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탁 !
정막한 교무실을 울린 이 소리 하나에
저마다 바쁜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던 선생님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응시한다.
그러면 원래가 낙천적인 건지
아니면 원래 장미반에 보내져야 했던
아이가 어떻게 하다가 우리 학교로 오게 된 건지…
왜 예전에 신입사원이라는 드라마에 보면
OMR 카드기가 오류를 내는 바람에 최하 점수를 가진 사원이
한 회사에 들어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는
이야기의 드라마도 있었다.
이 아이가 그런 아이가 아닐까?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먹어 주는 내 얼굴. 훗."
더 이상 고민 따윈 할 필요가 내겐 없었다.
이렇게 건방진 말을 툭툭 내뱉는 류찬희.
이건 분명 어떤 오류로 인해 이 학교로 오게 된 걸거야.
"이래서 미남은 피곤한 거라니깐. 휴식이 필요한데."
탁 !
정확히 찬희의 말이 끝나고 0.1초 후에
찬희 머리 위로 떨어진 미술교재.
정확히 어떤 책인진 모른다.
방금 맞은 부분이 꽤 따가운지
머리를 부비는 손길이 매우 바빠진 찬희였다.
"엄마한테 빨리 전화해."
진짜 무서운 표정으로 찬희를 응시하며 말하는 선생님.
그런데 말이예요…
제 수업은요?
전 어떡해 되는 거죠?
"아까 말했는데요. 없다구요."
"이새끼야, 지금 너 상황 판단 못해?"
"없는걸 없다고 한 것 뿐인데요."
그리고 '괜히 과민반응이야.' 라고 말하고
끝에 '푸히히'도 함께 덧붙혀 말한 찬희였다.
어디서 저런 똥배짱이 나오는 건지 의아할 뿐이었다.
헌데… 난 어떻게 되는 걸까? 난….
벌써 선생님과 우리가(?)
교무실에서 옥신각신 다투어(?)
소비한 시간은 1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 45분 가량.
이 45분이 난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됐다.
자꾸 입술이 말라…
긴장되면 나타나는 버릇 중하나.
"저기요, 선생님… 저…."
"이새끼야, 내가 네 집까지 가야겠냐?
내가 네 집까지 가서 네 부모 얼굴 볼까? 엉?"
"저기… 저…."
"그럼 한 가지만 묻자."
내 말을 뚝뚝 끊으며 자기 할말만 하는
야속한 미친개 선생님.
찬희는 여전히 자기가 그린 그림을…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여유를 보인다.
진짜… 저거 미쳤어… 저거….
"이 그림 속… 그러니까,
이 애랑… 너랑… 사귀는 사이냐?"
...........
......
.....................
'애랑… 너랑…'
...........
......
.....................
'사귀는 사이냐?'
...........
......
.....................
'애랑… 너랑… 사귀는 사이냐?'
.........
.................................
"와… 눈치 백단."
정말 울고 싶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미친개 선생님이나
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너나…
다들 미쳤어. 미친 거야.
"선생님 그런 거…."
아니예요.
라고.
"수업시작하기 전에 제가 그랬잖아요."
말하려는데 이번엔 미친개 선생님에 이어
내 말을 불쑥 잘라먹는 류찬희.
"수업주제 잘못됐다고 했잖아요!"
...........
......
.....................
"그리고 싶은 사람 얼굴 그리기가 아니라."
...........
......
.....................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친구 얼굴 뽀대나게 그려보기,
라고 말했잖아요…
와… 제 말 무시하니깐 기분 좋았죠?
선생님이 너무 억지 부렸어요. 흥."
하…
방금 끝에… 너 끝에… '흥'은 뭔데… 너… 너….
"선생님이 오늘 저 엿먹였으니깐 그만 풀어 주세요.
우리 데이트 할건데, 설마 선생님도 낄 생각은 아니겠죠?"
"…만."
"그럼 선생님의 어여쁜 제자 중 한 명인 류찬희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차효주 데리고 쓩하니 사라지렵니다.
