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에 땀이 나도록 / 금물결 은물결 은파 김재환
그녀는 역시 걸물, 걸출한 스타, 아니 괴물이었다. 올림픽 기간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센스 넘쳐 기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녀도 사람인지라 숙연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던 김연경. 8일 폐막된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세르비아에 3:0으로 패한 대한민국. 평균 신장이 5cm나 큰 상대편 선수들에게 승리의 축하를 해주는 모습은 의연했다. 경기에 지고 풀 죽어 굳어있는 열 한명 동료 선수들에게 “우리는 웃어도 된다. 웃을 자격이 있다.”며 일일이 안아주고 격려하는 모습은 주장의 최고의 리더십이었다. 감독을 비롯한 전 스태프와 뜨거운 포옹으로 그동안의 노고와 회한을 다독이고 있었다. 주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플러스알파를 추구하며, 언제나 팀과 경기가 최우선이었던 팀 코리아의 환상적인 주장 철녀 김연경, 그녀의 눈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에 눈물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실상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은퇴나 다름없는 인터뷰였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나는 새 조혜정이 주축이 된 여자배구대표팀은 사상 최초 동메달을 획득했다. 45년 만에 꼭 동메달을 따고 싶은 속내를 보이기도 했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일본에 져 동메달을 잃은 것을 몹시 서러워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바꿔 신화를 만든 이번 올림픽은 그녀에겐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17살이던 여고생 때부터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16년이란 생의 절반을 여자배구 국가대표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국위를 선양하고 전 세계 배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12 런던올림픽 4강과 MVP의 신화를 만들었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6리우올림픽 8강, 2020 도쿄올림픽 4강 등 굵직한 성과를 이루는데 단연 주역, 히어로이었다.
그녀는 한때 키가 작아 배구를 그만 두려 했었단다. 벤치 신세를 지며 지독스레 연습과 훈련을 한 결과, 어느 해 신의 축복인 듯 키 가 죽순 크듯 자라 192cm의 장신 선수가 되었단다.
남자 배구, 남자 농구는 지역예선을 통과 못해 본선 진출이 막혔다. 코로나19로 1년 연기된 올림픽, 그사이 과거 학교폭력사태가 발발, 주전 국가대표 에이스 L쌍둥이 자매가 국가대표에서 제외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대표팀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전력이 현저히 약화된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본선 12개국에 막차를 탔다. 런던 대회에서 스물셋 김연경은 메달권 밖 4위를 하고서도 금메달 팀에서 선정되는 최고의 영예인 MVP와 공격수에 선정되었다. 그 뒤 일본과 터키 중국리그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세계 최고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올림픽 동메달을 조국에 바치기 위해 외국의 고액 연봉제의 스카우트를 마다하고, 국내 친정팀의 적은 연봉에 개의치 않고 국내 복귀의 결단을 내린 통 큰 인재였다. 물론 코로나 영향도 작용했다.
여자 배구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이상으로 감동을 주었다. 예선 A조 1차전은 아프리카 강호 케냐를 3:0으로 물리쳤다. 2차전은 중남미의 강호 도미니카공화국, 우리보다 6단계 높은 세계랭킹 7위인 나라이며 중남미인 특유의 탄력과 유연성이 좋은 팀이었다. 접전 끝에 3:2로 꺾었다. 3차 세르비아전은 4강에서 만날 확률이 높아 주전을 빼고 2진 선수들로 대응, 3:0으로 패했다. 전력의 약세도 있지만 일본을 이기위한 배수진이며 주전들의 휴식과 체력 보강의 고차원적 전략이었다. 1진과 2진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망의 4차전, 한일전은 어떤 종목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생과 사다. 이기면 본전, 지면 역적이다. 늘 껄끄러운 상대 라이벌이다. 역시 풀세트 접전이었다. 4세트까지 2:2 무승부, 승부는 5세트 12:14로 2포인트 뒤진 풍전등화였다. 팀의 리더 김연경은 허벅지 핏줄이 터지는 투혼을 발휘, 양 팀 최고인 30 득점을 올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역전시켜 위기를 극복, 듀스 끝에 16:14로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한일전, 선수들의 부담감은 다른 나라와의 경기보다 몇 배에 이른단다. 올림픽 개최국 일본의 심장, 한복판 도쿄에 복수의 비수를 꽂았다. 런던 대회 패배의 아픔이었을까? 원한이었을까? 극적인 역전승은 배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남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나 상대국 일본 팬에게도 영원히 각인된 국보급 명경기이리라. 현실은 신화가 되었고 드디어 대망의 8강에 진출하였다.
