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외국에서 지내던 사제들은 한국에 들르면 주교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관례입니다. 저도 지난번 휴가 때, 주교님께 인사를 드리러 교구청엘 갔습니다. 교구청 마당엘 들어서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저는 교구청에 8년을 살았습니다. 마당의 나무, 성당의 감실, 복도에 있는 그림도 반가웠습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사목국에서 근무했습니다. 20년 전이니 젊은 날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교육담당’이었습니다. 구역장, 반장을 위한 월례교육을 준비했습니다. 남성, 여성 총구역장을 위한 피정을 준비했습니다.
사목국에는 사제들이 10명 있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열띤 토론을 했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2004년 의정부 교구가 분할되면서 몇몇 신부님들은 의정부 교구를 선택하였습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성소국에서 근무했습니다. ‘사제’라는 제목으로 3부작 다큐를 제작하였습니다. 본당 성소후원회 방문을 하였습니다. 교황방한 준비 위원회에서 ‘영성, 신심 분과’를 맡아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8년을 지냈던 곳이라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어달리기’처럼 이젠 다른 신부님들이 교구청에서 근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주교님과 면담을 한 후에 돌아왔습니다.
미국에 온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갑니다. ‘가톨릭평화신문 미주지사’의 일을 맡았습니다. 신문홍보를 위해서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본사에서 오는 자료를 다운 받았습니다. 월요일에는 직원미사, 수요일에는 직원회의가 있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팬데믹의 여파로 운영에 어려움이 있지만 아직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주최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스라엘 요르단,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한국’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으신 주교님께서 ‘바쁘게 사네.’라고 하셨습니다. 동북부 엠이 대표신부를 3년 동안 하였습니다. 주말 체험도 있었고, 피정도 하였습니다. 가을이면 소풍도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동북부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고 있습니다. 남성 제42차 꾸르실료 교육에 함께 하였습니다. 퀸즈 성당의 평일미사를 도와주고 있고, 부르클린 성당의 주일미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달릴 길을 다 달린 것’은 아니지만 나름 바쁘고 분주하게 지낸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언젠가 다시 뉴욕으로 온다면 그때도 ‘감회가 새롭다.’라고 느낄 것 같습니다. 신문사, 성당, 엠이, 꾸르실료는 저의 뉴욕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부르클린 한인 공동체의 사제들은 저의 뉴욕 생활에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구청에서 지냈던 것도, 뉴욕의 신문사에서 지내는 것도 제게는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어디에서 지내든지 필요한 것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 삶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있다면 교구청에서의 생활도, 뉴욕에서의 생활도 감사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고린토 전서 13장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심오한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교구청에서의 생활도, 뉴욕에서의 생활도 ‘가시방석’과 같을 것입니다. 잘못한 이를 기꺼이 용서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수난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배반했을지라도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사랑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의 또 다른 말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십자가는 허무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간다면 그곳이 어디이든지 ‘꽃자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