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의 제 1회에는 유,관,장이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다. 생사를 함께하며 서로 협력하여 위기에 대처하고, 위로는 나라에 충성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재난에서 구할 것을 맹세한다. 그 후 우선 준마를 사고, 유비는 도공에게 명해 쌍고검(雙股劍)을 만들고, 관우는 무게 팔십이 근의 청룡언월도(긴 자루가 붙어있는 반달 모양의 큰 칼), 별칭 냉염거(冷艶鋸)를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이십여 년에 걸쳐 계속되는 정벌의 과정에서 독자는 청룡원월도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용맹한 관우는 평생 전장을 누볐다. 이 청룡언월도에 의해 안량, 문추는 목숨을 잃었고, 다섯 관문을 지나는 장면에서는 조조의 부하 장수 여섯 명을 베었다. 이 밖에도 청룡언월도에 희생된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수, 당 이후 관우가 우상화됨에 따라 청룡언월도는 비범한 무기로 여겨져, 관제묘에는 특제의 청룡언월도가 놓여지게 되었다. 연극에서도 관우 혼자만 이 무기를 쓸 수가 있다.
민간 전설에 나오는 청룡언월도는 더욱더 그럴듯한 치장이 되어있다. 전설에 의하면 관우는 마음에 드는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 도검 제작의 명인 몇 명에게 부탁하여, 두 달에 걸쳐 강철을 담금질해서 겨우 푸른 빛의 강철 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장인들은 이것으로 다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관우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더 담금질하게 했다. 담금질은 다시 한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달이 하늘에 높이 뜨던 날, 장인들이 불속에서 대도를 꺼내어 담금질하려고 하자 도에서 하늘을 향해 한줄기 빛이 솟았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한마리 청룡이 내려와 빛을 맞았다. 용의 피가 도 끝에 방울방울 떨어지고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놀라서 도망쳤다. 관우가 다가가서 보니 맑고 투명하여서 마치 보석처럼 보이는 칼이 땅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 보도는 반달을 닮았고 청룡의 피로 담금질해서 완성된 것이라 하여, 청룡언월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민간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관우의 오른팔인 주창도 청룡언월도 한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관우의 보도는 조조로부터 비단 군복이 보내어졌을 때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관우는 한 계책을 생각해 낸다. 그는 주창의 사소한 과실을 책망해서 그에게 청룡언월도로 보상하게 했다. 그 이후 주창은 수중에서는 청룡언월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말이나 민간 전설 모두 그냥 믿어버리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그럼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사용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진수의 정사나 다른 역사책에도 명확한 언급이 없다. 정사에서는 두 군데에서 관우의 무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는 <관우전>에 나오는 안량을 벤 대목이다. "관우는 안량의 깃발과 수레를 멀리에서 바라보더니 말을 채찍질해 다가갔다. 원소의 대군이 보는 앞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여러 장수들은 너무나도 강력한 관우의 무위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중에 관우를 상대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하나는 <노숙전>에 나오는데, 관우와 노숙이 익양에서 회견하는 단도부회(單刀赴會 : 한 자루의 도를 지니고 회담에 나아가다)의 대목이다. "서로 병사와 말을 백 보 떨어진 곳에 머무르게 하고, 장군만이 대도 한 자루를 지니고 회견..... 관우는 도를 들고 일어섰다." 남조 양나라의 도홍경이 저술한 <고금도검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관우는 선주(유비)에게 총애를 받아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몸소 도산의 철을 캐서 도 두 자루를 만들고 "만인적(萬人敵)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전투에 패하여 그는 도를 아끼는 마음에 물속에 던졌다."
이상의 기술에서 관우가 사용한 무기는 확실히 도이다. 그러나 그 도가 자루가 긴 대도였는지, 아니면 청룡언월도라 불리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성도의 무후사 박물관의 담량소의 견해로는, 관우의 도는 청룡언월도가 아니며 무엇보다도 우선, 관우는 청룡언월도 따위는 본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병기는 크게 장단, 원사(멀리 쏘는 무기), 방구(방어용 도구) 등의 종류로 나뉜다. 예를 들면 검이나 박도(朴刀 : 자루가 짧고 폭이 좁은 장도), 비수 따위는 단병기이고, 과(戈), 극(戟), 모(矛) 따위는 장병기이다. 궁, 노는 주로 멀리 쏘는 무기이고, 순(楯), 패(牌), 갑옷은 방어 도구이다. 삼국 시대에는 아직 긴 자루가 달린 도는 출현하지도 않았다.
