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수백억 쓰면서 대표 성과는 ‘사상체질분석기’
논문목록은 ‘보안상 미공개’ … 1조원 프로젝트 맡겨도 되나?
정부는 한의약의 육성 및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한의약육성발전계획'을 추진해오고 있다.
2010년까지 진행한 1차 계획에서 4,0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이 투입됐고, 2015년까지 5년간 진행될 2차 계획에 1조 99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문제투성이다.
특히 황당한 것은 1차 계획을 수립한 기관과 이를 주도한 기관, 1차 계획을 평가한 기관, 2차 계획을 수립하고 주도할 기관이 모두 같다는 사실이다. 그 기관이 바로 '한국한의학연구원(이하 한의학연)'이다. <본지 560호 커버스토리, 2011년 3월 28일자 보도>
본지는 국책연구기관인 한의학연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한의학연 측에서 전혀 취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구원에서 발표한 학술논문 목록조차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여러 곳에서 단편적으로 얻은 정보들을 재조합해 본 결과는 놀라웠다.
수백 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고 연간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영은 너무도 허술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한의학연은 물론이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교육과학기술부 측에서는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심층 취재 결과 본지는, 한의학연 관련 의문점을 다음 10가지로 정리했다.
의문 1. SCI 논문 20편 위해 연간 350억 써야 하나? 해마다 편차는 있지만, 인건비와 연구비를 포함해 연간 350억원을 쓰는 한의학연에서 나오는 SCI 논문은 연간 20편 내외에 불과하다.
의문 2. 석박사 연구원 82명, 제대로 연구하고 있나? 한의학연에는 석사 연구원 28명, 박사 연구원 54명 등 82명의 석박사 연구원이 있다. 교육이나 진료 등의 부담 없이 연구에 전념하는 석박사 연구원 82명이 연간 SCI 논문 20편 내외, 총 논문 150편 내외를 발표하고 있다. 인력 규모에 비해 매우 적은 논문 숫자다.
의문 3. 발표논문의 목록조차 공개 안 하는 이유는 뭔가? 학술논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세계에 공개된 것이다. 또한 논문 목록은 한의학연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의학연은 발표논문의 목록을 보여 달라는 본지의 요청을 '보안상의 이유로' 거절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연구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면서 역시 거절했다. 공개 못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의문 4. 논문은 감소하는데 왜 연구비는 늘어나나? 20개 중점 연구과제 관련 논문을 보면, 2008년부터 3년간 논문 수는 160건, 154건, 124건으로 줄었는데, 연구비는 49.6억, 97.4억, 140.8억으로 늘어났다.
의문 5. 유명무실 ‘중풍발병 예측프로그램’, 수십억 가치 있나? 한의학연이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꼽는 것이 '중풍발병 예측프로그램'인데, 20억원 이상이 투입된 이 프로그램을 직접 살펴보면 그야말로 ‘유명무실’ 그 자체다. 게다가 한의학적 원리와도 무관하다.
의문 6. 인기없는 ‘사상체질분석기’, 수백억 가치 있나? 역시 대표적 연구성과로 꼽히는 '사상체질진단툴'은 한의사들조차 실효성이 없다며 외면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100억원이 투입됐고, 정확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500억원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의문 7. 가짜 증명서 발급으로 검사기관 취소됐는데 왜 계속하나? 한의학연은 '허위검사성적서 발급', '시험 실시 없이 검사성적서 발급' 등의 이유로 2009년 '수입한약재 검사기관' 지정이 취소됐다. 그러나 여전히 검사성적서를 발급하고 있다.
의문 8. 경영평가 매년 최하수준인데, 왜 아무 개선 없나? 기획재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경영평가에서 한의학연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의 기간 중 2005년과 2007년 단 두 차례를 빼고는 계속 ‘경영 미흡’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았다.
의문 9. 1차 한의학육성계획 수립 및 집행한 기관이 평가까지 해도 되나? 본지가 3월에 보도했던 것처럼, 4,000억원이 투입된 1차 한의학육성계획의 수립, 집행, 평가를 모두 한의학연이 담당했다. 계획의 검증도 없었고 결과의 평가도 없었다.
의문 10. 이런 기관이 1조원 프로젝트 다시 주도해도 되나? 이 모든 의문점들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연은 다시 1조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인 ‘2차 한의학육성계획’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의학연 혈세 낭비" 국민에게 물어보자
연구기관 이름 무색 … 논문목록도 공개 못해
매년 수백억 쓰면서 최대 성과가 '사상체질분석기' 개발?
