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ienceon.hani.co.kr/185937 ·독·자·기·고· 이용 경기대 교수메뚜기가 들판 여기저기 튀어 다니듯이 유전체 속을 제멋대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위치이동 할 수 있는 트랜스포존이라는 흥미로운 유전자가 있다. 우리가 알게 된 트랜스포존은 생물에 도움이 되지 않고 유전체의 여기저기를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거나 아니면 정착하고 싶은 곳에 끼어 들어가는 기생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비친다. 과연 그럴까?
어린 시절에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종종 추녀 끝에 매달려 있는 옥수수들을 보며 시골의 정취를 한 층 더 느끼곤 했다. 그런데 가지런히 똑같은 색깔의 낱알들이 박혀 있어야 할 옥수수들 중에 유독 어떤 것들에서는 옥에 티처럼 검붉은 낱알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것들을 보면서 한번쯤은 의아심을 가진 적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특이한 색깔의 옥수수 낱알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트랜스포존’이라는 유전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유전자가 살아 움직인다고?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경험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에 얼마나 무지함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유전자라는 가구들이 정돈된 집, 유전체
특히, 고등 생물의 세포 핵 속에는 DNA 가닥이 실패에 감기 듯 감겨서 만들어진 염색체가 존재하는데 사람의 경우는 체세포에 46개가 들어 있고 인간 유전자들은 바로 이 염색체들에 골고루 퍼져 있다고 보면 된다. 46개 염색체 한 세트를 우리는 인간 유전정보의 총집합체 즉, 인간 ‘유전체(Genome)’라 부른다 (유전체라는 용어는 실제 유전자(Gene)의 첫 부분인 ’Gen-‘과 염색체(Chromosome)의 끝부분인 ‘-ome’을 합쳐 만든 합성어이다). 이미 완료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라는 것은 46개 염색체에 퍼져 있는 유전정보들을 모두 해독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1][2] 같은 성격의 프로젝트들이 다른 생물 종들의 유전체에도 현재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생물의 유전체는 그야말로 다양한 유전자들이 다양한 위치에 배치되어 잘 정돈되어 있는 집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유전자가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고?
그런데 굉장히 재미있는 유전자가 하나 있다. 바로 ‘트랜스포존(Transposons)’이라 하여 메뚜기가 들판 여기저기를 톡톡 튀어 다니듯이 유전체 속을 제멋대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위치이동(‘Trans-‘는 위치를 바꾼다는 의미가 있음)을 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점핑 유전자(Jumping gene)‘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존재이다.[3]
오늘날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생명체에 트랜스포존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정설이 확립된 것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트랜스포존의 존재를 발견하고 주장한 학자는 타계한 옥수수 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Babara MacClintock) 박사인데 그의 발견과 학설은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 대부분의 생물체들에서 이러한 트랜스포존의 존재가 확인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맥클린톡은 1983년 그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4] 트랜스포존은 생물의 종에 따라 그 종류와 점핑하는 능력이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Class I, II, III)로 대별되는데 유전체 내부의 임의의 위치에 무작위적으로 끼어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특히, 유전체 내의 다른 유전자 부위에 끼어 들어가면 유전자의 기능이 모두 망가지는데 이는 생물체의 형질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병을 유발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종양억제 유전자(Tumor suppressor gene)에 트랜스포존이 뛰어 들어가 삽입되면 암이 발생할 확률이 증가한다. 그 외에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사진으로 볼 수 있었던 검붉은 색을 띠는 옥수수 낱알들, 그리고 나팔꽃의 변화된 꽃잎 색깔 등이 모두 트랜스폰존이 색소 유전자 안으로 점핑해 끼어 들어가 비롯한 결과들이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튀어다니는 트랜스포존
트랜스포존의 습성을 볼 때 결국 유전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 통제불능의 골칫덩어리로만 보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생물체에서는 트랜스포존의 점핑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가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여전히 유전체 여기저기에서 트랜스포존들이 박혀 있음이 확인된다.[5] 다만 튀는 능력이 억제되어 기존에 끼어 들어간 부위에 묶여 있는 상태라 보는 것이 적합한 설명일 것이다.[6]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게 된 트랜스포존들이 어떤 경우에는 구속에서 풀려나서 또 다시 튀어 다니면서 유전체 내부 환경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주로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는 생물들의 유전체에서 드물게 관찰된다.[7][8]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실들이 아마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의 과학적 근거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추측해 본다. 생물의 유전체는 매우 역동적이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체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 과정 중에 유전자들의 정보가 바뀌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이런 일련의 재구성 작업(Genome reprogramming)에서 결박이 풀려난 트랜스포존이 역시 하나의 역할을 주도한다고도 알려져 있다.[9] 그러나 그런 변화가 무엇이던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유전체를 지닌 생물의 생존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스트레스에 노출된 생물체가 생존을 위해서 유전체 내의 필요한 유전자들을 가급적이면 원래의 상태로 보존하려는 ‘스트레스에 대한 항상성(Homeostasis)’ 유지의 전략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9] 바로 이런 유전체의 자체 방어능력이 트랜스포존을 지속적으로 속박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에 그런 감시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트랜스포존이 다시 튀게 되는 것이다. 유전체 리모델링하는 ‘진화의 중재자’
