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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6(일) 오전 맑음, 오후 늦게 비
<주요 일정> 꾸스꼬~피삭(성스러운 계곡)~오얀따이땀보~아구아스깔리엔테스
<숙소> 아구아스깔리엔테스 마르케스(Marquez)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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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어제보다 한결 더 고산 지대에 적응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천천히 이동하고 움직여야 한다.
숙소에서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나서 짐을 꾸렸다.
짐을 꾸리는 동안 또다시 고소증이 밀려왔다. zzzzz
이틀 후 이곳으로 다시 오기 위해 필요한 짐만 배낭에 집어 놓고, 그 나머지는 캐리어에 차례대로 두었다.
간 밤에 부풀어질대로 부풀어진 봉지 커피와 비스켓 봉지는 빵빵한 채 그대로인데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준비해 온 기내용 포장 김치 한켠이 부풀어 터져 약간의 국물이 새고 있었다.
급히 화장지로 닦고, 여분의 비닐로 칭칭둘러 감았다.
오늘은 전용 투어 버스를 이용하여 꾸스꼬와 그 외곽을 투어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 잡혀 있다.
숙소 밖으로 나왔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아르마스 광장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숨쉬기가 좋았고 밝은 햇살을 받은 건물들은 유난히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삭사이와만 요새로 가는 차량을 이용하여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니 꾸스꼬 시의 전경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꾸스꼬와 인접한 곳의 전체 관람용 티켓을 끊었다.
삭사이와만, 켄코,푸카푸카라, 땀보마차이, 모라이, 살리나스 염전, 친체로, 오얀따이담보......
관광 코스 상품을 낱게 판매 또는 일괄 판매를 하고 있는데,
모든 곳을 다 거쳐가는 것은 135솔, 개별적으로 선택 관광하는 것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나 모두 더하면 훨씬 비싸게 먹힌다.
과연 이 한 장의 통합 티켓을 가지고 제한된 시간 내에 꾸스꼬 일대의 관광을 모두 소화해낼지 모르겠다.
마치 다 읽지도 않을 문고 세트를 구입한 느낌이다.
30여권짜리 종합 문고를 구입할 경우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될까?
10여권 내외가 아닐까?
나머지는 그냥 장식용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런걸 노리는 이상 장사꾼은 손해보는 짓을 하지 않는 법이다.
오늘 시작하는 투어도 분명 이러한 내막을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낯선 이곳에서 관광 지역이 80km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곳을 3일 만에 다 돈다는 것은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이미 꾸스꼬에 온 이상 이러한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점을 알고 출발할 수 밖에 없다.
꾸스꼬의 관광 네크워크 속에 나 자신이 영락없이 갇힌 셈이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매표소 바로 뒤의 '삭사이와만(Saqsayhuman) 요새'이다.
이 요새는 꾸스꼬의 잉카 유적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안내되는 지역이다.
우선 해발고도 3,600m에 위치하여, 3,300m에 위치한 꾸스꼬 시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면서, 잉카 유적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대한 돌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축성해 놓은 것은 압권이다.
단순히 사각형이 아니라 여러 다각형 돌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짜맞추어 놓았다.
더욱이 돌 하나 하나의 크기와 무게를 상상한다면,
당시 고대 잉카인이 어떤 도구를 이용하여 이 거대한 돌을 다듬었고 운반하게 되었는지는 두고두고 의문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이곳의 기반암은 석회암인 반면, 정교하게 다듬은 돌은 대부분 화강암이기 때문이다.
잠시 초록의 풀밭으로 눈을 돌리는 사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이곳을 대표하는 동물, 온 몸에 털이 치렁치렁 늘어져있고, 갈색, 흰색, 검정색의 동물들이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바로 이곳 사람들에게 귀중한 털과 고기, 젖을 제공하는 알파카이다.
이 '알파카'는 안데스 산지에서 야마(라마)와 더불어 주민들의 주요 가축이다.
야마가 당나귀 정도의 크기라면 알파카는 염소 정도의 크기랄까?
