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소극장 을지로에 세워진 소극장, 원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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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5. 12:54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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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소극장
을지로에 세워진 소극장, 원각사
요약 당시 공보실장 오재경의 열성으로 설립.
'최초의 국립극장 원각사'의 정통성을 유지하고자 명칭은 그대로 원각사, 유치진이 지음.
위치는 을지로 2가 4번지, 1958년 12월 22일부터 1959년 1월 10일까지 개관 예술제를 함.
개관 공연은 주로 전통 예술을, 연극인들은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소극장으로 활용.
1960년 12월 5일 화재로 전소.
정부에서 주관하여 마련했던 소극장 원각사
그러나 불에 타고 있다. 이로써 최초의 국립극장이었던 원각사도 화재로 인해 없어지고 말았다.
연극 본래의 정신을 추구하려는 공연으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소극장이 한국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1958년 개관한 원각사였다.
<경향신문> 1959년 1월 18일자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색동저고리를 입혀놓은 듯 곱게 단장한 원각사라는 극장이 을지로 2가 4번지에 자리잡고 지난 12월 22일부터 1월 10일까지 20일 동안 다채로운 개관 예술제를 베풀어 성황을 이루었는데 특히 외국 사람들의 관람이 많았다. (중략) 그 동안 국악·창극·민요·고전무용·교향악·관현악·합창·독창·독주 등 우리 나라 고래의 예술을 소개하는 한편, 현역 각 분야 예술인들의 실력을 총망라하여 과시하였다."
이는 우선 이 극장의 설립이 국악을 보존시킬 목적을 뚜렷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이 극장의 설립을 누구보다 반겨한 것은 연극인들이었다. 일제 때부터 국내 연극계에서는 소극장 설립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사에 보이는 원각사의 위치는 해방 직후 경춘철도 사무실로 쓰이다가 한국전쟁 후에는 헌병사령부가 들어섰던 곳이다. 그 건물 식당을 개조하여 꾸민 것이 바로 원각사였다.
대지는 502평, 무대는 너비가 10m, 높이가 7m 정도였다. 그리고 객석은 아래층이 217석, 위층이 89석으로 모두 306석이었다.
극장 입구는 커다란 한식 대문으로 되어 있어 한국적인 정서를 풍기고 있었고, 내부장식 역시 한국적이었다. 특히 눈에 잘 띄는 주요 벽면에는 김은호·고희동·이상범·허백련·변관식·김기창·이응노·박노수 등의 그림들이 걸려 있어 극장 분위기를 한껏 우아하게 해주었다.
원각사는 당시 공보실장이었던 오재경씨의 열성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그는 연극에 문외한이었으나 대학 선배인 유치진과 협의하여 최초의 소극장을 건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원각사라는 명칭은 유치진이 지었다고 한다. 최초의 국립극장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 원각사와 같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정통성을 유지하려는 이 극장의 설립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개관 공연도 전통 예술을 주로 했지만, 연극인들은 새로운 작품을 실험하고 소개할 수 있는 소극장으로 활용했다. 그런 움직임은 당연히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침체해 있던 극단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몇 개의 극단이 창단되기도 했다. 창단된 극단으로는 4월극회·원방각·중앙예술극회 등이 있다.
이런 극단들이 소극장 운동으로 현대극을 원각사 무대에 올린 것은 개관 1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원방각의 <비오는 성좌>, 제작극회의 <유리동물원>, 신협의 <뜨거운 양철 지붕의 고양이>, 현대극회의 <칵테일 파티> 신무대 실험극장의 <원고지> 등이 이곳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원각사는 1960년 12월 5일에 어이없게도 화재로 인해 전소되고 말았다. 이날의 상황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5일 상오 11시 16분경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4번지에 있는 국무원 사무처 소관 원각사에서 불이 일어나 연건평 400평, 벽돌 2층 건물(좌석 307석)과 피아노 한 대, 조명기구, 벽화 등 30여 점을 전부 태우고 12시 10분경 진화되었다. 이 화재로 을지로 일대는 교통이 두절되었으며 급수 사정이 나빠 소화작업이 지연되었다. 경찰 조사로는 무대 후측의 배전판에서 누전으로 인한 발화로 보고 있고, 경찰은 관장 김창구씨와 전공 구길옹(22)씨를 연행 조사중이다. 원각사는 2년 전에 정부에서 개수하여 무대예술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피해액 1억 이상."
연극인들은 원각사를 재건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후 한국의 소극장은 '까뻬 떼아뜨르'와 '에저또'로 이어졌다.
이상한 것은 원각사라는 명칭과 그 운명이었다. 국립극장 원각사도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소극장 - 을지로에 세워진 소극장, 원각사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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