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민속놀이는 놀이들 가운데에서 특히 민중들이 생활상의 필요에 의하여 전승해온 놀이들을 일컫는다. 민속놀이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놀이를 하는 주체가 민중이라는 한정성을 지녀야 한다. 전통사회에서 민중은 피지배 계층으로서 직접 노동하는 가운데 공동체의식을 확보하고 주로 말에 의한 언어생활을 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다음으로 역사적 지속성을 지니며 집단적으로 전승되는 놀이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즐기다가 사라져버린 놀이들이나, 개인적으로 전승하는 놀이는 민속놀이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리고 민속놀이는 생활상의 필요에 의하여 놀이되는 것이다. 생활상의 필요라는 것은 곧 일정한 기능을 뜻한다. 따라서 놀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를테면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놀이를 벌이거나 통과의례의 뜻을 살리기 위하여 놀이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제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민속놀이는 이른바 생활상의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은 무목적적 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 이들 활동과 연관되어 있는 까닭이다. ◈[민속놀이와 민속문화] 민속놀이의 이러한 한정성은 무목적적 활동이라는 놀이의 일반 원칙에 다소 벗어난다. 순전히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지배층의 놀이들이나 상업자본가에 의하여 판매되는 특별한 놀이감과 놀이공간을 필요로 하는 요즘의 상품화된 놀이들과 일정한 차별성을 지니는 까닭이다. 민속놀이는 항상 일과 더불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시풍속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며 통과의례 및 제의와 연관되어 전승된다. 개별적인 문화체계가 아니라, 여러 가지 민속문화의 갈래들과 복합되어 생성되고 전승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특정한 민속문화가 사라지면서 민속놀이도 함께 전승이 중단된 경우도 있으며,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전승되는 민속놀이도 있고, 어떤 것들은 세시풍속이나 제의 또는 일과 구별하기 어려운 민속놀이도 있다. 그러므로 민속놀이의 내용과 특징은 이들 민속 현상과 더불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놀이 주체와 민속놀이] 민속놀이는 놀이주체의 성격에 따라 아이들놀이, 남성들의 놀이, 여성들의 놀이, 남여공동놀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아이들 놀이 가운데 사내아이들의 놀이로는 자치기, 제기차기, 장치기, 깡통차기, 딱지치기, 돌치기, 말타기, 군사놀이 등이 있다. 이들 놀이는 놀이감이 필요없는 것도 있으나, 놀이감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것들이 소용된다. 돌멩이와 나무막대 같은 자연물이나 팽이와 제기 등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놀이감을 이용한다. 주로 ‘차고’ ‘던지고’ ‘치는’ 동작을 중심으로 형성된 놀이로서 사내아이다운 씩씩한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계집아이들의 놀이는 주로 ‘놀리기’와 ‘뛰기’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기놀이나 콩주머니놀이처럼 손놀림을 주로 한 ‘놀리기’ 활동이거나, 그네뛰기, 고무줄놀이, 줄넘기, 널뛰기처럼 온몸을 솟구쳐 뛰거나 박자에 맞추어 율동적으로 온몸을 움직이는 놀이가 주를 이룬다. 사내아이들이 팔다리의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켜주는 놀이 양식을 취하였다면, 계집아이들은 손재주를 기르거나 뛰기와 같은 전신운동으로 몸매를 다질 수 있는 놀이양식을 취하였다. 성별에 따라 생리적 특성에 알맞게 민속놀이가 개발되어 있는 것이다. 