기단의 아래를 둘러보고 위로 올라가보니 역시나 아랫 부분 못지않은 석축이 전개된다.
아직까지 유물 복원이 완전히 이루어 지지 않은 곳은,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여 복원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근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곳이 하나의 성곽 요새라고 알려져 있지만
동시대의 동아시아와 유럽의 축성술과 비교할 경우 단순히 돌을 쌓은 기술말고, 전략적 관점에서 축성되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당시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의 성곽은 평지의 성이든 산성이든 간에 사각형,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성을 둘러싸는데
이곳의 성곽은 언덕의 고도에 따라 단순히 계단형으로 나타나 있다.
또 성곽 외부는 상대 군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자를 만들며,
내부는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주거시설, 식수시실, 병사들의 조련장, 농경지,,,, 등이 갖추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곳 삭사이와만 요새는 그러한 모습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동아시아에 비해 잉카 시대의 이러한 성곽은 축성술 자체는 뛰어날지라도 전략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낮은 단계의 성(城)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마침내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다.
꾸스꼬 시의 전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고산 지대의 강렬한 햇살에 비치는 꾸스꼬는 전형적인 고산 분지 도시이다.
분지 아래, 시의 중심에 해당되는 정방형의 아르마스 광장이 눈에 들어오고, 그 왼쪽의 넓은 평지에는 국제 공항,
그리고 주변을 감싸도는 산지의 산록부와 정상 아래까지 주택지로 밀집되어 있다.
이곳이 과연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산기슭 위의 언덕의 집들은 분지 저지대의 잘 구획된 도시와 달리, 리마의 외곽에서 본 것과 거의 유사한 슬럼(slum)들이 대부분이었다.
잉카족(케추아족)은 14세기경 이곳을 중심으로 부족을 통합한 후 세력을 규합하여 힘을 기르고,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중반의 약 100년의 역사를 통해 점차 주변을 정복해나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대제국을 완성하였다.
수도인 꾸스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남쪽으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북부까지 그들의 영토를 넓혔다.
그리고 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3,250마일(약 5,233km)이나 되는 도로를 건설하고,
정복 지역에는 꾸스꼬의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고,
그곳의 관리 자녀를 꾸스꼬로 데려옮으로써 소위 인질 정책을 통해 그들의 지배권을 강화해 나갔다고 한다.
또한 법률도 일반 평민보다 관리들에게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여 제국이 유지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13세기 초기부터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멸망할 때까지 19왕조가 있었다.
그러나 잉카 제국은 삭사이와만 요새와 같은 정교한 석축, 대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도로나 행정 제도 등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명이 철기 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청동기 문명에 그쳤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진 촬영과 주변 경관 관찰에 몰두 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일행을 잠시 놓쳐버린 해프닝이 발생하였다.
삭사이와만으로 올라온 입구 쪽으로 일행을 찾으러가니 현지 관리인이 반대쪽으로 가라고 알려주면서 직접 안내해 주고 있다.
고산 지대라 급히 이동하다 보니 숨이 차오른다.
다시 일행을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도 버스에서 기다리게 한 일행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미로(지그재그)라는 뜻을 가진 '켄코(Qunqo)' 유적지였다.
석회암 기반암 사이의 절리면 틈에 구불구불한 길을 조성하였다.
이곳 한 켠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젊고 유능한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곳이라고 한다.
정말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제단이었다.
'땀보마차이'로 이동하는 과정에 '푸카푸카라(Pukapukara)' 유적지는 아담한 것 같은데 시간 관계상 그냥 통과한다.
바로 세트 상품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큰 상품을 사다보면 불필요한 끼워팔기 상품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지구촌 반대편에 몇 년간의 공들여 왔지만 일정상 생략한다는 게 영 개운치 않다.
물론 생략해도 될 만큼 유적이 관광객들에게 크다란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의미는 개인의 능력과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테니까....
바로 옆의 ‘땀보마차이(Tambomachy)’는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면서 관찰되는 석축이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원주민 복장의 여성과 양, 일명 모델값을 받기 위해 유적 입구 바로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나타나는 석축은 그냥 듬성듬성한 조악한 구조물이었다.