한국한의학연구원(원장 김기옥, 이하 한의학연)은 1994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한의학연구소로 설립됐다.
1996년 '한약조제시험파동(일명 한약파동)' 사건을 계기로 한의학 중심기관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1997년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한의학연구원'으로 승격됐다.
이후 국가출연 연구기관으로 지정돼 매년 수백 억 원에 이르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한의학 대표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했다.
한의학연은 2004년 10월 과학기술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2006년 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를 거쳐, 2008년 이후부터 현재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에 소속돼 있다.
한의학연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수천억 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한의약육성발전계획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의료계에서는 한의학연의 능력이나 자질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의학연과 관련된 대표적인 10가지 의문점을 정리했다.
의문 1. SCI 논문 20편 위해 연간 350억 써야 하나?
정부는 한의학연에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교과부 기초기술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한의학연이 지난해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예산규모는 총 359억이다.
이 중에서 73억이 인건비로 쓰이고, 286억 원이 순수연구비로 투자된다.
하지만 연구 성과는 미미하다.
해마다 편차는 있지만 한의학연에서 나오는 SCI논문은 연간 20여 편에 불과했다.
국가R&D정보서비스(이하 NTIS)에 따르면 한의학연은 2008년 한 해 동안 1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국내에 발표된 논문 111건을 제외하면 국외에 발표된 논문은 49편이 전부였다.
이 중에서 SCI저널에 실린 논문은 21편에 불과했다.
결국 정부는 매년 350억 원의 혈세를 투자해 20여 편의 SCI논문을 생산하고 있었던 셈이다.
학계는 과연 어떤 연구이기에 이렇게 많은 연구비가 쓰여야 했는지, 또 연구비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총체적인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SCI논문 20편을 위해서 연간 350억 원을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문 2. 석박사 연구원 82명, 제대로 연구하고 있나?
한의학연은 상당한 수의 석박사 연구원이 한의학을 연구하고 있다.
기초기술연구회에 따르면 2010년말 기준으로 한의학연에는 총 82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고, 이 중 석사연구원이 28명, 박사연구원이 54명에 이른다.
이들 연구원들은 일반 교수들과는 달리 교육이나 진료 등의 부담 없이 오로지 연구에만 전념한다.
한의학연 연구원들은 연간 SCI 논문은 20편 내외, 총 논문은 150편 내외를 발표한다.
학계 및 의료계는 한 해 20여 편의 SCI 논문은 82명의 석박사 연구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 치고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의대 교수는 "임상 교수들 대부분이 하루 100명의 환자를 보면서 최소한 1년에 SCI논문을 하나 이상 발표한다"면서 "82명의 석박사 인력이 연구에만 집중해 그 정도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면 한번쯤 연구기관의 시스템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문 3. 발표논문의 목록조차 공개 안 하는 이유는 뭔가?
학술논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공개된 것이다.
또한 논문 목록은 '한의학연'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의학연이 발표한 논문의 목록은 어디에도 공개돼 있지 않았다.
기자가 발표 논문의 목록을 요청했지만, 한의학연은 '보안상의 이유'라며 논문목록 제공을 거부했다.
상위 부서인 기초기술연구회,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논문목록 제공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연구기관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논문 목록을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계 및 연구 관련자들은 "논문 내용은 경우에 따라 비공개인 경우가 있지만, 이미 공공에게 발표된 논문을 보안상의 이유로 목록조차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NTIS도 한의학연의 논문목록 보고 및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NTIS 관계자는 "한의학연은 2008년 이후 논문 목록을 정리해 올리지 않았다"며 "이전 논문목록 보고에서도 (한의학연은) 타 연구기관과 달리 SCI와 SCI(E)를 구분하지 않고 자료를 제출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학연은 2011년도 6월 현재까지, NTIS에 2009년 및 2010년에 발표된 논문목록도 정리해 보고하지 않은 상태다.
의문 4. 논문은 감소하는데 왜 연구비는 늘어나나?
한의학연의 연구 성과는 매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이는 간단히 발표 논문 수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기초기술연구회의 자료에 따르면 한의학연은 논문 수는 늘었다 줄었다 하며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2008년 발표된 논문은 160건, 2009년 발표된 논문은 199건, 2010년 발표된 논문은 152건이다.