우리가 알게 된 트랜스포존은 결국 생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단지 유전체의 여기저기를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거나 아니면 정착하고 싶은 곳에 자신의 존재 유지만을 위해 끼어 들어가는 기생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비친다. 과연 그럴까? 최근에 과학자들은 생물정보학의 다양한 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생물 유전체에서 트랜스포존의 점핑 괘적을 역추적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진화 경로를 분자적인 측면에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10] 특히, 식물의 진화과정을 밝히는 연구에서 이런 보고들이 유난히 많은데[10][11] 이는 아마도 식물과 동물의 근본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식물 은 이동성이 없기 때문에 생활사 전 과정 동안 고정된 위치에서 주변의 온갖 환경 스트레스를 모두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결국 식물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장구한 세월 동안 스트레스와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것이고 그런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것들은 멸종했을 것이고 반면 적응하여 변화한 식물들은 다른 (아)종으로 세분화하는 유전적 다양성을 겪어 왔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옥수수는 유전체의 90%가 트랜스포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3][12] 어찌 보면 옥수수는 트랜스포존의 보고이고 이를 연구하기 위한 가장 좋은 연구재료가 될 수 있으리라. 현대의 옥수수는 7500~1만2000년 전 멕시코에서 자생하던 잡초의 일종인 티오신테(Teosinte)에서 시작해 계속적인 진화와 인위적인 육종을 통해 개량되어 왔다. 그리고 이 과정 중에 트랜스포존이 옥수수 유전체를 다양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역시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한다.[13] 생물의 진화란 ‘변화’와 ‘자연선택’의 순환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프랜스포존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변이체를 탄생하게 하는 데에도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주요 요소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13]그러나 트랜스포존이 생물체의 변이를 유발하는 것은 그리 단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진화의 시간적 스케일은 우리가 십수 년 이나 수백, 수천 년으로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생물체의 아주 작은 형질이 또 다른 (새로운) 형질로 바뀌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그것에 관여된 유전자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며 여기에 필요한 시간적 흐름이란 수만에서 수억 년이 요구될 수 있다.[14] 이는 새로운 변이체의 출현을 어머니 자연이 테스트하고 지구상의 생태계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멤버로 받아들이는 작업에 그 만큼의 시간적 요구가 선행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외래 유전자 옮겨주는 택배트럭으로 변신
생물(주로 식물)의 진화 경로를 추적하는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나마 트랜스포존이 쓸모없이 존재한다는 오명을 벗어나게 해 주는 좋은 신호이다. 한편, 이에 더불어 과학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연구는 트랜스포존을 서로 다른 생물 종 사이에 유전자들을 옮겨주는 ‘택배 트럭’으로 새롭게 변신시켜 놓았다.[15][16] 이미 기존에 여러 가지 개발된 시스템도 있으나 대표적으로 ‘피기백 트랜스포존(PiggyBac transposon)’을 이용한 경우를 예를 들자면 트랜스포존이 튀어 다닐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들이 지닌 점핑효소(Transposase)를 만드는 DNA 염기서열 부분인데 바로 이 부분을 우리가 분리해낸 어떤 특정 유전자의 양쪽에 장착해 트랜스포존 벡터(Vector: ‘운반자’라는 의미)를 만든 뒤 이것을 목표 생물체의 유전체에 넣어주는 것이다. 결국, 튈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된 벡터는 (비록 무작위적이지만) 유전체의 어딘가로 끼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싣고 있던 유전자를 옮겨주는 것이다 (참고로 피기백(PiggBac)이란 용어는 영어의 ’Piggyback‘에서 유래된 것인데 ‘업고 이동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16][17]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하여 최근에는 지금까지 거의 불가능했던 꿀벌의 유전체에 외래 유전자 도입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보고되기도 하였다.[18][19] 앞으로도 트랜스포존을 이용한 외래 유전자의 전달(배달) 및 삽입에 대한 연구는 새로이 발견되는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응용분야에서도 다양하게 적용되리라는 전망이다. 에필로그……내가 옥수수 유전 연구를 위해 대학원 과정을 보냈던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의 유전연구 시험장은 매년 7-8월이 되면 여러 가지 형질의 옥수수들을 가지고 유전실험이 진행된다.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갖는 옥수수들에 대한 유전의 미스터리와 특성이 유전학자들에 의해 지금도 밝혀지고 있다. 연구에 참여하면서 트랜스포존이 옥수수에서 처음 발견되었기에 그 만큼 이 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애착도 컸고 트랜스포존으로 생겨난 옥수수 변이체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그 경이로움과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아주 작은 물방울 하나에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가 있듯 유전체라는 미소 세계에서 트랜스포존은 역시 또 다른 경이로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첫댓글 발표자에 앞서 멋진 정보가 있길래 옮깁니다.
멋진 고급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_^