삭사이와만 요새의 성곽에 비할바가 못되었다.
약간 더 길을 오르니 잉카 특유의 정교하게 다음어진 석조물이 나타난다.
이곳은 석조물 왼쪽에 수로 시설까지 정비되어 있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수량이 일정하게끔 이 수로를 통과시킨다는데,,,,안내인은 잉카인들의 뛰어난 석축술을 자랑하고 았다.
역사 유적을 설명할 경우 등장하는 신비주의적 색채는 이 곳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수로를 흐르는 물의 양은 강수량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지 않을까?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소감은, 현지 가이드나 안내용 책자의 해설이 신비주의적 요소가 들어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현재 주변에 자랑할 게 그다지 없을 경우 화려했던 과거를 윤색하여 뻥튀기하는 느낌이다.
하기야 한 인간의 개인사를 보더라도 모두 왕년에 한 끝자락씩 했을 것이니,
이러한 거대한 문화재에 약간의 윤활류를 칠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래서 역사가는 때로는 정교한 거짓말쟁이일 수도 있겠다.
그 능력이 바로 밥그릇과도 관계되는 일이니까.....
다시 차량에 올랐다.
꾸스꼬 시를 둘러싼 분지 외곽으로 차량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어느 덧 농촌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시작한다.
꾸스꼬 교외의 안데스 산자락이 밝은 햇빛 아래 빛나고 있다.
초록의 수목들, 민가, 산비탈의 농경지, 푸른 하늘과 정상부를 감싸고 솟아오르는 구름들.
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나타난다.
우리의 과거와 마찬가지로 흙벽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 담을 쌓았고, 심지어 밭의 경계를 삼기도 하였다.
갑자기 일행 모두 폭소가 터졌다.
바로 옆 산비탈에서 야마(라마)가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뛰는 모습이 재밌다.
당나귀만한 크기의 라마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모습, 이곳 남미가 아니면 어디서 관찰하랴....
이제 이 새로운 모습도 앞으로 남은 남미 여행의 예고편이 될 것이다.
차량이 산길을 여러 번 굽어 도니 거대한 계곡이 나온다.
깊은 협곡과 주변을 위압하는 산지, 그 아래 흐르는 흙탕물, 바로 우루밤바 계곡 입구인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이드에게 차량을 세워 달라하니 안그래도 세울 예정이란다.
약간 머슥해진다.
누구나 이러한 환경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러한 계곡의 경관은 눈에 꼭 집어 넣고 싶을 것이다.
깍아지른 듯한 안데스의 깊은 골짜기에 아늑히 자리잡은 마을, 유유히 흐르는 물, 그 주변에 형성된 농경지, 비록 좁지만 매우 비옥한 곳임에 틀림없다.
이 성스러운 계곡에는 잉카의 페허가 된 유적지와 계단식 농경지가 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하였다.
지도를 보면 이곳에서 시작되는 우루밤바 계곡을 따라 피삭, 라마이, 우루밤바, 오얀따이땀보... 등의 작은 도시들이 분포하는데,
이들 도시는 꾸스꼬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중간 기착지에 입지하고 있다.
또 해발고도 3,300m인 꾸스꼬와 달리, 해발 2,500~2,700m 사이에 위치하여,
꾸스꼬보다 해발 고도가 낮아 고소증 증세가 덜 나타나기 때문에
꾸스꼬에서 지내기 힘든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발달되어 있는 관광 타운으로 발달한 도시가 되었다.
다시 차량을 타고 길을 굽이도니 비교적 큰 타운이 나왔다.
‘피삭(Pissac)’이란 도시다.
‘야생 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약 2,700m여서 꾸스꼬보다 고소증 증세가 덜했다.
이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재래 시장과 상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덕분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의 상가로 들어서니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은 외국 여행객들이 와 있었다.
옷, 기념품, 보석 가게들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 TV 등장했던 유명한 빵집(?)도 있었다.
도시 규모에 비해 상가는 매우 큰 것 같다.
몇 블록 돌아보니 재래 시장이 나왔다.
