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열고 생각은 넓히고
임종찬(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개그맨으로 활약하던 정광태가 1982년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불러 일약 유명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이란 노래 말이 나오는 노래이지요.
일본에서는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합니다. 우리는 독도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독도에 그다지 관심 두지 않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일본인들은 한국 군인이 배치되어 실효지배를 하고 있으니 할 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투라 생각됩니다.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 열도 문제로 시끄러운 판에 한국과 또 영토분쟁으로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다케시마는 일본 땅” 뭐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을뿐더러 일본 학자 중에는 다케시마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여럿 있지요.
만약 어떤 근거를 들면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학자가 있다면 한국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이런 발언을 한 학자는 견디기 힘든 모욕을 감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고, 확실한 친일파, 토착왜구로 지목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유달리 국가를 민족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국가와 민족의 동일체가 우리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집, 이런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My father이고 My house입니다. 한국인은 아내를 내 마누라라 하지 않고 우리 마누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누라라. 외국인들은 마누라가 공유재산인가 할 것 아닙니까. 한국인들은 ‘나’를 주장하기를 싫어하고,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우리’이기를 원합니다.
문화를 바라보는 이런 시각이 있습니다. 미술평론가 최순우(崔淳雨,1916〜1984)는 이 방면에 최고의 학자입니다. 그런 그가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택은 일본 가옥처럼 꼼꼼하며 신경질적인 디자인이나, 만드는 데 있어 기교미를 자랑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인위적이고 쩨쩨한 석가산(石假山)이나 이발소에 다녀온 것 같은 정원수로 정원을 꾸미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중국의 집처럼 거창하지도 않다. 한국의 집은 말쑥하고 차분하며 한국의 자연의 풍광에 그 크기가 잘 융합되어 있다.(우리 미술 우리 문화, 학고재 1922)
우리 것은 우리 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고, 외국 것은 외국 것대로 아름다움이 있은 법입니다. 일본 문화를 쩨쩨하다든가 신경질적이라든가 이런 감정 섞인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쩨쩨하다는 좀스럽고 인색하다는 뜻 아닙니까. 이발소 갔다 온 단정한 머리 모양은 이발하기 전의 덥수룩한 모습보다 아름답다 하면 틀리는 것인가요.
자연미를 발하는 것에서 한국미의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자랑일 수 있지만 다른 나라는 우리와 다른 미의식으로 아름다움을 발휘하는 문화임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습니다.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돌의 미학’이란 수필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묘심사에는 다도의 종장(宗匠) 한 분이 있었다. 나는 가끔 이 노화상과 대좌하여 다도를 즐기며 화경청적(和敬淸寂)의 맛을 배우곤 하였다. 녹차를 찻종에 넣는 작은 나무국자를 찻종 전에다 땅땅땅 두드리는 것은 벌목정정(伐木丁丁)의 운치요, 찻주전자를 높이 들고 소리 높여 물을 따르는 것은 바로 산골의 폭포 소리를 가져오는 것이라 한다. 일본 예술의 인공성ㅡ 그 자연을 비틀어 먹는 천박한 상징의 바탕이 여기 있구나 싶어서, 나는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자연을 비틀어 먹는 천박성이 일본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다른 국면이 있는 게 일본 문화입니다. 우리 것만이 좋다는 편협성만으로는 큰 문화를 만들지 못하지요.
한동안 왜색풍(倭色風, Japanese way)이란 말을 흔히 하였습니다. 일본문화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고, 일본 영향을 흉내 낸 풍조를 얕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서울 조계사 내에는 과거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진신사리 석탑이 있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정통 양식에 어긋나는 왜색을 띄고 있다 해서 멀쩡한 이 건물을 부수고 8각 10층 부처님 진신사리 탑을 새로 건립했습니다. 애초의 건물이 얼마나 왜색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리둥절하고 아쉬움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설사 왜색을 섞어 만든 석탑이라면 이건 이미 일본 탑이 아니라 우리 탑입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의 노래는 1963년 동아방송 라디오 드라마의 ‘동백 아가씨’가 1963년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 아가씨’의 주제곡입니다. 이 노래를 이미자가 불러 당시 신인 이미자는 일약 유명 가수 덤에 올랐고, 음반 판매고가 상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이 노래가 일본의 엔카와 닮은 왜색풍의 노래라 해서 이미자를 방송 금지시켰고,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한국 트로트와 일보 엔카는 얼마나 다른가. 엔카를 한국인이 부르면 왜 안 되는가. 이런 노래 부르면 친일파인가. 팝송을 부르면 미제국주의자인가.
한국 노래나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만 일본 드라마나 일본 노래는 한국 방송에서는 잘 내보내지 않아 인기가 없는 편입니다. 일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일까요. 그러나 문화는 다양해야 합니다. 외국 문화의 유입이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요.
비틀즈의 장발 머리를 흉내 내는 것, 미니스커트, 맘보바지를 입는 것을 두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해서 강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풍양속이 그렇게 값진 것인가요. 그렇다면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옛날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이런 차림의 한국인을 불 수 없습니다. 이건 뭐라 설명해야 될까요. 시대에 따라 풍속이, 행동양식이 달라집니다. 문화는 서로 넘나들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애초보다 더 좋고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그림에서 야수파 그림이, 그들의 춤에서 트위스트 춤이, 그들의 노래에서 재즈 음악의 탄생을 본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원형 그대로의 순수 문화가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BTS 음악은 외국 음악을 수용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낸 음악입니다.
피자(pizza)는 밀가루로 만드는 이탈리아 파이인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국화된 피자로 재탄생되어 한창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이 되었습니다. 외국 무기를 더 발전시킨 것이 K—방산입니다. 외국 문화는 우리 문화의 보강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라는 울타리와 우리 것이어야 한다는 고착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생각을 넓혀야 합니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은 외국 문화를 갖고 오는 문화 배달부들이라 보면 어떨까요.
6월 5일자 신문에서 한국 1인당 국민소득(GNI)은 3만 6,194 달러인데, 일본을 제치고 인구 5천만 이상 국가 중 6위에 등극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경제 대국이 한국이라면 한국인의 생각과 마음도 커지고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개되지 않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