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6년 11월 10일(금)-12일(토) 2일간
장소 : 강원 정선군 아라리 문화촌, 정선군 여성회관
[제 1,2부 / 정선 아라리 문화촌, 제3부 / 정선군 여성회관]
주관 : 민예총 정선지부
후원 : 정선군, 강원도문화재단, 정선군 시설 관리 공단
행사문의 016-217-9870 정선(최법순)
017-477-1744 대전(김우영)
초대합니다
소슬바람에 우수수 잎을 떨어 뜨리는 가을입니다.
가을 나무의 여린 가지들을 바라보면서, 세월 가는 모습을 보고 세월 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움의 빛깔을 찾아 헤메입니다.
그리움에는 흘러간 시절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마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을만이 가지는 특유의 계절적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도무지 한걸음도 물러설 것 같지 않던 올여름 불볕더위, 그러나 가는 세월의 힘에 떠밀려 어느새 겨울의 문턱까지 다가와 섰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강변을 나가 보십시요.
가장자리를 따라 끝 간 데 없이 열 지어 늘어선 무수한 갈대들의 일렁이는 장관이며 서걱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가뭇없이 사라져 가는 세월의 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대 소리에는 그리움의 빛깔이 묻어납니다. 거기엔 흘러간 시절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마력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을만이 가지는 특유의 계절적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을 사랑하고 가을을 아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아라리의 고장 정선에서 제1회 도원 문학 축전을 열게된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 행사가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김우영 선생님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며 이 귀중한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정선문학이 널리 홍보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2006년 11월 10일
민예총 정선지부 문학분과 위원장 최 법 순
P-R-O-G-R-A-M
첫째 날 - 2006.11.10(금)
● 행사 : 시화전
● 기간 : 10일-11일 2일간
● 장소 : 정선 아라리 문화촌 (정선역에서 5분거리)
● 참여 : 문인 및 학생
지역 - 정선군 문인 및 학생
외부 - 태백시, 강릉시, 동해시, 원주시
서울, 수원, 대전, 충남북, 전남북, 대구, 부산 등
공식행사 [제 1부] 식전행사로 정선아리랑이나 농악팀 공연
● 시간 : 17:00 - 18:00 (1시간)
● 장소 : 정선 아라리 문화촌 (정선역에서 5분거리)
● 내용 : 행사순서
- 진행 : 김우영 (작가. 장편소설 월드컵 저자)
개 회 사 - 진행자
내빈소개 - 진행자
환 영 사 - 민예총 정선지부장 안정의
초대의 인사 - 민예총정선지부 문학분과위원회 최법순
격려사(1) - 정선군수 유창식
격려사(2) - 정선군의회 의장 최승준
축 사(1) - 장윤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서울)
축 사(2) - 강영환 (시인. 부산문인협회 부회장. 부산)
경과보고 - 민예총정선지부 사무국장 정춘경
시낭송 - 성회직 (시인)
축하시 시낭송 - 안초은 (시낭송가. 한국시낭송가협회.서울)
초대시낭송 - 정삼일 (시인. 국제팬클럽 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축하의 춤 공연 - 정선군 무용협회
축하의 민요 - 정선 아리랑 경창
팝과 만나는 노래의 세계
- 이청정 (경기 평택시 팝 오케스트라 리드싱어.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와 노래)
만찬 [제 2부] 정선군수 초청만찬
● 시간 : 18:00 - 18:40 (40분)
● 장소 : 정선 아라리 문화촌 옆 (정선역에서 5분거리)
● 내용 : 정선군민과 내빈이 만나는 친교의 자리
시와 음악이 만나는 만추의 밤 [제 3부]
● 시간 : 18:40 - 20:20 (80분)
● 장소 : 정선군 여성회관
● 내용 : 시낭송 및 문학강연과 흥겨운 한마당
- 진행 : 손혁건 (시인. 대전중구문학회 홍보차장)
개 회 사 - 진행자
내빈소개 - 진행자
대금연주 - 김주태 (이생강류 이수자.대전)
지역 시낭송- 정선군 문인 및 학생 (10여명)
추억의 하모니카 연주- 이남기 (시인. 부산문인협회)
시낭송 강의 - 피기춘 (시인. 강릉 관동대 시낭송 강사)
시조창- 박남순 (시인. 남구만 선생 전수자. 동해시)
소리시낭송 - 정선군 소리시 동인회
소설강의 - 양승본 (소설가. 경기 서원고 교장. 수원)
노래공연 - 정선군 싱어팀
수필강의 - 김 학 (수필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전북 전주)
색소폰 연주 - 김기태 (수필가. 온동마을 촌장. 대전)
강원도의 문화와 예술 - 정연수 (시인.태백문인협회 회장. 태백)
아리랑 창극공연 - 정선군 악단
특별공연 칠수와 한수 듀엣노래 (C&M 한국문화예술공연기획단. 강원 원주)
숙소에서의 뒷풀이 마당 - 고요한 별빛속으로 잠을...
● 시간 : 21:00 -
● 장소 : 정선군 아라리 민박촌 (정선역에서 5분거리)
● 내용 : 숙소에서의 뒷풀이 한마당
둘째 날 - 2006.11.11(토)
행사 : 정선문학기행
● 시간 : 11일 (토) 오전중
● 장소 : 정선군내
● 참여 : 정선 문인 및 내빈
● 안내 : 정선군청 문화해설사 / 버스제공 정선군청
행사 : 오찬과 이별, 그리고 내년에 만나요
● 시간 : 11일 12시 정오
● 장소 : 정선 아라리촌 주막
● 참여 : 정선 문인 및 내빈
아듀 공연 - 진행 김우영 (작가. 우리말나들이의 저자)
감사의 말 : 최법순 (민예총 정선지부 문학분과 위원장)
답례의 말 : 김기태 (수필가. 온동마을촌장. 대전)
시낭송 : 송은애 (시인 .한국문인협회. 대전)
축하연주 : 손중하 (수필가. 계간 문예마을. 대전)
아듀 앵콜공연 : 칠수와 한수 (C&M 한국문화예술공연기획단. 강원 원주)
마무리 인사 - 내빈
위 행사준 사정에 따라 부득이 변견될 수 있음을 널리 양지 해 주시기 바랍니다
C-O-N-T-E-N-T
03 ● 환영사 - 정선 민예총 문학분과 위원장 최법순
08 ● 격려사 - 정선군수 유창식
09 ● 격려사 - 정선군의회 의장 최승준
10 ● 축 사 - 장윤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서울)
11 ● 축 사 - 강영환 (시인. 부산문인협회 부회장. 부산)
12 ● 마무리인사 - 김기태 (수필가. 온동마을 촌장)
13 ● 명시낭송 - 안초은 (님의 침묵)
시화전
14 ● 김기태 - 촌장의 어록
15 ● 김우영 - 에에라주
16 ● 김주태 - 행복
17 ● 강옥희 - 별보다 고운 눈물 내 안에 가두고
19 ● 손중하 - 여보!
20 ● 손혁건 - 갯벌에서
21 ● 송은애 - 호접사랑
22 ● 윤원희 - 고향생각
23 ● 정삼일 - 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건 아니다
25 ● 조명래 - 산촌
26 ● 채정순 - 달팽이, 해님과 달님
28 ● 최명규 - 청룡포에서
29 ● 피기춘 - 길
30 ● 여한경 - 샛별
31 ● 이장희 - 밤바다
32 ● 김상곤 - 담배
35 ● 김종태 - 동반자
36 ● 최경화 - 가을 2
37 ● 김희애 - 별을 닮은 아이들아
39 ● 성희직 - 탄광마을 아이들
40 ● 임정선 - 지는 꽃
42 ● 최법순 - 천년의 소리
45 ● 임미나 - 늦가을 밤 툇마루에 포개 앉아
강의 원고
46 ● 피기춘 - 21세기 시 낭송의 효용성
58 ● 김 학 - 재미가 수필의 유일한 양념은 아니다
62 ● 양승본 - 지는 꽃
70 ● 정연수 - 탄광시에 나타난 탄광촌 삶에 대한 연구
[격려사]
무릉도원의 아리랑 정선골 축전
태고의 신비를 고이 간직하고 예로부터 무릉도원으로 불리어진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서 전국의 문인들을 초청하여 『2006년 정선 도원 문학축전』을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멀리서 이 행사를 축하하고 참석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전국 각 시․도의 문인여러분과 문학과 정선아리랑에 애정을 가지고 참석하여 주신 군민여러분들에게도 고마운 뜻을 표합니다.
우리군의 대표적인 문화자산인 정선아리랑은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 모든 아리랑과 민요의 시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선아리랑은 소리의 보고이자 문학의 보고로서 그 소재가 매우 다양하고 무궁무진하여 많은 문화예술인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문학으로 표현되고 발표되어 왔습니다.
소리가 무형의 문화라면 문학은 무형을 유형의 문화로 만드는 예술형태입니다. 무형의 소리인 정선아리랑을 무용과 미술, 연극, 오페라 등 여타 예술분야와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예술형태의 기본인 문학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문학축전을 통해 정선 문화예술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에 노력하신 (사)민예총 정선군지부 안정의 지부장을 비롯한 최법순 위원장 그리고 회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06년 11월 10일
정선군수 유 창 식
[격려사]
정선 예술문화가 한층 더
아름답게 꽃 피워지기를
겨울이 머지않은 곳에 있는 듯 아침 ․ 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진솔된 삶과 애환이 담긴 아라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이곳 아리랑의 고장 정선에서「2006. 정선도원 문학축전」을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사랑하는 군민과 더불어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동안 우리 지역 예술인께서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예술 창작활동과 군민들에게 격조높은 문화예술 향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신점에 대하여 정선군의회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과 아울러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21세기를 지식 ․ 정보화의 시대이자 문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예술이 국가와 지역 경쟁력에 원동력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문화예술은 단순히 우리에게 정신적인 삶의 풍요로움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이를 통하여 무한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21세기 핵심산업이라는데 주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문학축전 행사준비를 애쓰신 안정의 민예총정선군지부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꿈과 희망을 담은 예술인의 열정으로 21세기 정선 예술문화가 한층 더 아름답게 꽃 피워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봅니다. 다시 한 번 2006. 정선도원 문학축전을 축하하며, 전국에서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신 예술인 가족여러분의 건승과 행운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1월 10일
정선군의회 의장 최 승 준
[축사]
정선 아라리 문학축전은
우리민족문화의 뿌리
장 윤 우
시인,한국문인협회수석부이사장,성신여대명예교수,월간문학발행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구절양장(九折羊腸)길을 따라 굽이 굽이 돌고 돌아가는 곳, 너무나도 한(恨)이 많은 우리 배달민족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오랜 세월의 애환(哀歡)을 실고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그 근원지를 찾아 태백산맥 줄기로 찾아가볼까. 급격한 시대의 발전이 가져오는 자연파괴와 인간성의 상실(喪失)이 우리주변을 갈수록 황폐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개발과 발전의 구실로 인해 야기된 불신과 자기상실속에서 가야할 곳을 잃고 방황하는 오늘- 물질문명으로는 도저히 이상(理想)을 현실에 실현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오늘날, 도시인,지성인들은 잃어버린 낙원(樂園 Utopia)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인다,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강원도 땅- 아오라지 정선에까지 찾아왔다.
정신적 구원(救援)은 민족의 정기(精氣)가 맥맥히 흐르는 문학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고 믿어 왔기에 때묻지 않은 오지(奧地)에서나 해법(解法)을 준다는걸 믿어보자는 뜻이다.
때문에 문화와 풍광명미(風光明媚)한 수려(秀麗)한 자연친화 환경이 한데 어우러지는 보고(寶庫)인 정선(旌善)땅을 놓아둘 수가 있을까, 깊숙히 숨겨진 참모습을 문학축제를 통하여 들어내고 깊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잡힌 것이다.
마즈막 남겨둔 문화의 보루(堡壘)이며 보물인 보루(寶樓)로서의 이곳-
아우라지 물길을 따라 정선에 퍼지는 문학과 음악, 시낭송과 창작강의, 문학토론,동화구연,시화전시- 행위예술로서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막힘없는 다양한 행사진행과 문학기행이 뜻있게 펼쳐짐으로서 정선지역만이 아닌 전국적인 파장(波長)으로까지 매우 의미있는 행사가 이루어짐을 축하드린다, 강원도만의 후덕한 민심을 빼놓을 수도 없다.
같은 길을 가는 문인의 한사람으로서 참여하게 되어 기쁘며 그 노고(勞苦)에 감사드린다.
불러주신 이 기회에 고장의 자랑들인 민동산 억새축제와 태백산과 가리왕산, 정선아리랑과 전설이 숨쉬는 아우라지- 같이 어우러지는 강줄기를 동강에서 남한강까지, 따라 돌며 흐르고 싶다. 전국의 문학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열린 도원문학 축전에 참여한 모든 문화인들과 문학인 잔치를 마다 않고 지원해준 지역사회 인사들에게도 (사)한국문인협회를 대표하여 거듭 깊은 인사를 드린다.
2006년 강원 정선 아라리 문학축전은 우리민족문화계승과 확대의 깊은 뿌리이다.
[축사]
정선 도원 문학축전에 부쳐
姜永煥
전 부산문인협회 부회장, 새시대문학 발행인
가을이 뚝뚝 떨어지는 서정의 계절에 제 1회 정선 도원 문학축제를 열게 됨을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특히 오늘의 행사가 있기까지 후원해주신 정선군청과 주관해주신 민예총 문학분과 최법순 회장님, 그리고 대전의 작가 김우영 선생님 및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강원도에서 가장 외진 산간오지로 알려진 이 곳에 새로운 문학의 이정표를 세우고,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문학의 발상지로 새로 탄생하게 하는 시도는 이제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할 것입니다. 생명럭의 근원지, 정선 도원에 이제 새로운 지방의 문학지방시대가 열리게 됨에 저 자신도 흥분을 까라 안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과 대자연, 그 속에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다른 지방에 맛 볼 수 없는 새로운 정선 도원 문학의 잉태야말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이 가슴에 벅차오릅니다.
