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일교포'가 (그때는 교포라고 불렀다) 선망의 대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60년대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재일교포를 친척으로 둔 집에는 그당시 서민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가전제품들이 있어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한창 줏가가 오르던 재일교포들의 인기가 어느날인가 부터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처녀를 울리고 친구나 친지들의 쌈짓돈을 털어 갔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니 영화나 연속극에서조차 그들은 형편없는 사기꾼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후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재미동포'들이 고국의 언론에 부정적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고국을 등진 사람들, 미국 땅에서 고생만 싫컷하는 사람들로 부각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유승준이라는 재미동포 인기가수가 병역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미국국적을 취득했다고 해서 또 한차례 재미동포들의 이미지가 실추하고 있다.
나는 그가수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비난할 입장도 아니다.
나 또한 국적에 얽힌 씁쓸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는 장애인 문인과 화가들을 위한 공모전이 있다. 상금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에 입상을 하면 그후 작품 활동의 무대가 그만큼 넓어진다.
4년전 이 공모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응모했었다. 그후 심사과정에서 국적이 미국이라는 이유로 나의 작품은 제외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회규정이 ‘대한민국 국적자’로 제한되어 있다나. 다음해에는 규정을 수정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그 다음해에는 응모한 작품을 접수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민 생활 20여년, 나이 40 중반에, 나는 요즘 가끔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미국에서는 남자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며 재정보조를 받기 위해서는 징집대상에 (Selective Service) 등록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영주권자도 해당이 된다. 만약 미국이 전쟁을 치르게 되어 많은 수의 군인이 필요하게 되면 이들에게 영장이 나오게 되고, 미군으로 참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군대에 가기 싫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가수도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 미국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미국이 북한과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가정하면 우리 아이들은 6촌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고국 땅을 밟을 때는 미국 여권을 가지고 외국인 행세을 하지만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느나라 사람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한국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국적은 법적인 지위의 문제고, 민족성은 혈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70, 80년대 한창 미주 이민의 붐이 일 때, 이곳으로 건너온 이민 1세들이 어느새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10년쯤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은퇴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이들은 지금 노인 아파트에서 살며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SSI)을 타는 부모 세대들과는 달리 은퇴 연금을 타게 되며 여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다.
은퇴 연금은 정부의 보조금과 달리 전세계 어느나라에 가서 살더라도 받을 수 있는 돈이므로 고국에 돌아가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어디에 산다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살고 있는 땅의 주민으로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국적을 내세우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입지를 욕보이는 일이 될 뿐이다.
고국은 재외동포를 철새나 박쥐로만 볼 것이 아니라 현지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인적 자원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운 요즘이다.
첫댓글 예전에 미국 동포들이 오노 친척이 아프다구해서 돈모아서 줬는데 아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