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권선희
돼지껍데기 5000원,
닭발 5000원, 두부 2000원,
찌짐 2000원, 돼지 두루치기 7000원,
꽁치찌게 6000원, 계란 후라이 2000원
주머니 헐렁한 사람들 드나들며
엉기고 성긴 삶의 타래 푸는 시간들을
남산식당 안주는 지켜 주었지요.
이십 년 전 개업을 축하하며 누군가 선물한 거울 속에는
양은주전자 동글동글 모여 앉고
은자골 탁배기도 쌓여 있습니다.
봄이라고 숭숭한 맘 나누고자 둘러앉은 친구들은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은 뽀오얀 탁주 담긴 잔을
위하여! 위하여! 부딪칩니다.
기우뚱한 탁자 위로 오른 찌짐 한 접시와 닭발 볶음 사이로
껄껄껄 농이 오가고 푸념도 흘러갔지요.
고구마 순은 잎사귀 벋어 벽을 초록으로 채우고
기역자로 꺾어진 굴뚝 거리로 향하고 앉은 연탄난로는
봄이라 불을 뺐음에도 훈훈했습니다.
남보다 더 보고 멀리 뛰려 애쓰는 세상에서
아옹다옹 밀고 밀리며 돌던 날들이
남산식당 오후 탁자에 둘러앉아 비로소 풀립니다.
가장 먼저 혀가 고부라진 친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흥겨운 자리를 전합니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과 듣고 싶었던 말 사이로
조린 메주콩과 봄나물 무침이 서비스로 나오고
옆자리 손님들 만원 남짓 계산 치르고 빠져 나가면
틀어진 문틈으로 평온한 저녁이 듭니다.
탁배기 서너 병에 발그레 핀 저 얼굴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신발 끈을 매고
문화원으로 박물관으로 가게로 뿔뿔이 흩어져
부지런히 세상 굴리며 가겠지요.
할매는 오전 내내 닭발을 장만하고 찌짐을 부치며
헐렁한 주머니로 들 단골들을 위해 안주 장만하겠지요.
어쩌면 일 년 내내 난로 치우지 않고
기우뚱한 탁자도 세우지 않고
바래지 않는 시간들 장아찌처럼 그 골목에 박아놓고
그렇게 남산식당도 가겠지요.
(경북매일신문. 2009-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