저는 물질만능에 오염되어 가는 도시의 심상을 바라볼 때, 아름다운 자연의 고향, 정선 땅이야말로 야성적 자연의 싱싱한 생명럭과 그 속에 조화를 이루는 따스한 인간애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 명제를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이 세상은 첨단공학과 물질의 때 묻은 삶속에 인간의 영혼이 죽어가고 황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제1회 정선 도원축제가 이 아름다운 계절과 대자연의 환경 속에서 흥겨운 축제와 빛나는 문학의 날이 되어 영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6년 늦가을에
[마무리 인사]
아우라지 강줄기따라 함께한
아름다운 도원문학축전 성료에 감사
김 기 태
수필집 소똥 위에 홍시 저자
안녕하십니까?
대전 온동마을에 김기태 촌장입니다.
민예총 정선지부에서 주최하고 정선군에서 후원한 “2006년 정선 도원 문학 축제”에 전국 시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문인과 예술인들을 초청해 주신 정선군 유 창식 군수님과 정선군의회 최 승준 의장님 그리고 정선 민예총 최 병순 문학분과 위원장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귀뜨라미 울음소리가 가을을 알려주고 거리에 낙엽 구르는 소리가 가을을 말해 줍니다.
하늘의 별과 달이 자연과 문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이번 정선의 축제는 어느 행사와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기억을 보듬고 돌아갈 수 있는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역사의 발자취와 조상의 숨소리가 확실하게 전해오는 이곳 정선에서 옛것을 이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각 분야에서 원로로 활동하고 계시는 선생님에 말씀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더해주고 지식인보다는 지성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깨우치는 행사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이지만 때로는 시집 하나 손에 들고 낙엽지는 거리를 거닐며 시상에 젖어 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아오라지 강줄기를 따라 지나온 세월을 그리며 한 달에 한번은 철학자가 되어 지나온 생활과 오늘의 나를 점검하고 이런 문학축제를 통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도 꿈꾸며 항상 마음이 풍요로운 삶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꽃과 나무, 비탈진 언덕, 이곳에 모인 정선에 시민들이 모두 관객이 되여 바람에 실려 오는 가을 향기와 함께 출연진과 관객이 별이 되고 달이 되고 꽃이 되고 바람 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생명을 노래하는 성공적인 “2006년 정선 도원 문학 축제”를 축하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이 있으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名詩朗誦]
님의 침묵
시 : 한용운
낭송 : 안초은
한국시낭송가협회 간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파도를 가슴에 담아 , 글쓰기, 시낭송 교사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을 깨치고
단풍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걸음으로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 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이 되고 마는 것을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 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 - 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은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촌장의 어록
김기태
대전 거주, 수필가
수필집 ‘삶의 시장서’ ‘소똥위에 홍시’ 계간 문예마을 상임편집위원, 한국농촌문학회
훗날에야 이런 말을 적게 해야 인정받는다는 것도 알았다.
살아 온 길을 통해 얻은 좌우명이 있다.
"진정한 삶이란 도덕적 가치관 위에 자기 몫을 다하고 행복을 찾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어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길이다."
에에라주
나은 길벗 김우영
대전 거주, 작가, 장편소설 ‘월드컵 1,2권’ ‘우리말 나들이’ 명언어록집‘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국제팬클럽 한국본부, 계간 문예마을, 문학세상 주간
오늘은 모처럼
원고료 주머니가 든든하여
홍등가 색시집에 가
기분 좋게 궁뎅이 술을 마셨다.
탄력 있는 유방
가늘한 개미허리
관능적인 궁뎅이하며
짙게 화장한 색시가
왜 이리 이쁘다더냐!
팽팽히 일어나는 아랫도리
가늘게 취한 눈매로
주머니 한 웅큼 집어
치마 속 깊이 찔러주니
-에에라 철 없는 시인아
처자식이나 잘 멕이고 입혀...
행복
만파 김주태
대전거주, 시인, 이생강류 대금이수자
대전중구문학회, 한국농촌문학회
하늘을 마음 대로 보고
땅을 마음 대로 걷고
새 소리 물 소리
마음 대로 들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때론 헐벗고 배고프고
병들어 아프고
고통이 없지는 않겠지만
흙 냄새 풀 냄새
마음 대로 맡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행복 하다
별보다 고운 눈물 내 안에 가두고
소란 강옥희
대전 거주, 시인
창작과 의식 상임이사, 온동마을 회원
저리도록 숨찬 흐느낌을 가슴에 묻고
단절된 웃음의 의미를 되짚으며
극심하게 자신을 내 몰고도
더는 어리석지 않다 말했다
무참히 깨진 현실은
고독한 마음을 손상시키고
주술에 걸린 듯, 분명한 의식도 없이
헤어진 그밤이 아프고 절실해서
사무치게 미쳐 본 적이 있는가
인생의 중대한 비극에 맞닿아 휘청거리며
사위어 가는 눈웃음으로
건널 수 없는 악천후의 강을 거슬러
황급히 떠나야 함은 능력밖의 일이다
내 안에 허물어지고, 부서지며
몸살같은 통증으로 쓰러져가는
자아를 일으켜 세우는 저항의식
또 다른 열정은 분노다, 반란의 함성이다
목적을 위해 뛰는 원시적인 생각이
아프도록 싫지만 버리고, 비웃고, 팽개치며
다시 걷는 이 길
터질 듯 한 심장의 무게를 조금씩 달래며
투명한 공기를 만나고 싶다
별보다 고운 눈물 내 안에 가두고
습기찬 미소로 돌아오는 어수선한 감정
기억의 수레는 이제 저 멀리로 보내고 싶다
여보!
시몬 손중하
대전 거주, 수필가, 대전 대문초등학교 교장 역임
계간 문예마을, 한국농촌문학회, 수필집 ‘국화꽃 베개’
참으로 고생이 많았소.
속으로
속으로 타는 마음
청솔 가지 태워 소죽 끓이는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당신 가슴 타는 연기였다는 것을
나는 아오.
어쩌다
못난 남편과 함께 만나
고통이
당신 몸 깊숙이 박혀
평생을 가도 빼내지 못하는
통증으로 이어져
한때는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고통을
아무도 몰래 참아내는
가슴에 묻어둔 아픔을
어느 날 천둥 소리를 듣고 알았소.
그것이 지금까지 참아온
당신의 신음이라는 것을…….
여보!
고맙소.
갯벌에서
늘손지 손혁건
대전 거주, 시인, 문화행사 전문 진행자
한국문인협회, 대전중구문학회 홍보차장, 계간 문예마을, 문학세상, 한국단오문학회 홍보차장
가냘픈 빗소리를 들으면
당신을 향한 그리움 하나
춘장대 바닷바람에 실려와
갯벌속을 파고 듭니다.
헤집어,
토실한 속살내음 손끝에 배이면
오랜 어둠에 묶여 있던
뭉클한 사랑을 거품처럼 밀어 내고
비릿한 빗소리에 묻혀있는
당신의 음성을 찾아 냅니다.
사랑해.
사랑해.
먼, 태초의 하늘에서
기억 하나 없이 달려온 갈매기
슬픈 울음을 터뜨려
파도위에 흩뿌리고
당신 향한 그리움 담아두려
작은 가슴이 숭숭숭 숨구멍을 내는
갯벌에서
나는, 비 맞아 봅니다.
호접사랑
다헌 송은애
대전 거주, 시인,
한국문인협회, 솔잎동인 모임 총무, 온동마을
내 너를 사랑 하는건
모습이 아름다워서도
향기에 취해서도 아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서
고개 내밀어
절망을 꽃으로
다소곳한 여인의 자태로
오래도록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세상 앞에서도
당당한 표정으로
일그러지지 않는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루를 잃었다.
또 하루를 버렸다.
고향생각
윤원희
서울거주, 시인
계간 문학세상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시집 첫 시집 「그게 행복이더라」 외 다수
고향 어제 떠나온 몸
벌써인가 한해 가고
박처럼 하얀 달 빛
울어대는 귀뚤이
보고파 흐르는 눈물
옷깃 적신 오직 한 맘
대청마루 밤 내리면
음률타는 귀뚤이
긴긴 하루 보낸 세월
히끗 히끗 님 머리칼
이 밤도 자식 그리며
한숨으로 지샌다
님 계신 고향산천
못 가뵈는 안타까운 맘
오늘도 편한 자리
마음 곤히 주무시라고
별님마저 고요한 밤
두 눈망울 초롱 초롱.
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건 아니다
정삼일
충북 영동 출생. 서울산업대학교 졸업.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바람도 깨지 않게』『고독한 날개』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건 아니다』
바람이 불어 좋은 날은
바람이 불어야 한다
라일락 향기
담 넘겨 주 듯
바람을 안고 산다
바람을 안고 잔다
바람이
아플 때
그리워지는 건
높은 산
넓은 바다
사람이다
바람은
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건 아니다
아무도
없다는 게
더 외롭다
이런 날은 왠지
제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게
어디론가
멀리 머얼리
날아가고 싶다.
산촌
秀享 조명래
시인, 경남 함안군청 근무
한국단오문학회 회장, 계간 문학세상, 한국농촌문학회
하늘 끝으로 밀려난 구름이 메아리를
돌려주고
추수 끝난 수수밭 허수아비
고랑진 이마에 눌러쓴 모자 밑
너덜너덜한 세월 긁힌 푸석한 웃음
바람이 따져들어 앙상한 가지 떠난 도토리
벌겋게 몸이 달은 계곡물에 몸을 씻고
다람쥐 오는 길목에서
갈잎을 바스락 인다.
숨이 차 헐떡이는 산비탈 바위틈새
햇살 담은 다래가 영글고
산국화 향기고운 추억을 들추어
빨라지는 발걸음에
마음 덩달아 쿵덕 이는 산촌
낯익은 산새소리가 반가웁고
살가운 흙냄새
훌쩍 뛰며 흥에 취한 노루의 울음이
골짜기를 메우는
구름 걸은 봉우리가 다정하다
달팽이
흥룡 채정순
동시작가, 2006년 한국영농문학상 (동시) 당선, 한국문인협회, 대전아동문학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대전광역시위원회. 여성문학회, 현재 : 대전흥룡초등학교 근무
좋겠다 달팽이는
비가와도 걱정 없고
햇살이 내려도 걱정 없고
자물쇠도 필요 없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집을 업고 다니는
일등 건축가지요.
해님과 달님
채정순
해님은 새록새록
밤 깊도록 잠을 자고
잠꾸러기 내 동생
깨워 놓고 달아나며
부지런히 일합니다.
달님은 새근새근
꿈을 꾸며 낮잠 자고
개구쟁이 내 동생
손 꼬-옥 잡고
숙제하기 바쁘답니다.
청룡포에서
湖야 최명규
시인, 강원 태백거주
한마음문학회
굽이쳐 흐르는
저 물길따라 옛 길
더듬어 찾아온 청령포에
엎드린 소나무 충절로 우뚝섰다
固人의 애절함 간데 없는데
觀音松만이 귀 기울여
애닯은 사연 전해주고
노산대 어느 구석 깊은 한숨 묻어 있어
세월 지난 後人에게
아픈 마음 보여주니
이름 모를 새의
덧없는 날개짓에
어라연 깊은 강물도 소리 죽이는구나
*** 단종대왕의 애닯은 한을 역사의 한페이지를 찾아서
길
피기춘
강릉거주, 시인, 시낭송가
한국문인협회 강릉문인협회, 관동대 시낭송반 강사
물오른 수목아래
봇짐을 내려놓고
풀잎 원고지에
초록색 시를 쓰며
눈부신 희망과
평화로운 죽음 사이를
푸르게 푸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샛별
여한경
시인,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학교류위원.국제펜클럽한국본부남북교류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문학진흥재단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 부회장
떠날 때
그대 눈에 이슬 맺더니
그 이슬 내 가슴에서
자라나
저 새벽하늘
그립고 애절한 나의
영원한
샛별 되었네.
밤바다
이장희
시인, 경북 영덕 출신.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영덕문학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대구지역위원회 회장.
저물 녘
검푸른 동해
민박집
누이의 흰 이마
허공 한복판에
띄워 놓고
닫힌 침묵으로
훔쳐보는
밤바다
바다 끝
마른 귀속에 흐느끼는
파도 소리.
담배
김상곤
아직도 담배를 피우십니까? 모임에 나가서 어쩌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면 주변사람들이 담배 연기를 피해가며 하는 말이다. 적어도 우리들의 세대인 50~60대들은 확실히 담배를 끊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웰빙이다 뭐다 하면서 언제부턴가 건강을 생활의 제일로 삼고 있는 실정이니 4000여 종이나 되는 발암물질과 독성화학물질이 들어 있다는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를 좋아 할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담배 소비가 크게 줄었다는 통계는 보지 못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일이다. 우리 세대들은 담배에 대한 추억이 어느 세대들보다도 많다. 농번사회에서 아이티 사회까지 급속한 사회변화를 걸친 세대고 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의 놋쇠 재떨이에 긴 담뱃대 두드리는 소리에 아침잠을 깨고 어른들의 한복 허리춤에 꽂고 다니던 담뱃대를 보면서 자랐다.
성년이 되면 의래 담배를 피워야 격이 갖춰지고 담뱃대의 길이에 따라 그 사람의 성분을 구분하였으니, 그래서 명절이나 어쩌다 친지 집을 방문할 때는 풍년초 한 봉지를 사 들고 가는 것이 큰 선물이었던 어렵고 가난한 시절도 꺾었다. 육이오 사변 이후에는 양담배가 유행하여 양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심벌이 되었고 적어도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했다.