주위가 지은 <중국병기사고>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대에는 극의 제작이 성행하였고, 모가 그 다음 이었다." 곧 당시의 병장기는 극과 모였다는 것이다. <후한서>나 <삼국지>에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장극백만 (長戟百萬 : 긴 극이 무수히 많다.)>이라든가, <극을 얹어서 모를 집는다>와 같이 기록이 있을 뿐이다. 한대 유적지에서도 긴 자루가 달린 대도는 출토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창이나 대도가 장병기가 된 것은 당대부터이다.
그럼 사서 속의 관우가 사용한 칼은 어떤 무기인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도 단도이고, 안량을 찌른 무기는 당시 유행했던 모(矛)일 것이라고 담량소는 보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잇습니다.흔히하는 예기로 기마병을 현대의 전차로 비유하죠?그런데 그 전차가 성능을 발휘하려면 기동중이어야되구요.그런데...달리고 있는 말 위에서 과연 창으로 보병을 상대할수 있을까요?군대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총검술 배울때 찌른 후에 허리를 비틀어서 빼야 빠진다고 배웁니다.
중국에서 기마병이 보병을 상대할땐 어떤 무기를 썼을까요?당시에 대부나 모,극 같은 무기들이 있었다는데 그...우리나라 영화중에 `무사`를 보면 주인공이 작대기에다 칼 매달아서 쓰던데...그런 무기가 없었을까요?네...없었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99%겠죠...증거가 없으니~~헐~
첫댓글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_- 그래, 허구라서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요? 정말 싫군요... 유식한 거 티내려고 이러십니까? 왠지 님의 100% 허구라는 말에는 가시가 돋쳐있는데... 연의는 소설입니다. 소설가가 소설 내용 꾸미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신지요?
여기에 있는 어지간한 분들은 다 청룡언월도는 허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이곳은 연의가 허구라고 욕하는 곳이 아니라 연의와 정사에 나온 인물들의 처신이나 전략, 계책에 대해서 토론하는 곳이니 이런 글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잇습니다.흔히하는 예기로 기마병을 현대의 전차로 비유하죠?그런데 그 전차가 성능을 발휘하려면 기동중이어야되구요.그런데...달리고 있는 말 위에서 과연 창으로 보병을 상대할수 있을까요?군대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총검술 배울때 찌른 후에 허리를 비틀어서 빼야 빠진다고 배웁니다.
그런데...말위에서 기동중에 창으로 상대방을 찌르면 어떻게될까요?의문입니다.그래서 생각인데 창이란 전차로말하면 `주포`가 아닐까요?(참고로 저 전차병출신입니다.)전차가 주포를 쓰는 경우는 전차끼리의 싸움 뿐입니다. 보병상대론 흔히말하는 기관총으로 상대합니다.그럼 다시 2000년전,춘추전국시대를 겪은
중국에서 기마병이 보병을 상대할땐 어떤 무기를 썼을까요?당시에 대부나 모,극 같은 무기들이 있었다는데 그...우리나라 영화중에 `무사`를 보면 주인공이 작대기에다 칼 매달아서 쓰던데...그런 무기가 없었을까요?네...없었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99%겠죠...증거가 없으니~~헐~
그럼 어느분이 설명좀 해주세요.기마병이 보병조질때 창을썼을까요?아니면 몽고병처럼 칼을?아니면 유럽처럼 타격계무기?...참고로 제가 쓴건 아무 근거도 없습니다. 단지 혹시모를 1%를 포기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의문이 생겨서 쓴 거랍니다.
참나.. 이글올린건 맨날 뒷북치는분들때문에 올렸습니다. 알구답글올리시기를
뒷북이라는 말도 애매하죠. 처음들어온 사람에게는 모든게 새로울테니 1페이지부터 이잡듯이 읽지 않는 이상 뒷북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듯 합니다.
여기있는 모든 분들이 연의 삼국지읽고 모인 겁니다 정사가 그렇든 아니든 뭔 상관입니까? 님은 소설읽으실때 역사책보며 읽으세요? 그리고 이런글 얼마 안됬지만 제가 가입한뒤로 몇번은 보았으니 또 청룡언월도가지고 토론하지 않았으면 좋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