만수 무강하세요."
만수 무강하세요.
그 부분에서….
"그만!"
드디어 미친개 선생님이 폭발하고 말았다.
이젠… 죽.었.다.
우린 죽었어. 너 때문에 나까지…
미친개한테 물릴 위기에 쳐해 있잖아.
너 이거 어떻게 할거야. 류찬희!
"……!"
"선생님, 오늘 실수한 거예요.
언제 한 번 배로 갚아 드릴 테니,
그 때까지 만수 무강하세요."
아까처럼 '만수 무강하세요' 부분에서
그래, 내가 이런 표현을 쓸 줄은 몰랐지만
왕창 깜찍하게 미간을 찌푸리는 류찬희였다.
그래. 이 표현이 걸맞는…
류찬희의 방금 그 표정… 깜.찍.
"손 아프다고 놓으면 안돼. 차효주."
그러고선… 내 손을 꽉 부여잡고
교무실을 빠져 나오는 류찬희.
난 교무실에서 거의 다 빠져 나와 스텝이 꼬인 나머지
복도의 철퍼덕 넘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 절실히 필요한 스피드가 현저히 감소되었고
난 미친개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느끼고
자리에서 퉁기듯 일어나 뒤를 돌아다 보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무서워.
"…야!"
이때 잡은 손에 힘을 더 꽉주곤 계단을
3,4계단씩 훅훅 뛰어 내려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현상
다리가 풍차가 되어 달리고 또 달리는데….
어쩌다가 교문까지 빠져 나온 건지 류찬희에게서 손을 떼고
무섭게 류찬희를 노려보자.
"앨리스, 우리 여행을 떠나 볼까?"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장난을 치는 류찬희.
넌 지금 이 상황에 장난이 쳐지니?
넌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앨리스…."
힘이 푹 빠진 류찬희의 모습.
순간 흠칫했다.
"앨리스."
그리구 앨리스라니.
너 대체 날 왜 그렇게 부르는 건데?
"내가 왜 앨리스야?"
"앨리스랑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깐."
"앨리스랑 똑같은… 표정?"
"어."
"무슨 표정?"
"얼빵한 표정."
"……."
"너 평소에 책 안 읽지?"
책 안 읽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거야.
"진짜 실망 백배."
"……."
"앨리스 책을 읽으면 앨리스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딴 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지었던
표정이 바로 지금과 같은 표정이었어."
아, 그랬니.
라고 말해주길 원했던건 아니겠지?
"밥 먹으러 가자."
"나 밥 먹었는데."
"나도 먹었는데."
"아, 그러니."
도대체 이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 아이랑 왜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먹으러 가자."
"너 밥 먹었다며?"
"응."
"근데 또 먹어?"
"응!"
"배고파?"
"아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 이 아이.
"그럼 왜 밥을 먹으러 가자는 건데?
배고프지도 않으면서."
"…서."
"…어?"
"아파서. 나 선생님한테 맞았단 말이야."
★
내가 있지. 너 아까
그렇게 불쌍한 표정만 안지었으면 너랑 여기 안 왔어.
내가 너랑 밥 먹으러 온 건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헌데… 이 아이 내게서 그 말 할 틈을 주지 않아.
"차효주, 잘 먹을게!"
"어, 응…."
웬지 억양이. 아니야 아닐거야.
자기가 먼저 밥 먹으러 가자고 했어. 설마.
"여기 진짜 비싼덴데.
근데 비싼만큼 진짜 맛있다. 차효주, 잘 먹을게!"
"어? 으응."
웬지 불아내.
"애들이 올 때가 됐는데. 왜 안오지?"
"애들이라니?"
"응. 내 친구들."
"친구들?"
"응!"
어쩐지.. 너무 많이 시킨다 했어. 거의 6,7인분 되는걸
어떻게 다 먹겠냐구 속으로 궁시렁 댔었는데.
친구가 오기로 했었구나.