담배를 배우기 위해 동네 사랑방에서 하늘이 빙빙 돌고 기침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찬물로 달래가며 담배를 피워대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진짜 담배를 배운 곳은 군대에서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그 진가도 가장 높게 발휘한 곳이다. 하루에 배급되는 7가지의 화랑담배, 그 맛은 어느 담배 맛보다도 깊고 달콤하다. 이런 화랑담배를, 군에서 유일한 기호품인 이 화랑담배를 동료에게 몽땅 줘버리기에는 너무 아쉬운 노릇이었다. 야외 교장에서 한 시간의 고된 훈련을 마친 10분의 휴식은 화랑담배의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는 정말 몰랐던 부모님의 마음도 애인의 모습도 친구도 모두 연기 속으로 왔다 간다. 이 시간대만큼은 정말 효자고 착한 애인이고 친구다. 이런 시간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나는 이때 화랑담배를 한 가지씩 빼어 물었다. 이때 버릇이 지금까지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되고 있으니 담배 버릇은 정말 고치기 어려운가 보다.
제대를 하고 흐느적거리든 시절, 찌그럭거리는 낡은 목조건물 계단위의 옥탑방, 30촉짜리 알전구가 더 잘 어울리는 서까래 밑의 좁은 공간을 온통 담배연기로 안개 낀 적막한 항구처럼 채워가며 절망과 실의의 영혼을 달래기도 했다.
라면 하나로 하루를 견디는 공복의 아련하고도 아득함은 서까래 밑에 줄이라도 묶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당장 이 고난의 세상을 떠나고 싶은 유혹의 순간들이었다. 이럴 때면 또 빼어드는 담배. 허기진 창자를 달래며 천정을 향해 내 품는 담배연기, 천정은 왜 그렇게 높기만 했을까.
담배 갑 속의 담배 개비를 헤아리며 그 담배가 다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 같은 아픈 삶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를 괴롭혔으니.
큰 돈뭉치나 되는 듯이, 이삿짐의 전부인 책 뭉치를 늘어놓고 기껏 베게형세밖에 못하는 것들이 나를 조롱하고 있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의 지치고 힘든 삶의 유일한 위안은 한대의 담배였다.
지금도 뭔가를 꿈꾸듯 담배연기를 내 품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은 추억과 고독으로의 짧은 시간 속의 긴 여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담배를 왜 의학적 측면세서만 다루는지, 심오한 철학적 의미와 정신적 건강의 의미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것도 지나친 물질문명의 소산이 아닐까?
담배를 놓고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으로 저울질을 한다면 몇 개비 정도까지가 평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의학적인 측면에서만 볼 때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이다. 담배연기만 맡아도 나쁘다는 판에 저울 운운하는 자체가 웃기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문명 쪽에서 보면 그와는 다르다 정신문명 다음에 물질문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군에서 화랑담배를 배급한 하루 7개비의 담배가 평형을 이루는 선이 아닐까. 아마도 지금은 아니지만 군에서 담배를 하루 7개비씩 배급했을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하루 3개비의 담배를 넘기는 일이 별로 없으니 정신문명 쪽으로 많이 넘어가 있다고 봐야 될 것 같다. 이는 담배를 피우는 나의 변명이다.
동반자
김종태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세계환경문학 상임이사. 국제펜클럽대구지역위원회 감사.
그대 끝닿지 않는 강물되어 흐를 적에
하나의 돛배되어 그대 물살에 실리어
유연한 몸짓따라 한몸되어 흐르리라
그대 깊은 산속 옹달샘으로 솟아날 때
우람한 숲이 되고 바위틈 광천수되어
천연생수 잇대는 공급원이 되리라
그대 탐스런 꽃망울로 피어날 때
벌나비되어 그대 꿀샘에 머물었다가
우리 생명의 씨알을 엉글게 하리라
그대 완숙한 보름달로 솟아오를 때
달무리 태를 두른 그대 버팀목되어
영원을 한 결로 지키는 동반자되리라.
가을 2
최경화
시인, 밀양문인협회 회장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
고운 빛깔 시샘하듯
서로 유혹하며
아름다움 발산하는
나무속 수액과 진액을
뽑아내어 아낌없이 헌신하는
사랑 있기에
보는 눈길 끌어당겨
발길 멈추게 하나
인간의 사랑도 정열이 불탈 때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글거리는 황금빛 잎새
사계절 품지 못하기에
더 노랗게
더 빨갛게
불태우고 있나
별을 닮은 아이들아!
김희애
시인, 정선문인협회
참 곱구나.
어디서 그렇게 영롱한 눈빛을
선물 받았니.
하늘에서
아님
요람에서....
눈이 시리도록
매번 봐도
또 보고 싶구나.
어린 풀잎처럼 청순한
동심들아,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참 아름답단다.
세상은 너희들을 닮았단다.
고개들어
먼 하늘과, 산과 강, 날으는 새
밤하늘에 별과 달, 그리고 꽃을 보아라.
참 아름답지 않니,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고
배워서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아야 하지 않겠니.
별을 닮아 반짝이고
은하를 닮아 눈이 부시는데
어른이 되어
너희들의 모습을 보니
어릴적 해지는 줄 모르고
동산에서 놀다가
친구랑 풀숲에 누워 바라보던
그 초롱초롱하던 별들이 생각난단다.
지금 이렇게 나이가 들어
마음이 허전할 때도
보이지 않는 별들이
어둔 구름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단다.
어른이 된 지금
별 바라본지가 까마득한 것 같구나
어린시절엔 애써 올려다 보지 않아도
머리 위로 쏟아 졌었는데...
이젠 머리올려 찾아야 하니...
세상의 상념들로
물들어 버린 내가
그별 가운데 보인다.
탄광마을 아이들
성희직
시인, 태백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바람결에 날려 온 민들레 민들레홀씨처럼
낯선 이곳 탄광촌
아버지 따라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아온 게 언제였지 아이야
그때가 생각나니 아이들아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만나고 헤어진 많은 친구들
정겨움과 아쉬운 시간들 속에
그래도 너희들 이렇게 자랐구나
너희들도 이제는 많은 꿈을 가졌구나
민들레처럼 너 고운 웃음의 아이야
민들레꽃처럼 마음도 어여쁜 탄광마을 아이들아
또 다시 시간이 가고 세월 흐르면
너희도 너희들도 새로운 꿈을 위해 날아 가겠구나
세상에 가득가득 희망을 심겠구나, 민들레 홀씨처럼
햇살이 따사롭고
봄바람도 싱그러운 찬란한 어느 봄날
세상은 온통 꽃 사태 나겠네
탄광마을에서 날아간
너희 어여쁜 민들레, 민들레홀씨들로
지는 꽃
임정선
시인, 정선문인협회
나는 지금
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뭇거뭇 검버섯 피어
서럽게 뚝뚝 떨어지는 꽃잎
찢어진 상처 붉은 핏자욱
자리에 맺힌 결정체
응고된 기억
나는 지금
떨어지는 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 아득히 사라지고
그 자리
기억의 결정체로부터
복제되는
너는
영속하는
스러지지 않는
불멸의
지는 꽃은 아름답다
눈물겹게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
약속된
천년의 소리
최법순
건국대 국문과 졸업 <한국수필>로 문단 데뷔
시집 :1994 강과 바람의 노래-예당, 수필집: 아침무지개가 말을 할 때-대림기획. 가뭄진 땅에도 비는 내리는가-예당
아득히 멀리
천년의 세월
고요히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네.
긴_억겁에 가두어 놓은
천년의 소리
한민족의 혼
한 때는 울음이 되고
한 때는 웃음이 되고
정선,
그것은 감동이었네.
태풍의 아픔을 날려보낸
순결하고
깨끗하고
숭고한
정선인 들의 의지였네.
온 우주에
광명을 받고
우렁차게 부르는
환희의 노래여!
보라,
이 눈부신
정선의 순결함을 ....
이것은
절대의 표백인 것을
새벽을 부르는
정선인들이여!
뜨거운 정열위에
새벽은 올 것 인즉
밝혀 든 햇불들은
정선인의 표상이라.
순결한 인정들이
높이든 깃발은
누구도 범하지 못할
뜨거움으로 승화 되리.
진실과
참됨과
옳음이
죽엄되어 뒹구는 이시대에
정선인들의
뜨거운 노래는
얼어붙은 온누리를 녹이리니
여기,
한민족의 뜨거운 노래가 있어
바람을 타고
세월을 넘어
푸르름이 숨쉬는 곳으로
......
푸른 종소리 되어 울려 퍼진다.
정선 민초들의
고운 가슴을 담고
순결한 마음을 담고
나도 한 울림의
소리가 되어
나도 한줌의
혼이 되어
천년의 세월속으로
날아간다.
늦가을 밤 툇마루에 포개 앉아
임미나
시인, 정선문인협회
매운 듯 구수한 장작내음 달 따라 이우는 밤
마른 낙엽들 수런거리게 둔 오랜 툇마루에
홑이불 두르고 포개 앉아 너랑 헤아리고픈 것 있느니
까망 마음에도
꺼진 하늘에도
돌아앉은 형광 빛 그림자에도
그 밤에 그 어둠들이 스스로 켜 둔 것
보듬는 이들의 심지에 당겨지는 것
바라기하는 사람들의 길에 이미 환한 거
그가 비호하는 창호로 잠들었다가
튼 동 머금은 이슬 길에 하루를 열어 놓고
풍경 싱그런 아침대야가 처음 길어 올린 몸가짐으로
가파르나 등 푸른 저 산야에 나가 열심히 햇살 밥 짓느니
빛과 그림자로 팔랑거리는 그늘아래 물러앉아도 보다
저물녘 반짝임과 지저귐과 내음 여울지는 강가를 휘돌아 와
지는 노을의 시간을 오순도순 아궁이에 지피느니
다시 찰진 밤인가
어쩌다 캄캄하기만 할지라도
어딘가에서 반짝일 것들을 네 얼굴에서 만지고 싶나니라
21세기와 詩낭송의 효용성
피기춘 시낭송가. 관동대 시낭송반 강사
Ⅰ. 글머리
모름지기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시가 살아 숨 쉬는 나라, 세계인의 유행과 패션을 창조하는 낭만과 예술의 혼이 살아있는 프랑스’ 한번쯤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해 전, 모 중앙 신문사가 서울권 4개 대학교의 국문과 재학생 2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바 국내에서 발간되는 정기적인 문예지를 구독하여 읽는다는 응답자가 10% 에 불과한 점은 대학의 제도권 문학교육과 문학현장 사이에 커다란 괴리감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국내에서 발행되는 각종 문예지는 300여종이 넘지만 문학을 전공하는 미래의 문학도들에게 있어 문예지와 너무나 동떨어진 이질감을 좁힐 수 있는 방안의 모색으로는 대학의 문학교육과정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독서의 생활화를 이끌어 가는 지속적인 반복학습이 절실히 요구된다.
일단, 문학과 독자와의 소통문제는 오랜 논쟁거리로 논의가 있어 왔지만, 대다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이 시대의 문학 환경을 일컬어문학의 위기“인문학의 위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독창적 모국어인 ‘한글’이 창제된 지 560돌을 맞았다. 75억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는 약 6500 ~6800여개에 이르며 이중 한글은 12번째의 언어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28개의 자모를 가지고 11172개의 음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어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조선어교육 폐지와 1940년 2월 창씨개명, 또 같은 해 8월에는 동아․조선일보 폐간, 1941년 4월 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 폐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등 참으로 수난의 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리의 선배 문인들은 언어의 혼이 빛나는 창작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자랑스럽게도 빛나는 문학의 장르를 접할 수 있다.
비록 우리의 현대시문학사에 있어 이백(李百, 701~762)과 두보(杜甫, 712~770)같은 시인과 비견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나름대로 국민이 사랑하고 애송하여 할 순수서정시가 봇물처럼 쏟아내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수많은 시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지에 비정한 21세기에 몸담고 있는 현대인들은 피폐하고 황폐화되어 가는 영혼을 보다 맑고 아름답게 정화하기 위하여 정신문화를 밝혀주는 시낭송을 그 하나의 인자(因子)로 접목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 그리고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절로 읊조려지는 계절을 맞고 있다. 새삼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들먹이지 아니 하더라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땅의 수많은 시인들의 혼이 담긴 詩를 사랑하고 애송하는 사회적 문화풍토가 새롭게 조명되고 정착되도록 각 문화예술 단체의 적극적인 도움과 실제적인 협조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육기관에서의 시낭송 교육은 가장 절실한 희망 사항이다
하나의 실예이지만,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봄날은 전통적으로 시와 연애의 계절이다.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시낭송 축제는 프랑스인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는 절대적 가치관을 형성한다. 프랑스의 봄은 시와 관련된 시낭송회, 시화전, 시 음악회 등 다양한 주제로 8,000여개의 시의 축제가 우리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제 우리사회도 이 같은 시의 문화가 뿌리내려 삶의 동반자로 거듭나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정신기후와 문화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미국의 뉴욕 항에 우뚝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 주춧돌 동판에는 미국의 시인 <에마 라자루스>의 감동적 시가 새겨져 있다 ‘고단하고 가난한 자들이여, 자유로이 숨쉬고자 하는 군중이여, 내게로 오라’. 이제는 시를 노래하는 시대이다. 언론에 의하면 서울에 있는 동도중학교는 1학년 때부터 매주 한편 꼴로 시를 암송하여 졸업 때까지 모두 100편의 시를 외우게 하고 있으며 이 같은 효과는 졸업생의 80%가 100편의 시를 암송한다고 한다. 참으로 기쁘고 반가운 일이며 박수를 보낼 학습지도이다. 청소년들의 책상머리에 항시 손때 묻은 한글사전이 놓아져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하는 시낭송문화가 이 땅위에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기원하며 시낭송의 이론과 실제에 대하여 기술해 보기로 한다
Ⅱ. 시낭송과 문학적 기능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시를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했던 희랍인들은 철학을 남겼지만, 그리스 의상을 빌려 입은 로마는 돈과 노예와 권력을 선호하여서 인류의 역사에 폐허만 남겼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기던 민족이다. 일단, 시공간을 압축하여 접근하여 보면 우리의 현대적인 시낭송회는 지난 1974년 4월 서울의 공간 소극장에서 시작된 ‘공간 시낭송회’ 일 것이다. 당시 이 단체의 멤버로는 구상․박희진․성찬경․ 조정권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현재 국내에는 ‘재능시낭송회’를 비롯하여 ‘보리수 낭송회’, ‘인사동 낭송회’, ‘남산시낭송회’, ‘우이시낭송회’ 등 서울권의 시낭송회와 강원도내의 춘천 ‘수향시낭송회’, 속초의 ‘물소리낭송회’, 강릉의 ‘재능시낭송회’와 ‘해람시낭송회’, 동해의 ‘어머니 시낭송회’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낭송 동아리가 60여개에 이르고 있다.