성인 여성들의 놀이는 놀이감이 거의 소용되지 않고 겨루기 형식보다는 자족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녔다. 널뛰기와 그네뛰기 등의 놀이는 계집아이들 놀이와 같지만, 세시풍속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명절에만 이들 놀이를 즐긴다는 점에서 아이들 놀이와 차별성을 지닌다. 여성 놀이의 자족성은 주로 춤과 노래로부터 주어진다. 강강술래는 마을 아낙들 여럿이 어울려서 손을 잡고 활달한 원무를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즐기는 놀이이고, 놋다리밟기는 두 패로 나뉘어서 노래를 부르며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사람들의 등을 밟아나가는 놀이이다. 이들 놀이는 마을 부녀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대동놀이로서 지역적 통합기능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적 주술 기능을 함께 지닌다. 춤과 노래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므로 남성들의 놀이와 달리 여성적인 정서와 율동이 놀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남성들의 놀이는 명칭부터 싸움형식의 겨루기를 표방하고 있다. 고싸움, 동채싸움, 나무쇠싸움, 농기싸움, 편싸움, 횃불싸움 등 사내아이들의 겨루기 양식과 비슷하면서도 한층 격렬하고 규모도 거대한 집단적 싸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동채와 나무쇠, 농기 등 거창한 놀이감이 동원되는가 하면, 각종 풍물과 깃발 등도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따라서 놀이의 양식상 오랫동안 준비를 하여 놀이감을 제작하고 소정의 경비도 필요할 뿐 아니라, 대규모의 인원이 한꺼번에 동원되어야 하므로 수시로 할 수 있는 놀이가 되지 못한다. 자연히 세시풍속과 관련된 명절에나 할 수 있는 놀이들로서 주로 정월 대보름에 한다. 동서부로 나누어서 싸우며 승부를 격렬하게 겨루는데, 여성을 상징하는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 있다. 여성이 풍요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된 까닭이다. 남녀노소의 구별없이 마을사람들 전체가 함께 참여하는 놀이로는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줄다리기는 지역주민들을 두 패로 나누어서 놀이 형식의 겨루기를 집단적으로 함으로써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사회적 통합 기능 외에, 성행위굿 형식의 주술적 기능도 지니고 있다. 동부의 줄은 수줄처럼 제작하고 서부의 줄은 암줄처럼 제각기 제작하여 암수의 두 줄을 결합시켜 줄을 당기는 과정이 남녀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두 줄을 연결시킬 때 마치 남녀가 성행위를 처음 시작하기 위한 동작과 관련된 말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줄을 이어서 잡아당기는 활동은 격렬한 성행위 동작을 연상하게 한다. 줄다리기를 생산의 현장인 논밭에서 하는 것도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성행위굿의 유감(類感)주술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과 민속놀이] 민속놀이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하여 연관된 민속현상을 중심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일과 관련된 민속놀이를 보기로 하자. 놀이와 일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민속놀이의 경우에는 일을 놀이로 전환시켜주는 구실을 하면서 일과 놀이가 더불어 있다. 농민들이 공동노동 조직으로서 두레를 결성하여 모내기나 논매기를 할 때는 으레 풍물을 치고 들일을 나간다. 풍물은 흔히 농악놀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풍물잡이들이 일정한 조직을 이루어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무동을 태우고 삭모를 돌리는 묘기까지 부리는 신바람나는 복합놀이이다. 