많은 원주민들이 그들이 가져온 물품을 사고팔고 있었다.
알갱이가 큰 옥수수, 여러 종류의 감자, 꼬마 당근, 붉은 양파, 싱싱한 상추, 바나나, 체리, 망고, 포도 등의 과채류들,
특히 감자는 본고장답게 알이 어른들의 주먹크기 이상의 굵은 것에서부터 엄지 손가락 정도의 작은 것 까지 다양한 크기와
껍질이 담색, 보라색, 분홍 색 등 다양한 색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야시장에서 만들어 풍기는 음식 냄새로 인해 배가 더욱 고파졌다.
노점 한켠에서 현지인들과 서양인들이 서로 엉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현지의 국수(스파게티)인데, 국수에 닭고기와 소스를 끼얹어 주고 있다.
한 그릇에 4솔, 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릇과 음식 만드는 용기를 보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이색 체험(?)을 하고 싶었는데, 일행 중 한명이 말린다.
“형님 저 음식 먹었다간 100% 설사 합니다.”
위장이 민감한 나로서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약간이라도 상한 음식이 들어가면 화장실로 직행해야하니....
지금까지 음식 때문에 4차례의 식중독 사고를 당한 경험 때문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께림칙한 음식을 볼 경우 불현듯 다가오는 음식 트라우마...
여기서 저 음식 먹고 혹시 잘못되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나 뿐만 아니라 일행들의 일정에도 지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내일은 남미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라고 할 마추픽추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변명하고 싶은 여러 잡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그냥 현지인들처럼 열심히 먹고 있었다.
또 일부는 이 곳에서 숙소를 정하고 직접 바구니를 들고 채소와 고기, 과일 등을 구입하면서 현지 생활 체험을 하고 있다.
배낭 여행객에게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지는 답이 뻔하게 나오는 것 같다.
패잔병이 소위 ‘작전상 후퇴했다’라고 변명할 수 밖에 없는 꼴이 되었다......
식사는 현지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레스토랑에 들러 위생적인 음식(?)인 닭고기 국수(12솔)를 먹었다.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페루 물가를 비교한다면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멸치 다시물에 나온 소면과 큰 차이가 없는 맛있는 국수였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우루밤바 계곡을 내려갔다.
아까 못 먹은 노점 식사는 페루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은 경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떨칠 수 없었다.
다시 버스가 섰다.
우루밤바 강 옆의 '라마이(Lamay)'라는 마을을 지나는 길 옆은 화로에 ‘쿠이(Cuy)’ 구이가 한창이다.
쿠이는 쥐를 닮은 자그마한 설치류이다.
생김새로 인해 혐오감을 주기도 하지만 맛은 별미라고 한다.
조그마한 마을 도로 한 옆에 10여개의 화로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현지인들은 그 뒤편의 간이 식탁에서 연신 쿠이를 뜯어먹고 있다.
가격을 흥정해보니 외국인인지라 한 마리당 40솔(약 18,000원)을 부른다.
우리나라 치킨 한 마리보다 크기는 작은데도 가격은 비싸다.
페루 물가를 고려하면 과연 현지인들이 이 가격에 사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외국 관광객은 현지 상인들에게 봉이 되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절대 절명의 순간이 아닌 이상 지갑을 열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침 식사 한 지도 얼마 안되어 배고픔은 걱정안해도 되니.... 헤게모니는 내가 쥔 셈이다.
좀 더 깍아달라 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발길을 돌렸다.
손가락으로 30솔을 가리킨다.
10솔 하자고 흥정을 했다.
안된단다.
20솔로 낙착을 보려고 손가락을 펼치는 순간,
일행 중 성질 급한(?) 한 분이 쿠이 2마리를 70솔에 구입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흥정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
'오얀따이땀보(Ollyantaytambo)'로 향하는 '우루밤바(Urubamba) 계곡'은 커다란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골짜기 좌우의 해발 4,000m가 넘는 급경사 산지가 이어지지만, 자연 환경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간섭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 관찰되었다.