근간에 시낭송문화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된 것은 1997년에 작고한 김수남 前 소년한국일보 사장과 현재 재능시낭송협회 김성우 고문이 지난 1991년 소년한국일보와 재능교육 공동 주최로 ‘전국 재능 시 낭송대회’를 개최한 것이 시낭송의 근간이다. 현재 전국에 9개 지회로 구성되어 현재까지 350여명의 시낭송가를 배출한 재능시낭송협회의 문학적 공적은 매우 크다고 본다. 강릉과 영동권을 중심으로 강원도 전역에 시낭송 바람을 불러온 것도 재능시낭송협회 강원지회원들의 활발한 시낭송활동의 결과임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지난 2004년 3월에 전국 대학에서는 최초로 강릉의 관동대 평생교육원에 ‘시낭송반’이 개설되어 13주 과정으로 이론과 실기를 배우는 수강생은 25명 정원으로 현재 6기생이 수업을 청강하고 있으며 이미 수료생 중에는 재능시낭송대회에서 배출된 낭송가를 비롯하여 박인환 시인 추모 시낭송대회 최우수, 심연수 시인 선양 시낭송대회 최우수, 허난설헌 시낭송대회 최우수를 비롯하여 도내와 전국적으로 개최된 각종 시낭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어 시낭송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고조되는 현실이다.
이와 같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바른 언어가 상실되고 모국어가 파괴되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수많은 외래어․은어․비속어 및 외국어와의 합성어, 지나친 줄임말, 어미 변형의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다. 특히 지상파 방송을 통한 비속어는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말과 글을 해치는 장애가 되고 있다. 아름답고 올바른 언어는 우리의 생명이다. 무엇보다도 시를 쓰고 시를 낭송하는 이들은 이같이 모국어 파괴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불어 우리말과 글을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치고 전달하는 가장 큰 효과 중 하나가 바로 시낭송이다. 서울대의 경우 약대와 공대에서 학생들의 글쓰기 기초능력을 높여 주기 위해 글쓰기 강좌를 열어 의무적으로 이수토록 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바른 글을 쓰지 못하면 바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시낭송은 소리예술이다.
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운율과 음률의 흐름에 따라 감동을 전하는 울림의 예술이다. 시낭송은 문자와 언어가 합친 종합예술이다. 시낭송은 시를 읽는 것이 아니고 외워서 소리로 연출하는 시의 확대 재생산 기능이다. 그러므로 시낭송은 시를 이해하고 시의 향상과 함께 언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함께 일깨워주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낭송은 우리의 거친 언어를 순화시켜 주고, 문장력의 향상력과 함께 아름다운 정신적 정서를 가져올 뿐 아니라 무대공포증과 대인공포증을 해소하고 우울증을 치료하고 폭넓은 대인관계와 사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시낭송 문화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혁명이다. 독창적이고 감동적이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 장르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시낭송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막연히 시를 보고 읽거나 암송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극을 비롯하여 낭송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의 몸짓, 음악과 노래, 춤, 그림 등 다양한 파트너를 선정하여 때와 장소에 필요한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선한 문화이다. 시낭송은 시를 ‘읽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단순히 시를 읽을 때와 다양한 형식을 가미하여 전달하는 낭송을 들을 때의 청중의 정서적 반응은 매우 다르다.
최근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역사를 찾는 젊은이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대학교정에서 ‘백일장’이나 ‘시낭송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기이한 일이 되어있다. 낙엽이 떨어지는 대학의 교정 벤치에 앉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읊조리는 문학생을 보는 것은 이제 꿈같은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미국 시카코 대학교의 학칙은 고전 100권을 읽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왠지 그들의 학칙이 부럽고 우리에게는 아련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현재 우리의 문단 또한 여러 측면에서 독자들과 멀어지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를 살펴보면 지난 2002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이 창간호 기념으로 현역 시인 300명을 대상으로 ‘왜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시인들 스스로가 ‘시가 너무 어려워서 독자들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점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요즘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를 접하고 있다. 현대시라는 명제아래 발표되는 시들이 너무나 어렵기에 독자들이 접근을 못한다는 사실을 시인들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야 할 것이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를 통하여 감동을 주고 웃음을 주고 철학과 인생관을 전달하는 시를 써야 한다. 국민의 애송시로 선정된 김춘수의 ‘꽃’ 윤동주의 ‘서시’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소월의 <진달래 꽃>, 이형기의 <낙화>, 김수영의 <풀>, 정지용의 <향수> 등 주옥같은 시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시는 영혼의 갈증을 달래주는 생명수와 같은 존재이기에 산업사회로 빠른 물줄기에 휩쓸려 가는 피폐한 영혼들은 더욱 정겨운 시를 그리워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Ⅲ. 청중과 함께 하는 시낭송회
각종 문학세미나와 시낭송회는 문학인과 낭송가 외 일부 특정인만 참석하는 행사로 이미 전락한지 오래다. 또한 어떤 문학행사의 보조역할로 늘 만족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청중과 호흡하고 함께 공유하는 전문적인 시낭송회가 절박한 때다. 청중과 함께 하는 시낭송회가 되자면 무엇보다도 시낭송회를 위한 철저하고 완벽한 기획과 연출이 요구된다. 시낭송은 하나의 언어공연이고 퍼포먼스이다. 단조로운 시낭송의 기획과 연출은 청중에게 감동을 전하기엔 역부족이다. 시낭송을 위해서는 보조 수단이 필수적이다. 시낭송에 맞는 먼저 시낭송회 장소와 시낭송가의 용모복장, 음향의 선택과 무대장치 등이다. 또한 낭송작품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시낭송을 듣는 청중의 부류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낭송시를 선정하여야 한다.
시낭송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시에 있다. 어떤 시를 낭송할 것인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더 나아가 낭송시와 낭송가의 목소리 및 분위기 연출이 한 박자를 이루고 있는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시낭송이라고 해서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만 연출해서도 안 된다. 낭송순서 사이에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특별순서를 마련하고 또한 분위기 변화를 위한 낭송시 선정도 검토하여야한다.
일반적으로 구체적인 그 양상을 고찰해 볼 때, 과거의 시낭송의 형태는 DJ나 성우, 아나운서, 유명 연예인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는 시낭송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시낭송의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현상이었다. 앞으로 시낭송문화가 더욱 발전하고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시인 중심으로 개최되어왔던 시낭독회가 아니라 이제는 전문 시낭송가들이 모든 낭송분야를 이끌어 진정한 시낭송회가 될 수 있어야 한다.
Ⅳ. 우리가 접하는 시낭송의 문제점
시낭송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혹은 초대장을 받고 행사장에 나가보면 시낭송이 아니라 막연하게 시를 읽어 가는 시 읽기를 보는 듯하다. 시낭송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낭송의 사전적 의미는 분명히 ‘시를 또박또박 외워서 밝고 맑은 목소리로 전하는 것이다’ 흔히들 목소리만 좋으면 시낭송을 잘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이것은 큰 착각이다. 낭송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반복되는 연습으로 인하여 생명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시를 창조하지 못하는 낭송은 낭송이 아니다. 또한 시인이라고 해서 시낭송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시낭송의 올바른 이해와 낭송법을 배우지 않고 어정쩡한 분위기로 낭송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듣는 청중에게 민망함을 안겨줄 뿐 아니라 기대를 했던 멋진 이미지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낭송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소화가 없이 낭송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낭송시는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시인이 쓴 시라 하더라도 낭송시로 부적합 시가 많다. 무조건 유명시인의 시라고 해서 아무데서나 낭송을 하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시낭송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시인과 시낭송가는 엄연히 세분되어 전문성이 있는 것이다. 시 낭송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시를 좋아하되 시낭송법을 바르게 배워서 낭송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부끄러운 1등보다 당당한 2등이 났다는 말이 있듯이 어설픈 낭송은 자신의 품위와 인격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낭송은 어디까지나 애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프로의식과 장인정신이 투철하여야하고 눈물겹도록 반복되는 암송훈련이 필요하다. 시낭송은 청중의 마음과 정신세계를 향하여 쏘는 언어의 화살이다. 이제는 시낭송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각 관공서나 문화예술 단체에서는 시낭송 특강을 마련하여 폭 넓은 시낭송의 실체를 알아야 할 것이다. 무턱대고 시낭송을 하겠다고 나서는 작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부끄러운 과제이다. 이 같은 어설픈 시낭송회를 접하는 원인은 시낭송의 올바른 이론과 실제를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낭송가 스스로가 주변에 시낭송법을 알리고 지도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며 전국의 초․중․고교에서는 특별활동 시간이나 동아리 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문예창작과 시낭송을 함께 운영하는 교육적 방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Ⅴ. 결론-시낭송의 실제와 남는 문제
먼저 시낭송을 위해서는 시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낭송시를 고를 때는 문학성이 높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선정하여야 한다. 유명 작고 시인의 시나 원로 또는 중견 시인들의 대표시 또는 널리 알려진 명시를 선정하는 것이 무난하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시 가운데서 작품성과 문학성이 높은 시를 선정하여 낭송하는 것은 더욱 좋은 방법이다. 시낭송을 잘하려면 무엇보다도 시를 사랑해야한다. 생활 속에서 낭송문화를 습관화 하여야한다. 《논어》의 위정 편에서 “시를 삼백 편 읽으면 한마디로 나쁜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시 삼백 편을 외우면서 정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또 외교사절로 나가 잘 응대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지적하였듯이 시낭송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바로 잡는 문학이다. 낭송은 밝고 맑은 목소리로 또랑또랑하게 암송하여 전달하여야 한다.
우리 인체에는 오관(五官) 즉, 눈․귀․입․코․마음과 오감(五感)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이 있다. 낭송문학은 이 모든 것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낭송은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반드시 프로의식이 요구된다. 시낭송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완벽한 암송이 필수이다. 곧장 행사장 즉석에서 시낭송을 하겠다고 자원하는 자들이 나와서 떠듬떠듬 낭송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같은 행위는 시와 시인에게는 물론이요, 시낭송에 대한 무지요, 모독행위이기에 반드시 자제되어야 한다.
시낭송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자신의 음성조절을 위한 발성연습 호흡법, 표준 발음법(자음과 모음, 단모음의 발음, 이중모음의 발음, 음의 길이, 받침의 발음, 음의 동화, 경음화, 음의 첨가 등) 표정, 자세, 음식 등에 대한 끝임 없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특히 시낭송대회를 위한 준비는 더욱 철저해야한다. 무엇보다도 대회에 참가하는 시는 작품성이 높아야 한다. 자신이 선정한 시에 대한 이해와 대회시로 적합한지를 점검하고 시의 낱말이 틀린 곳이 없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가급적 암송시는 너무 짧거나 긴 시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시낭송 표현은 적절한지,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복장, 자세, 표정에서 감점 요인은 없는지를 꼼꼼히 챙겨보아야 한다.
이처럼 시낭송대회를 앞두고 많은 무대 경험과 충분한 연습은 필수적이고 자신감과 함께 반드시 입상하여야 한다는 마음은 비워야 한다. 결론적으로 시낭송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낭송시의 올바른 이해와 함께 시어에 맞는 음률로 고․저, 강․약, 완․급, 장․단의 호흡으로 리듬을 타는 시낭송이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시낭송대회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시낭송대회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재능시낭송대회(소년한국일보․재능문화․한국시인협회 공동주관)’를 비롯하여 ‘한국시낭송대회’(한국시낭송협회 주관)․전국성인시낭송대회(한국시낭송가협회 주관)․글사랑 전국성인시낭송대회(글사랑문학회 주관)․전국시낭송경연대회(포석 조명희 시인 선양, 동양일보 주관)․심연수 시인 선양 전국시낭송대회(심연수 시인 선양위원회․강릉MBC공동주관) 가 현재까지 알려진 큰 대회이다. 특히 시낭송가를 꿈꾸는 이들 중 상당수는 재능시낭송대회를 통하여 ‘시낭송가 증서’를 받기 원하고 있는 것은 시낭송가 증서를 받기까지의 힘겨운 과정과 한국시인협회 등 3개 단체에서 수여하는 인증서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현재 시중에 출간된 시낭송을 위한 참고 도서는 송현,《시낭송 잘 하는 법》(집문당, 1996)과 JEI재능교육,《시낭송 이론과 실제》(2002)․이철호,《낭송(낭독) 문학을 위한 길잡이》(정은문화사, 2004) 등이 있다.
일찍이 러시아의 붉은 광장에 시인 마야콥스키의 시낭송를 듣기 위해 100만 청중이 몰렸다는 일화는 우리의 시낭송 문화를 부끄럽게 한다. 프랑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명시 암송을 시작으로 시낭송 교육이 시작되며 미국민의 구심점은 성조기이다. 성조기를 통하여 애국심을 가르치고 애국심을 길러준다.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성적표 대신 한 편의 시를 선물하는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불란서에서는 정치인이나 경제인, 어느 회의에서 의견 충돌로 회의를 진행할 수 없을 때 누군가가 명시 한 편을 낭송하면 모두가 조용히 감상하며 마음을 정리한 뒤 다시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모국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성립될 때 우리의 청소년들의 정서적 풍요와 문화적 생활이 정착되고 이 사회가 밝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시를 쓰는 자는 시인이지만 그 시의 정신과 감동을 전하는 자는 시낭송가의 몫이다. 시낭송은 21세기를 이끌어갈 책임 있는 문학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인생의 일생을 바꾸어 주듯이 한 편의 시는 우리의 어두운 영혼 속에 가장 아름답고 진실 된 언어를 심어주는 영혼의 음악이다. 시를 죽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를 쓰고 시를 낭송하는 한 사람으로 시낭송 문화가 이 시대를 대변하는 소임을 엄숙히 수행할 것을 다짐하며, 끝으로 ‘2006년 정선 도원 문화축전’의 무궁한 발전을 소망한다.