일꾼들이 아침에 일을 나갈 때에는 일 나가는 어설픔을 덜어주기 위하여 풍물을 치고, 일터에서는 일의 신명을 북돋우어주기 위하여 풍물을 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일의 피로를 풀기 위한 신명풀이로서 풍물을 친다. 이때 두레꾼들은 풍물잡이들을 뒤따르며 풍물 가락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는데, 춤동작은 일의 동작과 비슷하다. 규칙적인 일의 동작을 리듬있는 놀이의 동작으로 전환시켜 일의 피로를 풀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물은 제의적 기능과 탈춤 반주의 기능, 집단적인 놀이의 응원 기능, 공동경비를 모금하기 위한 걸립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되, 농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관계로 흔히 농악이라고 하는 것이다. 농기뺏기 놀이도 농사철에 들에서 이루어진다. 두레꾼들이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며 두레 노동을 하다가 이웃마을의 두레꾼들과 마주치게 되면, 상대편의 농기를 빼앗는 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농기를 빼앗는 쪽이 이기고 진 쪽은 이긴 쪽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이를 농기싸움이라고 한다. 풍물의 기량을 겨루기 위하여 다른 마을로 갈 때에도 농기를 앞세우고 가는데, 이웃마을 어귀에 다다르게 되면 농기를 세우고 풍물을 친다. 그러면 그 동네 풍물패들이 풍물을 치며 나와서 맞이한다. 그러면 두 동네의 농기는 서로 약간씩 기울여 두 차례 절하는 시늉을 한다.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넓은 광장으로 옮겨서 풍물의 기량을 겨루는 놀이를 벌인다. 일터에서 일을 놀이로 전환시키는 장치는 풍물놀이 외에 민요가 있다. 논매기를 하면서 논매기 노래를 부르고 상여를 메고 가면서 상여소리를 부르며 집터를 다지면서 지점소리를 하고, 토목공사를 위한 말뚝을 박으면서 망깨소리를 한다. 이들 민요는 한결같이 앞소리꾼이 앞소리 사설을 메기면 뒷소리꾼들이 후렴구를 받게 되는데, 이 때 앞소리꾼은 일을 하지 않고 앞소리만 메긴다. 앞소리 사설에는 일과 전혀 무관한 정서적인 사설도 있지만 일의 동작을 지휘하고 일을 독려하는 내용의 사설도 포함되어 있다. 앞소리꾼들은 일을 직접 하지 않지만 일과 별도의 행위를 한다고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의 능률을 올린다고 믿기 때문에 일꾼들보다 품삯을 더 받는다. 일과 더불어 있는 놀이는 곧 일로 인식되는 것이다. ◈[세시풍속과 민속놀이] 세시풍속과 관련된 민속놀이는 그 시기와 기능에 따라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음력 정월과 2월에는 주로 풍농을 기원하는 놀이를 한다면, 봄철과 여름철에는 농작물의 성장을 부추기는 성장의례의 놀이, 가을철에는 새 곡식을 신께 바치고 수확을 감사는 놀이들을 한다. 농경사회에서 형성된 민속놀이들은 농업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까닭이다. 농한기인 겨울철의 놀이들은 정월 명절에 집중되어 있다. 설과 보름은 최대의 명절이다. 설에는 차례와 세배로 혈연간의 유대를 다지면서 가족끼리 윷놀이를 즐기며, 대보름에는 동신에게 제의를 바치고 풍물패들이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는가 하면, 줄다리기와 동채싸움, 고싸움, 놋다리밟기 등 동민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대규모 놀이를 벌인다. 줄다리기와 놋다리밟기 등은 한결같이 풍농을 기원하는 주술적 목적을 지닌 동시에, 동채싸움과 고싸움 등과 함께 놀이의 승부에 따라 다가오는 해의 풍년을 점치는 구실도 한다. 하절기에는 5월 단오와 7월 백중 명절이 있는데, 단오는 보리이삭이 막피기 시작하는 때에 노는 명절로서 설, 보름, 추석 등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하며, 백중은 지역에 따라 호미씻이라고도 하는데 일꾼들이 논매기를 모두 마치고 쉬는 일꾼들의 명절이다. 이 때는 제각기 단오굿과 백중굿을 하는데, 농작물의 성장을 기원하는 뜻을 지닌다. 단오놀이로는 여성들의 그네뛰기와 남성들의 씨름이 있으며, 백중놀이로는 풍물에 맞추어 집단적인 춤판을 벌인다. 시기로 보아 단오굿이 밭농사 작물의 성장의례라면 백중굿은 논농사 작물의 성장의례이다. 가을에는 추석과 중구가 있어 새로 수확한 햇곡식과 햇과일을 조상신께 바치는 차례를 올린다. 