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보내다
글-德田 이응철
여름이 오기 전부터 때아닌 무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그런 연유로 올해는 봄의 낭만을 마치 겁탈이라도 당한 느낌이다.
장미의 계절에도 찜통 같은 무더위가 계절 감각을 훼방하더니 코로나19로 발목이 잡혀 나의 맹아(萌芽)를 짓밟고 말았다.
결국 7월 달력 한 장을 무의미하게 넘기면서 여름이기에 무덥더란 합리화로 봄을 건너뛰고 찾게 된 세월 감각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드디어 며칠 전부터 장맛비가 내렸다. 장마는 여름의 오아시스라고 한다. 헉헉 숨을 몰아쉬고 비지땀을 흘리며 에어컨 앞에 작은 짐승이 된다. 좀처럼 나다니지 못하다가 맞은 빗소리는 메마른 심신을 촉촉이 적셔주어 모처럼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장마가 시작되던 날 나는 애지중지하던 녀석을 시집보냈다.
장마가 시작된 3일 째였다. 소나기에서 윤 초시네가 이사 간 양평에서 이른 새벽 두 내외가 찾아왔다. 비를 몰고 온 것이다. 시원한 빗소리에 모든 것들이 길게 숨을 내쉬며 평화로웠다.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 사람들께 박수를 받으며 비가 내린다. 새벽같이 찾아온 윤 초시네 후예들과의 만남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인지 긴가민가하다. 두 내외 특히 60대를 훌쩍 넘는 아주머니의 감탄은 대단했다. 진정 내 분신에 취해 어찌할 바를 모르신다. 이웃한 한의원 사모님도 덩달아 맞장구를 치시니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시집을 보냈다.
방금 사래긴 시루버덩에서 공수되어온 두툼한 옥수수 껍질을 벗긴다. 미백이라 흰 치아 같은 속살이 보일 때까지 벗긴다. 한 겹 한 겹 진한 연두색이 연해질 때까지 벗겨 양은솥에 넣는다. 잠시 후 형언할 수 없이 맛있게 찌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해도 마음 한편은 텅 비어 어인 일인가? 허전하다. 내 마음 진정 나도 모른다. 왜 그럴까?
시집보낸 녀석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그리움은 배가(倍加)된다. 아낙네의 탄성에 닁큼 등을 밀어 시집을 보낸 게 여간 후회되지 않는다. 밖에는 마치 시집보낸 녀석을 잊으라고 하듯 빗소리가 요란하다. 장마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끝없이 비가 오니 지평은 달아나고 양평으로 시집보낸 녀석은 낯선 곳에서 하루를 어떻게 지냈을까!
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첫날이었다. 무더위가 바람에 밀려 주춤할 무렵에 복사꽃마을로 스케치를 나갔다. 구봉산 위로 한여름 목화송이 같은 구름장들이 서려있고, 팔 벌린 구봉산 품안에 전망대와 산토리니 감색지붕들이 더없이 정겨웠다. 바람에 실어 무더위를 잠시 뒤로 하고 스케치한 그림은 며칠 전에 작품으로 탄생했다.
무성한 녹음방초가 배경이 된 풍경화는 구봉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기쁘게 한다, 고치고 다시 칠하고를 반복하며 구슬 같은 땀을 흘린 분신이다. 여름날의 약진이었다. 우거진 초목에 춘천의 그리움을 한껏 담아내어 며칠간 나를 들뜨게 한 녀석이 아닌가!
내 그림은 늘 단골로 다니는 한의원에 전시해 심신이 지친 환자들에 볼거리를 제공한다. 어제였다. 이틀간 장마는 이어졌다. 무리한 여행으로 한의원을 찾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이었다. 고희(古稀)에 즈음한 두 내외분이 내 작품 앞에서 한창 그림을 감상 중이시다. 순간 그림은 무엇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림에서 무엇을 배우는 사람도 없다. 그림은 보는 사람 앞에서 존재한다고 누군가 한 말이 퍼뜩 떠올랐다.
그림에 열정이 많으신 한의원 사모님의 친정 부모님께서 병원을 방문하셨다가 제 그림과 조우한 게 아닌가! 그 현장을 목격한 작가로 그 때 그 행복감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단순한 자연의 묘사로만이 아니다. 보이는 한 폭의 풍경화에 감동을 받았다고 겸손히 인사를 건넨다. 초면이다. 고맙다. 아크릴화로 10호가 넘는 서양화가 살아 꿈틀거린다. 대가도 아니라고 겸손했지만 막 무가내시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독자가 마음으로 느끼는 게 무엇보다 작품의 생명이리라. 춘천 딸은 욕심내는 친정어머님께 작은 선물을 안겨드리고 싶어 제게 순간 어렵게 입을 열어 간청을 했고, 나 또한 흔쾌히 수락해 그림을 시집보내게 된 것이다.
화가가 자기 작품을 다른 분한테 증정을 할 때 시집보낸다고 흔히 말한다. 작품을 타인에게 넘겨 드린 적은 간혹 있지만, 특히 뜨거운 여름과 장마철에 어렵게 시집보낸 구봉산이란 작품은 다르다. 시간이 갈수록 눈에 밟힌다.
창밖엔 우산 셋이 즐겁다. 노인정 앞에 오동나무는 위로라도 하듯 후두둑 후두둑하고 둔탁한 빗소리를 연실 내게 타진한다. 이제야 난 작품을 시집 보낸다란 의미를 완전 이해했다. 녹음 한가운데서 태어난 녀석을 시집보내면서 미련에 잠 못 이룬다.
그래!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말 없어야 잘 살 수 있단다.(끝)
첫댓글 이 작품은 2020년 강원수필문학회 원고로 송보했습니다.ㅎ
수필의 낯설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초점을 맞추었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