재미가 수필의 유일한 양념은 아니다
金 鶴 수필가, 전북대 평생교육원 교수
나는 무려 33년이란 세월을 방송사에서 보냈다. 내 인생의 황금기를 방송과 씨름하다 보낸 셈이다. 내가 정년퇴직을 하기 전에는 프로그램 제작자(PD)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시청자에게 공급했지만, 현직에서 물러난 지금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된다. 제작자 시절에는 “이렇게 열성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도 시청자, 당신들이 안 보고 배길 거야?” 하는 오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후배 PD들이여, 내가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어?” 하는 심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을 준다.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방송사에서 PD가 시청자와 실랑이를 하는 것은, 마치 우리 문단에서 수필가(문인)가 독자와 씨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PD는 곧 수필가(문인)요, 시청자는 곧 독자나 같다. 시청자와 독자는 불특정 다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시청자는 전파매체인 텔레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독자는 활자매체인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취향과 기호가 다르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시청자가 바로 책의 독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방송사 PD들은 요즘 엄청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지상파방송인 KBS, MBC, SBS, EBS와의 상호 물고 물리는 시청률경쟁도 벅찬데, 그밖에도 70여 개의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까지 가세하니 피를 말리는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인터넷방송까지 달려들게 되니 PD들의 어려움이 어떻겠는가? 방송계에서 살아남고 자기 몸값을 높이기 위하여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하겠는가?
방송사 PD들에 비하면 수필가들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너무 무사안일의 자세에 빠져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다. 수필가들은 독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더라도 개의치 않고 꿋꿋이 수필가의 길을 가려는 오만(傲慢)에 젖어 있다. 방송사가 불어나면 PD들은 엄청난 경쟁에 시달리게 되는데 반해 문예지와 수필전문지가 불어나면 수필가(문인)들은 오히려 발표지면이 넓어져 경쟁률이 떨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이게 결국 수필의 하향평준화를 부추기는 원흉이 아닌지 모르겠다.
발표지면이 모자라던 옛날에는 작품이 뛰어나야 다음에도, 또 다른 문예지에서도 지면을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수필가는 좋은 수필을 써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의식을 가졌었다. 그게 수필문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 생존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수필가들에게서 그런 헝그리 정신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발표지면의 풍요가 가져다 준 비극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수백 권의 종합문예지와 무려 17가지의 수필전문지에 발표되는 수필을 읽어보면 도토리 키 재기 식의 작품들이 많은 지도 모르겠다. 수필월평을 하는 분들이 군계일학(群鷄一鶴)의 뛰어난 수필을 발견하면 광부가 금광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워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수필은 재미가 없다고들 한다. 수필가들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수필을 쓸 수 있을지 고심하고들 있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다시 텔레비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텔레비전은 대개 해마다 봄․가을 두 번씩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그 이유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활패턴이 달라지는 시청자의 편의를 배려하고, 시청률조사 결과 시청자의 반응이 시원치 않은 프로그램을 없애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그것이 정규 프로그램 개편이고 필요에 따라서 수시로 부분개편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민감한 게 방송사의 편성전략이다.
우리 문단 특히 수필문단에서는 독자를 배려하려는 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적이 과연 있었던가, 아니 그런 발상이라도 해보았던가? 텔레비전 PD처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멋대로 지면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데 어느 수필가인들 사서 그런 고민을 하려고 하겠는가?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보면 뉴스, 드라마, 쇼, 교양프로그램, 퀴즈, 개그프로그램,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하다. 그런 유형의 프로그램들을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편성하여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시청자의 취향과 선호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데 방송사 편성책임자들의 고민이 있다. 뉴스를 좋아하는 시청자,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 퀴즈를 좋아하는 시청자, 개그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 스포츠를 좋아하는 시청자……. 이들 시청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필요’를 어떻게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신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의 세계다.
수필(문학)의 독자도 다를 바 없을 줄 안다. 서정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서사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기쁜 내용의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슬픈 내용의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재미있는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담백한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 이처럼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독자들의 비위를 어떻게 한꺼번에 맞출 수 있겠는가? 일류 요리사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방송사에서는 날마다 시청률을 조사한다. 증권시장의 주식시세처럼 시청률도 날마다 변하고 그 결과에 따라 PD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그런데 수필(문학)문단에서는 방송사처럼 독자의 반응을 조사한 적이 있던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런 애독자 실태조사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먹구구식이다. 이제 우리 문단에서도 방송사들처럼 독자에 대한 설문조사 등 과학적인 접근을 꾀해볼 일이려니 싶다.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나 개그프로그램이 비교적 재미가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시청자의 요구가 다양한데 재미를 위하여 모든 프로그램을 개그프로그램이나 드라마로만 편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기 개그맨이나 탤런트를 발굴하여 다른 교양프로그램이나 오락 프로그램의 MC를 맡기고, 프로그램 안에 개그맨들이 잠깐 출연하는 코너를 만들기도 한다. 수필에서도 텔레비전의 이런 방식을 도입해보면 좋을 듯싶다. 재미있는 소재를 만나면 한 편의 재미있는 수필로 만들고, 그렇지 못하면 수필의 한 단락이나 한 문장이라도 재미있는 표현기교를 살려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면 좋겠다는 뜻이다.
수필가들이 쓰는 모든 수필에서 다 재미만을 요구해서도 안 될 줄 안다. 수필의 독자들이 모두 수필에서 재미만을 요구하지도 않고, 어느 제재나 다 재미라는 양념을 넣어 수필이라는 요리를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독자가 수필에서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재미는 물론이요, 유익한 정보, 풍성한 화제, 지적 만족을 주는 교양, 즐거움을 주는 오락, 깨달음과 기쁨을 주는 퀴즈 등 다양할 것이다.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시청자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듯이, 수필 한 작품에서 독자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킬 수도 없다.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생활주변에서 재미있는 소재를 찾고, 재미있는 표현기법을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수필가가 쓰는 수필마다 재미있는 수필일 수는 없지만 훗날 한 권의 수필집을 묶을 때에는 재미있는 수필이 사이사이에 끼도록 편집하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 될 것이다.
메밥과 오곡밥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제삿날 제사상에 올릴 때는 흰쌀로 지은 메밥이어야 한다. 아무리 오곡밥이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고 영양가가 높다고 해도 제사상에 올릴 수는 없다. 용도와 필요에 따라 내용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에서의 재미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수필에서 재미만이 꼭 필요한 양념은 아니다.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시원하지만 담백한 토란국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그 맛이 어떻게 되겠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가수나 탤런트, 개그맨들이 뒤섞여 자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려 노력하듯이 수필에서도 재미 외에도 다채로운 양념들이 저마다 제 구실을 할 때 수필의 참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재미는 수필이 요구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세 치 혓바닥으로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을 느끼며 살지 않던가? 수필의 맛도 그처럼 다양해야 할 것이다.
나의 소설작법
양승본 소설가,경기 서원고 교장
1. 작품을 쓰게 된 동기
내가 작품을 쓰게된 동기는 여러 면이 있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나는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첫째로 나는 한국전쟁의 피해자로써 피난생활을 하는 등 생활 자체가 고행이었으며 외로웠다. 그 고행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부하고 싶다. 독서 량이 많다보니 자연히 그런 작품세계 속에 빠져들게 되었으며 나도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어 습작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통하여 작가가 된 것이다.
둘째로 나는 처음 나가게 된 백일장에서 입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입상이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셋째로 나는 작품을 쓴다는 그 자체가 즐거움을 느낀다는 데에 있다. 작품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무엇인가 성취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없는 상황들이 작품 속에서는 이루어진다는 대리만족감을 갖게 된다는 것도 작품을 쓰게 된 동기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가를 다음에 설명 하겠다.
2. 읽기
나는 문학에 뜻을 둔 이래 첫 시작을 읽기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를 읽고 마음에 둔 시를 200여편 정도 달달 외웠다. 소설의 경우 좋은 문장이나 표현법을 역시 시처럼 외운 다음에 내가 쓰는 문장과 어떤 점이 다른가를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시간이 있는 대로 많은 작품을 읽었다. 일정한 량의 독서가 되자 원고지에 문장을 써보는 습관을 길렀다. 쓰기 시작했을 경우에는 독서와 쓰기의 비율을 약 5:1정도로 유지했다.
처음에는 책이란 책을 눈에 띄는 대로, 구할 수 있는 대로 마구 읽었으나 나중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워 읽었다.
가. 소설의 종류별로는
(1) 무명작가 소설을 먼저 읽었다.
(2) 국내외에 알려진 소설을 읽었다.
(3) 평론가들에 의해 명작으로 알려진 소설들을 읽었다.
(4) 기타 : 손에 잡히는 되로 소설이라면 무조건 읽었다.
나. 소설의 시대별로는
(1) 고전소설에서 현대소설로 읽었다.
(2) 동양소설에서 서양소설로 시대를 찾아가면서 읽었다.
다. 독서의 방법별로는
(1) 유명작가의 대표작을 읽으면서 그 줄거리를 메모하고 특히 창안적인 문장이나 그 작가의 특이한 화법이나 구사력을 정리하면서 읽었다.
(2) 思潮別에 따른 대표작을 읽되 이 경우에는 반드시 독후감을 쓴 후에 그 작품의 상징성을 생각해 보았다.
3. 집필의 방법
가. 主題를 選定 : 먼저 主題를 選定해 보았다.
나. 제목 : 구체적인 제목을 생각해 보았다.
다. 내용에 맞는 줄거리 : 주제와 제목이 정해지면 그 주제나 내용에 맞는 줄거리에 대하여 대략적인 계획을 짜보았다.
라. 資料準備 : 주제, 제목, 줄거리에 대한 계획이 構想되면 다음으로 資料準備에 들어갔다.
(1) 먼저 필요한 자료를 노트에 기록한 다음 자료를 찾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도서관을 찾는다거나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또는 현장체험을 위해 여행을 한다거나 그리고 소설작성에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필요에 따라 사진을 찍고 기록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2)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소설의 길이를 결정했다. 즉 단편으로 집필할 것인가, 중편이나 장편으로 할 것인가 막상 집필준비를 하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도무지 소설다운 소설로 곤란 할 때는 콩트나 다른 장르를 생각하기도 하면서 집필할 종류를 결정했다.
(3) 위와 같이 결정이 되면 다음은 서술방법을 선택했다. 앞으로 집필할 소설작품을 1인칭소설로 할 것인가. 3인칭 소설로 할 것인가 혹은 다른 어떤 특정한 서술방법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했다.
마. 최종적인 構想 : 최종적인 構想을 해보았다. 지금까지 계획한 것을 다시 한 번 소설로 구상해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내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구체적 사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 主題의 재검토 - 변경의 경우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계획을 다시 한다. 그러나 확정이 된 경우에는 具體的인 構想으로 들어가서 집필에 필요한 세부계획을 세운다.
(2) 줄거리에 대한 構成 - 여기서는 소설의 구성을 계획하여 대강을 작성하는 데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 도표화한 방법
(나) 서술식의 메모적인 방법
(다) 나무형에 의한 방법
(가)(나)(다) 중 택일을 한 다음 그 내용을 구체화하여 소설의 대강을 완성하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소설의 뼈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소설의 성격에 대한 決定
(가) 행동소설과 심리소설의 문제 : 등장인물, 특히 主人公을 행동자체나, 사건자체에 둘 것인가(행동소설), 性格이나, 심리의 움직임에 둘 것인가(심리소설)을 결정한다.
(나) 소설을 집필할 때 시간 중심으로 할 것인가(극적소설), 空間중심으로 構成할 것인가(성격소설)를 결정한다.
(4) 構成要素에 대한 問題 : 소설의 4가지 구성요소인 主題, 人物, 事件, 場所(환경)간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관련지어 집필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특히 이 항목에서는 시대적, 장소적, 공간적, 인간적 환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주의하여 결정한다.
(5) 클라이맥스에 대한 관계 : 소설의 결정을 어디에서 어떻게 서술하고 처리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다.
(6) 사건진행의 형식문제 : 사건진행의 형식(모양이나 틀, 또는 방법상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며 진행속도는 어느 부분에서 완만하게 또는 템포가 빠르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되 다음이 형식에 유의한다.
(가) 순서대로 서술해 나가는 형식 : 과거서술 → 현재서술 → 미래서술 = 과거의 내용을 서술한 다음 현재의 상황을 기술하고 이어서 미래의 관계를 서술하는 방법.
(나) 순서를 바꾸어서 서술해 나가는 형식 : 미래서술 → 현재서술 → 과거서술 = 미래의 이야기를 먼저 기술한 다음 현재의 내용을 서술하고 나서 과거의 내용을 기록하는 방법.
(다) 위의 (가)와 (나)를 혼합한 서술 형식 : 과거서술 → 미래서술 → 현재서술 =과거의 내용을 먼저 서술한 다음 미래로 돌아가서 서술을 하고 다시 현재의 상황전개를 서술해 나가는 방법. 또는 미래서술 → 과거서술 → 현재서술 = 미래의 이야기를 먼저 서술하고 이어서 과거의 내용을 기술한 다음 계속해서 현재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
(7) 事件의 構成에 대한 문제 : 소설 전반에 나타나는 사건의 구성문제를 어떻게 처리해나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문제인데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서술을 택했다.
(가) 단순한 서술방식 :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집약을 하면서 그 집약된 내용이나 형식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는 방법이다.
