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보증으로 인한 개인파산진술서
저는 1955년 충청도 시골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무작정 이천육백 원을 가지고 서울을 오게 되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서울 변두리 시장에서 점원을 하며 지내길 1년, 선배의소개로 어렵사리 도금 공장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모진 사회였고 어느날 남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이 참 많은데 내가 갈 집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공장 기숙사에서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고 쪽잠을 자며 지내길 3년만에 반장을 맡았고 회사를 옮겨다니며 공장장 생활을 6년 동안 하면서 사업하겠다는 꿈 하나로 돈도 더욱 열심히 모았습니다.
그렇게 기술을 한밑천 삼아 1988년도에 경기도 부천에서 독립하여 귀금속 도금을 시작했습니다. 한 푼 두 푼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자본금 1,400만원과 형으로부터 400만 원으로, 중고지만 정류기도 사고 도금설비도 하고, 15평 공장에서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으로 사업을 개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동네 아는 후배들을 동원하여 다섯명이서, 그래도 창업 전 동종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저는 성공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회사를 이끌었으며,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규모를 넓혀 이사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95년 인천 미래단지에 월 세로 들어갔는데 공장 주인이 부도가 났다며 쫓아내서1998년 때마침 금화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소식에 11개 업체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IMF 때문에 5개의 업체가 일도 시작 못해보고 망했고 나머지 저를 포함한 6개 업체가 다 떠안고 버텼습니다. 빚을 내긴 했지만 제 이름을 건 첫 자가 공장이니 설레고 들떠 내가 문제가 없는데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이래도 저래도 좋았습니다. 식도 못올리고 살았던 집사함에게 미안한 마음과 해냈다는 기쁜 마음으로 떠난 신혼여행 겸 첫 나들이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00산업단지에서 중소기업진흥공단 자금을 받을 때 의례히 한다길래 별 생각없이 썼던 이름 석자 때문에 뭔지 잘 몰랐던 연대보증으로 모든 업체들이 하루 아침에 부도났다는 전화였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기쁨도 잠시 결국 여행지는 문턱도 못 넘고 돌아왔고,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메꾸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연대보증으로 부도를 맞은 업체들은 다 손 놓고 현금화 시킬때, 전 6개월 가까이 대출 이자와 빚을 갚아나가며 살 방도를 찾다가 더 이상 대출도 안 되고 버틸 재간이 없어 결국 공장과 집까지 경매로 넘어가고 도산하였습니다.
어깨넘어로 밴운 기술만 있지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던 저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연대로 묶여있는 모든 빚까지 청산해야 한다는데 수익은 없고, 빚은 몇 십억... 갚으려고 의뢰도 해봤지만 다 갚을 거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부지기수. 경매로 공장은 시작도 못하고 넘어가고 집도 넘어가고, 열심히 착실하게 살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가난은 벗어나리라 믿었는데... 부푼 꿈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단칸방부터 시작해 방 달린 아파트에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 루 아침에 길바닥으로 앉으니 화목했던 가정에도 불화가 찾아왔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이렇게 밑바닥인 인생을 비관하며 하 루가 멀다하고 집사람과 싸우고 아이들도 꼴보기 싫고 막막하고 떨어져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렇게 매일을 술로 지새우며 살다보니 남은건 이 넓은 바다에 저 혼자 뿐 이었습니다. 오갈 때 없어 처형네 집에 이름만 사정사정하여 올려두고 조카들네 집을 전전하다보니, 착했던 집사람도 이혼을 요구하여 떠나보냈고 저와 만나는게 좋지 않을 거라 판단했는지 보고싶은 아이들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병드니 몸도 아픈지 갑상선암까지 걸려 갑상선을 모조리 잘라내는 걸로 모자라 자꾸 생기는 종양 때문에 제거 수술을 받기도 몇 차례.. 머리가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뇌가 비대칭으로 부풀었다고 합니다.. 빚은 빚을 낳고 그나마도 살아보겠다고 자식에게 손 벌려가며 근근히 치료 받았지만 이도 다 완쾌되지 못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다 큰딸이 아버지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덜어주고 싶었는지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지 모르겠으나 이 세상 나를 아는 모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다만 애들이라도 떳떳하게 만나며 살고 싶습니다. 염치없는 제게 새 인생의 기회를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어리고 못난 신청인이 파산 및 면책을 통해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끔 존경하는 판사님께 선처를 호소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