"어? 저기 온다. 12분이나 지각했어.
12대씩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생각보다 꼼꼼한 성격인 듯.
근데, 이건 아니잖아. 응?
"하이! 마이 프렌 앤 걸프렌!"
"방가방가!"
"곤니찌와!"
(일본어로, 안녕하세요? 낮인사입니다.)
...........
......
.....................
"차효주?"
"진…하?"
일본어로 인사한 남자애가 진하였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넌 여기 어쩐 일이야?"
내 이 물음에 진하의 시선에 찬희에게로 향했다. 그럼.
"류찬희 친구?"
"네가 류찬희 여자친구?"
뭐?
류… 류찬희… 여자친구?
난 류찬희를 바로 째려 보았다.
설마… 나를… 진하에게 자기 여자친구라고
말한 거야? 그래?
"그럼 난 뭐지."
"……?"
"친구의 여자친구를 뺏으라고?"
"……."
"내게 이런 경우가 올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키킥. 저 새낀 아무한테나 들이대."
"야, 하지마라. 쟤, 진짜 믿잖아.
너 여자애들한테 장난치려고 세상 사는 거지?"
"맞아. 저 새낀 저게 취미자 특기야.
우리반에서 저 새끼한테 장난 안 당한 여자애 하나 없을걸.
근데 웃긴 게 저 장난만 치면 그 다음날 저 새끼 고백받고…
나 저거 따라 했다가 다히한테 차일뻔 했어. 후…."
"그 얘기 나한테 몇 번 했는줄 아냐?"
"몇 번?"
"이번꺼까지 합해 총 20번도 더 넘게."
"80번 더해서 100번 채워야지. 후…."
...........
......
.....................
"네가 그 얘기 꼬박 100번 채우면, 다히한테 이른다."
"뭘?"
"그 날의 우리의 추억들을."
"그 날의 우리의 추억?"
...........
......
.....................
"엘리베이터에서의 우리의 추억… 기억 안나?"
"……?"
"다히 기다린답시고
엘리베이터에서 죽치고 앉아서
경비원 행사했던 거!"
"……."
"근데 사람들의 반응은 참 심통방통했었지."
"……."
"우리 민원신고 당했잖아!
너 그거 아직 다히 모르지? 모르는 것 같더라.
저번에 우리반에 와서 그 얘기 꺼내더만.
변태 두 명이 출몰했다가 신고당했다고.
진짜 아쉬워하는 눈치였던 것 같은 데.
그 변태 두 명이 너랑 나일 줄은 다힌 상상도 못 할거다."
...........
......
.....................
"80번 D.C해서 20번에서 족하련다. 하하."
...........
......
.....................
이 영양가 없는 대화들
그리고 배신감에 휩싸인 듯한 얼굴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진하.
그리고 아까 교무실에서 봤던
꽤 뿌듯한 표정을 짓는 류찬희.
아까전처럼 날 보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매우 흡족해
하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두 녀석의 서로 정반대의 표정을 느끼고 있는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 상황에 적응할 자신없어.
너희들과 함께 밥 먹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아마 정신이 사나워서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를거야.
첫댓글 완전 오래기달렸어요 ㅋㅋㅋㅋㅋㅋ
ㅋㅋㅋ기대해요~~
와 !!!! 볼때마다 ㅠㅠㅠㅠ 연재라는게 답답 ㅠㅠ 언능 언능 보고 싶어요오 ~ ㅠㅠㅋ
나 왜 다이아몬드지 ;; ㅠㅠ
춤예 많이 기다렸어. 요새 숭녀가 바빠서 잘보지도못하고 ㅠㅠ 힘들어도 힘내렴 아자! 담편도 기대할께-
유천이는요~~~~~~~~~~~~~~~~~~~~~~`
잘봣어요~ ㅋㅋ
역시......찬희조아ㅏㅏ!♡
.....전그냥유천이팬하렴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디게잼있어요~
진하 짱짱, 진하랑 됐음 좋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