(나) 복잡한 사건, 형식을 다루는 서술방식 : 사건의 성격의 형성에 있어서나 생활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문제를 포함하여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모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잇도록 한다. 그러므로 인물들의 생활감정이 微妙하며 동시에 인간의 心理 狀態가 복잡성을 띄게 된다. 아울러 모든 사건의 전개가 구체성을 띈 채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다) 우연한 내용이나 성격을 다루는 것 : 소설의 내용이 일정한 목적이나 계획에서 벗어나 운명적인 우연성을 띄면서 전개되는 구성법이다.
(라) 각본처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소설 : 사건의 전개나 등장하는 사건이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根據하여 처리되고 내용 자체가 진실성을 띄도록 부각을 시키는 구성법이다.
(마)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개되는 發展的인 구성의 소설 :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이 변화되면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성법으로 반드시 소설이 나쁜 방향에서 좋은 방향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미개적인 것에서 문명적인 것으로 전개할 필요는 없으며 작가의 구성계획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다.
(바) 逆轉적인 구성방법 : 처음에 나타난 내용전개의 사건의 성격이나 인물들의 행동이 惡에서 善으로 변화되거나 가난에서 富者로 전개되기도 하며 도둑이나 사기군 등에서 경찰이나 검찰로 逆轉되는 과정상의 구성법이다. 특히 절대로 저 사람은 법인이 아니다라는 의식속에서 읽었는데 범인이라거나 성공이 불가능인데 성공했다는 구성법이다.
(사) 伏線적인 구성방법 : 소설속의 사건이 우연적이거나 운명적이 아니라는 것을 일반 독자에게 심어주기 위한 구성법이다. 그러므로 미리 그 사건의 가능성을 은근히 암시하거나 사건전개에 대한 가능성을 暗示하는 方法的인 구성법이다.
(아) 대치나 對照的인 구성방법 : 소설내용에서 또는 전개과정에서 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惡을 등장시키거나 부자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난을 강조하며 양심을 강조하기 위하여 비양심을 강조하는 구성법이다.
(자) 엑센트식이거나 특정적인 것의 强調를 구성하는 법 : 소설위치의 강조문제이다. 예를 들면 3가지의 강조법이 있다.
1) 앞에서의 강조법 : 예를 들면 ‘삼돌이는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라던가 ‘목사장은 가슴에 칼을 맞고 죽어 있었다.’로 시작하는 경우이다.
2) 끝부분에서의 강조법 : 나는 이 강조법을 꽁트의 경우에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소설의 경우에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이용한다.
예를 들면 처음에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서술한 후 나중에 가서 독자들을 상상외로 놀라게 하는 법이다.
3) 中斷式 강조법 : 김선생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서 멈추고 다시 박부장 이야기를 끌어내어 전개하다가 끝에 가서 김선생 이야기를 다시 서술해 나가는 방법이다.
4) 중간과 끝부분의 강조법 : 소설의 중간에서 제 1차적 강조를 하고 나서 다시 마무리를 지을 무렵에 제 2차적 강조를 하는데 특히 1차에서보다 2차에 비중을 더 둔다.
(8) 소설의 人物에 대한 問題
(가) 인물의 모습 : 얼굴모양이나 풍체, 그리고 그 인물에 대한 동작이나 말버릇은 물론 특이한 습관이나 기타 소설의 전개에서 필요로 생각되는 여러 가지 버릇에 대한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인물에 대한 작업이나 신분관계, 또는 인물에 대한 환경, 교육과 취미나 특기, 친구관계와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표정이나 행동 등을 묘사하므로서 독자들에게 무료함을 제거시켜 주는 것이다. 예 → 그녀는 웃을 때마다 덧니가 보였다. 그는 배가 너무 불러서 별명이 배불 둑이었다.
(나) 인물의 性格관계 : 인물의 심리상태나. 그 인물의 氣分, 그리고 등장 인물의 의식구조와 思想, 정신상태 등은 인물의 성격구조상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기에 성격묘사는 소설의 성격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보겠다.
4. 기타
나는 소설을 전개해 나가거나 서술해 나갈 때 다음과 같은 방법에 대하여 특히 신경을 쓴다.
가. 문장에 신경을 쓴다. : 문법, 맞춤법, 환경이나 인물의 성격에 맞는 말의 선택, 표현력, 창안적인 단어나 문장 사용 등등.
나. 초안작성과 검토 : 초안을 작성해서 전체적으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검토해 본다.
다. 제3자에게 소설을 읽혀 본 후 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다.(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할 경우 그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
라. 이상의 방법을 거쳐 내 자신이 최종적으로 검토해 본다.
마. 평상시에는 모든 생활을 소설구성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
바. 소설구성을 위하여 늘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생활한다.
<참고문헌>
김동리외, “소설작법” (서울:청운 출판사, 1965)
탄광시에 나타난 탄광촌 삶에 관한 연구
정연수 시인, 탄전문화 연구소장, 태백문인협회 회장
1. 들어가는 말
문학이 인간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양식이고 보면, 탄광노동에 대한 삶을 기록해 온 탄광시1)에 대한 연구는 곧 한 시대의 산업과 그 산업을 이끌어 온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는 일이다. 탄광은 단일 산업으로 도시가 형성된 탄광지역 공동체, 지하 작업장의 높은 노동 강도와 직업병 등 열악한 노동환경, 농촌이나 도시변두리에서 소외계층이 유입된 인구형성 등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또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 시행 이후 대규모 폐광이 이뤄지면서 대량 실직자 발생과 탄광지역 공동체의 와해 등 커다란 사회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탄광노동과 탄광촌은 우리 나라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탄광시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2) 이 시기는 탄광노동자들이 인권문제나 삶의 질에 의식을 갖는 노동운동 등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이다. 한국 현대시사에 있어서도 노동계급의 논의와 더불어 노동시가 크게 부각된 것도 1980년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1970년대 민중시가 보다 선명한 문학 노선의 노동시로 변주’3)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많은 탄광시가 쏟아지기 시작한데는 국내 문단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1980년대 들면서 많은 시인들이 탄광시 창작 담당층으로 나서기까지는 사북사태 등의 노동운동, 대규모 폐광정책으로 인한 탄광노동자 생활공동체와 도시공동체 붕괴 등으로 인해 탄광현장과 탄광지역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확대된 계기가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학으로 눈을 돌리는 탄광노동자의 의식 진보를 통해 노동자 창작층이 증가한 내적 요인이 무엇보다 크다 하겠다. 이는 탄광시 작품과 창작층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업화의 변화에 대응하는 탄광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실상을 증언하고, 또 석탄산업사의 흐름을 읽어내는 역사의 기록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시문학사에 있어서 노동시는 1980년대에 가장 활발”4)하게 움직였으나, 탄광시는 1990년 들어 가장 활발해진 양상을 보인다.5) 사회적으로 문학적 영역을 크게 확대한 시인들이 석탄합리화로 인한 폐광과 실직, 도시공동체 파괴 등 산업화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취재 창작에 나서면서 탄광문학층을 두텁게 형성한 때문이다. 또한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문학의 수용자이던 탄광지역 주민과 탄광노동자 스스로 창조적 주체가 되어 문학의 현장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지식인이 쓴 노동문학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의 힘에 의해 쓰여진 탄광문학의 대량양산은 진정한 민중문학으로서의 조명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탄광지역의 현실을 드러내려는 창작 활동이 활발한 동안에도, 비평에 있어서 탄광문학은 여전히 소외 영역에 자리했다. 문단의 관심권에서 밀려난 주원인으로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목소리가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지 못한 점이라든가, 상투성과 도식성으로 인한 예술성의 부족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요소들이 결코 탄광시 연구의 당위성을 약화시킬 수는 없다. 석탄산업이 종언을 밝힌 현 시점에서 탄광시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이다. 1980년대에 시작해 1990년대 창작품 양산의 절정을 이루면서 그동안 900여편의 탄광시가 양산된 만큼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연구를 통해 한국 현대문학의 지평을 넓혀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탄광노동자 정일남과 성희직, 탄광노동자 가족 김태수, 탄광촌 주민 김진광, 외부인 이건청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탄광시의 전체적인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막장 체험의 비극성과 그 극복 의지
탄광 노동문제에 있어 임금, 복지, 인권 등의 많은 현안이 대두되지만, 특히 위험한 작업현장과 관련하여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되고 있다. 탄광노동이 안전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많은 탄광시가 죽음에 깊이 접근함으로써 생존을 확인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줄 초상난 광부의 상여틀 꾸미는데도 이골났다
밤새워 다섯 초상집 오가다 보면 새벽이 왔다
젊은 미망인 된 새댁들
봄바람 따라 기차 타고 어디로 떠났던가
-정일남,〈過去〉6)
하룻밤에 다섯 명의 광부 상여틀을 꾸며야 하고, 다섯 초상집을 오가다 밤을 새우는 모습을 통해 석탄을 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영혼이 숨져갔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탄광노동 체험을 지닌 정일남이 자신의 체험을 시로 형상화하면서 광부의 노동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탄광시에서는 죽음과의 친화성 속에서 더욱더 생명에 대한 애착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그 죽음의 절망 속에서는 좌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도 하고, ‘이골’나기도 하면서 절망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이 드러난다.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갱 속에서 죽었는지 헤일 수도 없”(정일남,〈금천교의 기억〉)다는 증언을 통해 석탄을 캐기 위해 많은 목숨이 죽어간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연탄을 보면서 “밤낮을 교대하며/우리시대의 마지막 불씨를/채굴하다 묻힌 광부의/그 마지막 숨결이 타오른다”(정일남,〈연탄〉)며 숨져간 동료 광부를 떠올리기에 이른다.
절망의 밑바닥,
거기 살아서 번쩍이는 잎잎들.
지주로 받쳐진 저 속에서
빠개지는 아픔을 견디면서
쏟아져 나오는 저것들은
어느 세기의 햇살들인가.
붕락된 갱 속에
죽은 광부의 눈빛이
깊이 잠든 지층을 일깨워
비로소 퍼득이는 무리들.
저마다 새로 살아서 열리는 빛
(중략)
순간 무너져 내린 지층
또 어느 세기가 열리는가
새로운 빛의 해변이
닫혀진 벽 저편에서
일제히 쏟아져 밀려온다
실로 누가 태어나는 소리,
어둠과 어둠이 부딪쳐서
빛이 굴절하는 소리
개벽이 오는 소리.
-정일남,〈採炭幕場〉일부7)
밝은 빛에 대한 욕구는 어둠의 이미지에 대한 거부로써 시작된다. 이는 빛이 없는 상태인 어둠에 싸여있는 자기 존재를 거부하려는 내면적 충동이기도 하다. 빛을 찾아 나서는 행위는 새로운 삶을 찾아가려는 의식으로, 가난과 죽음이 늘 속박하고 있는 현실의 부정적인 어둠을 인식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어둠을 거부하고 나선다. 탄광시에 나타나는 거부는 대립이나 투쟁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체념을 거친 다음 빛의 세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드러낸다. 빛에 대한 욕망은 어둠의 강렬한 부정으로 표상됨으로써 결국 빛의 획득은 자기승화를 향하는 한 과정이 된다. 알 수 없는 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막막함과 ‘절망의 밑바닥’이라는 삶에 대한 절망감을 극복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햇살을 찾아 나서고 있다. “빛이 굴절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이 ‘개벽’이라고 믿을 만큼 ‘빛’에 대한 갈망은 강하다.
석탄은 쉽게 생성되지도 않으며, 채탄 또한 쉽게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다.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절망의 밑바닥”에서 형성된 것이며, “지주로 받쳐진 저 속에서/빠개진 아픔을 견디면서/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결국 오랜 절망과 고통의 세월을 견디었기에 “햇살”이 되는 경지에 다다른다. 그 빛을 얻기까지 “붕락된 갱 속에/죽은 광부의 눈빛이/깊이 잠든 지층을 일깨워”주는 절차가 있었으며, 비로소 “새로 살아서 열리는 빛”이 되고 있다.
“어둠과 어둠이 부딪쳐서/빛이 굴절하는 소리/개벽이 오는 소리”에서 절망이 절망을 만나 희망의 되는 구조를 잘 보여준다. “어둠과 어둠이 부딪쳐서” 만드는 빛은 절망과 절망이 부딪쳐서 희망을 만드는 탄광노동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절망하면 대담해지는 법’이라는 니이체의 철학을 한 차원 뛰어넘어서는 절망의 미학을 탄광시는 보여주고 있다. 절망이 만들어 내는 미학은 죽음의 공간인 막장에서 희망의 공간인 삶으로의 도약을 찾아내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캄캄한 지층 틈 사이에서
내가 만난 고생대의 아침이
처음으로 열린다
죽은 광부가 매몰된 자리에서
비로소 찾아낸 광맥
캡램프의 불빛에
매몰된 고생대의 숲이 열린다
- 정일남,〈어느 갱 속에서〉8)
“어둠은 불씨의 주머니일 뿐/절망의 썩은 새끼는 아니었다”(정일남,〈광부〉)에서 확인되듯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시인은 “죽은 광부가 매몰된 자리에서/비로소 찾아낸 광맥”(〈어느 갱 속에서〉)이라는 의식에까지 도달한다. 죽음 뒤의 빛, 고통 뒤의 환희를 통해 절망의 현실 속에서 더 절망함으로써 절망할 것조차 없이 희망이 되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는 “한에 있어서 고통은 세계에 대한 반격이 되지않고 감미로운 슬픔으로 해소”9)되고 있는데서도 보여지듯 슬픔을 슬픔으로써 초월하려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라는 한(恨)의 감정 통제 방식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탄광시는 슬픔으로 ‘한’을 쌓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딛고 일어서서 희망을 갖는다는 점에서 ‘한’의 감정풀이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죽음이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정일남,〈광부에게 물어보면〉)는 진술처럼 체념은 오히려 절망을 극복하는 지혜로 자리하고 있다. 절망 앞에서 더 절망하면서 희망으로 승화될 수 있는 힘을 획득하는 경지에 도달하는 순간 채탄막장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절망의 공간이 지닌 막장의 의미는 성희직의 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항상 죽음과 맞닿아 있는 위험한 작업조건으로 인해 ‘6개월 전 바로 이웃 탄광에서/물통사고로 일곱 목숨을 잃었는데/1993년 4월2일/또다시 생목숨 일곱을 앗아간/삼척탄좌 가스 폭발사고’(성희직,「우리의 막장은 일터인가 전쟁터인가?」)에서 진술되듯 빈번한 재해가 발생된다. 탄광의 주요 재해로 운반, 가스 폭발, 질식, 갱내 화재, 갱내 출수, 화약 및 발파사고 등을 들 수 있다.10) 탄광업은 타 산업에 비하여 노동자 수, 재해 건수는 적지만 재해 발생율과 사망도수는 월등히 높다. 1987년 전체 산업노동자 6백만명 중 탄광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이하였으나, 전체 산업 대비 광업 사망이재자 비율은 평균 14%에 이르고 있어, 탄광재해율이 일반노동자보다 10배 가까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11) 국내 탄광의 높은 재해율은 기계화의 미비와 도급제로 인한 무리한 노동강요, 열악한 작업환경 등에서 기인한다.