추수를 감사하는 뜻도 갈무리되어 있다. 추석에는 보름달빛을 받으며 여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노래에 맞추어 다양한 원무와 각종 여흥 놀이들을 밤새껏 즐긴다. 이 놀이를 강강술래라고 하는데 정월보름에도 한다. 원무를 통해서 보름달의 풍요를 상징하면서 수확의 기쁨을 경축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소놀이를 한다. 일년 동안 농사일을 열심히 도와준 소에게 고마움을 나타내고, 소처럼 일한 일꾼들에게 지주들이 향연을 베풀어준다. 세시풍속과 관련된 놀이들이 모두 농사력이나 풍농의 의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연날리기나 팽이치기 등의 놀이는 바람도 많고 얼음판도 이용할 수 있는 겨울철 놀이라면, 천렵(川獵)과 화전놀이들은 개울물이 풀려 고기들이 놀고 진달래가 한창 필 무렵인 봄철 놀이들이다. 이처럼 사철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 나라는 계절의 상황에 따라 놀이가 결정되므로, 세시풍속과 관련된 명절놀이들과 달리 계절놀이가 별도로 있다. ◈[통과의례와 민속놀이] 통과의례와 관련된 놀이들은 주로 잔치형식을 이룬다. 잔치는 경사를 맞이해서 일가친척과 이웃들을 청해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향연이다. 백일잔치와 돌잔치, 혼인잔치, 회갑잔치 등이 대표적이다. 어린이들 잔치는 향연에 그치되 어른들의 잔치에는 놀이가 따르게 마련이다. 혼례때는 잔치 외에 혼례식을 올리는 동안 신랑을 놀리며 웃기는 놀이에서부터 첫날밤 신방지키기, 동상례(東床禮)라고 하는 신랑 매달기 놀이가 행하여진다. 회갑때는 부모들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자녀들의 얼굴에다가 먹물로 우스꽝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풍물에 맞추어 크게 춤판을 벌인다. 상례때는 빈상여놀이라 하여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에 상두꾼들이 모여 빈 상여를 메고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상주를 웃기는 놀이를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묘지에서도 거만한 사위를 새끼로 묶고 ‘진사(進士)를 모신다’면서 연극적인 놀이를 벌임으로써, 유가족들이 슬픔에 몰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 ◈[굿과 민속놀이] 무당들이 마을굿을 할 때에도 제의적 활동과 함께 연극적인 놀이를 한다. 가무 중심의 놀이굿도 있지만 탈을 쓰고 연극적인 행위를 하는 탈굿이 특히 두드러진다. 동해안지역의 어촌별신굿에서는 무당들이 탈굿을 하며 본처를 두고 기생과 사랑에 빠져 있는 영감을 풍자하는 가면극을 하는가 하면, 거리굿에서는 무당이 탈을 쓰지 않고 기존의 사회 통념과 윤리적 규범을 뒤집어엎는 일인극을 다양하게 벌인다. 내륙지방에서 전승되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서낭신을 섬기는 동신제의 한 양식이지만, 이때 지체와 학식을 뽐내는 양반과 선비를 풍자하고 중의 파계를 통하여 관념적 숭고성의 허위를 풍자하는 가면극을 한다. ◈[민속놀이의 역사] 상고대에는 놀이가 분화되어 있지 않고 일, 제의, 의식 등과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 이른바 원시종합예술을 생성 전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국가가 형성되고 제천행사가 거행됨에 따라서 남녀노소 구분없이 가무를 즐기며 축제를 벌이는 국중대회가 벌어졌다. 삼국시대에 이르면 탈놀이와 검무, 오기(五伎) 등의 극적인 놀이와 곡예들이 공식적으로 궁중의식에 등장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고대의 국중대회가 팔관회와 연등회로 계승되면서 가무백희(歌舞百戱)라고 하는 다양한 놀이들이 국가행사로서 베풀어졌다. 궁중에서는 연말에 임금과 신하가 함께 참여하여 거국적으로 귀신을 쫓는 나례(儺禮) 행사를 하였으며, 불교가 국교화됨에 따라 정월 및 2월 보름과 4월 초파일에는 대궐과 사찰은 물론 집집마다 등을 달고 연등놀이를 크게 벌였다. 13세기 이후 고려말에 이르면 이러한 국중대회가 점차 축소되고 유교적인 이념이 자리잡게 됨으로써 놀이를 잡성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여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조에 오면 억불숭유 정책으로 연등회와 팔관회는 중단되고 가설무대 위에서 펼치는 산대(山臺)놀이와 중국에서 들어온 나례행사는 계속된다. 