하천 주변의 비교적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 뿐만 아니라 산지의 경사지에도 다락밭을 가꾸어 놓았다.
이곳 저지대에서는 어딜가나 옥수수는 쉽게 볼 수 있었다.
버스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한다.
오얀따이땀보에 가깝게 다가서자 도로가 아스팔트가 아닌 자갈로 포장되어 있었다.
버스는 정차하고 일행은 내리고, 페루 어디서나 도시가 형성된 곳이면 매캐한 냄새가 먼저 사람을 맞이하였다.
곳곳에 관광 기념품 가게로 즐비하다.
여러 가지 잉카 문양, 라마와 알파카 인형, 창이 넓은 모자, 알파카로 짠 모자, 머리띠, 가방 등....
정면에 사람을 위압하는 급경사 산지와 거대한 석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식 모양의 석조물이 계곡의 산지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맞은 편 급경사 산지에도 석조 유물이 관찰된다. 오전에 발권한 표를 보여주고 입장하였다.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돌 밖에 없다.
삭사이와만 유적과는 달리 석축들이 듬성듬성 다듬어져 있다.
고대 잉카인들도 석축을 할 때, 그들 나름의 중요도를 감아하여 석축한 것 같다.
그냥 평범하다고 판단한 곳은 일반 돌담처럼 쌓은 것 같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제단, 신전, 왕궁, 높은 신분의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거대한 돌을 정교하게 짜맞추어 건설한 것 같다.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석축의 윗부분은 초지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이 거대한 계단식 석축이 실은 잉카인들에게 농경지로 이용된 셈이다.
약간의 고소증을 안고 또 올라 드디어 정상까지 왔다.
발아래는 계단식 농경지 윗부분의 푸른 잔디와 오얀따이땀보의 도시가 눈앞에 들어왔다.
오얀따이땀보는 전형적인 하천 합류 지점에 입지한 아담한 분지 도시이다.
주변은 높은 산지가 둘러싸고 있다.
이곳도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이곳의 상징물인 거대한 화강암 유물, 어떤 식으로 이용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돌을 왜 여기까지 운반했는지 알 길이 없다.
주변 산지의 기반암이 대부분 석회암과 (일부) 사암인데 반해, 이런 구조물을 건축하기 위해 거대한 화강암을 어디에선가 운반하였을 텐데.....
돌을 다듬다 방치한 것인지, 후에 스페인 침략자들이 파괴한 흔적인지는 몰라도 여기저기 널려져 있는 거대한 돌들이 있다.
기둥모양을 띠고 있는데 기중기(도르래) 원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 같다.
유적지 높은 곳 외곽에 놓여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보는 위치에 따라 새롭게 느껴진다.
아마도 오늘 눈에 들어오는 이 유물들은 내일 마추픽추를 보는 작은 예고편일 것이다.
선인장, 알로애, 기생식물, 여러 관목들이 급경사 산지에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생명체의 끈질김에 경외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한 용무로 인해 가장 외곽 끝자락의 폐허로 방치된 가옥 위에 있는 급경사의 오솔길을 올랐다.
키가 큰 식물 군락이 내 몸을 가려줄 것 같았다.
그간 꾹 참았던 한줄기 물을 뿜었다.
왼쪽 팔 안쪽에 갑자기 통증이 왔다.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선인장 가시에 찔려버렸다.
순간적인 일탈 행위로 인해 확실한 딱지를 뗀 셈이 되었다.
선인장 봉우리 하나가 떨어져나와 옷을 뚫고 몸에 붙어있다.
조심스럽게 떼어내었지만 통증과 불편함이 오후 내내 따라다니고 있었다.
계단식 경작지를 내려오니 해는 지기 시작하고 인근 기차역으로 이동하였다.
내일 마추픽추로 가기위해 '아구아스깔리엔테스(Aguas Calientes)'로 향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오얀따이땀보에서 아구아스깔리엔테스로 가기 위해서는 열차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3박 4일 가량 도보 트렉킹을 해야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거대한 문화재 관리를 놓고 정부가 가장 큰 이권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짐작된다.