탄광경영이 호황일 때도 노동자는 빈익빈의 늪에서 생활고를 겪으면서 ‘노동자의 씨는 따로 있는 건지/사십평생을/죽어라 죽어라고 일을 했지만/나는 지금도 노동자’(성희직, 「광부이력서」)라는 탄식이 멈추지 않는다. 결국 노동자와 주민들은 탄광지역의 현실과 노동자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직접 투쟁에 나선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온
인간 두더쥐
막장인생
광산쟁이
그 서러운 이름들, 그 한맺힌 가슴들
사북, 1980년 4월
수억만년 전에 죽어버린 땅이 깨어났다
그날
수십년을 참아온 광부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날
그 절망의 시간을
그 분노의 날들을
그 한맺힌 세월을 힘껏 걷어차고
화산이 폭발하듯 두겹 하늘 열어젖히자
노다지, 갈쿠리로 돈을 긁던 사용자들
뼈다귀 맛에 길들여진 개 노조간부들
서울의 봄을 총칼로 가로막는 무리들이
간덩이가 콩알만해졌다
-성희직,「사북 1980년 4월」12)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가슴에 한 맺혔던 울분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막장인생’을 살고 있는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한이 아니라, 모순된 탄광현실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다. 공정한 이윤의 분배 없이 ‘돈을 긁던’ 기업주와,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뼈다귀 맛에 길들여진 개’가 된 노조간부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사북사태를 기록하고 있는 이 시를 통해 노동자에게 있어 노동운동이 갖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수십 년을 참아 온 절망의 시간과 분노를 노동운동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 참고 지내던 탄광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한계는 1980년 4월의 사북사태를 비롯해 크고 작은 노동운동을 통해 폭발하면서 부조리한 노동 현실을 타개하려는 민중의 힘을 만들어 낸다. ‘개인적 집착을 넘어서게 하는 슬픔은 사회적 힘’13)을 갖게 되듯이 탄광노동자와 그 가족이 오랫동안 참아왔던 슬픈 분노는 사회적 연대감으로 확장된다. 같은 슬픔을 간직하던 사람들의 연대감은 투쟁의 강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일어선 사북의 노동운동은 ‘두겹 하늘 열어젖히’는 일이었으며, 수 십 년 묵혀둔 절망과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러나 탄광노동자들이 언제나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절망 앞에서도 승리를 확신하는 의연한 자세를 지닐 줄 안다. 이는 더는 무너질 것이 없다는, 더는 슬플 것이 없다는 절망의 막장에서 얻어내는 지혜다. 광부들은 절망을 견디며 살아가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모순된 현실을 타개하려는 의지를 지닌 노동자에게 사북사태는 새로운 앞날에 대한 힘으로 작용했다. 노동자 스스로 고통스런 현실을 극복하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광산쟁이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맨주먹 움켜쥔 수천의 노동 형제들과/목이 터져라 외친 함성/함께 흘린 뜨거운 눈물/세월 흘렀어도/그날의 불덩이 아직 가슴에 타오르고’(성희직,「우리 사랑 먼후일까지」)있다면서 투쟁의 불꽃을 갈무리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탄광시들은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현실을 온 몸으로 타개해 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탄광 현장과 탄광지역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쓰여진 탄광시는 우리 산업사회가 지니는 부조리한 모습과 가난이 빚고 있는 고통스런 현실에 대해 여과없이 기록해 내고 있다. 또 노동계층의 실존적 삶과 사회적 삶을 둘러싼 각양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 고발하면서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탄광 현실이 빚어내는 상처들을 잘 기록했을 때 상처에 동참하지 못한 이웃들은 문학을 통해 함께 분노하고, 울분을 터트리며 세상의 개혁을 향해 함께 투쟁해 나갈 수 있다. 탄광시는 바로 거짓 없는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실주의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세계 자체를 꿰뚫어 보고자 한다.
그러한 점에서 탄광시에서 죽음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의 희망을 찾아가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인간 사이의 불화, 모순된 사회와 소외된 인간에 대한 불화를 제거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에 대한 초월 의지는 생명에의 애착에서 출발한다. 죽음에 대한 각오를 통해 절망적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극복하고,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깊이는 한층 더 깊어지고 실존은 보다 확실해지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믿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탄광시를 통해 현실의 부정적인 조건에 저항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탄광시는 탄광노동자의 작업공간이자 산업화 속의 소외와 모순이 집약된 노동현장인 막장을 건강한 노동현장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절망, 죽음에의 공포, 고통스러운 삶, 어둠, 지하막장 같은 모든 부정적 요소들과 화해하려들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나아가서는 화해하려는 모습을 통해 건강한 삶에 대한 힘을 갖게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탄광시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이라 하겠다. 탄광노동자의 삶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낸 것처럼 탄광시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향해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3. 비극적 현실과 탄광공동체 의식
탄광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은 탄광노동자들의 작업장인 채탄막장과 생활공간인 사택이다. 막장과 사택의 공간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산간오지에 위치한 탄광촌은 탄광 개발과 함께 탄광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석탄산업 단일 업종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탄광을 중심으로 사택, 행정관서 등의 네트워크가 구성된다. 탄광촌으로 유입된 사람들 상당수는 농경사회, 산업사회 속에서 경제적인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인생의 막장으로 탄광을 선택했다. 비슷한 과거, 비슷한 절망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탄광사택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사택 공동체는 다른 집단보다 더 긴밀한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따라서 굳이 채탄막장을 통하지 않고도 사택을 통한 탄광현실 접근이 가능하다. 김태수는 〈구동사택․1969〉를 통해 비극적인 탄광촌의 현실과 당대의 사회구조 그리고 더 나아가 시대적 현실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바람에 날려가는 풀씨처럼 그렇게 아버지의 입갱이 시작되고, 나는 사이렌 소리에 꿈이 부서지는 밤을 자주 만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속옷에 부적을 넣어두고도 주말이면 山堂에서 밤을 지샜고, 옆집 곰보아저씨는 출근 때마다 새 아침을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밤새 안녕, 학수 아빠는 죽탄에 깔려죽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새벽새 안녕, 철이 삼촌은 가스폭발로 죽고
-우리는 산업역군 보람에 산다
낮새 안녕, 미자아빠는 광차에 다리가 잘리고
색상이 다른 아픔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같은 색의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구동사택. 아이들은 挽歌와 곡소리를 동요처럼 불렀고 어른들은 소주로 불감증을 씻곤 했다. 가끔씩 월남전 참전 상이용사의 갈구리손과, 데모하다 잡혀갔다 온 영미삼촌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기웃거리고 명절이면 공장으로 떠났던 누나 형들의 파리한 웃음도 눈에 띄었다.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
날마다 새벽종이 울리고
제야의 종소리가 진눈깨비로 흘러내릴 때까지 우리들의 희망은 캪램프 빛이 되어 막장벽을 파헤쳤지만 곰보아저씨의 종이비행기는 언제나 제자리를 돌아왔다.
- 김태수, 〈구동사택․1969〉전문14)
〈구동사택․1969〉는 탄광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사택을 배경 삼아서 광부 가족의 일상적 정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광부 아버지, 산당에 가는 어머니, 역시 광부인 옆집 곰보아저씨, 학수네, 철이네, 미자네, 영미네 가족,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 월남전 참전 상이용사, 공장으로 떠났던 누나와 형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제목이 말해주듯 1969년으로 설정된 시대의 탄광촌 사택의 삶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려는 시적 의도 때문이다. 광부와 그 가족들의 삶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섬세하고도 입체적으로 묘사하면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농축하고 있는 힘은 사택에서 광부의 가족으로 생활한 시인의 체험에서 나온다.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시인은 입갱한 아버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밤마다 사이렌소리에 꿈이 부서지는 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탄광촌 주민들은 사이렌 소리가 사택촌을 지날 때마다 입갱한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조바심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위험의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인에게 사이렌 소리는 잠을 방해하고, 꿈을 무참히 부수는 공포의 대상이다.
2연에서 사이렌 소리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화자가 직접 보고 들은 체험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학수 아빠는 죽탄에 깔려 죽고, 철이 삼촌은 가스폭발로 죽고, 미자 아빠는 광차에 다리가 잘리고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들었던 사이렌 소리였다. 사이렌 소리로 상징되는 사고로 인해 사택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 가족들의 꿈이 무참히 부서진 것을 똑똑히 보아왔기 때문에 사이렌 소리는 더더욱 공포로 다가선다.
〈구동사택․1969〉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진 탄광 현실 속에 가장인 광부의 안전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탄광촌 사람들의 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아버지를 걱정하는 어린 아들의 두려운 밤, 남편의 속옷에 부적을 넣으며 무사함을 비는 아내, 부적도 미덥지 못해 주말에는 산당에 가서 남편의 무사를 밤새 비는 아내의 모습이 그것이다.
색상이 다른 아픔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같은 색의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구동사택에서는 탄광노동자들이 탄광촌으로 유입하게 된 사연을 들춰낸다. 농촌, 혹은 도시변두리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채 마지막(막장) 선택한 “색상이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탄광지역은 사회에서 냉대 받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들일수록 재기하기 쉬운 희망의 터전이 된다. “자기의 고통 속에 집단과 자기시대의 깊은 상처를 인식하고, 자기 내부에 자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이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재생적 힘을 깊이 간직”15)할 때 공동체적 유대감은 더 강화된다.
한편 “같은 색의 눈물”을 갖게되는 데는 서로가 공통으로 지닌 과거의 절망, 인생의 실패, 위험한 노동현장에서의 끈끈한 유대, 죽음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작업장 동지로서의 연민 등이 작용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죽음과 재해라는 절망적 공유를 통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사택의 만남은 끈끈해진 유대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택에서의 이별은 단순한 작별이 아니라 탄광사고에서 비롯된 영원한 이별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잦은 탄광사고로 인한 죽음의 비극에는 어린이들까지 동참하면서 비장감마저 감돈다. 아이들은 만가와 곡소리를 동요처럼 불렀고에서 드러나듯 연속되는 죽음으로 인해 만가와 곡소리가 아이들의 일상적인 노래가 되어버렸다는 해학적 표현 뒤에는 탄광촌의 비극적 실상이 고발되고 있다. 또한 소주로 불감증을 씻어야할 만큼 무감각해진 의식 뒤에는 숱한 탄광 동료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탄광현실이 드러난다. 비극적 현실을 위로하는 것이라곤 술밖에 없는 황폐한 현실은 인생막장으로 불리는 탄광노동자의 삶에 대한 절망이 끝나지 않음을 확인시켜준다.
밤새 안녕, 새벽새 안녕, 낮새 안녕은 광부들의 갑방․을방․병방 3교대 작업을 의미한다. 3교대 작업까지 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는 광부에게 돌아오는 것은 우리들의 희망은 캡램프 빛이 되어 막장벽을 파헤쳤지만 곰보아저씨의 종이비행기는 언제나 제자리를 돌아온다는 진술뿐이다. 탄광노동자의 희망과 미래는 종이비행기로 환유되어 상공을 잠시 날아보지만 결국 희망 찾기에 실패하고 언제나 제자리를 돌아오고 마는 현실을 통해 탄광노동자들이 지닌 고달픈 삶의 여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편 희망을 종이비행기밖에 접을 수 없는 곰보아저씨의 현실은 시대와 적극적으로 부딪쳐 살아가지 못하는 탄광노동자의 연약한 의식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이상 살펴 본대로 〈구동사택․1969년〉은 높은 노동강도와 탄광재해에 시달리는 탄광노동자, 사고에 긴장하며 살아가는 광부가족, 공동의 긴장과 절망감 속에 살아가는 사택촌 주민, 희망 없는 탄광주민의 삶 등을 다루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산업발전 속에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쓰러져 간 탄광노동자와 사택공동체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모순되고 부조리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해내는 탄광시의 힘이라 할 수 있다.
4. 외부적 시각으로 본 막장의 현실
그동안 탄광시가 활발하게 창작되고 논의될 수 없었던 이유는 탄광노동현장 체험의 부족으로 지적할 수 있다. 탄광이 산간오지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 창작 체험을 위해 접근하기에는 위험하고 강도 높은 노동, 대중 독자의 관심을 끌기 힘든 특수성, 탄광지역의 폐쇄성, 탄광노동에 대한 시인들의 역사의식 부족 때문이다. 물론 탄광노동자와 탄광촌 주민들의 창작능력 부족, 문학에 몰두할 만큼의 경제적 문화적 여건의 불충분, 문학을 노동 운동의 일환으로 실천하지 못한 탄광노동운동권의 무자각 등도 함께 지적할 수 있다.
이건청은 탄광현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탄광노동현장의 실상에 대한 체험을 통해 소외된 계층에 눈을 돌리고 탄광노동의 의미에 접근하고 있다. 암울한 역사일수록 실천하는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고 할 때 시인은 노동현장에서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역사의 기록자로 동참한다. 시인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의식했건 안 했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삶의 총체적 삶의 조건을 기본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의 조건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의 조건을 생산하는 데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것도 “문학은 인간활동의 일환이며 인간의 의도적 행위가 문학의 핵심적 인자로 작용”16)하기 때문이다.