이를 관장하는 관청을 별도로 두었으며, 국중대회로 거행되던 산대놀이는 폐지된다. 왕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어울려 함께 놀이를 즐기는 것이 금지되고, 광대들이 벌이는 놀이를 왕과 귀족들이 구경하며 즐기는 쪽으로 놀이가 계층화되기 시작했다. 신분에 따른 놀이의 계층화 현상이 점차 확대되어 격구, 투호, 쌍륙, 장기, 바둑 등 귀족성을 띤 놀이들은 민중들이 할 수 없도록 통제되기도 했다. 그리고 풍물놀이와 탈놀이, 줄타기 등의 광대놀이들은 상민들의 놀이라 하여 양반들이 놀이판에 참여하지 않았다. 마을 단위로 전승되는 동채싸움과 줄다리기 등의 집단적인 놀이들도 양반마을에서는 하지 않았다. 신분사회의 형성과 함께 민속놀이의 차별화가 분명해지게 된 것이다. 일제시대에 이르면 각종 민속놀이가 관의 규제를 받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금지되기에 이른다. 특히 돌팔매싸움과 같은 지역 단위의 대규모 겨루기놀이는 법령으로 금지하였다. 민중들의 대중집회와 집단적 겨루기 형식의 격렬한 놀이들을 금지시킴으로써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사전에 봉쇄하고자 한 식민지 정책 수행의 일환이었다. 우리 민족의 단결된 힘이 이들 민속놀이를 통해서 집약적으로 표출되고 민족의식이 강화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조선조 후기에는 신분에 따라 놀이가 통제되었고 일제시대에 이르러서는 놀이가 탄압을 받게 되면서 민속놀이의 전통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다. 놀이에 대한 탄압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끝이 났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민속놀이가 회복된 것은 아니다. 미군의 주둔과 함께 서구의 놀이들이 밀어닥치고 대중매체를 통해 각종 대중문화가 자리를 잡게 됨에 따라 전통사회의 민속놀이들이 온전하게 되살아나지 못했다. 60년대 이후의 근대화 움직임과 함께 급속한 산업화로 민속놀이의 전승 기반은 더욱 허물어지고, 상업자본가에 의하여 수입되거나 개발된 상품화된 놀이들이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관광회사들이 부쩍 늘고 레저산업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놀이의 주체자이자 생산자였던 민중들은 놀이를 구입하는 객체이자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드서핑, 스키, 볼링, 행글라이더, 골프, 스케이트보드 등 대부분의 놀이 양식들은 외국에서부터 수입되어 값비싼 장비와 함께 판매되고 있다. 놀이 상품화의 시대, 놀이 수입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놀이문화의 전통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각성이 대학가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1970년대부터 대학가에서 민속놀이에 대한 계승운동이 활발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는 일대 붐을 조성하였다. 종래에 쌍쌍파티, 빙고게임, 페스티발 등 서구적인 축제문화에 젖어있던 대학가에서 탈춤과 풍물, 민요, 굿 등 전통적인 민속놀이를 중심으로 축제를 벌일 만큼 상황이 호전되었다. 자연히 민속놀이를 익히는 동아리들이 대학 안에 다양하게 생겨났다. 대학가의 놀이문화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크게 영향을 미쳐 기능보유자를 통한 전수활동과 함께 사설 단체나 강습소에서 탈춤과 민요, 판소리, 풍물 등을 교습하고 익히는 사례가 늘어났다. 그러나 민속놀이의 토대인 마을공동체의 해체와 지역축제의 단절로 인하여 본디 양식대로 전승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말하면 민속놀이는 어느 정도 계승되고 있되, 민속놀이문화는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참고문헌 * 韓國의 民俗놀이(沈雨晟, 三一閣, 1975) * 한국의 민속놀이(김광언, 仁荷大學校出版部, 1982) * 민속문화론(林在海, 文學과 知性社, 19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