터키는 세계 4위 최강팀 중 하나다. 김연경은 터키리그에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왔기에 한식구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터키 선수들에게 완전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팀 선수들은 김연경만이 터키리그를 경험 했기에 그들의 속내를 알 뿐이다. 김연경은 터키선수 개개인 정보와 작전을 동료 선수들과 코치진에게 속속들이 비책을 알려줬을 것이다. 선수 간 정보 면에선 우리나라가 단연 열세였다. 우리 선수들은 김연경만 해외리그를 경험했을 뿐, 다 국내 리그 선수들이다. 신체적 조건도 터키에 열세다. 세트스코어 2:2. 피를 말린다. 위기에선 선수들을 격려하고 때론 다그치고 카리스마가 여간 아니다. 어떤 때는 눈빛에서 독기 서린 살기가 돈다. 5세트도 뒤지며 엎치락뒤치락, 14:13으로 진땀이 난다. 한 점 얻으면 이기고 한 점 잃으면 듀스다. 초긴장상태가 이어지며 적막이 흐른다. 김연경의 대각선 스파이크가 터키 진영 코트 플로어에 꽂혔다. 15:13, 아니나 다를까 역시 마무리와 위기탈출은 김연경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전 스태프와 선수가 코트에서 환호했지만 상대 터키는 망연자실, 격랑의 늪으로 휘말려 들었다. 역대 전적이나 랭킹에서 우리는 터키에 절대 열세였다. 천신만고 끝에 승리했다. 눈물 흘리는 터키 대표선수들을 보며 가슴 짠했다. 옛 동료였고, 김연경을 사랑한 터키 팬들의 마음은 어떨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 신은 우리 편이었다. 8강전 터키전은 역전의 휴먼 드라마였고 김연경의 지혜의 산물이었다.
세계 2위 브라질 전은 속수무책이었다. 고무공처럼 탄력적이고 파워 넘치는 힘과 기를 겸비한 브라질은 가공할 위력의 팀이었다. 모든 면에서 조족지혈 열세였다. 브라질을 이기려 꿈도 꾸지 않았다. 그저 동메달 3등이 꿈이었다. 고른 실력을 갖춘 브라질, 우리나라는 개개인 실력 차가 너무 크다. 김연경 같은 선수가 서너 명은 있어야 대등할 것 같다. 3:0 완패, 그러나 결코 부끄럽지 않다. 그게 냉혹한 현실이고 정답이다.
그녀를 배구의 여신, 여제라 호칭되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연경은 일인 다역을 하는 만능 팔방미인 엔터테이너다. 1인 6역을 한다. 공격수, 수비수, 주장, 때로는 감독, 코치, 외국어가 되니 심판에게 이의 신청 등을 직접 하는 심판, 리더로서 다재다능한 선수다. 그는 현명한 쌈닭이다. 매 경기 30점 내외를 득점하니 상대편의 집중마크를 받는다. 라이트가 없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니 게임을 풀어내며 득점을 올리기란 여간 쉽지 않다. 팀의 의존도가 너무 높아 체력소모가 심하다. 그러나 고비와 위기 때마다 혼신을 다해 득점으로 반전, 대세를 국면전환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포효한다. 카리스마와 훌륭한 리더십으로 원팀 주장의 역할을 120% 이상 목표 달성한다.
런던 올림픽의 주역이던 그녀는 김수지 양효진 오지영과 나이가 30대 중반에 가깝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국제무대이려니 싶다. 서른의 세터 염혜선은 후배 이다영에 가려 만년 후보 선수이었으나 이번 대회에 비약적인 발전으로 만개, 김연경과 환상의 콤비플레이를 구사했다. 이재영과 부상으로 제외된 젊고 싱싱한 공격수 강소휘의 이탈로 약해진 라이트 공격수의 빈자리가 퍽 아쉬웠다. 부상 중인 김희진이 고군분투 제 몫을 다했다. 늘 차분한 차세대 주역 박정아의 활약은 눈부시게 빛났다. 리베로 조그만 오지영의 리시브, 거인 스파이커들의 강타를 뒹굴며 받아내는 게 신기했지만 안쓰럽고 불쌍했다. 그래도 늘 미소 천사이니 예쁘기 그지없었다. 배구선수들은 큰 체격임에도 한 결 같이 미소가 아름답고 예쁘다. 젊은 차세대 주역 유망주 코리안 리그 MVP 강소휘의 부상, 학교폭력으로 국가대표에서 제명된 쌍둥이 자매 L선수, 이들의 이탈이 없었다면 동메달의 한을 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국가대표 주장을 맞은 김연경 선수를 국보國寶라고 칭하고 싶다. 스포츠를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 일컫는다. 그는 분명 연출가다. 인터뷰할 때 연출한 것처럼 말도 잘한다. 겸손과 용기가 배어있다. 상대를 충분히 배려한다. 착한 심성과 기본이 되어있는 선수다. 평생 운동을 위해 투자한 만큼, 인생 공부 자기 계발에 게으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한일전에 임할 때 “오늘 단 하루만 산다는 각오로 혼신을 다 하겠다.”는 기자회견은 비장미가 소름을 돋게 했다. 전장에 나가 목숨을 바치겠다는 비장한 혈서나 다름없다. 앞으로 당분간 여자배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반면 야구와 축구는 시들할 것 같다. 우승팀 미국은 가공할 위력의 팀이었다. 결승전에서 준 우승팀 브라질을 3:0으로 셧아웃 시켰다.
이번 도쿄올림픽 절정의 감동은 세계 최고의 스타 김연경이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배구 국가대표 원팀이었다. 그녀는 이빨에 땀이 나고, 허벅지에 실핏줄이 터지고, 온몸의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코트에서 뛰고 때리고 받고 뒹굴며 대한민국 여자배구 동메달을 위해 목숨을 바쳐 혼신을 다했다. 삼가 존경스럽다. 그녀는 국보다.
바라건대 훗날 선수 출신 IOC 위원이 되어 세계 스포츠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기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김재환 선생님.
저도 식빵언니 김연경을 응원합니다.^^
김연경 선수는 여자 배구계에서 전무후무하게 뛰어나지요, 그녀의 활약상은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스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