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99 : 楚漢誌 42, 西 魏王 魏豹의 征伐
한편, 영양성에 있는 漢王은 魏豹(위표)가 반란을 일으켜 咸陽을 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역시 크게 웃으며, "魏豹가 10萬밖에 안되는 군사로 咸陽을 치겠다니,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오. 그러나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 누가 가서 그를 격파하겠는가?
그러자 謨士(모사) 여이기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우리 군사들은 그동안 楚軍과 싸우느라고 상당히 지쳐있사옵 니다. 따라서 지금 다시 出兵하는 것은 삼가 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다행히도 臣이 위표와 친분이 있사오니, 魏豹를 만나 利害 得失(이해득실)로 설득하여 우리를 배반하려는 마음을 돌이킬 수 있도록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위표가 臣의 설득에 응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정벌해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력을 쓰지 않고 말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러면 광야군께서는 수고 좀 하고 오시구려."
廣野君 여이기 노인은 그날로 길을 떠나 위표를 찾아갔다. 위표는 여이기 노인을 반갑게
물어온다. "여 노인께서는 漢王의 命을 받고 나를 설득하려고 오셨소?" 여 노인은 위표를 나무라듯 대답한다. "나는 누구의
명을 받아 대왕을 찾아온 것이 아니오. 다만 옛정을 생각해서 大王에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이로운지를 말씀드리고자 찾아온 것이오. 그에 대한 판단은 대왕 스스로 내리 실 일인데, 내 말을 듣기도전에 어찌 친구의 호의를 의심부터 하시오?"
여이기 노인이 정색을 하고 나무라니, 위표는 약간 계면쩍은 표정으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용서하시오.
그렇다면 선생이 내게 말씀하고 싶은 利害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여 노인은 정색하고 말한다. "大丈夫(대장부)가
두 가지 마음을 가져도 옳지 못하고, 사건을 일으켜도 같은 일을 다시 해서는 안 되는 법이 오. 대왕은 처음에는 楚나라를 섬기다가 漢나라에 귀순하였소. 그런데 이제 와서는 漢王에게 불만을 품고 또다시 楚나라로 가려고 하니, 어떤 이득을 보겠다는 말씀이오? 지금의 천하대세를 냉철하게 살펴보면, 楚나라는 세력이 强하다고는 하지만, 項羽가 워낙 포악하여 언제 망할지 모르오. 그와 반대로 漢나라의 세력은 楚나라에 비해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漢王 자신이 德이 있고 지혜로운지라 매사를 순리로 처리하여 인근 諸侯(제후)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머지않아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오. 뿐만 아니라 백성들 입에서 조차 <楚亡漢興,초망한흥,>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터이오. 이런 일련의 상황을 감안하건데, 대왕이 楚를 등지고 漢나라에 귀순한 것은 참으로 잘하신 일이었소. 지금대로 漢王을 성실하게 섬기고 있으면 장래에는 더욱 고귀하게 될 것이 자명한 데, 어찌하여 漢나라를 배반하여 스스로 손해 보는 길을 택하려 하시느냐 이 말씀이오."
위표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한다. "漢王은 나를 너무 무시하고 냉대해 왔소. 나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으니,
이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 주시오. 사내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어찌 남의 밑에서만 살다가 죽을 것이오. 나는 내 뜻에 거슬리는 자는 과감히 쳐서 당당하게 천하를 호령해 볼 결심을 굳혔소."
魏豹가 직설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밝히자, 여이기 노인은 더 이상의 설득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영양성으로 돌아와 漢王 에게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漢王은 실망한 듯 묻는다. "그렇다면 위표는 머지않아 우리에게 덤벼 올 텐데, 그쪽 장수들의 면면은 어떠합디까?" 廣野君 여이기 노인이 대답한다. "최고 사령관에 백장, 총대장에 백직을 비롯하여 각군 대장으로는 보장, 경택, 기장, 풍경 등이 있기는 하오나
모두가 대단치 않은 장수들이옵니다."
漢王은 그 말을 듣고, "백장 따위가 어찌 우리의 한신 장군을 당해 낼 수 있겠소? 다만 그중에 풍경이라는 자가 비교적 현명한 편이나, 그 者도 우리의 관영 장군의 상대는 될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즉시 韓信을 불러 명한다. "장군에게 정병 10萬을 줄 것이니, 지금 곧 조참, 관영 장군등과 함께 魏豹를 치도록 하오." 韓信은 왕명을 받자, "신, 御命(어명)을 받자옵 고 곧 출정하겠사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魏나라로 出征(출정)한 것을 알면, 항우가 필히 허를 찔러 대군을 몰아올 것이오니 대왕께 서는 거기에 대한 대비 책도 강구해 주시옵소서." "음... 항우가 大元帥가 魏豹를 치러 출동한 줄 알면 우리의 허를 찔러 공격해 올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좋은지, 장군의 의견을 말씀해 주시오."