역에 기다리는 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방 폭우로 돌변하였다.
가까운 까페에서 기다리면서 삶은 옥수수와 물을 사먹었다.
이곳의 옥수수 알갱이가 매우 크고 맛이 차지면서도 담백하였다.
여기서 흔하게 보는 옥수수와 감자.
이곳 주민들의 대표적인 주식(主食) 작물이다.
또 이들 작물은 이곳이 바로 지구촌 원산지이기도 하다.
안데스가 인류에게 제공한 작물로는 옥수수, 감자, 고추, 호박, 토마토, 담배 등이 있는데, 담배만 빼고는 모두 인류에게 축복을 준 작물임이 틀림없다.
이 축복받은 땅에 거주하는 인디오 주민들의 삶도 축복으로 이어졌다면 맘 편히 여행할 수 있을텐데 세상은 비정하게 돌아가는 곳도 있는 것 같다.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약 1시간 40분 정도 달려 '아구아스깔리엔테스' 역에 도착하였다.
물의 도시답게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세차다. 어두운 안데스의 밤.....
일행이 머무는 숙소에 방이 부족하여 인근 숙소에 다시 방을 배정받았다.
조그만 방에 작은 화장실 하나와 침대 세 개가 딸려 있었다.
창문은 방풍과 방음이 되지 않고 틈이 많이 벌어져 있었고, 바깥의 축축한 공기가 연신 방으로 스며들었다.
창문으로 방풍이 안되어 커튼을 양쪽으로 묶어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다시 밖으로 나와 B님과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밤 10시가 넘다보니 일부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불켜진 식당을 찾아 나섰다.
관광지 답게 음식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스파게티와 치킨 요리를 시켜먹고 목을 축이기 위해 맥주 한병과 와인 한병을 곁들여서 마셨다.
안데스의 밤은 오늘도 이렇게 가고 있는데, 낯선 길 여행의 불편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욕조 타일 바닥에 뭔가가 팔딱팔딱 뛰어 다니고 있었다.
틀림없는 벼룩이었다.
벼룩의 뜀박질을 몇 번 관찰하다 그냥 잡아 버렸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오니 온몸이 으스스할 정도로 춥다.
고산 지대라서 밤이 되면 낮과 달리 기온이 뚝 떨어졌다.
준비해 온 침낭을 꺼내고 그 안에 핫팩을 하나 붙였다.
그리고 침대의 이불은 그냥 메트리스로만 이용하기로 하였다.
내일은 이제 35일간의 남미 배낭 여행 중 최고라고 할 마추픽추로 간다.
그 마추픽추가 온전히 그의 모습을 보여줄지는 오로지 하늘에 달려있다.
일행 중 일부는 마추픽추의 일출을 보기위해 새벽에 출발한다고 하는데, 오늘밤의 궂은 날씨로 보아 일출은 아마도 희망 사항이 될 듯하였다.
평소보다 푹 쉬어야 하는데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나그네는 쉬고 싶은데, 할 일은 계속 쌓여만 가고, 오늘따라 일지 쓰는 것이 왜 이리 더딘지,,,,,
이러다 보면 새벽이 오고 해는 다시 솟아 오르겠지.......
‘아구아스깔리엔테스’의 밤은 세찬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천천히 깊어만 가고 있었다.
부풀어 오를때로 부풀어진 기내용 김치(꾸스꼬 숙소에서)
이 곳 숙소의 해발고도가 약 3,300m입니다.
삭사이와만 요새(해발고도 약 3,600m)
꾸스꼬시 외곽 산지에 있으며 잉카인들의 석축술을 관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잉카제국의 수도인 꾸스꼬를 방어하는 요새역할을 한 곳이랍니다.
삭사이와만 요새 정면의 석축들
석축이 정방현 또는 타원형이 아니라 지형의 높이에 따라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14~15세기 전후 이들의 석축 방법이 우리나라(고려말~조선초)나 중국과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성벽들
이들 거대한 성곽(돌)은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구축해 놓았습니다.
