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당구장 사교장이기도 했던 당구장, 무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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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5. 12:57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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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당구장
사교장이기도 했던 당구장, 무궁헌
요약 1924년, 임정호가 당구대 두 대를 설치해 무궁헌이라는 당구장을 개업함.
당구 요금은 한 게임당 1인당 5전. 1등은 요금을 내지 않음.
주로 일본 유학생이나 졸업생들이 사교 장소로 활용하기도 함.
충무로에는 이미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당구장이 있었음. 고수들은 양편을 오가며 내기 당구를 침.
박용수씨가 쓴 「당구 가이드」라는 책을 보면 후반부에 당구 원로이신 조동성 선생의 회고기가 간추려져 실려 있다. 이 회고기에서 조동성 선생은 순종의 장례식을 담은 사진첩인 「순종 국장록」에 있는 다음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인정전 동행각에 옥돌대 2대가 놓여 있어서 때때로 대신들과 큐대를 잡았다. 국내외 옥돌 선수가 경성에 이르기만 하면 반드시 접견했다. 맞수가 되는 사람은 전 창덕궁 경찰서장인 야노였는데, 게임에서는 이기려는 생각은 없었고, 단지 어떻게 하면 흥미있게 이끌 수 있을까 하는 고상한 생각으로 게임했으며, 실력은 60점에서 70점 정도였다."
위의 글에서 옥돌대라는 것은 다름아닌 당구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순종이 서거한 해는 1926년이니까 이 무렵엔 당구를 옥돌이라 한 것도 알 수 있겠고, 국내외 당구선수들이 오면 꼭 접견했다는 점으로 볼 때 순종은 당구 애호가였음이 분명하다.
그 당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영업을 목적으로 최초로 개설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당구장은 어디에 있었으며, 상호는 무엇이었을까?
순종이 당구를 즐기던 무렵 서울에는 여러 군데에 당구대가 있었다. 남대문 근방에 있는 경성구락부에도 있었고, 서대문 전매청 앞에도 있었으며, 경성제국대학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당구장은 모두 영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 관리들이 유흥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영업을 목적으로 한 당구장이 최초로 생긴 것은 1924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조흥은행 본점 건너편에 있는 당구장으로 '무궁헌'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었다.
주인은 임정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당구대 두 대를 설치해놓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당구장을 개업한 것이다. 무궁헌이 개업한 직후 광교당구장과 종로당구장 역시 당구대 두 대를 놓고 개업했다.
조동성 선생은 14세 때 아버지를 따라 종로 당구장을 구경한 이래 전문학교 시절에는 이미 200점을 쳤다. 당구는 1909년 왕실에 처음으로 들어왔는데, 순종의 당구 실력은 150점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개업한 당구장 이름이 무궁헌이었고, 광교당구장이었고, 종로당구장이었던 것은 다분히 민족적인 감정이 개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미 충무로에는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파주정이니, 지하지가니, 아사이니 하는 당구장이 성업중이었기 때문이다.
고수들은 양편을 오가면서 내기 당구를 쳤다. 그것은 단순한 당구 게임이 아니었다. 한·일 두 민족의 명예를 건 한판 승부였다.
그러나 고수들 중 아무리 잘한다는 사람도 일본에서 건너온 여류 고수들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가스라 마사코와 가스라 노리코라는 자매인데, 나이가 불과 21세, 17세였다. 자매는 시범경기를 통해 언니는 1,500점을 단큐에 치고, 동생은 1,000점을 단큐에 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동생은 일본 챔피언이었다. 그녀와 대적할 만한 사람은 재일동포인 윤춘식뿐이었다고 한다.
당구 요금은 한 게임당 1인당 5전. 고급 담배 한 갑에 5전, 쇠고기 한 근에 50전 정도 할 때였다. 1등은 물론 요금을 내지 않았다.
무궁헌은 사교장이기도 했다. 주로 일본 유학생이나 졸업생들이 만나는 장소로 이용했다. 그중엔 윤치호와 유진오도 있었다. 종로에서 포목점·요식업 등을 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당시 당구장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금전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는 상류층 사람들이었다. 게임이 끝나면 그들은 으레 명월관이나 국일관 등 요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구장은 연예인들이 일이 없을 때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김승호는 60점, 남인수는 150점을 쳤다고 한다.
게임 기록은 당구대마다 짧은 치마에 머리를 양갈래로 딴 이른바 신식여성이 맡아 해주었다. 미성년자의 출입 제한은 없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당구장 - 사교장이기도 했던 당구장, 무궁헌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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