韓信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아뢴다. "臣이 생각하옵 건데, 많은 장수들 중에서 그와 같은 큰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장수는 王陵 장군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왕릉 장군을 영양성을 지킬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심 이 좋은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자 한왕은 머리를 좌우로 젓는다. "그건 안 될 말씀이오. 지금 항우가 왕릉 장군의 母親(모친)을 볼모로 잡아두고 있기 때문에, 왕릉은 전력을 다해 싸울 형편이 안 될 것이오."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왕릉 장군의 어머니는 현명한 분으로 자식을 키울 때, 志操(지조)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강조해 키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왕릉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이 변하는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왕릉을 최고 지휘관으로 삼으시고, 陣平을 참모로 삼으시면 항우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싸움에서 불리한 기색이 보이면 張良 선생과 상의 하시면 되실 것이옵니다." 漢王은 그 말을 듣자 안심이 되는지, "모든 것을 장군의 의견대로 할 것이니, 장군은 魏豹를 정벌하는 대로, 속히 돌아와 주시오."
韓信이 조참, 관영등과 함께 10萬 군사를 거느리고 포반에 이르니, 魏軍은 벌써 江을 앞에 두고, 陣을 치고 있었다.
韓信이 군사들에게 말한다. "적군은 江 건너에 陣을 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는 渡江(도강)에 필요한 배가
백여 척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10萬 군사가 일시에 渡江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 秘策(비책) 이 있다. 그것은 木罌 (목앵)을 만들어 일시에 渡江하는 것이다."
그러자 灌瓔이 묻는다. "木罌이란 것은 처음 들어 보옵니다. 목앵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 니까?" "장군도 木罌을 모르고 계셨소? 목앵이란 나무를 엮어 만든, 일종의 뗏목인데 浮橋(부교)를 말하는 것이오. 이것을 넓고 튼튼하게 만들면 많은 군사와 함께 戰車(전차)와 수레 까지 한 번에 싣고 渡江할 수 있을 것이오."
관영은 수백명의 군사를 차출하여 불과 2~3일 만에 수많은 목앵을 만들어 놓았다. 목앵 제작이 끝나자, 韓信은 관영에게 새로운 軍令을 내렸다. "장군은 1萬의 군사를 軍船에 나누어 싣고 渡江하면서 즉시 쳐들어갈 기세를 보이시오. 그러면 敵이 크게 혼란해질 것이니, 저들이 흔들리면 대대적 인 공격을 감행시오." 灌瓔이 명령을 받고 군사들을 몰고 강으로 달려가자, 이번에는 曺參(조참)을 불러 별도의 명령을 내린다. "장군은 2萬 군사를 거느리고 木罌을 타고 下
陽에서 渡江하여 安邑에서 적의 후방을 기습하시오. 나는 後陳(후진)을 거느리고 별도로 渡江하여, 관영 장군과 함께 三面으로 공격하면 魏豹를 생포할 수 있을 것이오." 曺參도 명령을 받고 下陽으로 떠났다.
한편, 魏豹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江을 건너오려 고 하는데, 돌연 강 건너편에서 漢軍이 수백 척의 軍船에 나눠 타고 강을 건너오며 함성을 지르고 북을 울려대는데, 그 기세가 천지를 뒤집을 것만 같았다. 위표의 군사들은 적의 기세에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는데, 이번에는 下陽(하양) 으로부터 飛馬가 달려와, "漢나라 장수 曺參이 數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木罌을 타고 下陽으로 건너와, 安邑(안읍)에서 大王의 가족을 생포하여 지금 이곳을 향하여 진격해 오고 있는 중이옵니다." 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魏나라 군사들이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後方에서는 曺參이 뒷덜미를 치며 좁혀오고, 前方에서는 韓信과 灌瓔(관영)이 동시에 앞길을 막으며 죄어오는 게 아닌가? 상황이 순식간에 이렇게 반전 되자 魏나라 군사들은 혼비백산, 뿔뿔이 도망가는 바람에 魏豹는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韓信의 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韓信은 魏豹를 땅바닥에 꿇어앉혀 놓고 추상같이 꾸짖는다. "大王께서는 楚나라를 치기 위해 그대를 총사령관으로
발탁하셨거늘, 그대는 酒色(주색)에 빠져 30萬 대군을 가지고도 大敗하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인자하신 大王께서는 그대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아니하시고, 다만 고향에 돌아가 편히 쉬게만 해주셨다. 그런데 그대는 그와 같은 은총에 반하여 도리어 反旗(반기)를 들고 일어났으니, 그대 의 罪는 마땅히 죽음으로써 씻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죽이기 보다, 영양성까지 끌고 가 대왕께서 직접 斷罪(단죄)하시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위표를 꽁꽁 묶어 <감차>에 가둔 다음, 엄중한 감시 하에 평양성에 입성하여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獄(옥)에 갇혀 있던 大夫 周叔을 불러, 그로 하여금 평양성을 지키게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제 분수를 모르는 者의 末路(말로)는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븅신이 따로 없지 王의 혈통을 받아 태어났으면 그저 제 분수를 알고 조용히만 있었어도 편한 末年(말년)을 보장받았을
것을, 관상쟁이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헛된 꿈을 꾸다가 패가망신한 魏豹라는 한심한 인간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역사의 교훈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