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리뷰]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본 신해철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을
세상이 변해 갈 때 같이 닮아 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신해철이 부른 노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이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그는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본다. 그는 기억해낸다. 소년 시절에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에서 꿈꾸던 파랗던 꿈을. 세상이 변해 갈 때 같이 닮아 가는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았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원초적 질문이 있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나는 그 무엇을 찾았을까. 아니, 그 무엇은 도대체 찾을 수나 있을까.
그 무엇이란 무엇일까. 그 무엇이란 삶의 의미나 가치일 거다.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대표적 가치는 진, 선, 미다. 따라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살아왔거나, 살고 있거나, 살고 싶은 삶이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는지 물어보면 후횐 없노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노라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야당을 대표하는 이가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이라 비판하여 논란이 뜨겁다.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언론 앞에서 언론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의 북한방문을 위해 한 기업 회장이 그를 대신하여 북한에 돈을 주었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그 기업 회장의 진술이 유일한 근거다. 반면에 그 기업 회장이 북한에 돈을 준 까닭은 그 기업의 대북사업 소식을 통해 주가를 부풀려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 기업 회장이 북한에 돈을 준것은 주가조작을 위한 것이라는 국가정보원의 보고서를 그 근거로 든다. 중간에서 도우미 역할을 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그의 옛 부하가 도우미 역할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라는 회유를 검찰에게 여러 차례 받았다는 증언을 또 다른 근거로 든다.
그의 옛 부하에 대한 1심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판결을 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지지하는 판결을 했다. 대부분 언론이 “이런 상반된 판결을 지적하여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검찰이 주는 정보를 열심히 받아 쓰고 있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진실이 바닷속에 가라앉는다”라고 그는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여러 언론 단체들은 곧장 한꺼번에 나서서 그 표현에 맞서 강력하게 항의하는 성명서를 냈다. 그들은 “과도한 비하 발언으로 언론을 폄훼하고 조롱하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에 우려”를 보이고, “공공연하게 언론을 적대시하는 상황에 아연실색”하며, 그와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의 발언을 “언론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언론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망발로 규정하고 엄중히 사과를 요청”했다.
물론 그들은 마지막에 “다만 이번 사안을 계기로 우리 언론도 검찰 기소 전 단계에서 수사기관에서 나온 정보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관점도 반영함으로써 ‘유죄추정 보도’로 치우치지 않도록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앞뒤를 바꾸어 읽으면, 성명서의 핵심이 더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해, 우리 언론이 검찰 기소 전 단계에서 수사기관에서 나온 정보를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으며 ‘유죄추정 보도’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를 깊이 성찰해야 하지만, 그러한 성찰을 촉구하는 비판의 표현이 지나치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권리는 소중한 가치다. 하지만 언론의 진실 보도 의무도 그 못지않게 소중하다. 언론이 진실 보도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여러 까닭이 있다. 가장 대표적 이유는 돈과 권력 때문일 거다. 그래서 언론이 진실 보도 의무를 지키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언론을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생각과 태도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려면,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영국 철학자 포퍼(Karl R. Popp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앎의 열매를 먹은 자는 천국을 잃어버렸다. (...)
[그에게는] 오직 열린 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다.”
-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앎의 열매란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다. 신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먹고 만다. 그 때문에 에덴동산이란 천국에서 쫓겨난다. 이것이 천국을 잃어버린 실낙원(失樂園) 이야기다. 신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렸다고 알고 있지만, 어찌 보면 앎의 열매를 먹어 아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천국을 잃어버렸다고도 볼 수 있다.
아는 능력은 신의 축복이자 저주다. 좋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축복이지만, 나쁜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저주다. 다른 한편 인간의 아는 능력은 완전하지 못하다. 진실은 늘 가려져 있다. 우리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축복이지만, 완전히 다가갈 수 없다는 점에서 또는 완전히 다가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저주다.
완전히 진실한 사회가 천국이라면, 우리는 천국 대신에, 진실과 먼 것을 진실인 양 착각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실에 다가갔는지 늘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태도로, 열린 사회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언론이 진실에 대해 늘 열린 태도로 비판적으로 살펴본다면, 검찰 기소 전 단계에서 검찰이라는 수사기관에서 나온 정보를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으며 ‘유죄추정 보도’로 치우치는 경향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언론이 더 이상 ‘검찰의 애완견’이나 ‘기레기’라는 조롱도 받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는지 물어보면 후횐 없노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만을 살았노라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아니, 완전하지 못하므로 인간이다. 완전하다면 신이다.
우리는 후회 없는 완전한 삶을 살 수 없다. 우리는 완전한 진실에도 이를 수 없다. 우리는 후회 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진실도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진실을 착각하고는 있지 않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겸손하고 열린 태도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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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세월에 후회 있노라고
그대여
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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