돌은 사각형 또는 다각형 형태로 잘라서 사용하였는데, 당시 잉카의 청동기 문명을 고려할 경우
돌 다듬는 기술이 매우 정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돌의 한 변의 길이가 2m 이상이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무게는 몇 톤이나 나갈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서 짜맞춘 화강암 돌
삭사이와만 요새의 성곽 측면부
바로 앞의 돌은 높이가 3m 이상이 됩니다.
참고로 이 일대의 기반암은 모두 석회암입니다.
삭사이와만 요새 앞의 알파카,
라마(야마)와 더불어 안데스 고산 지역을 대표하는 가축입니다.
이 알파카는 라마보다 키가 작고 털은 길게 자랍니다.
주민들에게 옷 제작에 필요한 털 뿐만 아니라, 고기와 젖을 제공합니다.
성질이 온순하여 기르기 쉽다고 합니다.
여러 무리의 알파카,
삭사이와만 요새 앞의 풀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습니다.
참고로 안데스 산지를 대표하는 이러한 류의 동물로는
야마(라마), 알파카, 비꾸냐, 과나코 등이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것은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린 알파카를 안고 포즈를 취하는 페루의 모델
모델의 키(180cm)를 참조하면 돌 하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메스티소(백인+인디오의 혼혈)인데 호리호리한 몸매가 일품입니다.
무엇보다 팔 다리가 길게 빠진 것이 매력적입니다.
삭사이와만 요새의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과 석축
삭사이와만 정면 반대쪽의 석축
삭사이와만 요새에서 바라본 꾸스꼬,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
꾸스꼬는 전형적인 고산 분지 도시입니다.
고산 분지에 도시가 입지한 이유는 식수를 구하기 쉽고, 강풍의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기온의 일교차가 크고, 매연이 주변으로 잘 빠져 나가지 못하고 분지 내부에 깔려 스모그가 자주 발생합니다.
꾸스꼬의 아르마스 광장
잉카 제국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 스페인 지배자들에게 철저히 파괴되고,
그 자리에 성당, 교회, 광장, 분수 등이 들어와 있습니다.
도시의 외관이 잉카 제국의 모습이 아니라 남부 유럽풍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꾸스꼬시 북동쪽의 경관,
이곳에 국제 공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꾸스꼬 시 산기슭에 자리잡은 슬럼들
경사진 언덕에도 주택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꾸스꼬시와 축구장,
해발 3,300m에서 축구를 할 경우?
남미 국가 중 고산 도시가 발달한 콜롬비아, 에콰도로, 페루, 볼리비아 등의 축구 대표팀들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맞이하여 선전하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바로 해발 고도의 이점을 살려 승리를 일궈내는데,
반대로 저지대에 위치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이러한 고산 지대에서는 제대로 뛰어다닐 수가 없다고 합니다.
켄코 유적지의 퓨마 바위,
켄코는 '미로'라는 뜻을 가진 구불구불한 곳입니다. 그 내부에 제단이 있습니다.
켄코의 제단,
젊은 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곳입니다.
땀보마차이,
계절에 관계없이 이곳의 수로는 마르지 않는다고 하여, 일명 '성스러운 샘'이라고 합니다.
땀보마차이의 샘(수로)
꾸스꼬 교외에 위치한 '성스러운 계곡'
이 성스러운 계곡을 흐르는 강이 유명한 우루밤바강(아마존강 상류)입니다.
이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마추픽추까지 도달합니다.
사진의 우측이 상류, 좌측이 하류입니다.
성스러운 계곡 입구
꾸스꼬를 벗어나면 깊은 계곡이 나타납니다.
피삭, 우루밤바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
마추픽추를 가기위해 거쳐야하는 도시입니다.
피삭의 기념품 가게
피삭의 기념품 가게
머리 두건을 직접짜고 있는 인디오
피삭의 야시장(재래 시장)
이곳에서 인디오(원주민, 케추아족)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크기와 색을 보여주는 감자들
이 곳의 감자는 맛이 일품입니다.
각종 과일들, 바나나, 복숭아, 사과, 배, 망고, 체리, 포도,.,,,
잠시 휴식, 식사를 하는 원주민들,
식사는 접시로 받아와서 음식물을 손으로 집어서 하고 있습니다.