그러나 NTIS사이트에 분산돼 있는 한의학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장기프로젝트인 20개의 연구 과제와 관련된 논문은 2008년 160건, 2009년 154건, 2010년 124건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논문 발표가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침구경락 연구거점 기반구축' 연구가 활력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련 분야의 연구 논문 수는 2008년 52건에서 2009년 36건, 2010년에는 16건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정부에서는 이런 미흡한 연구 성과에도 매년 증가된 예산을 배정해 지원하고 있었다.
한의학연의 출연금은 2008년에 203.4억에서 2011년 359억 원으로 3년만에 1.8배로 늘었고, 인건비도 같은 기간 28.6억에서 72.3억으로 2.5배로 증가했다.
특히 20개 주요 과제에 대한 연구비만 보면, 2008년 49.6억, 2009년 97.4억, 2010년 140.8억, 2011년 179.8억으로 꾸준히 증가해 3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했다.
20개 주요 과제에 대해서 논문 1건당 투입된 연구비를 계산해 보면, 2008년에는 3,100만원(49.6억/160건), 2009년에는 6,300만원(97.4억/154건), 2010년에는 1억4,500만원(179.8억/124건)이다.
논문의 ‘질’을 논외로 한다면, 논문 1편을 생산하는 데 투입된 액수가 2년 만에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한의학연의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의문 5. 유명무실 ‘중풍발병 예측프로그램’, 수십억 가치 있나?
논문 외적인 부분에서 한의학연의 성과는 어떨까.
한의학연에서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중풍발병 예측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의학연은 유전자 변이를 검사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 논문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정보통계였기 때문이다.
또한 한의학연은 프로그램을 건강보험공단과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함께 공동 개발했다고 하면서 해당 인터넷 페이지에 두 기관의 이름 및 로고를 한의학연의 이름 및 로고와 함께 표기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건강보험공단 및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는 ‘모르는 일’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은 "국민들의 건강정보를 이용한 연구는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며 이런 연구가 진행됐다면 공단에서 모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사실 확인 요청 후 4일이 지난 다음 한의학연에서 발표한 논문과 저널을 확인해 결과를 알려왔다.
건강보험공단 모 실장이 연세대 보건대학원 모 교수와 함께 공동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었다.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는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의학연에서 개인적으로 용역을 받아 진행한 사항이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연구용역에 대한 내용을) 모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초기에 연구기간이 9년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연구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나 1차적인 성과물이 나오자 한의학연에서 '그만하면 됐다'며 연구를 중단시켰다"며 "그 이후로 특허를 낸다고 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으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의학연이 관련 프로그램으로 국내 특허를 획득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을 때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도 말했다.
"이미 논문에 공개된 자료였기 때문에 특허를 내봐야 쓰레기 특허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연구가 끝나지 않은 데이터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정확도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 연구자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연은 관련 특허를 획득했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리고 SCI저널에 게재된 연구자의 논문을 한의학연의 성과로 보고했다.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한의학연이 프로그램을 우수 성과로 기초기술연구회에 보고했고, 해당 관리기관은 아무런 검증 절자 없이 이를 교과부에 올렸다.
교과부는 논문과 특허를 근거로 다시 이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제출해, 결국 이 프로그램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선정한 ‘2010년 우수성과 100선’에도 뽑혔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근거가 된 연구성과 보고서에는 "중풍 연관 후보 유전자 변이 중 4개 유전자(ELOVL2, SNTG2, TMEM5, LIPG) 6개 변이에 대해 검증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흡연, 혈압, 비만, 당뇨병 등의 위험요인에 대한 비교위험도를 계산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사실 한의학연은 유전자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에게 용역을 줘 건강보험공단 관계자와 함께 한국인 130만 명의 건강정보를 이용해 뇌졸중의 발생원인에 대한 통계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결과는 학술지 <Atherosclerosis>에 ‘Stroke prediction model : A risk profile from the Korean Study’란 제목으로 게재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의 완성도는 어느 정도나 될까.
이 사이트는 단 세 페이지로 구성됐는데, 첫 화면에 성별, 나이, 혈압, 당뇨병 유무, 흡연 유무 등 십여 가지 항목을 입력하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10년 내 뇌졸중 발생 확률을 퍼센트로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발생 확률을 낮출 수 있는지 부연설명이 있지만, 대부분 '금연하면 뇌졸중 확률이 줄어든다'는 식의 '상식'을 알려주는 수준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한의학연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으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http://ammrc.kiom.re.kr/test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