나는 1998년 3월
거기에 갔다.
그리고 3월16일,
대한 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
垂坑으로 825미터를 하강한 후
다시 人車를 타고 3200미터 지하
3억년 숲과 짐승들이
현생 인류와 다시 만나는 현장에 닿았다.
거기가 막장이었다.
飛散 탄가루가 시야를 가리는 거기,
더운 지열이 들끓는 거기서
방진 마스크를 쓴 채,
캡 램프를 단 안전모를 쓴 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석탄덩이를
집어 올렸다.
(중략)
막장 밖에 나와 하늘을 보았다.
사람들은 식당에 밥 먹으러 가고 있었다.
세상은 그냥 세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 숨쉬는 석탄들을
추운 거리에 쌓아둔 채
그냥 내 자리로 돌아 올 수 없었다.
석탄이 탄소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바람 부는 탄광 마을에 그 소리들이 쌓여 있었다.
그때 나는
요즘도 지층에 묻히는 사람들이 있고
묻힌 사람들이 탄소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았다
석탄이 되었거나
석탄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기록 속에 갇힌 이름들이 있고
그들은 거기서 검게 변해가고 있다.
-이건청,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12.010〉17)
이 시는 “나는 1998년 3월/거기에 갔다”고 채탄막장 방문을 일지처럼 기록하면서 “대한 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垂坑으로 825미터를 하강한 후/다시 人車를 타고 3200미터 지하”까지 간 체험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건청은 외부인이면서도 입갱을 통해 탄광노동현장에 대한 체험을 갖는가 하면, 수차례 탄광지역 방문을 통해 탄광시에 대한 의욕을 보임으로써 탄광의 시적 형상화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18) 그것은 탄광노동현장에 대한 밀착 취재를 통해 많은 외부인에게서 보여지는 탄광촌 스쳐지나기 식의 피상적 접근을 지양한 점이라든가, 입갱을 통해 탄광노동을 체험하고, 탄광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 및 사상에 대한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접근하는 방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막장 안에 서게 된 시인이 처음에는 고생대의 자연과 만나는 신비로움에 ‘무릎을 꿇’어가면서 벅찬 감격을 누린다. 그것은 3억년의 지질학적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이었으며, 우주의 역사에 동참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감회였다. 이는 삶의 절망이 자리한 채탄막장의 실체를 미처 깨닫지 못한 탄광노동자와 외부인이 갖는 인식의 거리감이다. ‘두겹 하늘’ 밖에서 살던 삶과 ‘두겹 하늘’ 안에의 삶에 대한 단절감이 주는 차이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고생대의 신비에 머물지 않고 노동현장으로 눈을 돌린다. 입갱 체험을 끝내고 막장 밖으로 나오며 ‘세상은 그냥 세상’이라는 삶의 화두를 깨닫는 순간 우주의 신비에 경이로워 하던 한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 힘겹게 석탄을 캐는 광부에게 애정을 보내는 시인의식을 갖는다. 관광객에 불과한 외부인이 막장 체험을 통해 채탄노동의 현실을 접하게 되면서 삶의 막장에 대한 현실인식을 갖추게 된다. 체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을 만큼 외부 세계와 단절된 탄광의 소외현실이 탄광막장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좁혀지면서 석탄에 대한 감상적 인식이 현실감을 찾게된다.19)
“요즘도 지층에 묻히는 사람들이 있고/묻힌 사람들이 탄소로/변해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나, “석탄이 되었거나/석탄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인식하면서 석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도 인식하기에 이른다. 석탄의 생성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석탄을 캐는 노동자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으며, 그러한 사회적 관심은 마침내 석탄을 위해 희생된 탄광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닫게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석탄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란 진술을 통해 죽어감이 진행형이라는 인식에까지 도달하면서 계속되는 탄광노동자의 희생에 대한 고발효과까지 가져온다.
체험을 통해 탄광노동현장과 탄광촌을 기록하겠다는 이건청의 시의식은 시집 제목『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이라는 데서도 확고하게 드러난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투시력을 지닌 시인의식이 철저하게 반영되면서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12.010〉에서는 석탄/채탄의 대립항을 통해 본질 탐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석탄/채탄의 대립은 자연의 석탄 대 인간의 석탄 대립구조를 뜻한다. 자연의 석탄이 고생대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을 동반한다면, 노동현장의 석탄은 어둠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견디는 생존 의지를 지니고 있다. “3억년 숲과 짐승들이/현생 인류와 다시 만나는 현장”이 석탄이 자연의 석탄이라면, “지층에 묻히는 사람들이 있고/묻힌 사람들이 탄소로/변해가고 있음을 알”게된 현장은 노동현장의 석탄이다. 시인이 본 채탄 현장은 “飛散 탄가루가 시야를 가리는 거기/더운 지열이 들끓는”공간으로 탄 속에 묻히는 죽음과 고통이 뒤따르는 곳이다. 그 참담한 노동현장을 보는 순간 채탄막장 밖에 외부인으로 있던 의식이 노동 현실 속으로 전이된다. 그리고 단절된 인식의 거리감이 극복되면서 “살아 숨쉬는 석탄들을/추운 거리에 쌓아둔 채/그냥 내 자리로 돌아 올 수 없었다”는 진술에까지 다다른다. “그냥 내 자리로 돌아 올 수 없었다”는 진술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핀대로 이 시는 석탄형성 현장에서 노동 현장으로의 시선 이동, 다시 시인의 자아성찰에까지 심화되면서 삶의 깊이 있는 울림을 전달한다. 탄광시는 노동의 역사에 대한 동참의식과 현실에 대한 철저한 기록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 폐광 이후 탄광촌 현실의 시적 형상화
‘문학작품이 현실의 모사’라는 말 그대로 탄광시는 삶의 진정한 가치 실현을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자신과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자신보다 앞서 그런 상처의 고통을 처절하게 견디며 살다간 사람들에 대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탄광시가 탄광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하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면서 정부에서는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를 통해 대규모 폐광 정책을 실시한다. 이는 광부들에게는 실직을, 석탄산업이라는 단일경제에 의존하던 탄광도시에는 자립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도시공동화 현상까지 빚게된 대규모의 급작스런 폐광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많은 시인들이 탄광 현실에 관심을 갖게된다. 탄광의 폐광과 지역공동체의 와해로 인한 고통스런 현실은 특정한 지역이나 특정인의 삶이 아니라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함백항 갱 입구에 갔다
갱구는 막혀 있고
망아지 만한 개 몇 마리
컹컹 짖고 있었다.
굴속에서 갱이 무너져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 영혼이
아주 막힌 갱구를 향하여
사람들이 사는 쪽으로
컹컹 짖고 있었다.
개들이 밟고선 폐석 더미가
먼-지질시대
공룡의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김진광, 〈함백항 폐광 입구에서〉20)
폐광으로 인한 절망의 신음이 개와 공룡을 통해 전달된다.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폐쇄된 갱구는 폐허가 된 폐광촌 주민 모두가 느끼는 막막함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막장’인 갱구 안에서 살아가던 탄광노동자들은 빛을 찾아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다. 그 나오고 싶어하는 간절함은 ‘막장’을 통해 빛으로 이어졌으나,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통로인 ‘막장’이 폐쇄되어 있다. ‘막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폐광의 시대를 맞아 갱구 안을 향한 그리움은 더 절실하다. “갱구는 막혀 있고” 라든가 “아주 막힌 갱구”에서 보여주는 단절된 희망을 ‘개 몇 마리 컹컹 짖’으며 서러운 폐광의 운명을 대변한다.
폐광기를 다루고 있는 이 시는 갱도 붕락사고로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죽은” 광부와 국가산업 발전을 위해 숨져간 광부의 노고를 떠올리며 잊혀진 시대를 일깨워 준다. 개의 울음소리와 죽은 광부 영혼의 울부짖음은 갱구에서 사람들이 사는 쪽으로 방향을 옮겨간다. 그러나 사람 사는 쪽에서도 역시 막힌 갱구처럼 마을도 막혀있을 뿐이다. 폐광촌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울음에 대한 메아리로 폐석더미가 공룡의 소리를 대신 낸다. 이미 사라진지 수억 년이 된 공룡의 울부짖음은 사라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 사라진 짐승이 내는 울음소리는 회복될 길 없는 폐광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라진 과거를 들추어내는 의식은 폐광에 대한 암울한 현재의 불만에서 기인한다. 개와 죽은 영혼, 그리고 공룡까지 사람 사는 쪽을 향해 짖어대면서 폐광지대가 갖는 절망은 극대화되고 있다. 김진광의 시는 폐광으로 탄광노동자와 탄광지역공동체가 와해된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면서 이 시대의 절망과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폐광의 현실을 드러내는 시들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 모르거나 잊고 지내던 탄광지역의 아픔에 새롭게 눈뜨게 된다. “산업화로 인하여 변질되어 가는 삶을 조금이라도 그 본래의 의도대로 인간다운 삶이 되게 하기 위하여 아픔의 느낌들이 끊임없이 표면화되어야”21) 할 것이다. 탄광지역이 지닌 모순된 산업화의 모습을 문학 작품 속에 용해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학인의 몫이다. 탄광시는 바로 아픔의 느낌을 ‘표면화’하는 작업을 통해 이 시대의 산업과 노동현장에 동참하고 있다.
6. 맺는 말
탄광 현장과 탄광촌을 배경으로 쓴 탄광시는 우리 산업사회가 지닌 부조리한 현실, 탄광 현실이 빚어내는 상처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사실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또 노동계층의 실존적 삶과 사회적 삶을 둘러싼 각양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앞에서 탄광시를 살펴보면서 절망의 밑바닥에서 체념을 거쳐 희망을 건져내는 힘이라든가, 가족의 미래와 생존을 위해 노동의 한계를 참아내는 치열한 삶, 정부의 대책없는 폐광정책 속에 무너진 탄광지역 공동체의 모순된 삶을 읽을 수 있었다. 탄광시에서 확인되는 것은 비극적인 현실의 극복방안으로 대립과 투쟁을 선택하기 보다 운명에의 순응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바깥 세계와 단절된 공간으로의 탄광현실이라든가, 막장으로 표현되는 절망적인 삶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불화를 피해 나가는 탄광노동자의 의식세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절망의 밑바닥에서 희망의 세상과 화해에 나서는 탄광노동자의 의식세계를 담고 있는 탄광시 이면에는 노동만을 강요하고 착취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병폐와 소외된 인간의 고독한 희망 찾기, 고통스런 현실 등이 함께 묻어나고 있었다. 탄광시는 우리 산업사회에서 가장 모순된 사회구조를 지니면서 산업화의 모든 부작용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탄광지역을 현미경처럼 보여주면서 현 시대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탄광노동자들의 불우한 삶은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대상황의 반영물로, 특정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산업사회에서 탄광노동자들이 겪었던 보편적 삶의 한 예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한국 산업사회의 모순된 노동현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탄광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의 현장을 비판하는 한편 절망을 극복해 가는 민중의 의지를 확인시켜준 데서 탄광시의 공로를 찾을 수 있다.
탄광시를 읽는 다는 것은 어두웠던 한 산업시대를 장식한 절망의 산업사를 읽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탄광시를 통해서 삶이 황폐하고 시련이 가중될수록 이의 극복의지 또한 강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죽음과의 친화성 속에서 더욱더 생명에 대한 애착을 절실하게 느끼는 모습, 절망의 끝에서 삶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그 모습을 통해 탄광노동자와 가족들의 삶의 치열성을 확인한다. 또한 모순된 시대적 질곡을 이겨내려는 인내의 자리에 그들의 삶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확인이 가능한 것은 소외된 노동현실에 대한 애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탄광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탄광시의 단편을 살펴보는데 그치고 있지만, 탄광시를 연구하는 데 있어 시대적 흐름, 주제상의 차이, 작품의 형식, 창작 주체에 따른 차이점 연구, 다른 노동문학과의 변별성 등 다양한 연구 방법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연구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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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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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tudy of the Life of a Mining Village as Represented in Coal Mine Poetry Collection
Jeong, Youn-Soo
This study is purposed to expand the range of Korean literature by examining the realities of mining laborers and mining village communities that are isolated from the age of industrialization. Coal Mine Poetry Collection started to spread from late 1980s and as the mining laborers and the village residents began to participate in creating poetries in throughout the 1990s, about 900 pieces have been created so far.
In this study, the pieces were selected for different subjects, including a mining laborer Jung Il-Nam and Seong Hee-Jik, a family of a mining laborer Kim Tae-Soo, a resident Kim Jin-Gwang and a visitor Lee Geon-Cheong , in order to examine the different aspects of Coal Mine Poetry Collection.
Coal Mine Poetry Collection formalizes the tragedies of working face experiences and the willingness to overcome them, the tragic realities of the mining village and their attachments to communities and the devastated reality of the mining village after the abolishment of the mines. We can understand that Coal Mine Poetry Collection represents the contradictories existing in the work places of Koreas industrialized society. Also, it shows the consciousness of mining laborers who solve the conflicts by accepting the hopeless life of the working faces rather than rejecting it.
Coal Mine Poetry Collection is significant in that it criticizes the structural contradictions of our society and identifies the wills of the commoners who overcome the despairs.
Key Words : coal-mine poems, coal-mine reality, despair, an abandoned mine, a coal mine labor, a blind end in a mine gallery
문학행사 안내
다헌 송은애 시인 시집출판기념 팬 싸인회
․ 일시 : 11월 11일(토) 늦은7시
․ 장소 : 동해시 "맨하탄 라이브 카페(033. 531-4793)
( 동해시 천곡동 문화의 거리 7번가 꼭대기건물 4층)
․ 시집 “술예찬 꽃예찬 그리고 차 한 잔"
다헌 송은애 시인
http://planet.daum.net/sea5610
☞ 『2006년 정선 도원 문학축전』에 참가하신 여러분을 초대 합니다.
첫댓글 참으로 유익했던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