피삭 재래시장 주변의 주거지,
주택길 가운데 홈은 배수 시설입니다.
비교적 깊게 파여있어 부주의하게 걸었다가는 발목이 삐끗하기 쉽습니다.
피삭에서 우루밤바로 향하느 도중의 라마이의 '쿠이(Cuy)' 구이 가게
길 가에 쿠이 구이 화덕이 죽 늘어져 있습니다.
잘 구워진 쿠이(우측)와 덜 구워진 쿠이(좌측),
일명 '쥐고기'라고도 합니다. 모양새를 보면 먹고 싶은 맘이 싹~
오얀따이땀보 유적,
이곳 유적은 계단식 농경지와 신전, 잉카인들의 주거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추픽추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얀따이땀보 유적지 정면,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 농경지를 만들고, 그 위에 신전과 주거지를 건설했습니다.
오얀따이땀보의 석축,
이 곳 계단식 농경지의 석축은 삭사이와만처럼 커다란 화강암 돌이 아닌 주변의 돌을 이용하여 쌓았습니다.
위의 신전(?)은 큰 돌은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만들었습니다.
맞은 편 급경사 산지에도 잉카 시대의 석조 유물이 있습니다.
산지 중턱에 전투 식량을 저장한 창고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오얀따이땀보는 우루밤바 계곡에서 마추픽추와 아마존 정글로 들어갈 수 있는 요충지에 있는 셈입니다.
오얀따이땀보 유적지 계단식 유적지 맞은 편 경관
전투 식량을 보관한 요새 옆의 거대한 애추(talus)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일교차가 크고 기계적 풍화 작용이 활발하여 거친 자갈들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유적지에서 바라본 '오얀따이땀보'
우루밤바 계곡의 약간 넓은 평지에 자리잡은 오얀따이땀보는 도시 전체가 관광타운화 되어 있습니다.
잉카 시대의 장군인 '오얀따이땀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을 잉카 군대가 이 곳으로 유인하여 첫 전투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후에 스페인 지원군에게 패하는 바람에 그들의 시대가 완전히 종지부를 찢게 됩니다.
우루밤바 강 옆의 농경지,
여름철이라 농작물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유적지 위의 주거지, 과거 잉카인들이 거주했던 주택들입니다.
유적지 윗 부분,
신전과 주거지는 계단식 농경지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잉카 시대 비리코차신을 모신 태양의 신전
이 거대한 돌(높이 4m 이상)을 어떻게 운반했는지는 이 정확히 구명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6개의 커다란 돌 사이에 작은 돌을 깎아 사이에 밀어넣어 밀착시켜 완성시킨 듯합니다.
오얀따이땀보 유적지 윗부분,
이 곳은 아래에 있는 농경지와 달리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구축해 놓은 것으로 보아,
당시 지배층들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주거지 사이에 난 좁은 길
오얀따이땀보의 계단식 농경지
급경사지에 구축된 주거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거지는 대부분 폐허가 되었습니다.
야생 선인장
이 곳에 흔적을 남기다가 이 선인장 가시에 왼쪽 팔이 콕 찔렸습니다.
오얀따이땀보 유적지 전경.
미리 이 유적지를 관찰함으로써 마추픽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얀따이땀보 기차역,
마추픽추로 가기위해서는 이곳에서 열차를 이용하거나, 3박 4일간의 트렉킹을 하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 내부,
이 열차를 타고 1시간 40분 정도 가면 마추픽추에 가장 가까운 아구아스깔리엔테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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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미 배낭여행 참좋은 추억으로 되겠네요..나중에 갈때 참고하게 글계속 올려주세요
고생한 여행이라 절로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기는 1주일 또는 열흘 단위로 1편씩 올릴 예정입니다.
여행하면서 그날 밤 또는 다음날 새벽에 비몽사몽간 하면서 작성한 글들이라
엉망투성이입니다.
너그러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잘 보고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못된 것이거나 관점이 다른 것이 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