 동체 크기를 변경했으며 양쪽 날개당 하드 포인트(hard point)를 1개씩 더 추가했고, 늘어난 크기에 맞도록 업그레이드된 페가서스 엔진을 장착했다. 맥도넬 더글러스는 기존 AV-8A 해리어를 개조하여 시제기를 2대 제작했으며, 이를 토대로 1978년에 시험비행을 실시했다.
한편, 공동개발 사업에서 철수했던 영국은 기존에 운용 중이던 1세대 해리어 시리즈의 도태 시기에 따라 대체 기종을 고려하던 중 미국이 계속 진행한 AV-8B 해리어 II 계획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주익 크기를 키우고 앞전 스트레이크(leading edge root extension)만 영국 쪽 설계를 반영하면 영국군 요구도에 맞출 수 있다고 판단하여 다시 영·미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맥도넬 더글러스가 홀로 해리어 II 사업을 진행시켜 AV-8B가 등장했다. <출처: BAE 시스템즈>
이에 따라 미국 측 설계인 AV-8B는 맥도넬 더글러스가 주 계약자, 브리티쉬 에어로스페이스(British Aerospace)를 하도 업체로 하여 개발이 되었으며, 반대로 영국 요구도가 반영된 해리어 II GR.5는 브리티쉬 에어로스페이스가 주 계약자, 맥도넬 더글러스를 하도 업체로 하여 사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공동 개발된 AV-8B 해리어 II의 초도 비행은 1981년 11월에 이루어졌으며, 미 해군 및 해병대와 스페인 해군, 이탈리아 해군에 주로 납품되어 함재기용으로 활용되었다. AV-8B 해리어 II는 2003년에 생산 라인이 중단될 때까지 22년간 약 340대가 양산되었다. 현재에도 AV-8B 해리어 II는 미 해병대와 해군에서 운용 중이며, 차세대 수직이착륙 항공기인 F-35B 라이트닝(Lightning) II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순차적으로 도태될 예정이다. 현재 AV-8B의 유지관리 및 후속 지원은 1997년 맥도넬-더글러스가 보잉에 합병됨에 따라 보잉에서 실시하고 있다.
첫댓글 올려주신 군사병기 작품 감사히 잘보았습니다.![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겁고 행복한 하루되세요.![완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0724/texticon_9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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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설명절 지내시고
행복가득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